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85자)
백정의 손
조선 검시관, 한성부 연쇄 살인을 맡다 · 남시우
포도청 대청의 화로는 숯을 아끼느라 늘 반쯤만 붉었다. 순덕은 그 화로 곁에 꿇어앉아 찻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오늘은 무슨 심부름이 떨어질지 손가락으로 세어 보았다. 다모는 포도청에서 차 시중을 들고, 여자 죄인이나 여자 증인의 몸을 뒤지는 일을 맡은 관비였다. 차 따르는 손과 남의 저고리 속을 더듬는 손이 같은 손이었다.
동짓달 열여드레, 해가 뜨기 전이었다. 포도대장 신경우는 털배자를 벗지도 않고 대청에 앉아 있었다. 그 앞에 종사관 하나와 포교 셋이 엎드려 있었는데, 그중 얼굴에 마맛자국이 촘촘한 곰보 박이 제일 앞이었다.
“남대문 밖 가죽 다루는 백정 갑쇠라고 있습니다. 그놈이 만초천 얼음을 깨고 소가죽을 빤다고 합니다요. 열엿새 밤에도 거기서 가죽을 빨았다고, 생선전 사람 둘이 봤답니다.”
“생선 장수 계집하고는 무슨 사이냐?”
“지난여름에 생선 대가리 값으로 막례하고 멱살잡이를 했답니다. 막례가 목청이 커서 시장 바닥이 다 들었답지요.”
신경우는 찻잔을 들었다가 순덕 쪽을 보았다. 순덕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다모의 눈은 대감과 마주치면 안 됐다.
“다모, 너도 따라가라. 갑쇠 계집 몸도 뒤져야지.”
“예, 대감.”
신경우는 소매에서 손바닥만 한 보자기 하나를 꺼내 순덕 앞에 툭 던졌다. 쪽빛 무명 보자기였고, 안에 무언가 가늘고 단단한 것이 들어 있었다.
“이걸 들고 가라. 부엌을 뒤질 때 네가 먼저 들어가라.”
순덕은 보자기를 집었다. 무게가 젓가락 한 짝만 했다. 무엇이냐고 묻는 다모는 이 마당에 없었다. 순덕은 보자기를 앞치마 안주머니에 넣으면서, 손이 조금 떨리는 것을 찻주전자를 잡아 감췄다.
곰보 박이 일어서다가 무릎을 화로 귀퉁이에 박고 신음을 삼켰다. 순덕은 그 틈에 혼잣말을 했다.
“차는 식는데 일은 뜨겁네.”
*
갑쇠의 집은 남대문 밖 언덕배기에 있었고, 집이라기보다 가죽 말리는 덕장에 방 한 칸을 붙여 놓은 것이었다. 마당에 소가죽 넷이 장대에 걸려 얼어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북처럼 둥둥 울렸다. 석회 구덩이에서 올라오는 매운 냄새에 곰보 박이 기침을 하다가 갑쇠의 몽둥이에 맞을 뻔했다. 갑쇠는 포교 넷이 달려들고 나서야 무릎을 꿇었다.
순덕은 방에서 갑쇠의 처를 뒤졌다. 처는 마른 몸에 배만 불렀다. 저고리 섶을 들추는 순덕의 손목을 잡더니, 놓지 않고 매달렸다.
“다모 언니, 그이는 열엿새 밤에 가죽 빨고 와서 내 옆에서 코 골았소. 코를 너무 골아서 내가 발로 찼다니까. 발로 찬 사람이 증인이오.”
“발로 찬 증인은 포도청에서 안 받아요.”
순덕은 그렇게 말하고 처의 손을 떼어 냈다. 방 안에는 쇠가죽 냄새 밴 이불 한 채, 깨진 사발 둘, 갓난아기 배내옷 한 벌이 있었다. 비단은 실 한 오라기도 없었다. 순덕은 그것을 눈으로 다 세고 나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포교들보다 먼저였다. 부뚜막은 식어 있었고, 아궁이에서 재 냄새가 났다. 순덕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앞치마 안으로 손을 넣었다.
*
한성부의 실무를 꾸리는 정 판관은 사람 좋은 얼굴에 배가 둥글었고, 시신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하얘졌다. 유성이 동헌 뒤 서리방에서 대추나무 비녀 두 개를 꺼내 놓자 판관은 소매로 코부터 막았다.
“그걸 왜 내 앞에 놓나? 그거 망자 머리에서 뽑은 거 아닌가?”
“예. 하나는 막례, 하나는 동짓달 초사흘에 죽은 월이 것입니다. 시월 만리재 과부에게도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판관 나리, 이건 한 사람이 한 짓입니다.”
