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66자)

외양간의 밤

지리산에 풀어 준 호랑이 · 하윤슬

밤 열 시 이십 분⁠, 육한담은 무내골 회관 앞에 트럭을 세웠다⁠. 회관 창에 불이 켜져 있었고⁠, 유리문 너머에서 화투짝 내리치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 보일러를 세게 돌린 방바닥 열기와 귤껍질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할머니 넷과 할아버지 둘이 담요 한 장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있었다⁠. 주영길은 담요 귀퉁이에서 메가폰을 베개 삼아 누워 있었다⁠.

“⁠센터 아가씨네⁠. 범 선생은 어디 계신다요⁠?⁠”

윗집 할매가 화투짝을 쥔 채 물었다⁠.

“⁠달궁 위에 있어요⁠. 마을이랑 사 킬로 떨어졌어요⁠.⁠”

“⁠사 킬로면 범한테는 몇 걸음이여⁠?⁠”

한담이 대답하기 전에 주영길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범은 하룻밤에 삼십 리를 간다⁠. 사 킬로는 십 리여⁠. 담배 한 대 피울 참이여⁠.⁠”

“⁠이장은 범 걸음을 어찌 안다요⁠?⁠”

“⁠테레비에서 봤어⁠.⁠”

할머니들이 웃었다⁠. 웃음이 가라앉자 윗집 할매가 회관 구석을 턱으로 가리켰다⁠. 하얀 사기 요강 하나가 신문지를 덮고 놓여 있었다⁠.

“⁠오늘 밤은 다 여기서 자기로 했어⁠. 집에서 마당 건너 변소 가다가 범 선생 만나믄 어쩔 것이여⁠. 여기는 보일러가 좋아⁠.⁠”

회관 벽에는 봄에 붙인 협약서가 압정 넷에 박혀 있었다⁠. 압정 하나가 빠져 귀퉁이가 말려 있었다⁠. 「⁠사람이 다치면 사살을 검토한다⁠.⁠」 한담은 말린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펴서 압정을 다시 눌러 박았다⁠. 등 뒤에서 화투짝 내리치는 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

밤 열 시 사십 분⁠, 육한담은 칠구의 외양간 문간에 엎어 놓은 고무 양동이 위에 앉았다⁠. 외양간 안은 불을 꺼서 캄캄했다⁠. 소 마흔 마리가 숨을 쉬었다⁠. 콧김이 한꺼번에 나왔다 들어갈 때마다 건초 냄새와 쇠똥 냄새가 문간까지 밀려 나왔고⁠, 냄새들 사이로 낯선 냄새 하나가 가늘게 섞였다⁠. 총기름 냄새였다⁠.

“⁠나가라⁠.⁠”

어둠 속에서 칠구의 목소리가 났다⁠. 사료 포대 쌓인 자리였다⁠. 눈이 어둠에 익자 포대 위에 앉은 칠구의 어깨가 보였고⁠, 무릎에 가로놓인 긴 총신이 보였다⁠.

“⁠문밖에 있을게요⁠. 안에는 안 들어가요⁠.⁠”

“⁠내 외양간 문밖도 내 땅이여⁠.⁠”

“⁠그럼 땅 끝에 있을게요⁠.⁠”

한담은 양동이를 들고 세 걸음 물러나 다시 앉았다⁠. 칠구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 대신 소 한 마리가 길게 울었다⁠. 칠구가 혀를 두 번 찼다⁠. 소가 조용해졌다⁠.

조끼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떨었다⁠. 관사의 준호였다⁠.

「⁠22시 58분 점⁠. 달궁 위⁠. 마을이랑 사 킬로⁠」

「⁠선배 초코바 드셨어요⁠」

「⁠안 드셨으면 지금 드세요⁠. 범은 단 거 싫어함⁠. 제가 검색해 봄⁠」

한담은 초코바 포장을 소리 안 나게 뜯었다⁠. 외양간 안에서 칠구가 코를 킁킁거렸다⁠.

“⁠뭣을 묵냐⁠?⁠”

“⁠초코바요⁠. 준호가 줬어요⁠.⁠”

어둠 속에서 칠구가 한참 말이 없었다⁠. 소들이 숨을 쉬었다⁠.

