5화(5,067자)
혼수 비단
조선 검시관, 한성부 연쇄 살인을 맡다 · 남시우
연이는 서리의 소매를 잡은 채로, 이 사람이 칠패에서 제일 냄새나는 사내라고 생각했다. 새우젓 국물이 갓 끝에서 아직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그 아래로 시큼한 식초 냄새가 한 겹 더 깔려 있었다. 연이는 그 냄새를 기억했다. 칠월 열여드레 아침, 우물가에 덮어 놓은 거적 옆에서 맡은 냄새였다.
“들어오세요. 아버지는 창고에서 안 나오세요. 저 사람들 다 보낼 때까지.”
연이는 뒷문 안으로 서리를 끌어들이고 문을 닫았다. 담 안쪽은 별채 뒤뜰이었고, 그 한가운데 돌로 쌓은 우물이 있었다. 우물에는 칠월 이후 나무 뚜껑이 덮였고, 뚜껑 위에 맷돌 한 짝이 얹혀 있었다. 아버지가 얹은 것이었다. 연이는 우물을 등지고 섰다.
“제가 세어 봤어요. 칠월 그 밤에 별채에서 상 차린 사람이 넷이에요. 막례 언니가 생선을 굽고, 월이 언니가 국을 끓이고, 끝분 아주머니가 술을 따랐어요. 그리고 제가 안주를 날랐어요. 아버지가 큰손님이니 딸이 직접 내가야 한다고 하셔서요.”
연이는 말이 빨랐다. 장사꾼의 딸은 말이 빨라야 값을 먼저 부른다. 겁이 날수록 더 빨라졌다.
“시월에 끝분 아주머니가 얼어 죽었다고 했을 때는 그냥 슬펐어요. 동짓달에 월이 언니가 목을 맸다고 했을 때는 이상했어요. 그 언니는 줄넘기 줄도 무서워했거든요. 그리고 며칠 전 막례 언니. 셋이 다 그 밤 사람이에요. 남은 건 저 하나예요. 그러니까 넷째는 저예요. 셈이 그래요.”
“그 밤에 무엇을 보셨습니까?”
연이의 입이 닫혔다. 닫힌 입이 이상하게 웃는 모양이 되었다. 웃지 않으려고 할수록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버지가 말하지 말래요. 말하면 혼사가 깨진대요. 섣달 열흘에 마포 객주 집으로 시집가요. 혼수 비단도 다 끊어 놨어요. 끝분 아주머니가 치수 잰 그 비단요.”
“말하지 않으면 스무아흐레에 아기씨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연이는 그 말을 듣고 오래 서 있었다. 우물 뚜껑 위 맷돌에 서리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연이가 손을 뻗어 그 서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손바닥이 빨갛게 얼었다.
“나리, 스무아흐레 밤에 이 집에 계셔 주실 수 있어요? 그러면 그날 아침에 다 말씀드릴게요.”
“값을 부르시는 겁니까?”
“장사꾼 딸이니까요.”
*
한성부 판관은 스무아흐레 밤에 객주 집 앞에 관속 넷만 세워 달라는 유성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았다.
“관속은 포도청 소관이야. 그리고 넌 이 사건에서 빠졌어. 빠진 사람이 관속을 달래? 그리고 너 몸에서 이게 무슨 냄새냐?”
“새우젓입니다.”
“식초에 새우젓에……. 너 장가는 다 갔다.”
판관은 코를 쥐고 서리방 문을 닫았다. 유성은 문밖에서 갑봉 영감과 마주 섰다. 영감이 어디서 구했는지 육모방망이 하나를 들고 있었다.
“관속이 안 오면 우리가 서면 되지. 내가 젊어서 씨름판에서 소 한 마리 탄 사람이오.”
“영감, 그 방망이는 어디서 났습니까?”
“포도청 담 밑에 떨어져 있었소. 주인 없는 물건은 망자 물건 아니면 내 물건이오.”
그 밤부터 둘은 객주 집 뒷담 골목에 숨어 보기로 했다. 스무아흐레 하루만 지켜서는 그 집에 누가 드나드는지 모른다. 동짓달 스무하루 밤, 유성과 갑봉 영감은 별채 뒷문이 보이는 젓갈 창고 처마 밑에 거적을 깔고 앉았다. 칠패의 밤은 낮보다 비린내가 진했다. 낮에 팔다 남은 생선이 광주리째 얼어 가면서 냄새를 마지막으로 다 뱉어 냈다.
