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23자)

서른 바늘

지리산에 풀어 준 호랑이 · 하윤슬

11월 10일 오후 세 시⁠, 육한담은 범바위 맞은편 능선의 바위 그늘에 엎드려 쌍안경을 들고 있었다⁠. 이틀째였다⁠. 굴 입구 앞 너덜에 호단이 나와 있었다⁠. 굴에서 개울까지 스무 걸음을 내려가면서 호단은 여러 번 멈추었다⁠. 왼 앞발을 땅에 대지 못했다⁠. 발목이 오른 앞발의 두 배로 부어 있었고⁠, 부은 자리의 털이 젖어 검었다⁠. 호단은 개울에 엎드려 물을 오래 마시고⁠, 다시 세 다리로 굴로 올라갔다⁠. 오르다가 두 번 엎드려 쉬었다⁠.

환경부의 답은 오전에 왔다⁠. 표정훈이 문자로 옮겨 주었다⁠. 「⁠출산 전 마취 불가⁠. 출산 후 재포획팀이 판단⁠. 그때까지 원거리 관찰⁠.⁠」 출산은 이르면 닷새 뒤였다⁠. 한담은 쌍안경을 내리고 손가락을 꼽았다⁠. 닷새 동안 철사는 살을 더 파고들 것이었다⁠. 고름이 차고⁠, 열이 오르고⁠, 열이 오른 어미는 새끼를 낳고도 젖을 제대로 물리지 못할 것이었다⁠.

능선 아래 무내골에서는 관광버스 한 대가 들머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회관 앞 천막에서 주영길의 메가폰 소리가 바람을 타고 끊어지며 올라왔다⁠. 막걸리⁠, 팔천 원⁠, 범 선생⁠. 임도에는 곽두식의 사륜 트럭이 차단기 앞에 멈춰 있었다⁠. 트럭 짐칸에 앉은 관광객 셋이 범바위를 향해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순찰대장이 범바위가 잘 보이는 자리까지 태워 준다는 말을 한담은 어제 회관 앞에서 들었다⁠. 한 사람에 만 원이라고 했다⁠.

뒤에서 낙엽 밟는 소리가 났다⁠. 준호였다⁠. 준호는 등에 긴 가방 하나를 메고 있었다⁠. 한담이 아는 가방이었다⁠. 사육장 금고 안에 있어야 할 가방이었다⁠.

“⁠금고 비밀번호⁠, 재포획팀 막내도 알아요⁠.⁠”

준호가 가방을 한담 옆에 내려놓았다⁠. 얼굴이 하얬다⁠.

“⁠센터장님은 오늘 세종 가셨어요⁠. 내일 아침에 오세요⁠.⁠”

“⁠준호야⁠.⁠”

“⁠선배 혼자 가면 선배만 혼나잖아요⁠. 둘이 가면 반씩 혼날 거예요⁠.⁠” 준호는 가방 지퍼를 열었다⁠. 마취총과 약병 상자가 들어 있었다⁠. “⁠저 이거 들고 오면서 아부지 생각했어요⁠. 아부지가 알고 송아지 주셨다고 했잖아요⁠. 저도 알고 들고 왔어요⁠. 그러니까 저도 아부지 아들이에요⁠.⁠”

한담은 약병 상자를 열었다⁠. 호단의 몸무게는 봄에 백사십 킬로였고⁠, 지금은 새끼까지 백육십이 넘었다⁠. 평소 용량이면 한 시간 남짓 잠들었다⁠. 한담은 약병을 손바닥에 굴렸다⁠. 약은 어미의 피를 타고 배 속까지 간다⁠. 출산 일주일 전의 새끼에게 한 시간짜리 잠은 길었다⁠.

“⁠반만 넣을 거야⁠.⁠”

“⁠반이면요⁠?⁠”

“⁠이십 분⁠. 길면 이십오 분⁠.⁠”

“⁠이십 분 안에 철사 끊고 소독하고 내려와요⁠?⁠”

“⁠해야지⁠.⁠”

한담은 주사기로 약을 덜어 마취 화살에 채웠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는 손이 한담은 낯설었다⁠.