“⁠그놈은 어려서부터 단것만 처묵었어⁠. 이빨을 세 개나 해 넣었제⁠.⁠”

*

자정이 지나자 칠구가 말을 시작했다⁠. 한담에게 하는 말인지 소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저 끝 칸의 점박이가 열두 살이고⁠, 열두 해 동안 송아지를 열한 마리 낳았다고 했다⁠. 그중 다섯은 칠구가 손을 넣어 꺼냈다고 했다⁠. 거꾸로 선 송아지를 돌려 꺼내다 팔꿈치까지 어미 배 속에 넣고 밤을 샌 적도 있다고 했다⁠. 어제 죽은 송아지는 점박이가 낳은 열한 번째였다⁠.

칠구는 빚 이야기도 했다⁠. 십 년 전 축사를 넓히느라 조합에서 돈을 빌렸고⁠, 사료값이 오를 때마다 갚는 돈보다 새로 빌리는 돈이 많았다고 했다⁠. 준호가 대학에 가던 해에 소 다섯 마리를 팔았다고 했다⁠. 준호가 대학을 마치고 돌아와 외양간이 아니라 센터로 간 날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소 멕이는 것은 기술이 아녀⁠. 그냥 하는 거여⁠. 날마다⁠. 그놈은 날마다 하는 것을 싫어혀⁠.⁠”

“⁠범 따라다니는 것도 날마다 해요⁠.⁠”

“⁠범은 돈을 안 줘⁠.⁠”

“⁠준호 월급 받아요⁠.⁠”

“⁠그 월급이 사료 몇 포대여⁠?⁠”

한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준호의 월급으로 사료를 몇 포대 사는지 한담은 몰랐고⁠, 칠구는 알았다⁠.

“⁠점박이가 어제부터 여물을 안 묵어⁠. 새끼 냄새를 찾아⁠. 개울까지 목을 빼고⁠.⁠”

“⁠어르신⁠.⁠”

“⁠어⁠.⁠”

“⁠호단이 새끼를 뱄어요⁠.⁠”

어둠 속이 조용해졌다⁠. 소들의 숨소리만 남았다⁠. 한담은 초코바 껍질을 손안에서 접었다⁠. 내일 아침 표정훈이 카메라 앞에서 할 말이었다⁠. 칠구에게 먼저 하고 싶었다⁠. 먼저 하고 싶은 까닭을 한담은 저도 다 알지 못했다⁠.

“⁠언제 낳는디⁠?⁠”

“⁠11월 말쯤요⁠. 그래서 내려온 거예요⁠. 산에 멧돼지가 없어요⁠. 배는 무겁고⁠, 고라니는 못 쫓아가고요⁠.⁠”

“⁠그래서⁠.⁠”

“⁠그래서 오늘 밤도 올 거예요⁠.⁠”

포대 위에서 칠구가 총을 고쳐 쥐는 소리가 났다⁠. 쇠붙이끼리 스치는 소리였다⁠.

“⁠범 새끼 셋 내려오믄 송아지 셋이여⁠.⁠”

*

호단은 새벽 세 시가 넘어 개울을 따라 내려왔다⁠. 물소리가 발소리를 덮었다⁠. 차가운 물이 발가락 사이로 흘렀고⁠, 돌마다 이끼가 미끄러웠다⁠. 소 냄새가 가까워질수록 배 속이 조여들었다⁠. 어제의 송아지 냄새가 아직 개울가 자갈에 배어 있었다⁠. 피는 씻겼어도 냄새는 남아 있었다⁠.

외양간 앞에 익은 냄새가 있었다⁠. 약 냄새와 고무 냄새⁠, 그리고 오늘은 단내가 섞여 있었다⁠. 약 냄새는 외양간 바깥⁠, 땅이 낮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외양간 안에는 다른 냄새가 있었다⁠. 소 냄새가 몸에 깊이 밴 냄새⁠, 땀과 담배와 마른 풀의 냄새⁠, 냄새들 위에 처음 맡는 냄새가 덮여 있었다⁠. 미끈하고 쓴⁠, 쇠를 오래 문지른 냄새였다⁠. 남쪽 비탈의 마른 진흙 구덩이에서 맡은 매캐한 냄새가 쇠 냄새 밑에 아주 조금 묻어 있었다⁠.

