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21자)

한 시간에 한 점

지리산에 풀어 준 호랑이 · 하윤슬

새벽 여섯 시⁠, 육한담은 무내골 들머리에서 트럭을 멈췄다⁠. 마을로 들어가는 시멘트 길 한가운데에 합판 한 장이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 흰 페인트로 쓴 글씨가 아래로 흘러내려 있었다⁠.

「⁠센터 관계자 출입 금지 · 무내골 총회 결의 · 범 선생도 출입 금지⁠」

마지막 줄은 다른 붓으로 쓴 글씨였다⁠. 획이 떨렸고⁠, 「⁠선생⁠」의 받침이 하나 빠져 있었다⁠. 주영길의 글씨였다⁠. 합판 아래에는 윗집 할매가 놓고 간 듯한 비닐봉지가 있었다⁠. 안에 귤이 두 개 들어 있었다⁠. 한담은 귤을 조끼 주머니에 넣고 트럭을 돌렸다⁠. 주머니 속에서 어젯밤 받은 귤까지 셋이 부딪쳤다⁠.

마을 위 능선으로 가는 길은 만수천 건너 산판 길뿐이었다⁠. 한담은 트럭을 임도 차단기 앞에 세우고 걸었다⁠. 준호가 안테나를 메고 뒤따랐다⁠. 출입 금지 팻말 이야기를 듣고 준호는 배를 잡고 웃다가⁠, 범 선생도 출입 금지라는 대목에서 웃음을 멈췄다⁠.

“⁠이장님이 진짜 그렇게 썼어요⁠?⁠”

“⁠받침도 하나 빼먹었어⁠.⁠”

“⁠범이 글을 못 읽어서 다행이네요⁠. 읽었으면 맞춤법 지적했을 텐데⁠.⁠”

능선에 오르자 무내골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열두 채 지붕 가운데 칠구의 외양간 함석지붕이 가장 넓었고⁠, 아침 해를 받아 하얗게 빛났다⁠. 한담은 안테나를 범바위로 돌렸다⁠. 수신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삑삑 울었다⁠. 신호가 움직이지 않았다⁠.

“⁠굴에 있어⁠. 어젯밤부터 그대로야⁠.⁠”

“⁠누나 집 구했네요⁠.⁠”

“⁠어디에 구했는지 봐⁠.⁠”

준호는 안테나가 가리키는 범바위와 범바위 아래 함석지붕을 번갈아 보았다⁠. 범바위에서 외양간까지 비탈로 이 킬로미터였다⁠. 사람 걸음으로 한 시간⁠, 범 걸음으로는 담배 한 대 참이었다⁠.

한담은 수신기를 끄고 준호를 보았다⁠.

“⁠어젯밤에 아버지 휴대전화에 앱 깔아 드렸지⁠.⁠”

준호는 초코바 포장을 뜯다가 멈췄다⁠. 포장지가 반쯤 찢어진 채 손에 남았다⁠.

“⁠…보셨어요⁠?⁠”

“⁠회관 창이 커⁠.⁠”

“⁠아부지가 밤마다 외양간에 앉아 계세요⁠. 총 들고요⁠. 사흘째 한숨도 안 주무셨어요⁠. 점이라도 보시면 범이 멀리 있을 때는 주무실 수 있잖아요⁠. 엄마가 그러라고 했어요⁠.⁠”

“⁠점 하나면 굴 자리까지 다 보여⁠. 한 시간에 한 번씩⁠.⁠”

“⁠아부지가 굴에 가실 일은 없어요⁠.⁠”

“⁠아버지 휴대전화를 아버지만 보시니⁠?⁠”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찢어진 초코바 포장을 마저 뜯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손에 쥐고 있었다⁠.

