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28자)
이게 셋째요
조선 검시관, 한성부 연쇄 살인을 맡다 · 남시우
정조 12년 동짓달 열이레, 새벽닭이 울기 전인 인시였다. 숭례문 밖 칠패시장 뒤로 흐르는 만초천은 밤새 바닥까지 얼어서, 개천이라기보다 잿빛 돌길처럼 누워 있었다. 그 얼음 위에 여자 하나가 엎드려 있었다.
도성을 다스리는 관청 한성부에서 검시를 맡은 아전, 검시 서리 유성은 개천 둑을 미끄러져 내려오다가 엉덩방아를 한 번 찧었다. 일어나면서 손바닥을 털었더니 언 흙이 아니라 생선 비늘이 묻어 나왔다. 새벽마다 서해와 한강 배가 부린 조기와 갈치를 저 위 시장 바닥에 깔고, 팔다 남은 대가리와 내장은 이 개천에 버렸다. 그래서 칠패의 겨울 얼음에는 비린내가 얼어 있었다.
“나리, 거기 서쇼. 한 발짝만 더 오면 나리도 같이 검시합니다.”
얼음 가장자리에 화톳불을 피워 놓고 쪼그려 앉은 늙은이가 말했다. 한성부 오작인 갑봉 영감이었다. 오작인은 관원 대신 시신을 직접 만지고 씻기는 천한 일꾼이고, 갑봉 영감은 그 일을 마흔 해 했다. 영감은 소매로 코를 훔치고 술 냄새 섞인 하품을 했다가 얼른 제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아이고, 망자 앞에서 하품을 했네. 따라 하면 어쩐다.”
“따라 하면 좋지요. 입을 벌려야 혀를 보니까.”
유성은 그렇게 대답하고 얼음 위로 걸어 들어갔다. 둑 위에는 포도청 포교 둘이 장대를 들고 서 있었다. 장대 끝으로 여자의 치맛자락을 들추다가, 유성이 다가오자 장대를 등 뒤로 감췄다. 포교 하나가 혀를 찼다.
“한성부 서리가 또 맨손이네. 저 손으로 밥은 어찌 먹나 몰라.”
유성은 대꾸하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얼음의 찬 기운이 바지를 뚫고 무릎뼈까지 올라왔다. 여자의 얼굴은 얼음에 반쯤 붙어 있었고, 머리 위에는 뒤집힌 생선 광주리가 굴러가다 만 자리에 멈춰 있었다. 광주리 안에서 얼어붙은 조기 세 마리가 서로 꼬리를 문 채 하얗게 눈을 뜨고 있었다.
“춥지. 조금만 참아. 얼굴부터 떼자.”
유성은 여자에게 낮게 말하면서 두 손을 화톳불 쪽으로 내밀었다. 갑봉 영감이 끓는 물을 담은 질그릇을 건넸고, 유성은 물에 적신 무명을 여자의 뺨과 얼음 사이에 조금씩 밀어 넣었다. 서두르면 살갗이 얼음에 남는다. 김이 오르고, 얼음이 녹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유성은 왼손으로 여자의 턱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이마를 감싸서, 갓난아이 목을 가누듯 얼굴을 돌려 들었다.
둑 위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시장에서 내려온 광주리 장수 여자들이었다. 그 가운데 등이 굽은 여자 하나가 치마를 걷어 쥐고 얼음 위로 뛰어들려다 포교 팔에 걸렸다.
“막례야! 아이고, 막례야!”
*
검시 막은 개천가 버드나무 아래에 쳤다. 장대 넷을 꽂고 거적을 둘러 바람을 막고, 바닥에는 볏짚을 두껍게 깔았다. 막례는 그 볏짚 위에 반듯이 뉘어졌다. 스물여섯이라고 했다.
막례를 알아본 등 굽은 여자는 언년 어멈이었다. 언년 어멈은 거적 틈에 얼굴을 대고 쉬지 않고 말했다. 울면서 말하고, 말하면서 울었다.
“칠패에서 목청이 젤로 컸어요. 남대문 안 장사치들이 막례 소리 듣고 아침 먹었다니까. ‘서해 조기 어제 왔소, 오늘 안 사면 내일은 갈치 값이오’ 그게 무슨 소린지 아무도 몰라도 다들 웃고 샀어요. 딸년 복이가 일곱 살인디, 이제 누가 그 목청을 내요?”
유성은 그 말을 들으면서 막례의 저고리 고름을 풀었다. 손은 바빴고 귀는 언년 어멈 쪽에 가 있었다. 시신을 볼 때 산 사람의 말을 같이 듣는 것은 유성의 오래된 버릇이었다. 몸이 하는 말과 사람이 하는 말이 어디서 어긋나는지, 그 자리에 늘 무언가가 있었다.