영감은 한 식경도 못 되어 꾸벅꾸벅 졸았다. 육모방망이를 끌어안고 졸다가, 제 코 고는 소리에 놀라 깨기를 세 번 했다. 유성은 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뒷문만 보았다. 손목이 얼어서 손가락 끝의 감각이 하나씩 꺼졌다.
닭이 울기 직전, 골목 끝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다가왔다. 무언가 무거운 것이 어깨 위에서 흔들리는 소리였다. 갑봉 영감이 벌떡 일어나 방망이를 치켜들었다.
“게 섰거라! 내가 씨름판에서 소를 탄 사람이다!”
“아이고, 영감님! 나요, 나! 물값 안 주는 영감님한테 물 대는 석봉이오!”
물지게를 진 석봉이 한 발로 서서 버티고 있었다. 물통 하나가 기울어 찬물이 영감의 버선 위로 쏟아졌다. 영감이 펄쩍 뛰며 방망이를 떨어뜨렸다.
“이 새벽에 여기서 뭐 하는가?”
“뭐 하긴요. 이 집 물은 새벽마다 내가 대오. 객주 집은 물을 많이 써서 하루에 여덟 지게요. 영감님들은 여기서 뭐 하시오? 젓갈 훔치러 왔소?”
석봉은 웃으며 뒷문을 어깨로 밀고 들어갔다. 뒷문은 걸려 있지 않았다. 물통 두 개가 어깨 양쪽에서 같은 박자로 흔들리며 별채 뒤뜰로 사라졌다. 유성은 그 문이 다시 닫힐 때까지 보았다. 새벽마다 이 문이 열린다. 물을 대는 사람에게는.
*
동짓달 스무사흘 오후에 갑쇠가 자백했다.
순덕이 그 소식을 들고 한성부 뒷담으로 왔을 때, 순덕은 다모 차림 그대로였고 얼굴에 검댕도 분도 없었다. 맨얼굴의 순덕은 변장했을 때보다 오히려 낯설었다.
“주리를 엿새 틀었소. 엿새째 되는 날, 갑쇠가 대감 앞에서 하라는 대로 다 말했소. 막례랑 생선 대가리 값으로 싸우다가 홧김에 그랬다, 다른 둘도 그랬다. 비녀는 어디서 났냐니까 주웠다고 했소. 다리뼈가 어긋난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 맞을 리가 있나.”
순덕은 그 말을 하는 동안 손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손바닥이 깨끗한데도 계속 문질렀다.
“대감이 지금 칠패 객주 집에 가셨소. 사건이 닫혔으니 시장 포교들을 거두겠다고, 객주한테 생색내러. 객주가 대감한테 섣달 인사를 크게 한다는 말이 있소.”
유성은 갓을 고쳐 쓰고 칠패로 뛰었다.
*
강 객주 집 앞마당에는 멍석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마당 가운데 신경우가 털배자를 걸치고 서 있었고, 강 객주가 허리를 반으로 접은 채 술잔을 받들고 있었다. 마당 둘레에는 포교 여섯이 늘어서 있었다. 대청 끝 기둥 뒤에 연이가 반쯤 숨어 서 있었다.
“이제 생선 맘 놓고 파시오, 객주. 백정 놈이 다 불었소. 섣달 혼사도 걱정 없이 치르시고.”
“대감 덕에 칠패가 삽니다. 대감, 한 잔 더…….”
유성이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마당의 눈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강 객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가, 붉어졌다.
“또 왔소? 젓갈 맛을 들였소?”
유성은 객주를 지나쳐 신경우 앞에 섰다. 신경우는 술잔을 든 채 유성을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웃고 있었다.
“빠졌다는 놈이 또 들어왔구나. 판관이 단속을 영 못 하는군.”
“대감, 시장 포교를 거두시는 건 대감 뜻대로 하십시오. 이 집 앞에만 스무아흐레 밤까지 둘을 남겨 주십시오.”
“범인은 옥에 있다. 옥에 있는 놈이 담을 넘어 오느냐?”
“갑쇠는 범인이 아닙니다. 넷째 날은 스무아흐레고, 넷째는 이 집 아기씨입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대청 기둥 뒤에서 연이의 치맛자락이 움찔했다. 강 객주가 술잔을 떨어뜨렸다. 술이 멍석에 스며 시큼한 냄새가 났다. 신경우가 천천히 웃음을 거뒀다.
