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84자)

흑염소

지리산에 풀어 준 호랑이 · 하윤슬

호단은 송아지 냄새가 오는 동쪽 능선을 버리고 서쪽 골짜기로 내려갔다⁠. 사흘 동안 동쪽 빈터의 냄새는 점점 짙어졌다⁠. 썩은 냄새에 파리 소리가 섞였고⁠, 쇠기름 냄새는 날마다 새로 묻었다⁠. 쇠기름 냄새의 사내는 해가 질 때마다 빈터에 와서 오래 머물다 갔다⁠. 호단은 빈터 쪽으로 바람이 불 때마다 굴 안으로 머리를 돌렸다⁠.

서쪽 골짜기는 처음 가는 길이었다⁠. 비탈이 가팔랐고⁠, 칡넝쿨이 발목을 감았다⁠. 골짜기 아래로 내려갈수록 낯선 냄새가 짙어졌다⁠. 소 냄새와 비슷하면서 달랐다⁠. 더 맵고 노린 냄새였다⁠. 털이 짧고 기름진 짐승⁠, 수컷이 제 몸에 오줌을 묻히는 짐승의 냄새였다⁠. 여럿이었다⁠. 수십 마리가 한데 모여 서로의 냄새를 덮고 있었다⁠.

골짜기 끝에 쇠그물이 둘러쳐져 있었다⁠. 소 외양간보다 낮았고⁠, 앞발을 올리면 넘을 높이였다⁠. 쇠그물 안에서 검은 짐승들이 서로 몸을 붙이고 잠들어 있었다⁠. 뿔이 짧고 수염이 났다⁠. 한 마리가 잠결에 울었다⁠. 메에⁠, 하고 떨리는 소리였다⁠.

호단은 쇠그물 앞에 엎드려 오래 기다렸다⁠. 개 냄새가 있었지만 멀었다⁠. 사람 냄새는 집 안에 있었고⁠, 집 안은 조용했다⁠. 배 속의 것이 발길질을 했다⁠. 배가 등에 붙어 있었다⁠. 호단은 뒷다리를 모았다⁠.

쇠그물을 넘는 데는 한 번이면 됐다⁠. 검은 짐승들이 한꺼번에 깨어 울었다⁠. 울음이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호단은 가장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한 마리의 목을 물었다⁠. 뿔이 뺨을 긁었다⁠. 몸집이 송아지의 반도 안 되는 짐승이라 오래가지 않았다⁠. 호단은 짐승을 문 채 다시 쇠그물을 넘었다⁠. 집 안에 불이 켜졌고⁠, 개가 짖기 시작했고⁠, 높은 소리가 터졌다⁠. 호단은 뒤돌아보지 않고 비탈을 올랐다⁠.

칡넝쿨 우거진 비탈 위에서 호단은 처음으로 배를 채웠다⁠. 뜨겁고 짠 피가 혀를 적셨고⁠, 살은 노린내가 났지만 부드러웠다⁠. 뼈를 씹는 소리가 호단의 귀 안에서 울렸다⁠. 호단은 다 먹고 나서 오래 털을 핥았다⁠. 앞발을 핥고⁠, 가슴의 흰 털을 핥고⁠, 뺨의 긁힌 자리를 핥았다⁠. 배가 무겁게 처졌고⁠, 배 속의 것들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이쪽에서 밀면 저쪽에서 밀었다⁠. 호단은 몸을 둥글게 말고 처음으로 깊이 잠들었다⁠. 잠결에 고개를 돌릴 때마다 목에 달린 네모난 것이 돌에 부딪혀 딸깍 소리를 냈다⁠. 소리가 날 때마다 귀가 한 번씩 움찔했지만 눈은 뜨지 않았다⁠. 비탈 아래 골짜기에서는 아직 개가 짖고 있었고⁠, 높은 소리는 해가 뜰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

아침 일곱 시⁠, 육한담은 무내골 들머리의 출입 금지 합판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 주영길이었다⁠.

