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34자)

열한 번

지리산에 풀어 준 호랑이 · 하윤슬

10월 28일 아침 여덟 시⁠, 육한담은 센터 마당에 천막이 세워지는 것을 관사 창으로 보았다⁠. 하얀 천막 셋이 나란히 올라갔고⁠, 가운데 천막 위로 현수막이 펼쳐졌다⁠. 「⁠범 귀환 반년 · 지리산의 내일⁠」⁠. 현수막 글씨 옆에 범 그림이 있었다⁠. 줄무늬가 거꾸로 그려져 있었다⁠. 한담은 고쳐 달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준호가 노크하고 들어왔다⁠. 노크는 처음이었다⁠. 눈이 붉었고⁠, 손에 초코바가 없었다⁠.

“⁠선배⁠, 뽑았어요⁠.⁠”

한담은 창에서 몸을 돌렸다⁠.

“⁠어젯밤에 서버 들어가서 9월 점 다 뽑았어요⁠. 열한 번요⁠. 같은 폴더에 다른 것도 있었어요⁠. 봄에 외부 조사팀이 낸 보고서요⁠. 그리고 선배 메모도요⁠. 센터장님이 스캔해서 넣어 두셨더라고요⁠.⁠”

“⁠아버지 드렸어⁠?⁠”

“⁠새벽에 드렸어요⁠. 아부지가 이장님네 가서 크게 뽑으셨어요⁠. 이장님네 손자가 쓰던 프린터로⁠.⁠”

한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가 서버에 들어가 기록을 뽑는 데 쓴 비밀번호는 닷새 전 한담이 새로 정한 것이었다⁠. 한담은 바꾸지 않았다⁠. 준호가 어디서 무엇을 뽑을지 알면서 바꾸지 않았다⁠. 한담은 준호에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선배⁠, 막으실 거예요⁠?⁠”

“⁠아니⁠.⁠”

준호가 오래 한담을 보았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뒤져 초코바 하나를 꺼냈다⁠. 반으로 부러뜨려 반을 한담에게 내밀었다⁠.

“⁠그럼 저 오늘 아부지 옆에 서 있을게요⁠. 선배 옆 말고요⁠.⁠”

“⁠그래⁠. 거기 있어⁠.⁠”

*

호단은 동틀 녘부터 산이 시끄럽다는 것을 알았다⁠. 골짜기 아래 길에서 쇳덩이들이 줄지어 으르렁거렸고⁠, 문 닫히는 소리가 쉬지 않고 났다⁠. 사람 냄새가 바람마다 실려 왔다⁠. 땀 냄새⁠, 꽃 냄새 같은 것을 몸에 뿌린 냄새⁠, 탄 고기 냄새⁠. 냄새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알아볼 수 없었다⁠.

호단은 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배가 아직 흑염소로 묵직했다⁠. 굴 입구 앞에 쌓인 마른 참나무 잎을 앞발로 긁어 안으로 들였다⁠. 한 번 긁고⁠, 돌아서 몸을 눕혀 보고⁠, 다시 나가 긁었다⁠. 잎이 바닥에 두툼해질 때까지 그렇게 했다⁠. 왜 그러는지 호단은 몰랐다⁠. 몸이 시키는 대로 했다⁠. 잎이 다 들어오자 호단은 잎 위에 몸을 둥글게 말았다⁠. 마른 잎이 바스락거리며 배 밑에서 꺼졌다⁠.

배 속에서 둘이 서로 밀었다⁠. 호단은 혀로 배를 핥았다⁠. 털 밑으로 배가 단단하게 당겨 있었다⁠. 핥는 동안 골짜기 아래에서 높은 쇳소리가 한 번 울렸다⁠. 사람 목소리를 크게 키운 소리였다⁠. 호단은 귀를 뒤로 눕혔다⁠. 소리는 오래 이어졌다가 그쳤고⁠, 그친 자리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는 소리가 일었다⁠. 짐승 떼가 놀랐을 때 내는 소리와 비슷했다⁠. 호단은 소리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마른 잎 위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굴 천장에서 흙 알갱이 하나가 떨어져 코끝에 닿았다⁠. 호단은 재채기를 하고⁠, 다시 엎드렸다⁠.

