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54자)
떡장수 순덕
조선 검시관, 한성부 연쇄 살인을 맡다 · 남시우
“울면서 내려갔다고?”
신경우가 찻잔 너머로 물었다. 동짓달 스무날, 포도청 대청에는 아직 등잔이 켜져 있었다. 순덕은 찻주전자를 든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제 무당 분을 지우느라 세수를 다섯 번 했는데, 귀 뒤에 아직 분이 남아 있을까 봐 그쪽 귀가 간지러웠다.
“예, 대감. 만리재 노파한테 빗자루로 얻어맞고 고개 아래까지 울면서 뛰었습니다. 오작인 영감은 갓을 잃을 뻔했고요.”
“그놈이 운다라. 검시 막에서 내 손바닥을 맞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놈이.”
신경우는 찻잔을 입에 대지 않고 내려놓았다. 순덕의 손에서 찻주전자 뚜껑이 달그락 울렸다. 순덕은 뚜껑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다모, 네 면천 문서는 내 서안 서랍에 있다. 섣달에 내가 공을 받으면 그 서랍을 연다. 공을 못 받으면 서랍도 못 연다. 알지?”
“압니다, 대감.”
“오늘은 칠패로 가라. 그놈이 칠패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보고, 시장 놈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와라. 갑쇠 말고 다른 이름이 시장에서 돌면, 그 이름부터 나한테 가져와.”
순덕은 절을 하고 물러 나왔다. 대청 문을 닫고 나서야 찻주전자 뚜껑에서 손가락을 뗐다. 손가락 끝에 뚜껑 자국이 동그랗게 찍혀 있었다.
*
떡 함지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순덕은 머리에 똬리를 받치고 함지를 올리면서, 이걸 이고 하루 종일 시장을 도는 여자들의 목이 어떻게 버티는지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동짓달 스무날 새벽, 칠패시장은 아직 어두웠고 화톳불만 여기저기 붉었다.
순덕은 오늘 떡장수였다. 얼굴에 아궁이 검댕을 묻히고, 왼뺨에 팥 한 알을 밥풀로 붙여 사마귀를 만들었다. 거울 대신 물동이를 들여다보고 꾸몄는데, 물동이가 얼어서 얼굴이 잘 안 보였다. 덕분에 검댕이 조금 과했다.
“떡 사시오, 떡! 인절미, 시루떡, 팥 앉힌 시루떡이오!”
첫 손님은 생선전 여자였다. 여자는 순덕의 얼굴을 한참 보더니 엽전 대신 혀를 찼다.
“떡장수가 굴뚝 청소하다 왔나? 그 얼굴로 떡 팔면 떡에서 연기 나겠네.”
“연기 나는 떡이 귀한 거요. 구운 떡이라 생각하쇼.”
여자는 웃으면서 인절미 두 개를 샀다. 순덕은 떡을 팔면서 귀를 열었다. 칠패의 새벽은 말이 많았다. 서해에서 조기 배가 사흘째 안 들어온다는 말, 마포 새우젓 값이 올랐다는 말, 그리고 포교들 욕이었다.
“어제는 포교 놈들이 내 갈치 배를 다 갈라 봤어. 갈치 배 속에 비녀를 숨겼을까 봐. 갈라 놓으면 누가 사?”
“막례 죽고 장사가 반 토막이야. 성안 마님들이 칠패 생선은 재수 없다고 안 사.”
“백정 잡았다며? 그럼 끝난 거 아냐?”
“끝났으면 포교가 왜 아직 돌아다녀?”
순덕은 그 말들 사이를 함지를 이고 지나갔다. 포교가 아직 돌아다니는 이유는 순덕도 알았다. 대감은 갑쇠 말고 다른 놈이 나올까 봐 시장을 단속하고 있었다. 다른 놈이 나오면 갑쇠가 거짓이 되고, 갑쇠가 거짓이면 부뚜막의 비녀도 거짓이 된다. 순덕은 함지를 고쳐 이었다. 함지가 갑자기 더 무거웠다.
*
순천댁 국밥집은 생선전 끝, 개천으로 내려가는 비탈에 붙어 있었다. 가마솥 둘에서 소뼈 고는 김이 쉬지 않고 올랐고, 문 앞 평상에는 지게꾼들이 언 손으로 뚝배기를 감싸 쥐고 있었다. 순덕은 함지를 내려놓고 국밥 한 그릇을 시켰다. 떡장수가 떡을 팔아 국밥을 사 먹는 셈이었다. 오늘 번 돈보다 국밥 값이 비쌌다.