“⁠오늘 안에 비밀번호 바꿀 거야⁠. 센터장님께는 내가 말할게⁠.⁠”

“⁠바꾸면 아부지는 또 밤새 앉아 계세요⁠.⁠”

“⁠울타리 쳐 드린다고 했잖아⁠.⁠”

“⁠아부지가 안 받으신다고 했잖아요⁠.⁠”

둘 다 맞는 말이었다⁠. 한담은 산 아래 함석지붕을 내려다보았다⁠. 지붕 위로 연기가 올랐다⁠. 나미자가 아침밥을 짓는 연기였다⁠. 한담은 휴대전화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하루만 줄게⁠. 오늘 저녁까지 네가 아버지한테 말씀드려⁠. 아니면 내가 바꿔⁠.⁠”

*

오후 두 시⁠, 임도 차단기 앞에 처음 보는 사륜 트럭 한 대가 멈췄다⁠. 앞 유리에 「⁠함양군 유해야생동물 피해방지단⁠」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짐칸에는 쇠창살로 짠 멧돼지 포획틀 두 개가 실려 있었다⁠. 운전석에서 덩치 큰 사내가 내렸다⁠. 얼룩무늬 조끼에 챙 넓은 모자를 썼고⁠, 웃을 때 앞니 하나가 금색으로 빛났다⁠.

“⁠아이고⁠, 센터 선생님 아닙니꺼⁠. 테레비에서 봤심더⁠. 함양 곽두식입니더⁠.⁠”

곽두식은 한담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담이 손을 잡자 곽두식의 손바닥에서 쇠기름 냄새가 났다⁠. 총을 오래 닦은 손이었다⁠. 담배 냄새가 쇠기름 냄새를 덮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멧돼지 잡으러 왔지예⁠. 무내골 형님들이 멧돼지 땜에 고구마 농사 망쳤다 캐서⁠.⁠” 곽두식은 조끼 주머니에서 코팅한 종이를 꺼내 보였다⁠. 「⁠피해방지단 활동 허가증⁠」⁠. 군청 도장이 찍혀 있었다⁠. “⁠허가 다 있심더⁠. 이 임도 위로 틀 두 개만 놓고 갈낍니더⁠.⁠”

“⁠멧돼지가 없어요⁠. 이 산에⁠.⁠”

“⁠없으면 잡을 것도 없고⁠, 그라면 틀만 놓고 가면 되지예⁠.⁠” 곽두식이 웃었다⁠. 금니가 빛났다⁠. “⁠선생님⁠, 걱정 마이소⁠. 범은 안 건드립니더⁠. 범 건드리면 저 감옥 갑니더⁠. 저 감옥 가면 함양 고구마는 누가 지킵니꺼⁠?⁠”

산판 길 아래에서 경운기 소리가 올라왔다⁠. 칠구였다⁠. 경운기 짐칸에 하얀 아이스박스 하나가 실려 있었다⁠. 칠구는 차단기 앞에 경운기를 세우고 내려⁠, 한담을 보지 않고 곽두식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곽 대장⁠, 이거⁠.⁠”

곽두식이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었다⁠. 하얀 김이 올랐다⁠. 안에 비닐로 싼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누런 털이 비닐 너머로 비쳤다⁠. 한담은 덩어리가 무엇인지 알았다⁠.

“⁠송아지는 왜 가져가세요⁠?⁠”

“⁠미끼지예⁠.⁠” 곽두식이 뚜껑을 덮었다⁠. “⁠멧돼지가 고기를 억수로 좋아합니더⁠. 잡식이라예⁠. 썩은 고기 냄새 맡으면 십 리 밖에서도 옵니더⁠.⁠”

곽두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멧돼지는 고기를 먹었다⁠. 한담은 아이스박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범도 십 리 밖에서 와요⁠.⁠”

“⁠그라면 범이 먼저 오겠네예⁠. 범은 틀에 안 들어갑니더⁠. 틀이 작아서⁠.⁠” 곽두식이 포획틀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쇠창살이 울었다⁠. “⁠범이 틀 옆에서 송아지 묵으면 묵는 거고⁠. 그래도 저는 안 쏩니더⁠. 사진만 찍지예⁠. 찍어서 마을 형님들한테 보여 드리고⁠, 그라면 형님들이 환경부에 낼 사진이 생기지예⁠.⁠”

“⁠범바위 근처에는 틀 놓지 마세요⁠.⁠”

“⁠범바위가 어딥니꺼⁠?⁠”

곽두식이 칠구를 돌아보았다⁠. 칠구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초록 바탕에 하얀 범 발자국 그림이 떴다⁠. 곽두식이 칠구의 어깨 너머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빨간 점이 범바위 아래에 떠 있었다⁠. 곽두식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넓히고⁠, 좁히고⁠, 다시 넓혔다⁠.

