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12자)
바늘쌈
조선 검시관, 한성부 연쇄 살인을 맡다 · 남시우
시월 스무날 저녁, 만리재 고개 아래 초가에서는 호박죽이 끓고 있었다. 끝분은 부뚜막에 쪼그려 앉아 주걱으로 죽을 저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무릎 위에 올린 비단 보퉁이를 쓰다듬었다. 사흘 밤을 새워 지은 저고리 두 벌이었다. 바늘 자국 하나 안 보이게 감친 소매 끝을 끝분은 손끝으로 몇 번이고 확인했다.
“어머니, 죽 눌기 전에 불 좀 빼 주시오. 칠패 다녀오면 식은 죽 데워 먹으면 되니까.”
“이 밤에 거길 왜 가? 내일 아침에 가.”
“삯을 오늘 준다잖소. 오늘 받아야 내일 쌀 사요.”
시어머니는 방문 앞에 앉아 며느리의 등을 보았다. 서른 살 과부의 등이었다. 아들이 죽고 여섯 해, 그 등이 바늘 하나로 두 식구를 먹였다. 끝분은 바늘쌈을 허리춤에 꽂고 보퉁이를 안고 나섰다. 바늘쌈은 끝분이 시집올 때 친정어머니가 수놓아 준 것으로, 모란이 다 닳아 꽃잎이 실밥만 남아 있었다.
호박죽은 그날 밤 끓어 넘쳐 바닥이 눌었다. 시어머니는 그 눌은 죽을 사흘 동안 긁어 먹었다. 며느리는 이튿날 아침 고개 아래 개울에서 얼어 있었다.
*
한성부 서고는 동헌 뒤 행랑 끝에 있었고, 문서 썩는 냄새와 쥐 오줌 냄새가 같이 났다. 열여드레 밤, 유성은 기름등 하나를 들고 그 안을 더듬었다. 등을 든 사람은 갑봉 영감이었는데, 등을 든 손이 아까부터 쉬지 않고 떨려서 서가의 그림자가 춤을 추었다.
“영감, 등 좀 가만히 드십시오. 글자가 춤을 춥니다.”
“나리, 여기 귀신 나온다는 소리 들었소? 옛날에 서리 하나가 문서 고치다 들켜서 여기서 목을 맸다오. 지금도 밤마다 붓 빠는 소리가 난다니까.”
“그 서리는 왜 문서를 고쳤답니까?”
“돈 받고 고쳤지. 그러니 나리는 고치지 말고 보기만 하쇼. 귀신 동무 생기면 큰일이오.”
유성은 시월 묶음에서 검안 한 장을 찾아냈다. 검시 결과를 적어 올리는 이 종이 한 장이 끝분의 죽음에 대해 관청이 가진 전부였다. 최 서리의 글씨는 술 먹은 날 쓴 것처럼 기울어 있었다. 사인은 동사였다. 얼굴에 웃는 기색이 있고 몸을 웅크렸다는 말, 술 냄새가 났다는 말이 있었다.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목 앞에 옷깃에 쓸린 듯한 붉은 자국이 있으나 깊지 않음.
유성은 그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옷깃에 쓸린 자국은 목 앞에만 생긴다. 목 뒤를 보았느냐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최 서리는 앞만 보고 시신을 뒤집지 않았다. 비녀 이야기도 없었다. 갑봉 영감 말로는, 최 서리가 그 나무 비녀를 개울에 던졌다고 했다.
“영감, 끝분은 술을 마셨습니까?”
“만리재 과부가 술 먹는 거 본 사람 없소. 술 냄새는 최 서리 입에서 났겠지.”
유성은 서고 바닥에 앉아 손가락을 꼽았다. 시월 스무날 끝분, 동짓달 초사흘 월이, 동짓달 열엿새 막례. 시월은 서른 날까지 있었다. 스무날에서 열사흘을 더하면 동짓달 초사흘이고, 초사흘에서 열사흘을 더하면 열엿새였다. 손가락이 저절로 한 번 더 접혔다. 열엿새에서 열사흘을 더하면 스무아흐레였다.
“동짓달 스무아흐레.”
유성이 중얼거리자 갑봉 영감의 등잔이 또 흔들렸다.
“무슨 날이오?”
“넷째 날입니다. 앞으로 열하루 남았습니다.”
등잔불 너머에서 영감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순간 서가 저쪽에서 쿵 소리가 났다. 영감이 등을 떨어뜨릴 뻔하다가 두 손으로 받았다. 서가 뒤에서 누군가 끙 하고 돌아누웠다. 술 냄새가 확 끼쳐 왔다. 최 서리가 문서 더미를 베고 자고 있었다.