“⁠센터 아가씨⁠, 들어와⁠.⁠”

“⁠출입 금지잖아요⁠, 이장님⁠.⁠”

“⁠오늘만 들어와⁠. 검안서 끊어야 혀⁠. 출입 금지는 내일부터 다시 혀⁠.⁠”

주영길의 흑염소 우리는 마을 맨 아래⁠, 귀농 부부의 블루베리 밭 옆에 있었다⁠. 쇠그물 한 귀퉁이가 안으로 휘어 있었고⁠, 우리 안의 흑염소 서른 마리가 한쪽 구석에 몰려 떨고 있었다⁠. 우리 밖 풀밭에 핏자국이 비탈로 이어졌다⁠. 주영길은 내복 바람으로 쇠그물을 붙잡고 있었다⁠. 메가폰은 들고 있지 않았다⁠.

“⁠칠번이여⁠.⁠”

“⁠네⁠?⁠”

“⁠칠번이 없어⁠. 우리 칠번이⁠. 세 살 묵은 암놈⁠.⁠” 주영길의 목소리가 떨렸다⁠. “⁠염소들이 이름이 없어서 번호로 불렀어⁠. 이름 지으면 정들어서 못 판다고⁠. 근데 번호도 정이 들더라고⁠.⁠”

한담은 핏자국을 따라 비탈을 조금 올라갔다⁠. 칡넝쿨 아래에서 뿔 두 개와 발굽 넷과 털 한 무더기를 찾았다⁠. 더 남은 것은 없었다⁠. 다 먹었다⁠. 호단이 송아지는 몇 입만 뜯고 놓고 갔는데⁠, 흑염소는 뼈까지 씹었다⁠. 한담은 뿔을 들어 손바닥에 올려 보았다⁠. 가벼웠다⁠. 굶주린 범의 식사였다⁠.

비탈 아래에서 칠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번⁠.⁠”

칠구가 쇠그물 앞에 와 있었다⁠. 총은 메지 않았고⁠, 손에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칠구는 한담이 들고 내려오는 뿔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가 주영길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형님⁠, 협약서에 세 번이라 혔지라⁠. 이제 한 번 남았소⁠.⁠”

“⁠한 번 남았구먼⁠.⁠” 주영길이 쇠그물에서 손을 떼고 한담을 보았다⁠. 엊그제 총회에서 귤을 반쯤 들었다가 내렸다가 다시 들던 얼굴이 아니었다⁠. “⁠아가씨⁠, 나 이제 칠구 편이여⁠. 칠번 값은 안 받아도 좋으니께 범 선생 좀 데려가⁠.⁠”

“⁠이장님⁠, 보상 신청은⁠…⁠…⁠.⁠”

“⁠보상은 받어⁠. 받을 것은 받어⁠.⁠” 주영길은 코를 훌쩍였다⁠. “⁠데려가는 것도 데려가고⁠.⁠”

*

오전 열한 시에 환경부 과장이 내려왔다⁠. 서울 말씨에 등산화를 신은 마흔 남짓의 사내였다⁠. 표정훈이 세종에서 함께 차를 타고 왔다⁠. 과장은 흑염소 우리를 한 바퀴 돌고⁠, 핏자국이 이어진 비탈을 사진으로 찍고⁠, 주영길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을 사람들이 쇠그물 앞에 모였다⁠. 칠구가 맨 앞에 있었다⁠.

“⁠협약대로 하겠습니다⁠.⁠” 과장이 말했다⁠. “⁠한 번 더 피해가 나면 재포획합니다⁠. 오늘부터 범이 마을 일 킬로미터 안에 들어오면 주민 여러분 휴대전화로 바로 문자가 갑니다⁠.⁠”

“⁠문자 오믄 뭣을 혀요⁠? 문자 보고 송아지 업고 도망가요⁠?⁠”

칠구가 물었다⁠.

