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337자)

목걸이

지리산에 풀어 준 호랑이 · 하윤슬

호단은 동이 틀 때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끼 둘이 배와 앞발 사이에서 번갈아 젖을 빨았다⁠. 빨다가 잠들고⁠, 잠들었다가 깨어 가는 소리로 울고⁠, 다시 빨았다⁠. 둘 다 눈을 뜨지 못했다⁠. 호단이 혀로 밀면 작은 몸이 데굴 굴렀다가⁠, 젖 냄새를 따라 도로 기어 왔다⁠. 첫째는 기어 오는 길이 곧았고⁠, 둘째는 한 번씩 엉뚱한 데로 갔다⁠. 호단은 엉뚱한 데로 간 둘째를 코끝으로 밀어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배가 고팠다⁠. 낳고 나니 배고픔이 달라졌다⁠. 배 속보다 젖이 먼저 고팠다⁠. 새끼들이 빨아 갈수록 몸 안 어딘가가 비어 갔다⁠. 그래도 호단은 일어나지 않았다⁠. 굴 밖에 나가면 굴 안의 냄새가 바람에 실려 나갈 것이었다⁠.

해가 오르자 하늘에서 앵앵거리는 소리가 내려왔다⁠. 냄새 없는 것이 굴 입구 앞에 떠서 오래 머물렀다⁠. 호단은 새끼들을 앞발로 덮고 입구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목에서 낮은 소리가 났다⁠. 처음 내는 소리였다⁠. 새끼를 낳기 전에는 이런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앵앵거리는 것이 조금 높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호단의 목에 달린 네모난 것이 굴 벽에 부딪혀 딸깍 소리를 냈다⁠. 호단은 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앵앵거리는 것이 마침내 멀어졌다⁠.

*

11월 12일 오전 열 시⁠, 무내골 회관은 사람으로 찼다⁠. 마을 열두 집 스물두 사람이 벽을 따라 둘러앉았고⁠, 가운데에 접이식 탁자 하나가 놓였다⁠. 탁자 한쪽에 장관과 환경부 과장이 앉았다⁠. 맞은편에 표정훈과 엽사단장이 앉았다⁠. 문간에 육한담이 앉았다⁠. 첫 총회 때 앉았던 자리였다⁠. 기자들은 회관 안에 들이지 않았다⁠. 유리문 밖 마당에서 카메라들이 창을 겨누고 있었다⁠.

방 안에는 막걸리도 김치전도 없었다⁠. 나미자가 보리차를 끓여 종이컵에 따라 돌렸다⁠. 주영길은 메가폰을 무릎에 올려놓고 만지작거렸지만 들지 않았다⁠. 윗집 할매가 오늘은 장관님 앞이니 메가폰을 맡겨 두라고 하자⁠, 주영길은 메가폰을 등 뒤로 감추고 오늘은 안 쓴다고 맹세했다⁠. 할매는 맹세를 귤 하나에 받아 주겠다고 했다⁠.

장관이 먼저 말했다⁠. 길게 말하지 않았다⁠. 협약 4조에 따라 사람이 다쳤으므로 사살을 승인했다는 것⁠, 어젯밤 함양에서 밀렵 혐의로 사람이 잡혔고 수호랑이 산솔이 이미 죽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는 것⁠, 오늘 이 자리에서 듣고 정하겠다는 것⁠.

“⁠수컷이 죽었으니 이제 지리산 범은 호단 한 마리입니다⁠. 한 마리 범이 사람을 다치게 했습니다⁠. 두 가지가 다 사실입니다⁠. 들어 보겠습니다⁠.⁠”

준호가 먼저 일어났다⁠. 왼팔을 가슴에 묶은 채였다⁠. 준호는 진술서를 다시 읽지 않았다⁠.

“⁠제가 다친 사람입니다⁠. 진술서에 다 썼습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릴게요⁠.⁠” 준호가 성한 손으로 붕대를 가리켰다⁠. “⁠사살하시면 저는 평생 이 팔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을 할 거예요⁠. 제가 화살 주우려고 고개 숙인 것 때문에 범이 죽었다는 생각이요⁠. 그러니까 이 팔은 제 거예요⁠. 범 거 아니에요⁠.⁠”

준호가 앉았다⁠. 칠구가 일어났다⁠. 장화를 벗은 양말 바닥에 지푸라기가 붙어 있었다⁠. 칠구는 장관을 똑바로 보았다⁠.