*

호단은 해 질 녘에 다시 개울로 내려갔다⁠. 몸이 뜨거웠다⁠. 왼 앞발이 제 것이 아닌 듯 무거웠고⁠, 심장이 뛸 때마다 발목이 같이 뛰었다⁠. 혀가 말랐다⁠. 물을 마셔도 금방 다시 말랐다⁠. 배 속의 것들은 낮보다 조용했다⁠. 호단은 개울가에 엎드려 물에 앞발을 담갔다⁠. 차가운 물이 발목을 감싸자 아픔이 조금 물러났다⁠.

바람이 아래에서 올라왔다⁠. 약 냄새가 실려 있었다⁠. 단내도 함께였다⁠. 둘 다 가까웠다⁠. 너덜 아래 바위 뒤⁠, 서른 걸음도 안 되는 데였다⁠. 호단은 고개를 들었다⁠. 약 냄새는 움직이지 않았다⁠. 호단도 움직이지 않았다⁠. 약 냄새는 철창 안에서도⁠, 흔들리던 날에도⁠, 문이 열리던 날에도 곁에 있었다⁠. 늘 멀찍이 있었다⁠. 오늘은 가까웠다⁠.

옆구리가 따끔했다⁠.

벌에 쏘인 것보다 깊었다⁠. 호단은 몸을 비틀어 옆구리를 보았다⁠. 털 사이에 가는 것이 꽂혀 꽁무니의 털 뭉치를 흔들고 있었다⁠. 이 따끔함을 호단은 알았다⁠. 철창 안에서 여러 번 맞았다⁠. 맞고 나면 땅이 기울었고⁠, 깨어나면 몸에서 약 냄새가 났다⁠.

땅이 기울기 시작했다⁠. 개울물 소리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 호단은 굴로 오르려고 몸을 일으켰다⁠. 뒷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앞으로 두 걸음을 옮기고⁠, 세 번째 걸음에 무릎이 꺾였다⁠. 호단은 개울가 자갈 위에 옆으로 누웠다⁠. 눈을 감지 않으려고 했다⁠. 하늘이 천천히 돌았다⁠. 약 냄새가 가까이 왔다⁠. 단내가 따라왔다⁠. 호단은 으르렁거리려고 입을 벌렸다⁠. 목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배 속의 것들이 한 번 크게 뒤척이더니 잠잠해졌다⁠. 호단은 잠잠해진 배를 감싸려고 뒷다리를 끌어당겼다⁠. 다리가 반쯤 오다가 멈추었다⁠. 하늘이 돌기를 멈추고 어두워졌다⁠.

*

여섯 시 십이 분⁠, 한담은 호단 곁에 무릎을 꿇었다⁠. 준호가 머리 전등을 호단의 앞발에 비추었다⁠. 한담은 호단의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들어 보았다⁠. 호박색 눈이 위로 돌아가 있었다⁠. 숨은 고르고 깊었다⁠. 한담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여섯 시 십이 분⁠. 준호에게 말했다⁠.

“⁠삼십이 분까지야⁠. 이십칠 분이 되면 무조건 말해⁠.⁠”

철사는 발목 위로 살을 파고들어 털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부은 살 사이에 은빛이 겨우 비쳤다⁠. 고름 냄새가 났다⁠. 한담은 소독약을 붓고⁠, 핀셋으로 살을 벌려 철사를 찾아냈다⁠. 절단기의 날을 살과 철사 사이에 밀어 넣는 데만 삼 분을 썼다⁠. 철사가 끊기는 소리가 났다⁠. 한담은 끊긴 고리를 살에서 천천히 빼냈다⁠. 고리가 빠져나온 자리에 깊은 홈이 발목을 한 바퀴 돌아 나 있었다⁠. 뼈는 상하지 않았다⁠. 한담은 숨을 내쉬었다⁠.

“⁠십오 분이요⁠.⁠” 준호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선배⁠, 누나 코 골아요⁠.⁠”

호단의 콧구멍에서 가르릉거리는 소리가 났다⁠. 준호는 웃음을 참느라 전등 불빛이 흔들렸다⁠. 한담은 호단의 귀 안쪽에 체온계를 넣었다⁠. 열이 높았다⁠. 꼬리 밑동의 굵은 핏줄에서 피를 한 대롱 뽑았다⁠. 뽑은 피를 준호의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준호는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덮고⁠, 피가 따뜻하다고 속삭였다⁠.

