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24자)

사형

강호 배달 라이더 · 하로운

반석이 내 짚신을 신고 골목에 서 있었다⁠. 내 여벌 짚신이었다⁠. 반석 발이 나보다 한 치 커서 뒤꿈치가 짚신 밖으로 삐져나왔다⁠. 사월 스무엿새 아침⁠, 라이더 서른여섯이 골목에 줄지어 반석 꼴을 구경했다⁠. 대팔이 제일 먼저 웃음을 터뜨렸고⁠, 웃음이 골목 끝까지 번졌다⁠. 비룡 으뜸 라이더가 짚신을 신은 모습은 할멈까지 부엌에서 나와 보게 만들었다⁠.

“⁠짚신이 둘이 됐네⁠.⁠”

“⁠나는 사형이니까 큰 짚신이야⁠.⁠”

반석은 짚신 끈을 다시 묶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짚 끝이 발등을 찔러 대는지 자꾸 발가락을 오므렸다⁠. 가죽 신만 6년 신은 발이 짚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눈두덩 멍은 밤새 보라색으로 익어 있었다⁠.

진보덕은 아침 내내 계산대에서 고개를 안 들었다⁠. 주판을 튕기다 멈추고⁠, 또 튕기다 멈췄다⁠. 반석이 짚신을 신고 가게 안을 들여다봤는데도 쳐다보지 않았다⁠. 할멈이 부엌문 뒤에서 내 소매를 끌었다⁠.

“⁠영감이 밤새 주판만 튕겼어⁠. 마누라한테도 집 얘기를 했대⁠. 마누라가 빗자루를 들었다가 내려놓고 울었대⁠. 빗자루로 맞는 게 나았을 거라고 영감이 그러더라⁠.⁠”

“⁠사장님이 오늘 도장 찍으실까요⁠?⁠”

할멈은 대답 대신 만두피를 한 장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소를 한 숟갈 떴다⁠.

“⁠빚어 봐⁠. 오늘은 네가 빚은 거 버리지 않으마⁠.⁠”

내가 빚은 만두는 이번에도 옆구리가 터졌다⁠. 할멈은 터진 만두를 찜기 맨 가운데 놓았다⁠.

“⁠어디 가냐고 안 묻냐⁠?⁠”

“⁠어디 가는데⁠?⁠”

“⁠오산⁠. 연자관⁠.⁠”

*

연자관은 오산 기슭⁠, 성 남쪽 담 너머 비탈에 있었다⁠. 있었다고 해야 맞다⁠. 기와 지붕 반이 내려앉았고⁠, 마당에 쑥이 허리까지 자랐다⁠. 처마 끝에 제비집 셋이 남아 있었는데⁠, 그중 하나에서 새끼들이 입을 벌리고 짹짹거렸다⁠. 무관 이름을 제비에서 따온 사부가 보면 좋아했을 것이다⁠.

반석은 무너진 대문을 넘어 마당 한가운데로 갔다⁠. 거기서 우리는 처음 디딤 세 번을 배웠다⁠. 사부가 마루 끝에 앉아 곰방대를 물고 “⁠하나⁠, 둘⁠, 셋⁠” 하고 세면⁠, 반석이 먼저 뛰고 내가 뒤따라 뛰다 떨어졌다⁠. 떨어지면 반석이 밑에 있었다⁠.

“⁠6년 전 겨울에 내가 관아 지붕을 탔다⁠.⁠”

반석이 마당 쑥을 한 줌 쥐었다 놓았다⁠.

“⁠객잔 심부름 하나에 은자 반 냥 준다길래⁠. 관아 담 너머가 지름길이었다⁠. 관아 기와를 열네 장 깼다⁠. 붙잡힌 건 나였는데⁠, 관아는 지붕 타는 법을 가르친 사람을 불렀다⁠. 사부한테 은자 마흔 냥 벌금을 물리고⁠, 무관 문을 닫게 했어⁠.⁠”

나는 6년 전 겨울을 기억했다⁠. 사부가 관아에 다녀와서 사흘 동안 마루 끝에서 담배만 피웠다⁠. 나흘째 아침 반석이 없어졌다⁠. 비룡표국 표사가 됐다는 소문이 돌았고⁠, 사부는 반석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나는 반석이 무관이 망하자마자 돈 되는 데로 도망친 줄 알았다⁠. 6년 동안 그렇게 알았다⁠.