“⁠나는 방칠구요⁠. 송아지 잃은 사람이고⁠, 저놈 아부지요⁠.⁠”

칠구는 말을 고르지 않았다⁠. 10월 9일 새벽의 송아지⁠, 곽두식에게 건 전화⁠, 냉동고에서 꺼내 준 아이스박스⁠, 미끼로 쓴다는 말을 듣고도 내준 것⁠, 어제 함양 창고에서 본 것⁠. 하나도 빼지 않았다⁠.

“⁠오늘 경찰서 가서 내 입으로 다 말허기로 했소⁠. 그것은 그것이고⁠.⁠” 칠구가 한 번 숨을 골랐다⁠. “⁠장관님⁠, 나는 범이 싫소⁠. 오늘도 싫소⁠. 범은 산에 있고 소는 외양간에 있어야 허요⁠. 둘이 섞이믄 나는 또 총 꺼내요⁠. 그것은 안 바뀌어요⁠.⁠”

방 안이 조용했다⁠. 칠구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오늘 쏘라고는 안 허요⁠. 저 아가씨 말로는 범이 이맘때 새끼를 낳는다 허요⁠. 새끼 낳은 짐승을 쏘는 것은 농사꾼이 헐 짓이 아니요⁠. 우리 집 점박이가 새끼 낳은 날 누가 점박이를 쏘믄⁠, 나는 그놈을 쏴요⁠.⁠”

칠구가 앉았다⁠. 주영길이 메가폰을 무릎에서 내려 바닥에 놓았다⁠. 윗집 할매가 보리차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장관이 한담을 보았다⁠.

“⁠육 선생⁠, 새끼를 낳았습니까⁠?⁠”

“⁠점이 어제 오후 네 시부터 열여덟 시간 한자리에 있어요⁠. 출산 예정일과 맞고요⁠. 오늘 아침 기자들 드론에 굴 안 소리가 녹음됐다고 들었어요⁠. 새끼 우는 소리였다고요⁠. 둘일 거예요⁠. 지난번 배를 만졌을 때 둘이었어요⁠.⁠”

표정훈이 손을 들었다⁠.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관님⁠, 저는 재포획을 말씀드립니다⁠.⁠” 표정훈의 목소리는 반듯했지만 반듯함이 힘겨워 보였다⁠. “⁠사살은 안 됩니다⁠. 그렇다고 그냥 두는 것도 안 됩니다⁠. 굴 위치가 이미 인터넷에 돌고 있습니다⁠. 경찰 말로는 잡힌 사람이 해외 사는 구매자에게 굴 사진과 위치를 보냈답니다⁠. 산에 두면 다음 사냥꾼이 옵니다⁠. 새끼가 젖을 떼는 봄까지 기다렸다가 어미와 새끼를 함께 사육장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마을도 새끼도요⁠.⁠”

“⁠센터장님 말씀이 맞아요⁠.⁠”

한담이 말했다⁠. 표정훈이 한담을 돌아보았다⁠.

“⁠굴 위치가 돌고 있는 것도⁠, 다음 사람이 올 것도요⁠. 사람들이 굴을 아는 건 목걸이 때문이에요⁠. 한 시간에 한 번 점이 찍혀서요⁠. 그 점이 센터 노트북에서 어르신 휴대전화로⁠, 어르신 휴대전화에서 사냥꾼 휴대전화로⁠, 거기서 바다 건너로 갔어요⁠.⁠”

한담은 일어나 탁자 앞까지 걸어갔다⁠. 등산 점퍼 차림이었다⁠.

“⁠세 가지를 내놓겠습니다⁠. 사살도 재포획도 하지 않는 대신에요⁠.⁠”

장관이 수첩을 폈다⁠.