“그래서?”
“칠월 열이레 밤 이 집 별채 잔치에서 상을 차린 여자가 넷입니다. 셋이 죽었습니다. 대감께서 갑쇠 집에서 찾으셨다는 그 비녀, 한 번만 제 손에 쥐어 보게 해 주십시오. 쥐어 보면 압니다.”
신경우는 술잔을 객주에게 넘겼다. 그리고 유성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지난번 검시 막에서처럼 사향 냄새가 났다. 이번에는 손바닥이 날아오지 않았다. 신경우는 목소리를 낮췄다. 마당 사람들은 못 듣고 유성만 들을 만큼이었다.
“칠월 열이레라고 했느냐?”
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신경우의 눈이 아주 잠깐 대청 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다시 높였다.
“한성부 서리가 포도청이 닫은 옥사를 두고 남의 집 잔칫상 앞에서 헛소리를 한다. 혼처를 앞둔 처자를 넷째니 죽을 사람이니 하며 저주를 한다. 태 열 대.”
포교 둘이 유성의 양팔을 잡았다. 멍석이 걷히고, 유성은 언 마당에 엎드려졌다. 강 객주가 허둥지둥 신경우 소매를 잡았다.
“대감, 대감! 남의 집 마당에서 매질은 재수가 없습니다. 열 대는 너무 많소. 일곱 대로 합시다.”
“객주, 이건 생선이 아니오.”
“그럼 여덟 대로…….”
“열 대.”
곰보 박이 태를 들었다. 가는 회초리였지만 언 살에 떨어지면 소리가 맑았다. 첫 대에 유성은 숨을 들이켰고, 둘째 대부터는 언 땅의 냄새를 맡았다. 흙 냄새 밑에 소금 냄새가 섞여 있었다. 칠패 땅은 어디를 파도 소금이 나왔다. 다섯째 대에 엎드린 손이 미끄러져 손목이 돌부리에 찍혔다. 일곱째 대에 대청 기둥 뒤에서 무언가 바스락하는 소리가 났다. 연이가 치마폭을 두 손으로 움켜쥐는 소리였다. 열째 대가 떨어지고 나서 곰보 박이 태를 거뒀다. 신경우는 그때 이미 대문을 나가고 있었다.
“스무아흐레 밤에 이 근처에서 네 얼굴이 보이면 그다음은 태가 아니다.”
*
해가 지고 나서 별채 뒤뜰에 등이 하나 켜졌다. 유성은 우물 곁 돌 위에 앉아 있었다. 등이 쓰라려서 기댈 수가 없었다. 연이가 작은 소반에 더운물 한 사발과 비단 한 필을 들고 나왔다. 비단은 붉었고, 등불 아래에서 물결무늬가 흘렀다.
“혼수 비단이에요. 원삼 지을 거요.”
연이는 그렇게 말하고, 비단 끝을 이로 물어 쭉 찢었다. 비단 찢어지는 소리가 뒤뜰에 길게 울렸다. 유성이 손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이미 손가락 세 개 폭만큼 떨어져 나와 있었다.
“아기씨, 그건…….”
“끝분 아주머니가 치수 잰 거예요. 아주머니가 이걸로 원삼 지어 주시기로 했어요. 이제 지어 줄 사람이 없어요. 남이 지은 원삼은 안 입을래요.”
연이는 더운물에 비단 조각을 적셔, 돌부리에 찍힌 유성의 손목을 감았다. 손이 빨랐다. 매듭을 짓는 손가락이 떨렸는데, 매듭은 단단하게 지어졌다. 피가 비단에 번졌지만 붉은 비단 위라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나리, 아까 마당에서 다 들었어요. 칠월 열이레요. 아버지는 그 밤 일을 말하면 혼사가 깨지고 장사가 망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오늘 마당에서 생각했어요. 원삼 지어 줄 사람이 없는 혼사는 깨져도 돼요.”
연이는 매듭을 한 번 더 당겼다. 그리고 유성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이번에는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칠월 열여드레 아침에 우물에서 분이를 건졌을 때요. 관청에서 사람이 와서 검시를 했어요. 분이 손목을 들어 보고, 한참 들여다보고, 그러고는 내려놨어요. 저는 그 손을 기억해요. 그 손에서 식초 냄새가 났어요.”
등불이 바람에 한 번 누웠다가 일어났다.
“분이 검시하신 분, 나리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