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49자)

빈 찜기

강호 배달 라이더 · 하로운

사월 스무닷새 새벽⁠, 소제 둑길에서 본선을 여는 북이 세 번 울렸다⁠. 북소리가 호수를 건너 청하방까지 닿을 무렵⁠, 풍운 문짝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대팔이 밤새 쓴 글씨였다⁠. 「⁠항주 라이더 조합 · 오늘 하루 배달 쉼 · 금지령 반대 · 주방 늦음은 주방 탓⁠」⁠. 마지막 줄은 이 일과 상관이 없었지만 대팔이 꼭 넣어야 한다고 우겼다⁠.

길 건너 비룡 지점 문짝에도 같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비룡 짐꾼 맏이가 붙인 것이었다⁠. 비룡 마차들은 마구간 앞에 줄지어 서 있었는데⁠, 마차를 몰 사람은 있어도 마차에서 찜기를 받아 골목으로 뛸 사람이 없었다⁠.

진보덕이 문을 열고 나와 종이를 읽었다⁠. 읽고 나서 나를 봤다⁠.

“⁠오늘 그나마 들어온 부름이 열다섯이다⁠. 그걸 다 버리겠다고⁠?⁠”

“⁠열다섯 버리고 내일을 사려고요⁠.⁠”

“⁠내일을 뭘로 사는데⁠?⁠”

“⁠사장님이 내일 곽만금 종이에 도장 찍으시면⁠, 모레부터 부름은 영영 비룡 거예요⁠. 오늘 하루 강호가 라이더 없이 살아 봐야 표결 날 문파 어른들 손이 어디로 갈지 알죠⁠.⁠”

진보덕은 종이를 떼려다 말고 손을 내렸다⁠. 대신 부엌으로 들어가 찜기 하나를 챙겨 나왔다⁠.

“⁠너희가 안 뛰면 내가 뛴다⁠. 열다섯 손님은 풍운 손님이다⁠. 알겠냐⁠?⁠”

진보덕은 찜기를 들고 골목을 뛰어나갔다⁠. 쉰 살 숙수의 다리로⁠, 땅의 길로⁠. 라이더 서른여섯이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진보덕 뒷모습을 지켜봤다⁠. 진보덕은 골목 어귀 돌부리에 한 번 걸려 비틀거렸고⁠, 찜기를 지키느라 무릎으로 넘어졌다⁠. 일어나서 다시 뛰었다⁠. 대팔이 고개를 돌렸다⁠.

“⁠저거 보고 있으니까 내가 나쁜 놈 같다⁠.⁠”

“⁠나쁜 놈 하기로 한 거잖아⁠. 오늘 하루만⁠.⁠”

진보덕은 반 시진 만에 돌아왔다⁠. 땀이 장포 등판에 지도처럼 번져 있었다⁠. 찜기는 무사했고⁠, 손님은 늦었다고 별패를 하나 줬다⁠. 진보덕은 별패를 허리춤에 꽂고 아무 말 없이 다음 찜기를 들었다⁠. 두 번째 찜기는 할멈이 막았다⁠. 국자로⁠.

*

해가 높아지자 항주가 이상해졌다⁠.

나는 거처에 발을 들일 수 없었으니 거처 맞은편 지붕에서 구경만 했다⁠. 무당 거처 청풍객사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솟았다⁠. 대문 안에서 도사들의 기침 소리가 났다⁠. 현진이 탄 솥을 들고 대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솥 바닥에 밥이 숯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현진 도장⁠! 밥은 물을 손등까지 부으셔야 돼요⁠!⁠”

현진이 지붕 위의 나를 올려다봤다⁠. 원망하는 눈이었다가⁠, 배고픈 눈이었다가⁠, 결국 묻는 눈이 됐다⁠.

“⁠손등 어디까지요⁠?⁠”

“⁠손등 뼈 튀어나온 데까지요⁠!⁠”

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솥을 들고 다시 들어갔다⁠. 반 각 뒤 굴뚝에서 다시 검은 연기가 났다⁠. 손등 뼈가 사람마다 다른 모양이었다⁠.