“⁠첫째⁠, 목걸이를 떨어뜨리겠습니다⁠. 목걸이에 원격으로 풀리는 장치가 있어요⁠. 풀면 센터도 범이 어디 있는지 모르게 됩니다⁠. 사냥꾼도요⁠. 반년 쌓은 기록이 오늘로 끝나요⁠. 마을 경보 문자도 끊깁니다⁠.⁠”

과장이 무언가 말하려다 멈췄다⁠. 한담은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경보가 끊기면 마을이 위험해져요⁠. 그래서 둘째⁠. 다음 범 두 마리를 연해주에서 들여올 예산을 무내골로 돌려 주세요⁠. 외양간마다 밤에 소를 들일 안쪽 우리를 짓고⁠, 전기 울타리를 치고⁠, 사료는 먼저 지원하고⁠, 보상은 서류 전에 먼저 드리고요⁠. 그리고 피해방지단이 잡는 멧돼지를 겨울 동안 범바위 위 먹이터에 올려 주세요⁠. 산에 멧돼지가 다시 늘 때까지요⁠.⁠”

“⁠예산을 돌리면 지리산 범 복원은⁠…⁠…⁠.⁠”

표정훈이 말했다⁠.

“⁠한 마리로 갑니다⁠. 한 마리하고 새끼 둘로요⁠.⁠” 한담이 표정훈을 보았다⁠. “⁠센터장님⁠, 다음 두 마리는 이 산에 멧돼지가 다시 늘고 마을이 범을 받아들인 다음에 오면 돼요⁠. 봄에 외부 조사팀이 권고한 대로요⁠.⁠”

표정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안경을 벗어 손에 쥐었다⁠.

“⁠셋째는 뭡니까⁠?⁠”

장관이 물었다⁠.

“⁠제가 센터를 떠나겠습니다⁠. 9월에 입을 다문 것도⁠, 보고서에 서명한 것도⁠, 금지를 어기고 마취총을 든 것도 저입니다⁠. 준호 팔은 제가 낸 대가예요⁠. 제가 지겠습니다⁠.⁠”

준호가 일어나려 했다⁠. 나미자가 준호의 성한 팔을 잡아 앉혔다⁠.

방 안이 오래 조용했다⁠. 칠구가 손을 들었다⁠.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먹이터 멧돼지는 누가 지고 올라가요⁠?⁠”

“⁠피해방지단이⁠…⁠…⁠.⁠”

과장이 말했다⁠.

“⁠함양 피해방지단장은 어젯밤 잡혀갔소⁠.⁠” 칠구가 말했다⁠. “⁠범바위 길은 무내골 사람이 알아⁠. 나도 피해방지단에 이름 올려 놨고⁠. 내가 지고 올라가께⁠. 공짜로는 안 혀요⁠. 품삯 받고⁠. 송아지 한 마리 값 나올 때까지만⁠.⁠”

주영길이 메가폰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입에 댔다⁠.

“⁠아아⁠, 이장입니다⁠. 그라믄 징도 다시 사야 쓰겄네⁠. 경보 문자 끊기믄 징 쳐야제⁠. 범바위 할아부지가 그랬잖여⁠. 징 치믄 범이 올라간다고⁠.⁠”

맨 앞에 앉은 아흔 넘은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바닥을 두 번 쳤다⁠. 웃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장관은 수첩을 덮었다⁠.

“⁠사살 승인을 거둡니다⁠. 재포획도 하지 않습니다⁠. 예산은 오늘 지시하겠습니다⁠. 검토가 아니라 지시입니다⁠.⁠” 장관이 표정훈을 보았다⁠. “⁠목걸이는 센터장 권한입니다⁠. 센터장이 정하세요⁠.⁠”

과장이 수첩에서 고개를 들었다⁠. 목걸이를 떨어뜨리면 새끼들이 자라는 모습도⁠, 어미가 어디서 겨울을 나는지도 아무도 모르게 된다고 했다⁠. 백 년 만의 기록이 오늘로 끊긴다고 했다⁠. 엽사단장이 총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과장님⁠, 기록은 산에 남습니다⁠. 눈 오면 발자국이 찍힙니다⁠. 저희는 사십 년을 발자국 보고 다녔습니다⁠.⁠”

엽사단장은 총 가방을 들고 일어나 장관에게 고개를 숙였다⁠. 문간을 나가다가 한담 곁에서 걸음을 늦췄다⁠.