“그만, 그만. 내가 지난번에 너 검시하는 거 보다가 쓰러진 거 알지? 이마에 혹이 사흘 갔어.”
정 판관은 의자를 뒤로 물리고 손을 휘저었다. 휘젓는 손 사이로 말이 새어 나왔다.
“포도청이 오늘 새벽에 남대문 밖 백정을 잡으러 갔다네. 대감이 한성부 우두머리이신 판윤 대감께 사람을 보냈어. 한성부 서리 하나가 검시 막에서 말대꾸를 했다고. 유 서리, 이 사건은 손 떼게. 네 검안은 이미 올라갔으니 할 일 다 했어.”
“범인이 아닌 사람이 잡히는데요?”
“그걸 네가 어찌 아나?”
“목에 남은 끈 자국 폭이 손가락 하나입니다. 백정이 쓰는 가죽끈은 그보다 두 배 넓습니다.”
판관은 대답하지 않고 비녀 두 개를 눈으로 피하면서 문 쪽을 가리켰다. 유성은 비녀를 다시 무명에 싸 품에 넣고 일어섰다. 문을 나설 때 판관이 뒤에서 한마디를 더 했다.
“포도청 근처에는 가지 말게. 가지 말라고 했어. 알아들었지?”
유성은 알아들었다고 대답하고 곧장 포도청으로 걸어갔다.
*
포도청 뜰은 마당이라기보다 얼어붙은 웅덩이 같았다. 밤새 뿌린 물이 그대로 얼어서 디딜 때마다 미끄러웠고, 그 한가운데 사내 하나가 형틀에 묶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 마흔쯤 된 사내였고, 어깨가 소처럼 넓었고, 맨발이었다. 발등이 언 땅에 닿아 보랏빛이 돌았다.
백정 갑쇠였다. 갑쇠의 무릎 사이로 붉은 칠을 한 주릿대 두 개가 막 끼워지는 참이었다. 주리는 두 다리 사이에 막대를 끼우고 비트는 고문이었다. 곰보 박이 막대 한쪽을 잡고 침을 뱉었다.
대청 위에 신경우가 앉아 있었고, 그 곁에 순덕이 찻주전자를 들고 서 있었다. 대문 밖에서는 여자 하나가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갑쇠의 처였다.
유성은 문지기 포교의 팔을 밀치고 뜰로 들어섰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끝에 힘을 주었더니 걸음이 우스꽝스러워졌다. 마루 위에서 누가 킥 웃었다가 신경우의 눈길에 입을 닫았다.
“한성부 검시 서리 유성입니다. 검안 대조를 하러 왔습니다.”
“대조할 게 뭐가 있나?”
신경우가 말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유성을 보았다.
“목 자국을 낸 손이 이 사람 손인지 봐야 합니다. 검시한 자가 보지 않으면 옥안이 서지 않습니다.”
옥안은 살인 옥사의 문서였다. 신경우는 잠깐 말이 없다가 턱으로 갑쇠를 가리켰다. 보아라, 그리고 꺼져라.
유성은 갑쇠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소 피와 생가죽과 석회 냄새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갑쇠가 고개를 들었다. 눈두덩이 터져 한쪽 눈이 반만 뜨였다.
“나리, 나는 소를 잡소. 사람을 어찌 잡소? 소는 잡으면 고기라도 남지, 사람은 잡아서 뭐 하오?”
“열엿새 밤에는 어디 있었소?”
“초저녁에 개천 얼음 깨고 가죽 빨았소. 그러고 집에 가서 잤소. 마누라가 내 코 고는 소리에 발로 찼으니 그게 증거요. 정강이에 멍 든 거 보실라우?”
곰보 박이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들썩였다. 유성은 웃지 않았다.
“손 좀 봅시다.”
유성은 묶인 갑쇠의 손을 뒤에서 펴 보았다. 손가락 마디가 유성의 두 배는 굵었다. 손바닥은 굳은살이 거북 등처럼 갈라져 있었고, 손톱은 살이 드러날 만큼 바짝 깎여 있었다. 칼을 쥐는 백정은 손톱에 피와 기름이 끼는 것을 싫어해서 늘 짧게 깎는다. 유성은 갈라진 굳은살 틈을 엄지로 쓸었다. 틈마다 석회가 하얗게 박혀 있었다.
유성은 일어서서 대청을 향해 말했다.