*

장관의 행사는 열 시에 센터 마당에서 시작해 열한 시에 끝났다⁠. 장관은 연설을 읽었고⁠, 표정훈은 호단의 사진 두 장을 큰 화면에 띄웠다⁠. 한담은 오 분 동안 호단의 건강 상태를 말했다⁠. 체중이 늘었고⁠, 굴을 골랐고⁠, 11월 말에 새끼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박수가 나왔다⁠. 장관이 천막 앞에서 묘목 한 그루를 심었다⁠. 삽으로 흙을 세 번 떴다⁠.

발표를 마치고 천막 뒤로 물러나는데 누군가 한담의 어깨를 두드렸다⁠. 얼룩무늬 조끼 대신 양복 윗도리를 입은 곽두식이었다⁠. 양복 아래로 등산화가 보였고⁠, 웃을 때 금니가 빛났다⁠.

“⁠선생님⁠, 발표 잘 들었심더⁠. 11월 말이라예⁠.⁠”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함양 군수님 모시고 왔지예⁠. 피해방지단장이 이런 데 빠지면 안 되지예⁠.⁠” 곽두식은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화면에 큰 화면 속 호단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송아지가 죽던 날 아침 한담이 찍은⁠, 억새밭에 엎드린 사진이었다⁠. 표정훈이 고른 두 장 가운데 하나였다⁠. “⁠사진 참 잘 나왔네예⁠. 뒤에 바위 생긴 것까지 다 보이고⁠.⁠”

한담은 사진 속 억새밭 뒤의 벼랑을 보았다⁠. 범바위의 갈라진 결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무내골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볼 바위였다⁠. 곽두식은 휴대전화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군수 일행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며 한 번 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정중한 인사였다⁠.

열한 시 반⁠, 장관 일행은 예정대로 무내골 회관으로 향했다⁠. 피해 농가를 위로하는 순서였다⁠. 출입 금지 합판은 행사 날 아침 주영길이 직접 치웠다⁠. 장관은 사람이고⁠, 범 선생도 아니고⁠, 센터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회관 마당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할머니들은 손에 피켓을 들고 있었다⁠. 「⁠송아지도 생명이다⁠」 「⁠우리 칠번을 기억하라⁠」 「⁠범은 산으로 사람은 집으로⁠」⁠. 마지막 피켓은 주영길이 들었는데⁠, 「⁠사람⁠」의 받침이 또 빠져 「⁠사라은 집으로⁠」가 되어 있었다⁠. 기자 하나가 피켓을 찍다가 웃음을 참았다⁠.

장관이 마당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회색 정장에 등산화를 신었다⁠. 장관은 칠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칠구는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옆에 서 있던 준호에게서 둘둘 만 종이를 받아 들었다⁠.

“⁠장관님⁠, 하나만 보고 가쇼⁠.⁠”

칠구는 종이를 마당 바닥에 펼쳤다⁠. 주영길과 준호가 귀퉁이를 밟았다⁠. 크게 뽑은 지도였다⁠. 무내골 둘레에 노란 선이 둥글게 그려져 있었고⁠, 선 안쪽에 빨간 점 열한 개가 찍혀 있었다⁠. 점마다 옆에 날짜와 시각이 쓰여 있었다⁠. 9월 3일 01시 12분⁠, 9월 7일 23시 48분⁠, 9월 14일 02시 37분⁠. 9월 14일 점 옆에는 블루베리 밭 카메라 사진이 오려 붙여져 있었다⁠.

“⁠이것이 9월이요⁠. 범이 9월에만 우리 마을에 열한 번 왔소⁠. 아무도 우리한테 말 안 했소⁠.⁠”

장관이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표정훈이 장관 곁으로 다가왔다⁠.

