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33자)

사살팀

지리산에 풀어 준 호랑이 · 하윤슬

호단은 굴 안에서 왼 앞발을 핥았다⁠. 발목을 돌던 가는 것이 없었다⁠. 깨어났을 때 이미 없었다⁠. 몸에서 약 냄새가 났고⁠, 앞발에서 쓴 냄새가 났다⁠. 핥으면 혀가 아렸다⁠. 그래도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어제보다 덜 뜨거웠다⁠. 물을 마시러 개울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 호단은 한 번도 엎드려 쉬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배가 이상했다⁠. 배 전체가 한 번 단단하게 조여들었다가⁠, 숨을 몇 번 쉬는 동안 풀렸다⁠. 한참 뒤에 또 조여들었다⁠. 조여들 때마다 호단은 일어나 굴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마른 잎을 앞발로 긁어 모았다⁠. 모은 잎 위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돌았다⁠. 배 속의 둘은 어제보다 낮은 데로 내려와 있었다⁠. 호단은 둘이 어디 있는지 몸으로 알았다⁠.

해가 기울 무렵 바람에 낯선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개 냄새였다⁠. 마을의 개 냄새가 아니었다⁠. 마을의 개는 쇠사슬과 밥그릇과 소 냄새를 풍겼다⁠. 오늘 올라온 개 냄새는 기름진 가죽과 피 냄새를 풍겼다⁠. 짐승을 쫓아 본 개의 냄새였다⁠. 셋이었다⁠. 개 냄새와 함께 쇠기름 냄새가 여럿 올라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다섯⁠, 여섯⁠. 냄새들 가운데 하나는 호단이 아는 냄새였다⁠. 담배 냄새가 짙고⁠, 쇠기름이 몸 안쪽에서 배어 나오는 냄새였다⁠.

냄새들은 산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멀었다⁠. 그래도 호단은 굴 입구에서 귀를 세우고 오래 냄새를 맡았다⁠. 배가 조여들었다⁠. 호단은 입구에서 물러나 마른 잎 위에 몸을 낮췄다⁠.

*

11월 11일 오후 네 시⁠, 산내 국립공원 산문 주차장에 검은 승합차 두 대가 줄지어 멈췄다⁠. 차에서 주황색 사냥 조끼를 입은 사내 다섯이 내렸다⁠. 환경부가 지정한 엽사단이었다⁠. 한 사람이 뒷문을 열자 철망 상자 셋에서 사냥개들이 한꺼번에 짖었다⁠. 귀가 처지고 가슴이 넓은 개들이었다⁠. 엽사단장은 쉰을 넘긴 마른 사내였고⁠, 말수가 적었다⁠. 총 가방을 하나씩 내려 주차장 바닥에 나란히 놓았다⁠.

곽두식의 사륜 트럭이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무내골 마을 순찰대장⁠」 완장 위에 「⁠엽사단 길잡이⁠」라고 쓴 종이가 하나 더 꽂혀 있었다⁠. 곽두식은 엽사단장에게 고개를 깊이 숙이고 악수를 청했다⁠. 엽사단장은 악수를 받았지만 오래 쥐지 않았다⁠.

표정훈은 센터 태블릿을 들고 와 있었다⁠. 화면에 범바위 아래의 빨간 점이 떠 있었다⁠. 점은 이틀째 움직이지 않았다⁠. 표정훈은 태블릿을 엽사단장에게 넘기면서 무언가를 오래 설명했다⁠. 엽사단장은 듣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육한담은 주차장 끝에 트럭을 세웠다⁠. 조수석에서 준호가 내렸다⁠. 왼팔을 붕대로 가슴에 묶었고⁠, 오른손에 서류 봉투를 쥐고 있었다⁠. 병원에서 오전에 쓴 진술서였다⁠. 준호는 오른손으로 진술서를 써야 했는데⁠, 오른손 글씨가 반듯하지 않았다⁠. 한담이 옆에서 받아 적겠다고 하자 준호는 제 손으로 쓰겠다고 했다⁠.