취선객잔 마당에서는 화산 제자들이 길거리 찐빵 한 바구니를 두고 칼집으로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었다⁠. 비룡이 끊긴 데다 풍운도 쉬니⁠, 사형들이 큰길까지 나가 찐빵을 사 왔다는 것이었다⁠. 바구니는 하나고 제자는 스물이었다⁠. 별채 세 번째 창은 정말로 못이 박혀 있었다⁠. 못 박힌 창틈으로 손가락 하나가 나와 나를 향해 까딱거렸다⁠. 화가 난 손가락인지 반가운 손가락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소제 둑길 본선장 옆에는 비룡 마차들이 엉켜 있었다⁠. 구경꾼이 둑을 메워 마차가 오도 가도 못했고⁠, 마부들이 서로 고함을 질렀다⁠. 찜기를 받아 둑 위로 뛰어갈 짐꾼이 없었다⁠. 엉킨 마차들 위로 반석 혼자 지붕을 타고⁠, 버드나무를 타고⁠, 둑을 타며 찜기를 날랐다⁠. 표사 넷 가운데 셋은 일각을 못 맞춘다고 마차 옆에 주저앉아 있었다⁠. 반석만 쉬지 않았다⁠. 버드나무 꼭대기를 디딜 때마다 가죽 신 끝이 미끄러졌다⁠. 6년 전 연자관 처마에서 미끄러지던 내 발을 붙잡던 사람이⁠, 지금은 자기 발을 붙잡을 사람 없이 달리고 있었다⁠.

*

정오 북이 울리자 소제 셋째 다리 옆 본선 무대에 설매가 올라왔다⁠. 상대는 공동파 둘째 제자였다⁠. 나는 버드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무대를 내려다봤다⁠. 무대 위는 비무장이고⁠, 버드나무 위는 비무장 위가 아니다⁠. 이 정도 거리는 이제 발바닥이 알았다⁠.

설매 얼굴이 하얬다⁠. 찐빵 가위바위보에서 진 얼굴이었다⁠. 첫 합부터 칼끝이 왼쪽으로 흔들렸다⁠. 공동파 제자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노름판 패에 적힌 「⁠반 치⁠」를 아는 사람의 칼이었다⁠. 설매는 세 번 밀리고 네 번째에 무대 모서리까지 몰렸다⁠.

무대 아래 화산 자리에서 송학 진인이 일어났다⁠. 진인은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설매 쪽으로 툭 던졌다⁠. 기름종이에 싼 작은 꾸러미였다⁠. 설매가 칼등으로 받아 쳐서 손에 쥐고⁠, 한 입에 넣었다⁠. 비무 중에 뭘 먹는 건 법에 없었다⁠. 법에 없는 일이라 심판도 멍하니 보기만 했다⁠. 설매가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다음 합부터 칼끝이 반 치 오른쪽으로 돌아왔다⁠. 매화 다섯 갈래가 똑바로 피었다⁠. 공동파 제자의 칼이 무대 밖으로 날아갔다⁠.

버드나무 아래서 구경꾼 하나가 물었다⁠. “⁠방금 화산 장로가 던진 게 뭐요⁠?⁠”

옆 사람이 코를 킁킁거렸다⁠. “⁠동파육 같은데⁠.⁠”

진인은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도로 앉아 수염을 쓸었다⁠. 설매가 무대에서 내려가며 버드나무 꼭대기의 나를 올려다봤다⁠. 입가에 간장 자국이 묻어 있었다⁠.

*

서호검문 담 위를 지날 때 부엌 창이 열리더니 목소리가 날아왔다⁠.

“⁠짚신 대표⁠. 내려오게⁠.⁠”

방규철이었다⁠. 회색 장포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이고 있었다⁠. 나는 담 위에서 멈칫했다⁠.

“⁠표결 날까지 풍운 라이더는 문파 거처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오늘은 내가 들인 것이네⁠.⁠”

서호검문 부엌은 소박했다⁠. 아궁이 둘⁠, 솥 둘⁠, 도마 하나⁠. 큰 솥에서 물이 끓었고⁠, 도마 위에 밀가루 반죽이 덩어리째 놓여 있었다⁠. 방규철은 반죽을 양손으로 늘려 접고⁠, 늘려 접었다⁠. 반죽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손놀림이 진보덕이 취선 주방에서 고기를 썰던 손과 같은 종류였다⁠. 칼 쓰는 손과는 다른⁠, 밥 하는 손⁠.