“⁠장관님⁠, 경계 통과 기록입니다⁠. 피해는 없었고⁠…⁠…⁠.⁠”

“⁠센터장⁠, 잠깐⁠.⁠”

칠구는 지도 위에 종이 두 장을 더 내려놓았다⁠. 한 장은 봄에 외부 조사팀이 낸 보고서의 마지막 장이었다⁠. 「⁠방사 예정지 일대 멧돼지 밀도는 암컷 한 마리가 겨울을 나는 데 필요한 수의 삼분의 일 수준⁠. 방사 시기를 가을 이후로 미루고 먹이 자원 회복을 먼저 할 것을 권고함⁠.⁠」 권고 문장 옆 여백에 볼펜으로 쓴 글씨가 있었다⁠. 「⁠장관님 일정상 4월 방사 유지 — 표⁠」⁠.

다른 한 장은 한담의 메모였다⁠. 「⁠근접 열한 번⁠. 마을 알림 필요⁠. 9월 20일 육한담⁠.⁠」

마당이 조용해졌다⁠. 기자들의 셔터 소리만 났다⁠. 장관이 메모를 집어 들었다⁠. 한 번 읽고⁠, 고개를 들어 사람들 사이를 둘러보았다⁠.

“⁠육한담 선생 계십니까⁠?⁠”

한담은 천막 기둥 옆에 있었다⁠. 걸어 나갔다⁠. 주황 조끼가 마당 가운데로 나오자 마을 사람들이 한 걸음씩 물러났다⁠. 준호는 아버지 옆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 메모⁠, 선생이 쓴 겁니까⁠?⁠”

“⁠네⁠.⁠”

“⁠9월에 알았습니까⁠?⁠”

“⁠알았습니다⁠.⁠”

한담은 장관을 보았다가 칠구를 보았다⁠. 칠구는 지도 귀퉁이를 밟은 채 한담을 보고 있었다⁠. 한담은 말을 고르지 않았다⁠.

“⁠메모를 써서 센터장님께 드렸고⁠, 센터장님이 정하신다고 하셔서 더 밀지 않았습니다⁠. 다음 점이 매번 선 밖에 찍혀서⁠, 다음에도 그럴 거라고 믿었습니다⁠. 송아지가 죽은 날까지 마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9월을 뺀 반년 경과 보고서에 담당 수의사로 서명했습니다⁠.⁠”

표정훈이 한담을 돌아보았다⁠. 안경 너머의 눈이 커져 있었다⁠. 반년 경과 보고서는 아직 장관 책상까지 올라가지 않았다⁠. 한담이 말하지 않았으면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장관이 표정훈을 보았다⁠.

“⁠센터장⁠, 이 보고서 지금 어디 있습니까⁠?⁠”

“⁠과장님 손에⁠…⁠…⁠.⁠”

“⁠가져오세요⁠.⁠”

*

칠구가 지도를 접지 않고 한담에게 다가왔다⁠. 장화가 지도 위 빨간 점 하나를 밟았다⁠. 칠구는 한담 앞에서 멈췄다⁠.

“⁠니는 왜 그것을 지금 말허냐⁠?⁠”

“⁠어르신이 지도를 펴셨으니까요⁠.⁠”

“⁠내가 안 폈으믄⁠?⁠”

한담은 대답하지 못했다⁠. 칠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는 고개가 한담을 탓하는지 이해하는지 한담은 알 수 없었다⁠.