“귀신이 아니라 최 서리요. 붓 빠는 소리가 코 고는 소리였구먼.”
최 서리는 눈을 반쯤 떴다가 유성을 알아보고 다시 감았다.
“유 서리, 동사로 적으면 다들 편해. 망자도 편하고, 식구도 편하고, 나도 편하고. 그걸 왜 몰라?”
“목 뒤를 보셨습니까?”
최 서리는 대답 대신 코를 골았다.
*
열아흐레 아침, 만리재 고개는 바람이 칼 같았다. 고개 아래 초가는 지붕 이엉을 새로 얹지 못해 묵은 짚이 검게 썩어 있었고, 마당에는 빨랫줄 하나에 행주 한 장이 얼어 매달려 있었다. 유성이 사립문 앞에서 기침을 하자 방문이 열렸다. 예순이 넘은 노파가 문지방을 짚고 내다보았다.
“누구요?”
“한성부에서 왔습니다. 끝분 아주머니 일로 여쭐 게 있습니다.”
노파의 얼굴이 굳었다. 유성은 마당으로 들어서지 않고 사립문 밖에 섰다. 갑봉 영감은 그보다 세 걸음 뒤에 섰다. 오작인은 상갓집 마당을 함부로 밟지 않는다. 영감이 늘 하던 말이었다.
열린 방문 안이 들여다보였다. 윗목에 화로 하나가 식어 있었고, 화로에 꽂힌 인두 손잡이가 무명으로 칭칭 감겨 있었다. 손에 뜨겁지 말라고 감은 무명은 손때로 까맣게 반들거렸다. 벽에는 다 못 지은 남의 집 바지 한 벌이 시침실을 단 채 걸려 있었고, 그 아래 바느질 방석이 사람 엉덩이 모양으로 꺼져 있었다. 방석 주인은 시월 이후 거기 앉지 못했다. 방 안에서 묵은 솜 냄새와 식은 재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나왔다.
“끝분 아주머니는 얼어 죽은 게 아닙니다. 누가 목을 졸랐습니다. 칠패에서 같은 자국으로 두 사람이 더 죽었습니다.”
노파는 한참 말이 없었다. 마른 손이 문지방을 쥐었다 놓았다 했다.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거요?”
“무덤을 다시 열어 목 뒤를 보고 싶습니다. 날이 추워서 아직 자국이 남아 있을 겁니다. 그걸 봐야 넷째가 안 나옵니다.”
노파가 문지방을 넘어 마당으로 내려왔다. 맨발이었다. 언 마당에 맨발이 닿는 소리가 작게 났다. 노파는 유성 앞까지 걸어와서 유성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키가 유성의 가슴께에 닿았다.
“얼어 죽었다고 할 때 나는 그냥 믿었소. 믿어야 묻을 수 있으니까. 그 애 묻을 때 내가 손으로 흙 덮었소. 손톱이 다 빠지도록 덮었소. 그걸 이제 와서 파겠다고?”
“어머님, 그래야 그 애를 죽인 사람을…….”
“어머님 소리 마! 그 애 시집와서 나한테 어머님 소리 한 번 들어 보고 싶다고, 여섯 해를 그 소리 하던 애가 죽었어! 관청 서리가 그 소리를 하나?”
노파는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뽑아 유성의 가슴팍에 던졌다. 단단한 것이 갈비뼈를 때리고 떨어졌다. 수놓은 천으로 감싼 바늘쌈이었다. 유성이 그것을 줍는 사이 노파는 부엌에서 빗자루를 들고 나왔다.
“관청 놈들은 죽은 사람도 가만 안 둬! 나가! 나가라고!”
빗자루가 유성의 어깨를 치고, 다음 빗자루는 세 걸음 뒤에 있던 갑봉 영감의 갓을 쳤다. 갓이 날아가 빨랫줄에 걸렸다. 언 행주 옆에 갓이 나란히 매달려 흔들렸다. 노파의 고함에 이웃집 사립문들이 열렸고, 아낙 둘이 부지깽이를 들고 뛰어나왔다.
“영감, 갓은 두고 갑시다!”
“저게 내 하나뿐인 갓이오!”
갑봉 영감은 빨랫줄에 매달린 갓을 낚아채느라 빗자루를 두 대 더 맞았다. 둘은 고개 아래까지 뛰었다. 다 내려와서 돌아보니 노파는 사립문 앞에 맨발로 서 있었다. 빗자루를 땅에 짚고, 움직이지 않았다.
*
고개 아래 개울가에서 갑봉 영감은 갓을 털며 투덜거렸다.