“⁠십팔 분이요⁠.⁠”

한담은 홈을 씻어 내고 항생제를 놓았다⁠. 진통제를 놓았다⁠. 붕대를 감지 않았다⁠. 범은 붕대를 물어뜯다가 상처를 더 벌린다⁠. 한담은 손바닥을 호단의 배에 얹었다⁠. 털 밑으로 단단한 배가 오르내렸다⁠. 손바닥 아래에서 무언가가 밀었다⁠. 다른 자리에서 또 하나가 밀었다⁠. 둘이었다⁠. 둘 다 움직였다⁠.

“⁠준호야⁠, 둘이야⁠.⁠”

“⁠이십삼 분이요⁠. 선배⁠, 둘이요⁠?⁠”

“⁠둘⁠. 둘 다 괜찮아⁠.⁠”

준호가 웃었다⁠. 웃음소리가 개울물 소리에 섞였다⁠. 한담은 일어나 장비를 가방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준호도 전등을 이마에 고쳐 쓰고 호단의 옆구리에서 빠진 마취 화살을 주워 들었다⁠. 화살은 증거였고⁠, 센터의 물건이었다⁠. 준호는 화살을 가방에 넣으려고 호단의 머리 곁으로 몸을 숙였다⁠.

호단의 귀가 움찔했다⁠.

“⁠준호야⁠, 물러나⁠.⁠”

호단의 눈이 열렸다⁠. 호박색 눈이 위에서 내려와 준호의 전등 불빛에 닿았다⁠. 눈동자가 바늘처럼 오므라들었다⁠. 호단은 일어나지 못하고 앞발 하나를 휘둘렀다⁠. 오른 앞발이었다⁠. 준호가 몸을 젖혔다⁠. 발톱이 준호의 왼팔 윗부분을 긁고 지나갔다⁠. 작업복 소매가 세 줄로 갈라졌다⁠. 준호가 자갈 위로 넘어졌다⁠. 전등이 머리에서 벗겨져 개울물로 굴러갔다⁠.

한담은 준호의 조끼 뒷덜미를 잡아 끌었다⁠. 준호를 바위 뒤로 끌고 가는 동안 등 뒤에서 자갈이 흩어지는 소리가 났다⁠. 호단이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한담은 바위 뒤에 준호를 눕히고 돌아보았다⁠. 개울물에 잠긴 전등 불빛 속에서 호단이 세 다리로⁠, 그러다 네 다리로 비탈을 올라가고 있었다⁠. 왼 앞발이 땅을 디뎠다⁠. 비틀거렸지만 디뎠다⁠. 호단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굴로 올라갔다⁠.

준호의 소매가 피로 젖어 검었다⁠. 한담은 소매를 찢고 상처를 보았다⁠. 세 줄이 팔꿈치 위에서 어깨 아래까지 나 있었다⁠. 깊었지만 동맥은 비켜 갔다⁠. 한담은 붕대를 꺼냈다⁠. 호단에게 감지 않은 붕대였다⁠.

“⁠선배⁠.⁠” 준호가 이를 덜덜 떨면서 말했다⁠. “⁠누나가 저 몰라봤어요⁠.⁠”

“⁠약 때문이야⁠. 깰 때는 아무도 몰라봐⁠.⁠”

“⁠저 단내 났는데⁠.⁠”

“⁠알아⁠. 누르고 있어⁠. 세게⁠.⁠”

*

밤 열 시⁠, 남원의 병원 응급실 복도는 소독약 냄새가 짙었다⁠. 준호는 처치실 안에서 서른 바늘을 꿰맸다⁠. 한담은 복도 의자에 앉아 피 묻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을 씻었는데도 손톱 밑이 붉었다⁠.

복도 끝 자동문이 열리고 칠구가 들어왔다⁠. 장화를 신은 채였다⁠. 장화에서 쇠똥 냄새가 났다⁠. 나미자가 뒤따라 들어왔다⁠. 칠구는 한담 앞에서 멈췄다⁠. 한담이 일어났다⁠.