호단은 개울 가운데 바위 뒤에 엎드렸다⁠. 배가 차가운 물에 닿았다⁠. 배 속의 것이 놀라 뒤척였다⁠.

외양간 안에서 소 한 마리가 울었다⁠. 길고 낮은 울음이었다⁠. 울음이 끝나자 쇠붙이가 쇠붙이를 무는 소리가 났다⁠. 짧고 단단한 소리였다⁠. 호단의 귀가 저절로 뒤로 젖혀졌다⁠. 처음 듣는 소리였는데도 몸이 먼저 알았다⁠. 등줄기의 털이 바짝 일어났다⁠.

약 냄새가 일어났다⁠. 땅이 낮은 자리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호단 앞 자갈밭에 떨어지는가 싶더니⁠,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호단은 바위를 박차고 개울을 건넜다⁠. 비탈을 오르는 동안 귀가 울렸다⁠. 뒤에서 소들이 한꺼번에 울었고⁠, 굵은 소리 하나가 소 울음을 뚫고 올라왔다⁠. 호단은 억새밭에 닿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억새밭에 엎드려서야 혀를 내밀어 헐떡였다⁠. 배가 고팠고⁠, 배 속은 고요했다⁠. 고요한 것이 뒤척이는 것보다 무서웠다⁠. 호단은 숨을 고르며 기다렸다⁠. 한참 뒤에 배 속에서 무언가 한 번⁠, 작게 밀어 올렸다⁠. 호단은 앞발로 배를 감싸듯 몸을 둥글게 말았다⁠.

*

칠구가 외양간에서 뛰어나왔을 때 한담은 자갈밭에 쪼그려 앉아 손전등을 비추고 있었다⁠. 젖은 자갈 위에 앞발 자국 둘이 찍혀 있었고⁠, 바위 뒤 모래에 배를 깔았던 자리가 길게 눌려 있었다⁠. 폭음탄 껍데기가 개울물에 떠내려갔다⁠.

칠구가 총을 어깨에 붙이고 비탈 위 어둠을 겨누었다⁠.

“⁠어르신⁠, 그 총 멧돼지 허가예요⁠.⁠”

한담은 일어나지 않고 말했다⁠. 손전등은 계속 자국을 비추었다⁠.

“⁠범한테 쏘시면 허가 취소되고 총 뺏겨요⁠. 그러면 멧돼지도 못 잡으세요⁠. 내년 봄 옥수숫대 멧돼지가 다 뜯어도 손 놓고 보셔야 돼요⁠.⁠”

칠구의 총구가 한동안 어둠에 머물렀다⁠. 그러다 천천히 내려왔다⁠. 칠구는 한담 옆에 쪼그려 앉아 손전등 불빛 속의 눌린 모래를 보았다⁠. 배를 깔았던 자리가 둥글고 깊었다⁠. 칠구는 소의 배를 만지듯 손바닥을 모래 위에 펴 보았다⁠.

“⁠새끼가 크구먼⁠.⁠”

“⁠네⁠.⁠”

“⁠니가 쫓았냐⁠, 살렸냐⁠?⁠”

“⁠둘 다요⁠.⁠”

칠구는 모래를 털고 일어났다⁠. 외양간으로 돌아가다가 문간에서 멈췄다⁠.

“⁠오늘 밤 일⁠, 내일 아침 니 센터장한테 그대로 말혀⁠. 내가 범을 안 쐈다는 거⁠.⁠”

*

아침 아홉 시⁠, 나미자가 외양간 문간으로 밥상을 들고 왔다⁠. 시래깃국과 김치와 달걀말이였다⁠. 칠구 몫과 한담 몫이 같았다⁠. 한담이 수저를 들기도 전에 칠구의 휴대전화에서 뉴스 알림이 울렸다⁠. 칠구는 화면을 보다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표정훈이 센터 마당에 서 있었다⁠. 남색 정장에 센터 점퍼였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흘렀다⁠.