철망 상자 하나가 열려 있었다⁠. 사냥개 한 마리가 줄에 묶인 채 준호에게 다가와 준호의 점퍼 주머니에 코를 박았다⁠. 꼬리가 맹렬하게 흔들렸다⁠. 준호가 성한 손으로 주머니를 눌렀다⁠.

“⁠이거 초코바야⁠. 너 먹으면 안 돼⁠. 개는 초코바 먹으면 죽어⁠.⁠”

엽사단원 하나가 개 줄을 당기며 웃었다⁠. 이 개는 멧돼지보다 과자를 더 잘 찾는다고 했다⁠. 준호는 웃지 못했다⁠. 이 개가 내일 새벽 무엇을 찾으러 가는지 알았다⁠.

“⁠단장님⁠.⁠”

한담이 엽사단장 앞에 멈췄다⁠. 엽사단장은 한담의 등산 점퍼를 보고 준호의 붕대를 보았다⁠.

“⁠수의사 육한담입니다⁠. 다친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직접 쓴 진술서예요⁠.⁠”

준호가 봉투를 내밀었다⁠. 엽사단장이 봉투를 열고 진술서를 꺼내 읽었다⁠. 짧았다⁠. 「⁠저는 출산을 앞둔 호랑이에게 줄인 용량의 마취약을 쏘고 다가간 사람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호랑이는 약에서 깨어나는 중에 저를 쳤습니다⁠. 호랑이가 먼저 사람을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먼저 호랑이에게 갔습니다⁠. 방준호⁠.⁠」

“⁠협약에는 사람이 다치면 사살을 검토한다고 되어 있어요⁠. 사살한다가 아니라 검토한다예요⁠. 이 진술서를 장관님께 올리고⁠, 출산 뒤로 미뤄 주세요⁠. 새끼가 둘이에요⁠.⁠”

엽사단장은 진술서를 봉투에 도로 넣었다⁠.

“⁠진술서는 장관님께 올리십시오⁠. 저는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명령이 바뀌면 바뀐 대로 하겠습니다⁠.⁠” 엽사단장의 목소리는 낮고 고르고 지쳐 있었다⁠. “⁠내일 새벽 다섯 시 출발입니다⁠. 선생⁠, 나도 새끼 밴 짐승은 쏘기 싫습니다⁠. 그래서 내일 새벽입니다⁠. 오늘 밤 안에 명령이 바뀌면 안 올라갑니다⁠.⁠”

“⁠명령이 오늘 밤 안에 바뀔까요⁠?⁠”

“⁠그건 선생이 더 잘 알 겁니다⁠.⁠”

곽두식이 둘 사이로 걸어 들어왔다⁠. 웃음이 오늘은 조금 더 컸다⁠.

“⁠선생님⁠, 동생님 팔은 좀 어떻습니꺼⁠? 아이고⁠, 서른 바늘이라 카데예⁠. 범이 사람 무서운 줄을 몰라서 그렇습니더⁠.⁠”

“⁠대장님 올무가 없었으면 마취총도 없었어요⁠.⁠”

“⁠제 올무라는 증거 있습니꺼⁠?⁠” 곽두식이 준호를 보았다⁠. “⁠동생님⁠, 진술서에 제 이름은 안 썼지예⁠? 잘했심더⁠. 남 이름 함부로 쓰면 그것도 죄입니더⁠.⁠”

준호가 오른 주먹을 쥐었다⁠. 한담이 준호의 성한 팔을 잡았다⁠.

“⁠단장님⁠, 길잡이는 바꿔 주세요⁠. 이분은 올무 신고가 들어가 있는 분이에요⁠.⁠”

“⁠신고가 들어갔다고 죄가 정해진 건 아니지예⁠.⁠” 곽두식이 먼저 말했다⁠. “⁠그라고 선생님⁠, 위치 정보 없어도 저는 굴 압니더⁠. 범바위 밑 오소리 굴⁠. 무내골 어르신들은 다 압니더⁠. 다 아는 걸 저만 모르는 척하면 그게 거짓말이지예⁠.⁠”