“⁠외양간 문을 닫으시고⁠, 바깥에 나오지 마시고요⁠.⁠”

“⁠외양간 문은 늘 닫혀 있었소⁠. 범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디⁠.⁠”

과장은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적고 나서 수첩을 덮고⁠, 칠구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어르신⁠,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호단은 러시아 정부가 우리한테 맡긴 범입니다⁠. 계약서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 어제 러시아 환경 당국에서 우리 장관님께 서한이 왔습니다⁠. 새끼를 밴 범이 다치면 다음 범은 없다고요⁠. 수컷 두 마리를 더 들여오는 일이 그 서한 한 장에 달려 있습니다⁠.⁠”

“⁠러시아 범 새끼가 내 송아지보다 귀하다는 소리요⁠?⁠”

“⁠나라 사이 약속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조합하고 약속했소⁠. 다음 달까지 이자 내겠다고⁠.⁠” 칠구가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조합에서 온 문자가 떠 있었다⁠. 「⁠방칠구 조합원님 10월 이자 납부일이 사흘 지났습니다⁠.⁠」 “⁠나라 사이 약속은 나라가 지키고⁠, 내 약속은 누가 지켜 줄 것이요⁠?⁠”

과장은 대답 대신 명함을 내밀었다⁠. 칠구는 명함을 받아 들고 앞뒤를 뒤집어 보더니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에는 이미 표정훈의 명함과 군청 과장의 명함과 경찰서 생활안전계장의 명함이 들어 있었다⁠. 명함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명함은 많은디 송아지는 없어⁠.⁠”

귀농 부부의 남편이 쇠그물 옆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이 장면을 찍다가 아내에게 손등을 맞았다⁠. 아내는 찍지 말라고 했고⁠, 남편은 민박 손님들이 궁금해한다고 했다⁠. 둘이 다투는 사이 흑염소 한 마리가 휘어진 쇠그물 틈으로 빠져나와 과장의 등산화를 핥았다⁠. 과장은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었다⁠. 주영길이 달려가 염소 목을 끌어안았다⁠. 십이번이었다⁠.

표정훈이 과장 곁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전기 울타리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이번에는 사료 지원도 「⁠검토⁠」가 아니라 「⁠지원⁠」이라고 했다⁠. 귀농 부부가 손을 들어 울타리를 받겠다고 했고⁠, 주영길도 받겠다고 했다⁠. 칠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휴대전화가 동시에 울렸다⁠. 시험 문자였다⁠.

「⁠[환경부] 호랑이 접근 알림 시험 발송입니다⁠. 실제 접근 시 외출을 삼가 주십시오⁠.⁠」

“⁠이장⁠, 이거 이장 방송보다 빠르네⁠.⁠”

윗집 할매가 말했다⁠. 주영길은 휴대전화를 귀에 대 보았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

오후 세 시⁠, 표정훈이 검사실 문을 닫았다⁠. 과장은 군청에 들렀다가 저녁에 다시 오기로 했다⁠. 표정훈은 서류철에서 종이 석 장을 꺼내 실험대 위에 펼쳤다⁠. 「⁠지리산 방사 호랑이 반년 경과 보고⁠」⁠. 맨 끝 장 아래쪽에 서명 칸이 둘 있었다⁠. 센터장 칸에는 표정훈의 서명이 이미 들어가 있었다⁠. 다른 칸 옆에는 「⁠담당 수의사⁠」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한담은 두 번째 장을 읽었다⁠. 「⁠마을 접근 이력⁠: 2030년 10월 9일 최초 접근 및 가축 피해 1건⁠. 10월 20일 가축 피해 1건⁠.⁠」 9월은 없었다⁠.

“⁠열한 번이 없네요⁠.⁠”

“⁠접근 이력이에요⁠. 피해 이력하고 같이 적었습니다⁠. 9월은 접근이 아니라 경계 통과예요⁠.⁠”

“⁠과장님은 경계 통과를 접근으로 읽으실 거예요⁠.⁠”

“⁠그래서 안 적은 겁니다⁠.⁠” 표정훈은 안경을 벗어 실험대에 내려놓았다⁠. 렌즈에 검사실 형광등이 비쳤다⁠. “⁠육 선생⁠, 9월을 넣으면 과장은 오늘 저녁에 재포획을 결정합니다⁠. 센터가 반년 동안 마을을 속였다는 말이 먼저 나가고요⁠. 그러면 호단은 다음 주에 사육장으로 들어가요⁠. 새끼는 사육장 콘크리트 바닥에서 태어나고요⁠.⁠”