주모 순천댁은 쉰 살쯤 된 여자였다. 국자를 쥔 팔뚝이 장정만 했다. 순덕이 국밥을 반쯤 먹었을 때 순천댁이 부뚜막 옆 빈자리를 국자로 가리켰다.
“거기 앉지 마. 월이 자리여.”
순덕은 엉덩이를 들었다. 부뚜막 옆에 낮은 나무 등걸 하나가 놓여 있었고, 등걸 위가 반들반들했다.
“월이가 거기 앉아서 파 썰고 마늘 까고, 하루 종일 노래를 했어. 경기 지방 소리인 잡가를 어찌나 구성지게 하는지, 지게꾼들이 국밥 한 그릇 더 먹으려고 일부러 늦게 일어났다니까. 스물넷인디, 돈 모아서 시골 친정 동생 장가보낸다고 했어. 그 애가 목을 맸다고? 노래하던 애가 왜 목을 매?”
순천댁의 국자가 솥 가장자리를 탕 쳤다. 국물이 튀어 부뚜막에서 치익 소리가 났다.
“그 애가 노래를 안 한 건 딱 한 번이여. 칠월. 칠월 열이레 밤에 강 객주 집에 잔치가 있었거든. 그 집은 큰 손님이 오면 칠패 여자들을 불러다 일을 시켜. 월이는 부엌을 거들고, 막례는 생선을 대고 남아서 상을 날랐어. 만리재 과부 끝분이도 그날 객주 집 아기씨 옷 치수 재러 왔다가 붙들려서 술상 차렸고.”
순덕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소?”
순천댁이 순덕을 내려다보았다. 검댕 묻은 얼굴과 팥 사마귀를 차례로 보았다.
“떡장수가 그건 왜 물어?”
“떡 팔다 귀가 커졌소. 귀 큰 떡장수가 장사 잘한다잖소.”
순천댁은 피식 웃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그날 밤에 그 집 하녀 하나가 우물에 빠져 죽었어. 분이라고, 스물하나. 이튿날 아침에 건져서 관청에서 검시도 하고, 발 헛디뎌 빠졌다고 했어. 월이가 그 뒤로 노래를 안 했어. 한 달을 안 하다가, 팔월 지나서 다시 하긴 했는데 소리가 영 달라졌지.”
문간에서는 아까부터 물 붓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물지게꾼 석봉이 물통 하나를 부엌 독에 쏟는 소리였다. 물이 독 안에서 콸콸 울리다가, 순천댁이 분이 이름을 말하는 대목에서 뚝 그쳤다. 석봉이 물통을 기울인 채 멈춰 있었다. 물이 독 가장자리를 넘쳐 부뚜막 아래로 흘렀다.
“이 사람아, 물 넘친다! 그 물값은 내가 안 내!”
순천댁이 소리치자 석봉은 그제야 물통을 세웠다. 넘친 물이 순덕의 버선코까지 와서 차갑게 스몄다. 석봉은 걸레를 집어 바닥을 훔치면서 순덕을 보고 씩 웃었다.
“떡장수 아주머니, 떡 하나 외상 되오? 섣달에 몰아서 갚소.”
“칠패는 다 섣달에 갚는다네. 섣달 되면 칠패 사람 다 도망가겠소.”
순덕이 인절미 하나를 건네자 석봉은 그것을 입에 물고 물지게를 졌다. 문을 나서면서 한 번 돌아보았다. 부뚜막 옆 나무 등걸, 월이 자리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언 비탈을 내려갔다. 물통 두 개가 어깨 양쪽에서 똑같은 박자로 흔들렸다.
순덕은 국밥 값을 평상 위에 놓았다. 떡 함지에서 시루떡 한 덩이를 꺼내 월이의 나무 등걸 위에 올려놓았다. 순천댁이 그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유성은 칠패 젓갈 골목 뒤에서 순덕을 만났다. 순덕이 함지를 내려놓으며 칠월 열이레를 말했고, 유성은 그 날짜를 듣고 한동안 젓갈 통만 보았다. 새우젓 통에서 짠 냄새가 올라와 눈이 따가웠다.
“나리, 왜 그런 얼굴이오? 칠월에 무슨 일 있었소?”
“객주를 만나야겠습니다.”
유성은 대답 대신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순덕은 함지를 다시 이면서, 이 서리가 무언가를 안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답을 안 하고 있었다.