“⁠형님⁠, 이거 한 시간에 한 번 찍힙니꺼⁠?⁠”

“⁠한 시간에 한 번⁠.⁠”

“⁠좋네예⁠.⁠” 곽두식이 웃었다⁠. 금니가 오후 햇빛에 번쩍였다⁠. “⁠참 좋네예⁠.⁠”

한담은 칠구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어르신⁠, 그 화면 다른 분한테 보여 주시면 안 돼요⁠.⁠”

“⁠여기는 마을 밖이여⁠. 니는 여기 들어와도 되고⁠, 나는 여기서 내 전화기 보는 것도 안 되냐⁠?⁠”

칠구는 휴대전화를 조끼 안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올렸다⁠. 곽두식은 포획틀 하나를 혼자 들어 올려 어깨에 멨다⁠. 백 킬로가 넘는 쇠틀을 멘 채로 곽두식은 임도를 따라 올라가며 콧노래를 불렀다⁠. 칠구가 아이스박스를 들고 뒤따랐다⁠. 둘이 굽잇길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한담은 차단기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떨었다⁠. 표정훈이었다⁠.

「⁠세종⁠. 장관님 행사 순서 확정⁠. 육 선생 발표 오 분 넣었습니다⁠. 호단 근황 사진 두 장 준비⁠.⁠」

한담은 답장 칸에 「⁠위치 앱 비밀번호 유출⁠」이라고 쳤다⁠. 전송 단추 위에서 엄지가 멈췄다⁠. 준호에게 하루를 준다고 말한 사람은 한담이었다⁠. 한담은 글자를 지우고 「⁠알겠습니다⁠」를 보냈다⁠.

*

오후 다섯 시⁠, 준호가 관사 마당으로 들어왔다⁠.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손에 나미자가 싸 준 반찬 통 세 개를 들고 있었고⁠, 스웨터 소매에 쇠똥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 외양간까지 들어갔다는 표시였다⁠.

“⁠말씀드렸어요⁠.⁠”

준호는 반찬 통을 툇마루에 내려놓고 걸터앉았다⁠.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는데 묶지 않았다⁠. 한담은 말없이 기다렸다⁠.

“⁠아부지가 그러셨어요⁠. 니 선배가 바꾸든가 말든가⁠, 나는 이 화면 없으면 오늘 밤도 안 잔다고⁠. 그리고요⁠…⁠…⁠.⁠”

준호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외양간 안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료 포대 위에 칠구의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고⁠, 화면에 범바위 아래의 빨간 점이 떠 있었다⁠. 사진 귀퉁이에 얼룩무늬 조끼 소매가 찍혀 있었다⁠.

“⁠곽 대장님이 아부지 전화기를 자기 전화기로 찍어 가셨대요⁠. 지도 넓혀서⁠, 한 장 더⁠. 아부지는 그게 뭐 어떠냐고 하시고요⁠.⁠”

한담은 노트북을 열었다⁠. 관리자 화면에 들어가 추적팀 공용 비밀번호를 지우고 새로 쳤다⁠. 준호는 한담의 손가락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저장 단추를 누르자 화면 위에 작은 글씨가 떴다⁠. 「⁠모든 기기에서 로그아웃되었습니다⁠.⁠」

“⁠아부지 오늘 밤 또 못 주무시겠네요⁠.⁠”

“⁠사진 속 점은 지워지지 않아⁠.⁠”

“⁠그건 한 시간 전 점이잖아요⁠. 누나는 움직이니까요⁠.⁠”

“⁠굴에 들어간 범은 안 움직여⁠.⁠”

준호는 반찬 통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멸치볶음 냄새가 났다⁠. 한참 뒤에 준호가 말했다⁠.