「⁠지리산 호랑이 첫 임신 … 백 년 만의 새끼 기대⁠」

「⁠환경부 “⁠임신한 호랑이 사살 없다⁠” … 농가 사살 요청 기각⁠」

표정훈이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먼저 피해 농가에 깊은 위로를 드린다고 했고⁠, 보상과 예방 시설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고⁠, 호단의 배 속에는 지리산의 미래가 자라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 말을 할 때 표정훈은 카메라를 똑바로 보았다⁠.

화면이 바뀌었다⁠. 이장 주영길이 군청 게시판에 올린 사진이었다⁠. 경운기 불빛 아래 쇠스랑을 쥔 칠구가 이를 악물고 있었다⁠. 얼굴에는 흐림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장화와 조끼는 그대로였다⁠.

댓글이 빠르게 늘었다⁠.

「⁠송아지 한 마리 때문에 백 년 만의 새끼를 쏘자고⁠?⁠」

「⁠송아지 값 제가 낼게요 계좌 주세요⁠」

「⁠쇠스랑 든 거 봐 무섭다⁠」

「⁠범 새끼 죽이려는 농부 신상 털어라⁠」

한담은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쌓여 있는 부재중 전화 가운데 셋이 표정훈이었다⁠. 마지막 문자는 일곱 시 반에 와 있었다⁠. 「⁠발표 아홉 시⁠. 마을에는 육 선생이 알아서⁠.⁠」 표정훈의 문자 밑에 준호의 문자가 막 들어와 있었다⁠.

「⁠선배 저 댓글 달았다가 욕먹었어요⁠」

「⁠“⁠이 농부 아저씨 착한 사람이에요 송아지를 자식처럼 키움⁠” 이라고 씀⁠」

「⁠“⁠아들이세요⁠? 신상 확정⁠” 이래요 ㅠㅠ 지웠어요⁠」

칠구는 밥상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점박이가 외양간 안에서 울었다⁠. 개울로 목을 뺀 울음이었다⁠.

“⁠니가 말했제⁠.⁠”

칠구의 목소리는 낮았다⁠.

“⁠어젯밤에 나한테 말하고⁠, 아침에는 테레비에 말하고⁠. 범이 새끼를 뱄으니 쏘지 말라고⁠. 나는 밤새 범을 안 쐈는디⁠,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나가 범 새끼 죽이려는 놈이 돼 있어⁠.⁠”

“⁠발표는 센터장님이 정했어요⁠. 저는 어젯밤 어르신한테 먼저⁠…⁠…⁠.⁠”

“⁠느그는 다 남이 정한다고 혀⁠. 협약서도 남이 정하고⁠, 보상도 남이 정하고⁠, 발표도 남이 정하고⁠.⁠” 칠구는 휴대전화를 밥상에 엎었다⁠. “⁠송아지는 내가 키웠어⁠. 남이 안 키웠어⁠.⁠”

나미자가 국그릇을 한담 앞으로 조금 밀었다⁠. 식기 전에 먹으라는 손짓이었다⁠. 한담은 국을 뜨지 못했다⁠.

골목 위에서 메가폰 켜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회관 지붕의 진짜 마을 방송이었다⁠. 스피커가 쇳소리를 한 번 내고 나서 주영길의 목소리가 골짜기에 울렸다⁠.

「⁠아아⁠, 이장입니다⁠. 마이크 시험 중⁠. 이건 진짜 마이크입니다⁠. 아아⁠. 오늘 아침 테레비 보신 분들⁠, 우리 마을이 전국에 나왔습니다⁠. 좋은 걸로 나온 건 아니고요⁠. 그리고 제가 올린 사진이 그렇게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칠구 아우⁠, 미안허네⁠. 긴급 마을 총회를 엽니다⁠. 모레 저녁 일곱 시⁠, 회관⁠. 막걸리는 마을에서 냅니다⁠.⁠」

칠구가 일어났다⁠. 외양간 기둥에 기대 둔 총을 들어 어깨에 멨다⁠. 문간을 나서며 한담을 내려다보았다⁠.

“⁠범이냐 소냐⁠, 총회에서 정허자⁠. 니도 와라⁠. 센터 사람 다 데리고 와⁠.⁠”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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