“⁠9월에 말했으믄 나는 송아지를 밤마다 외양간 안쪽 칸에 넣었어⁠. 울타리도 쳤을 것이고⁠. 니 돈 말고 내 돈으로⁠.⁠” 칠구가 말했다⁠. “⁠지금 말해 봐야 송아지는 안 살아와⁠.⁠”

“⁠압니다⁠.⁠”

“⁠알믄 됐어⁠.⁠” 칠구는 몸을 돌리다 말고 덧붙였다⁠. “⁠그래도 장관 앞에서 말한 것은 니가 말했어⁠. 남이 정한 거 말고⁠.⁠”

장관은 회관 안으로 들어가 이십 분 동안 나오지 않았다⁠. 다시 나왔을 때 장관은 기자들 앞에서 짧게 말했다⁠. 협약 위반 여부를 감사하겠다고 했다⁠. 센터의 보고 체계를 감사하겠다고 했다⁠. 피해 농가에 보상을 먼저 지급하고 서류는 나중에 받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재포획팀을 꾸려 대기시키겠다고 했다⁠. 세 번째 피해가 나면 그날로 잡는다고 했다⁠.

“⁠새끼는 어떻게 됩니까⁠?⁠”

기자 하나가 물었다⁠.

“⁠새끼도 데려옵니다⁠. 사육장에서 낳게 하겠습니다⁠.⁠”

할머니들이 피켓을 내렸다⁠. 주영길은 「⁠사라은 집으로⁠」 피켓을 뒤집어 들었다⁠. 뒷면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기자들이 흩어지자 칠구가 지도를 둘둘 말아 준호에게 건넸다⁠. 준호는 지도를 받아 겨드랑이에 끼고 아버지 옆에 그대로 있었다⁠. 칠구가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니는 인자 센터 가라⁠.⁠”

“⁠아부지 옆에 있는다고 했어요⁠.⁠”

“⁠오늘은 됐어⁠. 니 선배 혼자 저러고 있잖여⁠.⁠” 칠구가 턱으로 마당 끝을 가리켰다⁠. 한담이 장관 일행의 차가 떠난 자리에 혼자 서 있었다⁠. “⁠니가 뽑아 온 종이 때문에 저 사람이 저리 됐어⁠. 니 아부지 때문이기도 하고⁠. 가서 옆에 서 있어⁠. 그래야 공평허제⁠.⁠”

준호는 지도를 아버지 손에 도로 쥐여 주고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칠구는 지도를 든 채 아들의 등을 오래 보았다⁠. 나미자가 회관 문간에서 행주를 쥐고 남편을 보고 있었다⁠.

*

오후 네 시⁠, 천막이 걷힌 센터 마당에 묘목 한 그루만 남았다⁠. 장관이 흙을 세 번 떠 덮어 준 묘목이었다⁠. 표정훈은 묘목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담은 표정훈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육 선생은 오늘부터 추적에서 빠집니다⁠.⁠”

표정훈은 한담을 보지 않고 말했다⁠.

“⁠노트북 반납하고⁠, 안테나 반납하세요⁠. 수의사 일은 사육장만 보세요⁠. 감사가 끝날 때까지⁠.⁠”

“⁠센터장님⁠.⁠”

“⁠내가 덮은 건 맞아요⁠. 덮자고 한 것도 나고⁠. 그런데 육 선생⁠, 장관 앞에서 보고서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어요⁠. 9월만 말해도 됐어요⁠. 보고서는 아직 안 올라갔으니까⁠.⁠”

“⁠보고서에 제 이름이 있었어요⁠.⁠”

“⁠그 이름 하나 지키려고 범 하나를 내준 거예요⁠.⁠” 표정훈이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재포획팀이 꾸려졌어요⁠. 세 번째가 나면 끝입니다⁠. 호단도⁠, 새끼도⁠, 다음 범 두 마리도⁠, 이 센터도⁠.⁠”

한담은 조끼 주머니에서 수신기를 꺼냈다⁠. 수신기는 손바닥 안에서 따뜻했다⁠. 반년 동안 한 번도 손에서 떨어진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한담은 수신기를 표정훈의 손에 올려놓았다⁠. 표정훈이 수신기를 쥐자⁠, 범바위를 향해 둔 안테나도 없이 수신기가 혼자 한 번 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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