물지게를 진 장정 하나가 거적을 들추고 들어왔다. 칠패에 물을 대는 물지게꾼 석봉이었다. 석봉은 양쪽 물통을 내려놓고 언 손을 비비며 씩 웃었다.
“한성부 물값은 섣달에 몰아 받습니다. 영감님, 지난달 것도 아직이오.”
“망자 앞에서 돈 얘기 마라. 망자가 듣고 저승 노잣돈 모자란다고 서운해한다.”
갑봉 영감이 핀잔을 주자 석봉은 머리를 긁고 나갔다. 물통에서 김이 올랐다. 영감은 그 물에 무명을 적셔 막례의 목과 손을 씻었다. 씻는 손이 빨랐고 부드러웠다. 마흔 해 씻긴 손이었다.
목에는 처음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어서 핏기가 다 빠진 살은 밀랍처럼 고르기만 했다. 유성은 갑봉 영감에게 눈짓했다. 영감이 단지 두 개를 열었다. 하나에서는 시큼한 식초 냄새가 났고 다른 하나에서는 술 빚고 남은 지게미의 들큼한 냄새가 났다. 『신주무원록』, 세종 임금 때 주를 달아 펴낸 그 검시 책은 멍이 숨어 있는 살에 지게미와 식초를 덮어 두라고 했다. 덮어 두고 살이 데워지면 숨은 멍이 올라온다.
“한 식경은 기다려야 하요. 그동안 나리는 저 여자들 좀 내보내쇼. 산 사람이 우는 소리에 멍도 겁나서 안 올라온다니까.”
“그것도 책에 있습니까?”
“내 책에 있소.”
유성은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사이 막례의 손을 들어 손톱을 하나씩 보았다. 생선 비늘이 박힌 손톱이었다. 비늘을 밀어내던 손톱 끝이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에서 걸렸다. 유성은 대나무 꼬챙이로 손톱 밑을 살살 긁었다. 실 한 올이 딸려 나왔다. 화톳불 빛에 들어 보니 남색이었고, 꼬아 놓은 결이 고르고 윤이 났다. 무명실이 아니었다.
“영감, 이거 보십시오. 비단입니다.”
“생선 장수 손톱에 비단이라. 비단 저고리 입은 손님 멱살이라도 잡았나.”
유성은 대답 대신 막례의 머리를 보았다. 쪽진 머리는 얼음 위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거기 꽂힌 비녀는 붉은빛이 도는 나무였다. 뽑아 보니 손바닥에 묵직했다. 결이 촘촘한 대추나무를 칼로 깎아 낸 것이었고, 끝에 작은 매듭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깎은 자리가 아직 반들거렸다. 새것이었다.
거적 틈으로 언년 어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막례 비녀는 놋비녀요. 지 어미가 시집갈 때 준 거라 잘 때도 안 뺐어. 그 나무 막대기는 막례 것이 아니어요.”
*
해가 둑 위로 손가락 두 마디쯤 올라왔을 때 갑봉 영감이 지게미를 걷어 냈다. 막례의 목에 연한 보랏빛 띠가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거적 안의 그늘에서는 그 띠의 가장자리가 흐렸다.
영감이 구석에서 기다란 꾸러미를 풀었다. 붉은 기름을 먹인 종이우산이었다. 책은 맑은 날 붉은 우산 아래에서 햇빛으로 상처를 보라고 했다. 붉은빛이 걸러져야 멍의 가장자리가 선다. 영감이 우산을 펴 들고 거적 밖 양지로 나서자 둑 위의 장사치들이 웅성거렸다.
“누가 시집가나?”
“시집가는 게 아니라 저승 가는 거여, 이 사람아.”
유성은 막례를 볏짚째 양지로 끌어내 붉은 그늘 아래 눕혔다. 그러자 띠가 또렷해졌다. 손가락 하나 폭의 자국이 목을 평평하게 한 바퀴 돌았고, 목덜미 뒤에서 두 줄이 엇갈렸다. 스스로 목을 맨 사람의 자국은 귀 뒤로 비스듬히 올라가다가 매듭 자리에서 끊긴다. 이 자국은 올라가지도 끊기지도 않았다. 뒤에서 누군가 두 끝을 엇갈려 당긴 자국이었다.