“⁠선배⁠, 저 오늘 아부지한테 처음으로 화냈어요⁠. 아부지가 저보고 범 편이냐고 해서⁠, 아니라고⁠, 나는 아부지 편이라서 이러는 거라고 소리 질렀어요⁠. 그러고 나왔는데 엄마가 대문까지 쫓아와서 반찬을 주셨어요⁠.⁠”

준호가 멸치볶음 통을 한담 쪽으로 밀었다⁠. 한담은 젓가락도 없이 멸치 하나를 집어 먹었다⁠. 짰다⁠.

*

해가 반야봉 너머로 넘어갈 무렵⁠, 호단은 굴에서 나와 능선을 따라 걸었다⁠. 하루를 굴에서 보내고 나니 배가 등에 붙었다⁠.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불었다⁠. 바람에 실린 냄새 하나가 호단의 발을 멈추게 했다⁠.

송아지 냄새였다⁠.

개울가 자갈밭에서 목덜미를 물었던 송아지⁠, 허벅지를 몇 입 뜯다가 놓고 온 송아지의 냄새였다⁠. 혀가 송아지 맛을 기억했다⁠. 다만 냄새가 달라져 있었다⁠. 차갑게 얼었다가 녹으면서 단내와 썩은 내가 함께 올라왔고⁠, 겉에는 비닐 냄새와 사람 손 냄새가 묻어 있었다⁠. 사람 손 냄새는 둘이었다⁠. 소 냄새가 몸에 깊이 밴 냄새⁠, 외양간 안에서 쇠를 쥐고 있던 냄새가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처음 맡았다⁠. 담배 냄새가 짙고⁠, 쇠기름 냄새가 외양간 안의 냄새보다 훨씬 진했다⁠.

호단은 바람을 거슬러 냄새를 따라갔다⁠. 덤불을 지나고 쓰러진 참나무를 넘었다⁠. 냄새가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느려졌다⁠. 숲이 끝나고 풀이 누운 빈터가 나왔다⁠. 빈터 가운데에 쇠창살이 네모나게 서 있었고⁠, 쇠창살 앞 풀밭에 송아지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호단은 덤불 가장자리에서 엎드렸다⁠. 쇠창살에서 철창 냄새가 났다⁠. 오래 갇혀 있던 곳의 냄새였다⁠. 쇠창살 둘레의 풀에는 쇠기름 냄새가 발자국 모양으로 찍혀 있었다⁠. 빈터 가장자리 나무마다 쇠기름 냄새가 손 높이에 묻어 있었다⁠.

배 속이 꿈틀거렸다⁠. 송아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앞발이 저절로 한 걸음 나갔다가⁠, 호단은 앞발을 도로 거두었다⁠. 쇠기름 냄새의 사내는 외양간 안의 사내와 달랐다⁠. 외양간 안의 사내는 냄새가 소에서 왔고⁠, 쇠기름은 겉에 묻어 있었다⁠. 빈터의 사내는 쇠기름 냄새가 몸 안쪽에서 배어 나왔다⁠. 남쪽 비탈 마른 진흙 구덩이의 매캐한 냄새⁠, 여러 짐승의 피 냄새가 섞여 있던 냄새가 같은 데서 났다⁠.

호단은 뒷걸음질로 덤불 속으로 물러났다⁠. 빈터가 보이지 않는 데까지 물러나서야 몸을 돌렸다⁠. 굴로 돌아오는 길에 개울에 엎드려 물을 오래 마셨다⁠. 물로는 배가 차지 않았다⁠. 마실수록 배 속의 것이 차갑다는 듯 뒤척였다⁠. 굴로 돌아오는 길 내내 송아지 냄새가 등을 따라왔다⁠. 굴 앞에 엎드려서도 냄새는 바람에 실려 왔다⁠. 밤이 깊어도 냄새는 옅어지지 않았다⁠. 호단은 냄새가 오는 데를 향해 턱을 앞발에 괴고 엎드렸다⁠. 눈을 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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