강 객주의 창고는 생선전 한가운데에 있었다. 객주는 지방에서 올라온 배의 짐을 받아 팔아 주고 구전을 먹는 큰 도매상이었고, 칠패에서는 강 객주의 말이 곧 값이었다. 창고 안에는 소금에 절인 조기 두름이 천장까지 매달려 있었고, 젓갈 독이 줄지어 섰다. 강 객주는 그 한가운데 평상에 앉아 주판을 튕기고 있었다. 쉰다섯, 살집이 좋았고, 손가락마다 굳은살 대신 반지 자국이 있었다.
“한성부 서리가 무슨 일이오? 백정 잡았다던데.”
“칠월 열이레 밤 일을 여쭈러 왔습니다.”
주판알 튕기는 소리가 멈췄다. 강 객주가 고개를 들었다.
“그건 얼마짜리 질문이오?”
“사람 목숨짜리입니다.”
“사람 목숨은 값이 없지. 값이 없는 건 안 팔아.”
강 객주는 다시 주판을 튕겼다. 유성은 평상 앞으로 다가섰다. 조기 두름에서 떨어진 소금이 신발 밑에서 바스락거렸다.
“그 밤 별채 잔치에서 상을 나르고 부엌을 거든 여자들이 있습니다. 막례, 월이, 끝분. 셋 다 죽었습니다. 열사흘 간격으로 하나씩, 목을 졸리고, 머리에 남이 깎은 비녀를 꽂고 죽었습니다. 그 밤 그 별채에 누가 있었습니까?”
“손님 이름은 장사 밑천이오. 밑천을 공짜로 내주는 객주는 없소.”
“끝분 아주머니는 그 밤 따님 옷 치수를 재러 왔다가 붙들려 술상을 차렸다고 들었습니다. 따님도 그 밤 별채에 있었습니까?”
강 객주의 손가락 끝에서 주판알 하나가 엇나가 튀었다. 알이 평상에서 굴러 바닥 소금 위로 떨어졌다. 객주는 그것을 줍지 않았다.
“다음 열사흘은 스무아흐레입니다. 그 밤 별채에 있던 사람이 또 있으면…….”
“서리.”
강 객주가 주판을 내려놓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는데, 목소리는 반대로 떨렸다.
“내 집 하녀는 발 헛디뎌 빠졌소. 관청에서 그렇게 검시했소. 관청이 적은 걸 관청 서리가 와서 뒤집으면, 그다음엔 뭘 뒤집을 거요? 내 집? 내 장사?”
창고 문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생선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있었다. 맨 앞에 어제 갈치 배를 갈린 장수가 서 있었다.
“이놈이 그 서리여! 막례 죽은 거 살인이라고 떠들어서 포교 불러들인 놈!”
“이놈 때문에 성안 마님들이 칠패 생선 안 사!”
“백정 잡혔으면 끝이지, 또 뭘 들쑤셔?”
누가 먼저 밀었는지는 몰랐다. 유성의 등이 젓갈 독에 부딪혔고, 독 뚜껑이 기울었다. 새우젓 국물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짜고 비린 국물이 갓을 타고 흘러 목덜미로 들어갔다. 차가웠다. 장사치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강 객주는 평상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 젓갈은 값을 안 받겠소. 그러니 다시는 오지 마시오.”
*
유성은 새우젓 냄새를 풍기며 생선전 뒷골목을 걸었다. 지나가던 개 두 마리가 냄새를 맡고 따라왔다. 한 마리는 유성의 버선을 핥았다. 순덕은 열 걸음 뒤에서 함지를 이고 따라오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나리, 식초 냄새에 젓갈 냄새까지. 이제 장가는 다 갔소.”
유성은 대답할 기운이 없었다. 골목은 객주 집 뒷담을 따라 굽었고, 담 너머로 기와지붕 하나가 보였다. 별채였다. 담에는 문 하나가 나 있었는데, 그 문이 안쪽에서 조금 열려 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손 하나가 나와 유성의 소매를 잡았다. 젓갈 국물이 흐르는 소매였는데도 손은 놓지 않았다. 손톱이 고르게 다듬어져 있었고, 손가락에 주판알 자국 같은 굳은살이 있었다.
유성은 그 손의 주인을 보았다. 스물 갓 넘은 여자였다. 눈이 크고, 입술이 터져 있었다. 여자가 숨을 몰아쉬다가, 겁이 났는지 오히려 웃었다.
“제가 넷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