엽사단장이 곽두식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리고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길잡이는 위치 정보로 충분합니다⁠. 곽 대장님은 마을에 계십시오⁠. 마을 순찰이 대장님 일이니까요⁠.⁠”

곽두식의 웃음이 처음으로 반쯤 멈추었다⁠. 멈춘 얼굴 그대로 곽두식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심더⁠. 순찰 잘 돌겠심더⁠.⁠”

*

표정훈이 한담을 주차장 가장자리로 불렀다⁠. 산문 기둥 아래였다⁠. 표정훈은 정장이 아니라 센터 점퍼만 입고 있었다⁠. 이틀 사이 얼굴이 홀쭉했다⁠.

“⁠막았어요⁠. 나도⁠.⁠”

표정훈이 먼저 말했다⁠.

“⁠어젯밤 장관님께 출산 뒤로 미루자고 했어요⁠. 재포획으로 바꾸자고도 했고요⁠. 안 됐어요⁠. 사람이 다쳤고⁠, 다친 사람이 마을 사람 아들이고⁠, 방송에 다 나갔으니까요⁠. 순찰대장 생방송이 어젯밤에만 오만 명이 봤어요⁠.⁠”

“⁠위치 정보는 왜 넘기셨어요⁠?⁠”

“⁠안 넘기면 엽사단이 개를 풀어요⁠. 개를 풀면 굴 앞에서 범이 개를 상대해요⁠. 새끼를 낳는 범이요⁠.⁠” 표정훈은 산문 기둥에 손바닥을 댔다⁠. “⁠위치를 알면 한 발이면 끝나요⁠. 개도 안 풀고⁠, 범도 오래 안 아파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였어요⁠.⁠”

한담은 대답하지 못했다⁠. 표정훈의 말은 다 맞았다⁠. 다 맞는데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진술서 주세요⁠. 오늘 밤 세종에 다시 올라가서 장관님 앞에 놓을게요⁠. 육 선생 감사 결과도 같이 놓고요⁠. 육 선생은 징계예요⁠. 나도 징계고요⁠. 그래도 진술서는 놓을게요⁠.⁠”

표정훈은 산문 기둥에서 손을 떼고 한담을 보았다⁠.

“⁠9월에 육 선생 메모대로 했으면 어땠을까⁠, 어젯밤 내내 생각했어요⁠. 어르신은 송아지를 안쪽 칸에 넣으셨겠지요⁠. 호단은 외양간 앞에서 발길을 돌렸을 거고⁠. 그러면 흑염소도 없고⁠, 출입 금지도 없고⁠, 순찰대장도 없고⁠.⁠” 표정훈이 웃었다⁠. 웃음이 짧았다⁠. “⁠다음 범 두 마리 데려오려다 이 한 마리를 잃게 생겼어요⁠.⁠”

한담은 준호에게서 봉투를 받아 표정훈에게 건넸다⁠. 표정훈은 봉투를 점퍼 안주머니에 넣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자기 차로 갔다⁠. 차가 산문을 빠져나가며 한 번 경적을 울렸다⁠.

주차장 반대편에서 무내골 사람들이 걸어 들어왔다⁠. 주영길이 맨 앞에서 걸었다⁠. 막걸리 병이 든 상자를 들었고⁠, 윗집 할매가 김치전 접시를 보자기에 싸 들었다⁠. 귀농 부부도 있었다⁠. 주영길은 엽사단의 승합차 앞에 상자를 내려놓고 메가폰을 꺼냈다가⁠, 엽사단장의 얼굴을 보고 도로 넣었다⁠.

“⁠아아⁠, 이장입니다⁠. 아니⁠, 그냥 이장입니다⁠. 먼 길 오셨는디 이거라도 드시라고요⁠. 호랑이 막걸리⁠.⁠”

엽사단원 하나가 병을 집어 들고 상표의 범 얼굴을 보았다⁠. 수염 여섯 가닥의 웃는 범이었다⁠. 엽사단원은 병을 도로 상자에 넣었다⁠. 아무도 막걸리를 따지 않았다⁠.

윗집 할매가 한담 곁으로 와서 김치전 접시를 한담에게 쥐여 주었다⁠.