“⁠니가 내 아들을 산에 데려갔제⁠.⁠”

“⁠제가 데려갔어요⁠.⁠”

칠구가 한담의 조끼 깃을 움켜쥐었다⁠. 주먹이 한담의 턱 밑에서 떨렸다⁠. 나미자가 남편의 팔을 붙잡았다⁠. 칠구는 손을 놓지 않았다⁠.

“⁠센터에서 기다리라 혔다매⁠. 환경부에서 기다리라 혔다매⁠. 니만 안 기다렸어⁠. 니 범 다리 하나 살릴라고 내 아들 팔을 내줬어⁠.⁠”

“⁠압니다⁠.⁠”

“⁠알믄 됐다고 할 줄 알았냐⁠?⁠”

처치실 문이 열렸다⁠. 준호가 붕대 감은 팔을 가슴에 묶고 나왔다⁠. 얼굴이 종이처럼 하얬다⁠.

“⁠아부지⁠, 제가 간 거예요⁠. 금고 열쇠도 제가 가져왔어요⁠. 선배는 혼자 가려고 했어요⁠. 제가 따라간 거예요⁠.⁠”

칠구가 아들을 보았다⁠. 아들의 붕대를 보았다⁠. 조끼 깃을 쥔 손에서 천천히 힘이 빠졌다⁠. 칠구는 한담을 놓고 복도 벽을 주먹으로 쳤다⁠. 한 번이었다⁠. 벽에 붙은 금연 안내문이 흔들렸다⁠.

“⁠알고 했다고 할 것이냐⁠, 니도⁠?⁠”

“⁠알고 했어요⁠.⁠” 준호가 말했다⁠. “⁠아부지처럼요⁠.⁠”

칠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들의 붕대에 배어 나온 붉은 점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나미자가 준호의 성한 쪽 어깨를 감싸 안았다⁠. 칠구는 벽을 친 주먹을 펴서 아들의 이마에 댔다⁠. 땀을 닦듯 한 번 쓸었다⁠. 그러고는 복도 끝으로 걸어가 의자에 혼자 앉았다⁠.

열한 시⁠, 주영길이 응급실로 들어왔다⁠. 내복 위에 오리털 조끼를 입었고⁠, 손에 메가폰 대신 귤 봉지를 들고 있었다⁠. 주영길은 준호의 붕대를 보고 귤 봉지를 준호의 무릎에 놓았다⁠.

“⁠아이고⁠, 우리 막내⁠. 범 선생이 사람을 몰라보셨구먼⁠.⁠”

“⁠이장님⁠, 단톡방은요⁠?⁠”

“⁠단톡방은 난리여⁠.⁠” 주영길이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밀어 올렸다⁠. 「⁠사람 다쳤다⁠」 「⁠칠구네 준호⁠」 「⁠이제 끝났다⁠」 「⁠블루베리집 민박 예약 다 취소됐대⁠」⁠. 화면 맨 아래에 곽두식이 올린 생방송 주소가 붙어 있었다⁠. 「⁠곽포수TV · 긴급 · 무내골 주민 부상⁠」⁠. “⁠곽 대장은 벌써 방송을 혀⁠. 병원 앞이라고⁠. 자기가 오늘 밤 마을을 지킨다고⁠.⁠”

한담은 응급실 유리문 밖을 보았다⁠. 주차장 가로등 아래에서 셀카봉 끝의 불빛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열한 시 반⁠, 표정훈이 세종에서 내려왔다⁠. 정장 차림이었다⁠. 표정훈은 준호의 붕대를 보고⁠, 한담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꺼내 한담에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환경부 과장의 문자였다⁠.

「⁠협약 제4조⁠. 사람이 다쳤으므로 사살을 검토함⁠. 장관님 승인 완료⁠. 엽사단 내일 오후 도착⁠. 위치 정보 제공 바람⁠.⁠」

복도 끝 의자에서 칠구가 고개를 들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볼 수 없는 거리였다⁠. 칠구는 표정훈의 얼굴만 보고도 알았다⁠. 칠구는 일어나지 않았다⁠. 장화 끝에 묻은 쇠똥을 손가락으로 긁어 떼어 내고 있었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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