“막례는 오른손 가운뎃손가락 손톱 밑에 남색 비단실을 쥐고 죽었습니다. 끈을 잡고 버틴 손입니다. 그 끈은 비단이고, 손가락 하나 폭입니다. 이 사람 손은 비단을 쥐면 결이 다 일어나서 실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집에 비단끈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비단은 훔칠 수도 있지.”
“훔친 비단으로 목을 조르고, 남의 머리에 비녀를 새로 깎아 꽂고 갑니까? 이 손으로요?”
마루 위가 조용해졌다. 대문 밖 울음소리만 계속 들렸다. 신경우는 찻잔을 내려놓고, 곁에 선 순덕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순덕이 앞치마 안주머니에서 쪽빛 보자기를 꺼내 바쳤다. 신경우가 보자기를 풀었다.
붉은 나무 비녀 하나가 나왔다.
“갑쇠 놈 부엌 부뚜막 틈에서 나왔다. 다모가 찾았다.”
유성은 그 비녀를 보았다. 대청과 뜰 사이가 다섯 걸음이었다. 붉은빛이 맞고, 길이도 맞아 보였다. 끝에 무늬가 있는지는 거기서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서 봐야겠습니다.”
“네 눈이 그렇게 좋으냐?”
신경우는 비녀를 다시 보자기에 싸서 제 소매에 넣었다. 그러고는 곰보 박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곰보 박이 주릿대를 비틀었다. 갑쇠의 입에서 소 우는 소리 같은 것이 터졌다. 유성은 한 걸음 내디뎠다가 얼음에 발이 미끄러져 한쪽 무릎을 찧었다. 그 자세 그대로 소리쳤다.
“주리로 받은 말은 옥안에 못 씁니다!”
“네가 언제부터 형률을 가르쳤나? 검시 서리는 시체나 씻어라.”
뜰 대문이 열리더니 정 판관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갓끈이 풀려 있었고, 얼굴은 하얬다. 시신이 없는데도 하얬다. 판관은 신경우에게 허리를 굽혀 절부터 하고, 유성의 팔을 잡아끌었다.
“대감, 송구합니다. 이놈은 오늘부로 이 사건에서 뺐습니다. 판윤 대감께서도 그리 이르셨습니다.”
“판관이 아랫사람 단속을 잘하시오. 다음엔 내가 대신 해 드리리다.”
신경우의 말이 끝나기 전에 곰보 박이 다시 주릿대를 잡았다. 유성은 판관에게 끌려 나가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갑쇠는 고개를 떨군 채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순덕은 찻주전자를 든 채 마루 기둥처럼 서 있었다.
*
포도청 담 모퉁이를 돌자 판관이 유성의 소매를 놓았다. 소매를 놓고는 제 이마를 짚었다.
“너 때문에 내가 십 년은 늙었다. 오늘부터 검시 막에도 나오지 마라. 다음 시신은 최 서리가 본다.”
“최 서리는 시월에 동사라고 적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무 탈 없이 잘 살지 않나!”
판관은 홱 돌아서 가 버렸다. 배가 둥근 사람이 화가 나서 빨리 걸으니 뒤뚱거렸다. 유성은 담에 등을 기댔다. 무릎이 쑤셨고, 어제 맞은 뺨이 아직 화끈거렸다. 대문 쪽에서는 갑쇠 처의 울음이 쉰 목소리로 바뀌어 이어졌다.
“나리, 이거 떨어뜨리셨소.”
돌아보니 머릿수건을 질끈 동인 여자 하나가 유성의 갓을 내밀고 있었다. 뜰에서 미끄러질 때 벗겨진 갓이었다. 아까 마루 위에서 찻주전자를 들고 있던 다모였다. 가까이서 보니 눈썹이 짙고 입매가 야무졌고, 손등이 터 있었다.
“포도청 다모 순덕이오. 나리 갓에서 식초 냄새가 나서 주인을 금방 찾았소.”
“고맙습니다.”
유성이 갓을 받자 순덕은 가지 않고 담벼락에 붙어 섰다. 좌우를 한 번 살폈다. 골목에는 언 빨래를 이고 가는 아낙 하나뿐이었다. 순덕은 그 아낙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유성의 귀 가까이 입을 댔다. 순덕의 숨에서 끓인 보리차 냄새가 났다.
“그 비녀, 소나무예요. 붉은 물 들인 소나무.”
순덕은 그 말만 하고 몸을 뗐다. 유성이 무어라 묻기도 전에 머릿수건을 고쳐 매고 포도청 쪽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쪽문이 닫혔다. 유성은 품 안의 무명 꾸러미를 손으로 눌러 보았다. 대추나무 비녀 두 개가 그 안에서 단단하게 맞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