“⁠국수를 할 줄 아세요⁠?⁠”

“⁠제자 여든이 오늘 점심을 굶게 생겼네⁠. 문주가 국수를 못 하면 누가 하나⁠?⁠”

방규철은 늘린 면을 끓는 물에 넣고 긴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김이 방규철의 각진 얼굴을 덮었다가 걷혔다⁠.

“⁠배달을 멈추고 강호를 굶겨서 금지령을 막겠다는 겐가⁠? 그건 볼모일세⁠. 칼 들고 남의 집 아이를 붙잡는 것과 이름만 다르지⁠.⁠”

“⁠하루 굶어 보시라는 겁니다⁠. 라이더 없는 항주가 어떤지⁠. 금지령이 서면 매일이 오늘이에요⁠. 비룡 마차가 다 하면 된다고들 하는데⁠, 지금 소제 둑에서 마차가 어떤지 보셨어요⁠?⁠”

“⁠봤네⁠.⁠”

“⁠그럼요⁠?⁠”

방규철이 국수를 건져 찬물에 헹궜다⁠. 찬물이 튀어 내 짚신 앞코에 떨어졌다⁠.

“⁠오늘 저녁 문파 대표들이 다 굶고 잘 걸세⁠. 굶은 사람은 화가 나지⁠. 화는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 가네⁠. 오늘 배달을 멈춘 사람이 누군가⁠? 표결은 오늘로 더 기울었네⁠, 짚신 대표⁠. 자네들 쪽으로가 아니라⁠.⁠”

“⁠그래도 오늘 국수는 문주님이 삶으셨잖아요⁠. 문주님은 굶은 제자 여든 앞에서 화를 내셨나요⁠, 국수를 삶으셨나요⁠?⁠”

방규철의 젓가락이 멈췄다⁠. 김 너머로 나를 봤다⁠. 왼쪽 손목 안쪽에 오래된 흉터가 보였다⁠. 기와 모서리에 긁힌 것처럼 들쭉날쭉했다⁠.

“⁠나도 젊어서 국수를 날랐네⁠. 이 근처 객잔 심부름꾼이었지⁠. 국숫집 그릇을 이고 지붕을 탔어⁠.⁠”

“⁠문주님이요⁠?⁠”

“⁠사람이 처음부터 문주였겠나⁠?⁠”

방규철은 국수를 대접 여든 개에 나눠 담았다⁠. 국물을 붓고 파를 뿌렸다⁠. 그리고 대접 하나를 내 앞으로 밀었다⁠.

“⁠먹고 가게⁠. 굶은 사람이 굶긴 사람한테 주는 국수일세⁠. 그 이상은 표결 날 말하지⁠.⁠”

국수는 짰다⁠. 소금을 두 번 넣은 맛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먹었다⁠. 방규철은 내가 대접을 비울 때까지 부엌문에 기대 팔짱을 끼고 있다가⁠, 다 먹자 대접을 받아 들고 몸을 돌렸다⁠. 손목 흉터를 장포 소매로 덮으면서⁠.

*

밤이 되자 항주에 소문이 돌았다⁠. 라이더들이 강호를 굶겼다는 소문⁠, 무당 도사들이 밥 대신 숯을 먹었다는 소문⁠, 비룡 마차가 소제 둑에 처박혔다는 소문⁠. 문파 거처 몇 군데에서 연합 회장한테 서찰을 보냈다고 했다⁠. 금지령을 서둘러야 한다는 서찰이었다⁠. 해 질 녘 곽만금의 마차가 풍운 골목 어귀에 멈췄다⁠. 곽만금은 마차 창으로 얼굴만 내밀고 문짝의 「⁠오늘 하루 배달 쉼⁠」 종이를 소리 내어 읽었다⁠. 다 읽고는 동전 한 닢을 골목 바닥에 던졌다⁠. 동전이 데굴데굴 굴러 대팔 짚신 앞에서 쓰러졌다⁠.

“⁠쉰 날 품삯이오⁠. 내일 진 사장이 도장을 찍으면 비룡 짐꾼 품삯으로 쳐 드리지⁠. 하루 쉬는 데 한 닢이면 후한 거요⁠.⁠”

마차가 떠났다⁠. 대팔은 동전을 주워 들고 한참 노려보다가 할멈 국자 통에 집어넣었다⁠. 할멈은 국자 통에서 동전을 꺼내 앞치마에 넣었다⁠. 돈은 돈이었다⁠. 대팔은 뒷방 구석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우리가 판을 뒤집은 거냐⁠, 판에서 굴러떨어진 거냐⁠?⁠”

“⁠둘 다⁠.⁠”

뒷방 문이 세 번 두드려졌다⁠. 짐꾼들이 처음 왔을 때처럼 조심스러운 소리가 아니었다⁠. 문짝이 흔들릴 만큼 무거운 소리였다⁠. 대팔이 문을 열자 사람 하나가 문턱에 기대 쓰러질 듯 서 있었다⁠.