그때 둑 위에서 말발굽 소리가 났다. 장사치들이 양쪽으로 갈라섰다. 털배자를 걸친 무관 하나가 말에서 내려 천천히 둑을 걸어 내려왔다. 그 뒤로 포교 다섯이 따랐다. 포도대장 신경우였다. 도성의 도둑과 살인을 잡는 포도청의 우두머리였고, 섣달 고과를 스무날 앞두고 있었다.
신경우는 붉은 우산을 올려다보더니 갑봉 영감에게 물었다.
“잔치냐?”
“검시 중이옵니다, 대감.”
신경우는 유성을 보지도 않고 막례의 얼굴 위에 섰다. 털신 끝이 막례의 머리카락 한 가닥을 밟았다. 유성은 그 털신을 보았다.
“칠패 광주리 장수가 장 파하고 술 한 잔 걸치고, 얼음판에 누워 잤다. 그러다 얼었다. 동사로 적어라.”
“동사가 아닙니다.”
신경우의 고개가 그제야 유성 쪽으로 돌아왔다. 느렸다.
“그래서?”
“목에 끈 자국이 있습니다. 한 바퀴 평평하게 돌고, 목덜미에서 엇갈립니다. 스스로 맨 자국이 아닙니다. 손톱 밑에서는 비단실이 나왔고, 머리에는 이 여자 것이 아닌 비녀가 꽂혀 있었습니다.”
“멍은 얼음판에 넘어지다 생겼겠지. 실은 손님 옷에서 묻었을 게고, 비녀는 샀겠지.”
“넘어져서 목을 한 바퀴 다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감, 우산 아래로 와서 보십시오.”
신경우는 오지 않았다. 대신 유성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털배자에서 사향 냄새가 났다. 유성의 손에서는 식초 냄새가 났다. 두 냄새가 붉은 그늘 아래에서 섞였다.
“네 손에서 시체 냄새가 난다.”
“시체를 만졌으니까요.”
손바닥이 날아왔다. 유성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고, 귀에서 쇳소리가 났다. 둑 위 장사치들이 한꺼번에 숨을 멈췄다. 갑봉 영감은 우산을 든 채 꼼짝도 하지 않았고, 우산의 붉은 그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그늘이 흔들리면 멍이 안 보인다. 영감은 그것을 알았다.
“중인 서리가 포도대장 앞에서 말대꾸를 한다. 이 사건은 포도청이 맡는다. 시신은 오늘 안으로 집에 내주고 묻어라. 사흘이면 내가 범인을 내놓겠다.”
신경우는 돌아서다가 한마디를 더 얹었다.
“범인이 있다면 말이다.”
*
시신은 해가 중천에 오기 전에 언년 어멈과 칠패 여자들이 메고 갔다. 복이라는 일곱 살 아이가 맨 뒤에서 생선 광주리를 끌고 따라갔다. 광주리가 언 흙에 긁히는 소리가 둑 너머로 오래 들렸다.
유성은 화톳불 앞에 앉아 뺨을 눈으로 문질렀다. 손바닥 자국이 화끈거렸다. 갑봉 영감이 술병을 내밀었다가 유성이 고개를 젓자 제 입에 털어 넣었다.
“나리, 오늘 뺨 값은 비싸게 쳐야 하요. 포도대장 손바닥은 귀한 거니까.”
“영감, 저 비녀를 처음 보는 눈이 아니던데요.”
갑봉 영감은 술병을 내려놓았다. 한참을 불만 보다가, 허리춤에서 손때 먹은 담배쌈지를 끌러 냈다. 쌈지 안에서 담뱃잎 냄새와 함께 붉은 나무 막대기 하나가 나왔다. 대추나무 비녀였고, 끝에 작은 매듭 무늬가 있었다.
유성은 막례 머리에서 뽑은 비녀를 그 옆에 나란히 놓았다. 길이도, 무늬도, 깎은 칼자국의 방향도 같았다.
“동짓달 초사흘에 국밥집 부엌일 하던 월이가 목을 맸다고 했지요. 포도청이 그렇게 적었소. 그 애 머리에 이게 꽂혀 있었소. 포도청 포교가 버리라는 걸 내가 주웠소. 망자 머리에 남이 꽂은 물건은 버리면 탈이 난다니까.”
영감은 잠깐 숨을 골랐다.
“시월 스무날에 만리재 아래 개울에서 삯바느질하던 과부가 얼어 죽었다고 했잖소. 그때 최 서리가 검시했고, 그 과부 머리에도 나무 비녀가 있었소. 최 서리가 그냥 던져 버렸지.”
갑봉 영감은 두 비녀 옆, 아무것도 없는 볏짚을 언 손가락으로 한 번 짚었다. 버려진 첫째 자리였다. 그다음 막례의 비녀를 짚었다.
“이게 셋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