“무덤 파자는 소리는 나리가 하고 빗자루는 내가 맞고. 이게 무슨 셈이오? 나리, 이 갓 값은 물어내쇼.”
“섣달에 석봉이 물값이랑 같이 드리겠습니다.”
“그건 안 준다는 소리잖소.”
그때 고개 쪽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짤랑, 짤랑. 붉은 쾌자에 고깔을 쓴 무당 하나가 언 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얼굴에 분을 어찌나 두껍게 발랐는지 볼이 밀가루 반죽 같았고, 눈썹은 숯으로 두 줄을 굵게 그었다. 무당은 개울가에 이르자 방울을 흔들며 유성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객귀가 붙었네, 객귀가 붙었어. 시체 만지는 손에 객귀가 셋이나 붙었네.”
갑봉 영감이 얼른 갓을 품에 안고 뒷걸음질 쳤다. 유성은 무당의 손등을 보았다. 터서 갈라진 손등이었다. 그 손등을 어제 포도청 담 모퉁이에서 보았다.
“다모께서 굿도 하십니까?”
무당이 방울을 멈췄다. 분 바른 얼굴이 잠깐 일그러졌다가 걸걸한 웃음으로 풀렸다.
“이 분 사느라 엽전 세 닢 들었는데, 서리 나리 눈은 못 속이네. 대감이 나리 뒤를 밟으라 했소. 그래서 밟고 있소. 고개 위에서 빗자루 맞는 것도 다 봤소.”
“보고하실 겁니까?”
“보고는 해야지요. 서리가 만리재 과부 집에 가서 빗자루를 맞았다. 대감이 좋아하겠네.”
순덕은 방울을 쾌자 소매에 넣고 개울가 바위에 걸터앉았다. 고깔이 자꾸 한쪽으로 흘러내렸다.
“갑쇠는 아직 안 불었소. 사흘째 주리를 틀어도 소 잡는 얘기만 하오. 대감은 스무사흘까지는 자백을 받으라 하셨고. 섣달 전에 옥안을 올려야 하니까.”
“그 소나무 비녀는 누가 부뚜막에 넣었습니까?”
순덕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깔을 벗어 무릎에 놓고, 숯으로 그린 눈썹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눈썹이 번져 이마까지 검게 묻었다.
“나리, 다모는 관비요. 관비는 묻는 사람이 아니라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오. 나는 면천해서 내 이름으로 살고 싶소. 대감이 그걸 쥐고 있소.”
“그러면 왜 소나무라고 알려 주셨습니까?”
“갑쇠 마누라 배가 이만하니까.”
순덕은 제 배 앞에 두 손으로 둥근 원을 그려 보이고 일어섰다. 고깔을 다시 쓰고 방울을 한 번 흔들었다.
“대감한테는 서리가 빗자루 맞고 울면서 내려갔다고 하겠소. 울었다고 해야 대감이 안심하니까. 나리, 다음엔 맞기 전에 피하쇼.”
무당은 짤랑거리며 고개 쪽으로 돌아 올라갔다. 갑봉 영감이 그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무당 노릇을 하려면 분을 반만 발라야지. 저래서는 귀신이 먼저 도망가겠네.”
유성은 대답 없이 바늘쌈을 펼쳤다. 닳은 모란 수 안쪽에 바늘이 굵기대로 열두 개 꽂혀 있었다. 가장 가는 바늘은 머리카락만 했다. 그 바늘을 쥐고 여섯 해 두 식구를 먹인 손을 유성은 본 적이 없었다. 최 서리는 그 손을 보았을 텐데, 그 손에 대해서는 한 줄도 적지 않았다.
바늘 사이에 접힌 종이 한 장이 끼어 있었다. 펴 보니 언문으로 치수가 적혀 있었다. 바느질감을 맡기는 집에서 써 준 쪽지였다. 어깨너비, 소매 길이, 화장, 그리고 맨 끝에 한 줄.
칠패 강 객주 댁 아기씨 혼수, 섣달 초엿새까지.
유성은 그 줄을 오래 보았다. 언년 어멈이 하던 말이 귀에 다시 들렸다. 막례는 남대문 안 큰 집들에 조기를 댔다. 그중 제일 큰 단골이 지방 배의 생선을 받아 도매로 넘기는 칠패 강 객주 집이었다.
개울 얼음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끝분이 얼어 있던 개울이었다. 갑봉 영감도 갓 털기를 멈추고 쪽지를 들여다보았다. 글을 모르는 영감은 글자 대신 유성의 얼굴을 읽었다.
“그 집이오?”
“그 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