반석이었다⁠. 검은 비단 옷 대신 해진 무명옷을 입었고⁠, 가죽 신은 없고 맨발이었다⁠. 왼쪽 눈두덩이 시퍼렇게 부어 있었고⁠, 입가에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허리에 관아 통행패가 없었다⁠.

“⁠사형⁠!⁠”

반석은 내가 붙잡기도 전에 문턱에 주저앉았다⁠. 할멈이 찬물 대야를 들고 뛰어나왔다⁠.

“⁠국주가 날 잘랐다⁠.⁠”

반석은 찬물에 적신 수건을 눈에 대고 한 마디씩 끊어 말했다⁠.

“⁠표결 날 대청에 나가서 말하라더라⁠. 화방 지붕에서 짚신이 국주 물건을 훔쳐 가는 걸 봤다고⁠. 화방 쪽지를 판 것도 짚신이라고⁠. 내가 경비였으니 내 말이면 다 믿는다고⁠.⁠”

“⁠그래서⁠?⁠”

“⁠못 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칼자국이 날 붙잡고 국주가 주먹을 썼다⁠. 오늘 짐꾼 하나 없이 혼자 뛴 품삯은 못 주겠다더라⁠. 신도 벗어 놓고 가래서 벗고 왔다⁠.⁠”

대팔이 벽을 주먹으로 쳤다⁠. 할멈이 대팔 주먹에도 찬물을 부었다⁠.

반석은 수건을 내리고 성한 눈으로 나를 봤다⁠.

“⁠짚신⁠. 화방에서 호수에 빠뜨린 도장 있지⁠. 국주가 그날 밤 새로 깎게 했다⁠. 이번엔 다 깎았어⁠. 화방에서 사들인 쪽지 묶음도 같이 있다⁠. 학 노인 것까지 다⁠. 국주 금고 방에 넣어 놨다⁠. 표결 날 대청에 들고 가서⁠, 풍운 라이더가 판 증거라고 내밀 거다⁠.⁠”

뒷방이 조용해졌다⁠. 할멈 대야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났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반석이 맨발을 내려다봤다⁠. 굳은살이 박이고 발톱이 하나 깨진 발이었다⁠. 사부가 처음 가르친 디딤 세 번을 나보다 먼저 익힌 발이었다⁠.

“⁠사부가 그랬잖냐⁠. 도망만 잘하면 사람은 안 죽는다고⁠. 나는 6년 동안 도망만 잘했다⁠. 이제 그만 도망치려고⁠.⁠”

나는 할멈 대야에서 수건을 하나 더 적셔 반석의 부은 눈에 대 줬다⁠. 반석이 움찔했지만 피하지 않았다⁠. 처마에서 떨어진 나를 받아 주던 사람 얼굴을 이번엔 내가 받치고 있었다⁠. 수건 너머로 반석의 성한 눈이 웃었다⁠.

“⁠짚신⁠, 손이 차다⁠.⁠”

“⁠물이 차서 그래⁠.⁠”

대팔이 국자 통을 끌어안고 끼어들었다⁠. “⁠그래서⁠, 금고 방에 어떻게 들어가는데⁠?⁠”

반석이 수건을 내리고 맨발 두 개를 문턱 밖으로 쭉 뻗었다⁠.

“⁠신발부터 하나 구해 줘⁠. 그다음에 말해 주마⁠.⁠”

9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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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발2026.11.06· 9화

    라이더들이 하루 멈추니까 문파마다 밥 짓는 소동 나는 거 너무 현실적이었어요. 방규철이 젊어서 심부름꾼이었다는 데서 마음이 복잡해졌고, 반석이 멍든 얼굴로 오는 마지막에 숨 참았습니다.

    • 하로운작가2026.11.06

      파업을 막는 쪽에도 한때 같은 길을 뛴 사람이 있었어요. 금고 방의 가짜 도장 이야기는 다음 화부터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