“⁠명령이 바뀌어서 다행입니다⁠, 선생⁠.⁠”

준호가 문간에서 한담의 소매를 잡았다⁠. 성한 손이었다⁠.

“⁠선배⁠, 센터 떠나면 어디 가요⁠?⁠”

“⁠모르겠어⁠.⁠”

“⁠그럼 범은 누가 따라다녀요⁠?⁠”

“⁠아무도⁠.⁠” 한담이 준호의 손을 소매에서 떼어 냈다⁠. “⁠아무도 안 따라다녀도 되게 하려고 내놓은 거야⁠.⁠”

*

회관 마당의 카메라들이 탁자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을 찍었다⁠. 표정훈은 회관 부엌 앞 마루에 태블릿을 놓고 앉아 있었다⁠. 한담이 다가가자 표정훈은 태블릿 화면을 한담에게 돌렸다⁠. 관리자 화면이었다⁠. 「⁠JR-01 · 암컷 · 원격 분리⁠」⁠. 단추 아래에 비밀번호를 넣는 칸이 있었다⁠.

“⁠반년이에요⁠.⁠” 표정훈이 말했다⁠. “⁠한 시간에 한 점씩⁠, 오천 개 가까이 돼요⁠. 9월 열한 개까지 다 들어 있어요⁠.⁠”

표정훈은 숫자 여섯 개를 눌렀다⁠. 화면에 「⁠분리 명령을 보내시겠습니까⁠?⁠」가 떴다⁠. 표정훈은 태블릿을 한담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누르는 건 육 선생이 해요⁠. 채운 사람이 육 선생이니까⁠.⁠”

한담은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범바위 아래 빨간 점이 마지막으로 깜박이고 있었다⁠. 마루 끝에 칠구와 준호가 와 있었다⁠. 칠구는 화면을 보지 않았다⁠. 준호는 보았다⁠. 나미자가 부엌 문간에서 행주를 쥐고 서 있었다⁠.

한담은 검지를 화면에 댔다⁠. 손가락에 아무 냄새도 묻어 있지 않았다⁠. 반년 동안 손가락에서 약 냄새와 고무 냄새가 빠진 날이 없었는데⁠, 오늘은 회관 보리차 냄새뿐이었다⁠. 한담은 눌렀다⁠.

화면이 한 번 하얘졌다가 돌아왔다⁠. 범바위 아래 점 옆에 글씨가 떴다⁠. 「⁠마지막 위치 · 11월 12일 12시 04분 · 분리됨⁠」⁠. 점은 더 깜박이지 않았다⁠.

*

호단의 목에서 무언가가 풀렸다⁠.

딸깍⁠, 하는 소리가 나고⁠, 반년 동안 턱밑을 누르던 무게가 사라졌다⁠. 가죽 띠가 목을 미끄러져 내려가 마른 잎 위에 떨어졌다⁠. 네모난 것이 잎에 부딪혀 둔한 소리를 냈다⁠. 새끼들이 놀라 가는 소리로 울었다⁠.

호단은 고개를 숙여 떨어진 것의 냄새를 맡았다⁠. 자기 목의 냄새였다⁠. 털 냄새⁠, 침 냄새⁠, 반년 동안 문지른 바위의 냄새⁠, 그리고 아주 오래된 약 냄새⁠. 철창을 나오기 전날의 냄새였다⁠.

호단은 코끝으로 가죽 띠를 밀었다⁠. 굴 입구까지 밀었다⁠. 입구 밖으로 한 번 더 밀어내자 가죽 띠가 너덜 위로 굴러 떨어졌다⁠. 호단은 목을 한 번 크게 털었다⁠. 털이 가벼웠다⁠. 굴 안으로 돌아와 새끼 둘을 앞발 사이에 끌어 넣고⁠, 아무것도 감기지 않은 목을 새끼들 위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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