“⁠우리는 범 쏘라고 귤 든 적은 없어⁠. 데려가라고 들었제⁠.⁠”

할매는 한마디만 하고 몸을 돌렸다⁠. 준호가 할매의 등을 보다가 한담에게 물었다⁠.

“⁠아부지는요⁠?⁠”

나미자가 대답했다⁠. 나미자는 사람들 맨 뒤에 있었다⁠.

“⁠어제부터 외양간에 앉아 있다⁠. 총은 경찰서에 도로 갖다 맡겼어⁠. 오늘 아침에⁠. 밥은 묵는다⁠. 말은 안 혀⁠.⁠”

*

해가 지자 굴 안이 어두워졌다⁠. 호단의 배가 조여드는 사이가 짧아졌다⁠. 조여들 때 호단은 마른 잎을 이빨로 물었다⁠. 잎이 부서져 입안에 흩어졌다⁠. 풀리면 숨을 길게 내쉬고 혀로 배를 핥았다⁠. 핥는 자리마다 털이 젖었다⁠. 배 밑에서 처음 맡는 냄새가 났다⁠. 짜고 비린⁠, 물 같은 냄새였다⁠. 호단은 냄새가 나는 자리를 오래 핥았다⁠.

산 아래에서 개 짖는 소리가 한 번 올라왔다⁠. 기름진 가죽 냄새의 개였다⁠. 호단은 귀를 세웠다가⁠, 배가 다시 조여들자 귀를 눕혔다⁠. 개보다 배가 먼저였다⁠. 호단은 굴 가장 안쪽⁠, 바람이 한 올도 들지 않는 자리로 몸을 밀어 넣고 마른 잎 위에 옆으로 누웠다⁠. 앞발 하나가 저절로 배를 감쌌다⁠. 철사가 감겨 있던 앞발이었다⁠.

*

저녁 일곱 시⁠, 산문 주차장의 가로등이 켜졌다⁠. 엽사단은 승합차 안에서 개에게 밥을 주었다⁠. 개 밥그릇이 철망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주차장에 울렸다⁠. 무내골 사람들은 막걸리 상자를 승합차 옆에 그대로 두고 돌아갔고⁠, 귀농 부부의 남편만 남아 휴대전화로 산문을 찍다가 아내의 전화를 받고 뛰어갔다⁠. 곽두식은 트럭을 몰고 무내골로 내려가려다 주차장 출구에서 멈추고⁠, 운전석에서 내려 엽사단장의 승합차로 다시 걸어갔다⁠. 무언가를 다시 청하는 모양이었다⁠. 엽사단장은 창문을 반만 내렸다⁠.

준호가 한담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선배⁠, 저기요⁠.⁠”

곽두식의 트럭 짐칸에 파란 방수포가 덮여 있었다⁠. 방수포 한 귀퉁이가 바람에 들려 있었다⁠. 들린 귀퉁이 밑으로 철사 뭉치가 보였고⁠, 철사 뭉치 옆에 갈색 가죽 끈 한 토막이 삐져나와 있었다⁠. 끈 끝이 칼로 자른 듯 반듯하게 잘려 있었다⁠. 끈에 달린 검은 네모의 모서리가 가로등 불빛에 희미하게 빛났다⁠.

준호는 끈이 무엇인지 알았다⁠. 한담도 알았다⁠. 연해주를 떠나기 전날⁠, 마취한 범 두 마리의 목에 한담이 제 손으로 채운 목걸이였다⁠. 하나는 지금 범바위 아래 굴에 있었다⁠. 다른 하나는 8월 중순 뱀사골 위에서 신호를 끊었다⁠.

“⁠산솔이요⁠.⁠”

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입 모양만 났다⁠.

곽두식이 승합차 창문에서 몸을 떼고 트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한담은 준호의 소매를 잡아 트럭 그늘 뒤로 끌어당겼다⁠. 곽두식은 짐칸 앞을 지나가며 들린 방수포 귀퉁이를 무심히 내려 덮었다⁠.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그러고는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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