“⁠사육장에서도 새끼는 낳을 수 있어요⁠.⁠”

“⁠연해주 사람들한테 물어봤어요⁠? 처음 새끼 낳는 범이 철창 안에서 낳으면 어떻게 되는지⁠.⁠”

한담은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연해주 재활센터에서 처음 새끼를 낳은 사육장 암컷들 가운데 절반이 새끼를 핥지 않았다⁠. 사람 냄새가 너무 가까우면 어미가 새끼를 버렸다⁠. 한담은 연해주에서 버려진 새끼 둘에게 우유병을 물려 본 적이 있었다⁠. 하나는 살았고 하나는 사흘을 못 넘겼다⁠.

“⁠한 번만 더 넘기면 돼요⁠.⁠” 표정훈이 말했다⁠. “⁠11월 말까지 한 달 반이에요⁠. 새끼가 굴에서 태어나고⁠, 그다음은 육 선생 말대로 하겠습니다⁠. 울타리도 치고⁠, 문자도 보내고⁠, 9월도 내가 직접 말하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아니에요⁠.⁠”

한담은 펜을 들었다⁠. 볼펜 끝이 서명 칸 위에서 한참 멈춰 있었다⁠. 9월 스무날 저녁⁠, 센터장실 책상 위에 메모를 올려놓고 나오던 자기 손이 떠올랐다⁠. 그때도 한담은 한 번만 넘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볼펜이 종이에 닿았다⁠. 서명은 평소보다 작았다⁠.

표정훈은 종이를 서류철에 넣고 안경을 썼다⁠.

“⁠고마워요⁠. 육 선생이 지킨 거예요⁠.⁠”

한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바닥에 흑염소 뿔의 가벼운 무게가 아직 남아 있었다⁠.

*

밤 아홉 시⁠, 준호가 관사 툇마루에 앉아 초코바를 씹지 않고 들고만 있었다⁠. 저녁에 집에 다녀왔다고 했다⁠. 한담이 옆에 앉자 준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배⁠, 이장님네 옆 블루베리 집 있잖아요⁠. 귀농하신 분들⁠.⁠”

“⁠알아⁠.⁠”

“⁠그 집 아저씨가 밭에 멧돼지 카메라를 달아 놨었대요⁠. 움직이면 찍히는 거요⁠. 여름 내내 메모리 카드를 안 열어 봤는데⁠, 오늘 염소 일 나고 처음 열어 봤대요⁠.⁠”

준호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어둡고 거친 흑백 사진이었다⁠. 블루베리 덤불 사이로 커다란 몸이 지나가고 있었다⁠. 굵은 줄무늬가 보였고⁠, 목에 네모난 덩어리가 달린 띠가 보였다⁠. 사진 귀퉁이에 날짜가 찍혀 있었다⁠. 「⁠2030-09-14 02⁠:37⁠」⁠.

“⁠이장님이 이 사진을 단톡방에 올렸어요⁠. 그러고 나서 아부지가 저한테 그러셨어요⁠. 센터 컴퓨터에 9월 기록 있지⁠, 뽑아 와라⁠. 니가 뽑아 오면 니가 이 마을 사람이고⁠, 안 뽑아 오면 센터 사람이라고⁠.⁠”

한담은 사진을 오래 보았다⁠. 9월 14일 새벽 두 시 반⁠, 열한 번 가운데 네 번째였다⁠. 한담은 9월 14일 밤의 점을 기억했다⁠. 다음 점이 선 밖에 찍히는 것을 보고 노트북을 덮고 잠들었던 밤이었다⁠.

“⁠뽑아 올 거야⁠?⁠”

준호는 초코바를 툇마루에 내려놓았다⁠.

“⁠선배는 9월에 알았어요⁠?⁠”

한담은 대답을 미루지 않았다⁠.

“⁠알았어⁠.⁠”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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