“⁠벌금은⁠?⁠”

“⁠표국 품삯으로 달마다 갚았다⁠. 지난봄에 마지막 은자를 관아에 넣었어⁠.⁠”

“⁠사부님은 알았어⁠?⁠”

“⁠알았지⁠. 그래서 내 얘기를 안 했을 거다⁠. 했으면 네가 날 찾아왔을 테니까⁠.⁠”

반석은 마루 끝⁠, 사부가 곰방대를 물던 자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먼지가 일었다⁠. 먼지 밑에서 곰방대가 놓였던 자리만 동그랗게 색이 옅었다⁠. 사부가 마지막 겨울까지 앉던 자리였다⁠. 마지막 겨울에 사부는 기침하며 우리 둘 이름을 번갈아 불렀다⁠. 반석 이름을 부를 때마다 고개가 대문으로 돌아갔다⁠. 대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고⁠, 사부는 봄을 못 보고 갔다⁠. 나는 6년 동안 닫힌 대문을 원망했다⁠. 원망할 사람이 대문 밖에서 사부 벌금을 한 달 한 달 갚고 있는 줄은 몰랐다⁠. 반석은 사부가 앉던 자리 옆에 나란히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사부 약값은 네가 진보덕한테 당겨 썼다며⁠. 나는 벌금 갚느라 약값에 한 푼도 못 보탰다⁠. 둘이 같은 사부를 두고 반씩 갚은 거다⁠. 다 갚으면 연자관을 다시 열려고 했어⁠. 국주가 그러라고 하더라⁠. 금지령 서기 전에는⁠.⁠”

나는 할 말을 찾다가 못 찾았다⁠. 대신 무너진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처마⁠, 용마루⁠, 처마⁠. 기와 하나가 덜컥 미끄러졌다⁠. 아래서 반석이 소리쳤다⁠.

“⁠네 번째 디딤이다⁠, 짚신⁠. 거긴 썩었어⁠.⁠”

“⁠알아⁠. 사형이 6년 전에 썩혀 놓고 갔잖아⁠.⁠”

반석이 웃었다⁠. 멍든 눈이 같이 일그러졌다⁠.

마루 기둥 못에 낡은 짚신 한 켤레가 매달려 있었다⁠. 사부 것이었다⁠. 바닥이 다 닳아 발가락 자리에 구멍이 났고⁠, 끈은 여러 번 이어 묶었다⁠. 반석이 짚신을 못에서 내려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사부가 그랬지⁠. 연자삼초수는 원래 물 위에서 하는 거라고⁠. 지붕은 연습이라고⁠.⁠”

“⁠물 위는 한 번도 안 보여 줬잖아⁠.⁠”

“⁠보여 달라고 하면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냐⁠?⁠”

“⁠빠지면 축축하다고⁠.⁠”

“⁠그 말 믿었냐⁠?⁠”

“⁠사형은⁠?⁠”

반석은 대답 대신 짚신을 도로 못에 걸었다⁠. 이번엔 못에 걸린 짚신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끈을 한 번 감아 두었다⁠.

*

금고 방에 누가 앞장설지는 지붕으로 정하기로 했다⁠. 연자관에서 청하방 할멈 지붕까지⁠, 먼저 닿는 사람이 앞장⁠. 관아 지붕과 정자사 지붕은 빼고⁠. 반석이 정한 규칙이었다⁠.

“⁠사형은 짚신 신었잖아⁠. 불공평해⁠.⁠”

“⁠그래서 너한테 공평하다⁠.⁠”

“⁠무슨 소리야⁠.⁠”

“⁠너는 6년 동안 짚신만 신었고⁠, 나는 6년 동안 가죽 신만 신었다⁠. 오늘은 내가 처음이다⁠.⁠”

우리는 연자관 용마루 끝에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제비 새끼들이 짹짹거렸다⁠. 하나⁠, 둘⁠, 셋⁠.

오산 비탈의 지붕들은 계단처럼 아래로 흘러내렸다⁠. 첫 지붕에서 반석이 앞섰고⁠, 셋째 지붕에서 반석 짚신 뒤꿈치가 미끄러져 내가 앞으로 나갔다⁠. 반석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기와 골을 따라 달리고⁠, 담장 위를 외줄 타듯 건너고⁠, 장 담그는 집 독 뚜껑 위를 퐁퐁 디뎠다⁠. 독 뚜껑 하나가 들썩이자 아래서 아주머니가 바가지를 들고 쫓아 나왔다⁠. 둘 다 사과할 틈도 없이 다음 지붕으로 날았다⁠.

“⁠죄송합니다⁠! 뚜껑 안 깨졌어요⁠!⁠”

“⁠된장 쏟으면 너희 둘 다 담가 버린다⁠!⁠”

아주머니 고함이 등 뒤로 멀어졌다⁠. 반석이 달리면서 웃었다⁠. 6년 만에 듣는 반석의 웃음이었다⁠. 표사가 되고 나서는 웃을 때도 입만 웃었는데⁠, 오늘은 어깨가 같이 흔들렸다⁠. 짚신 뒤꿈치가 기와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반석은 사부 흉내를 내며 「⁠하나⁠, 둘⁠, 셋⁠」을 소리 내어 셌다⁠. 나도 따라 셌다⁠. 지붕 아래 골목에서 아이들이 우리를 올려다보며 같이 셌다⁠.

하방가 큰 약방 지붕에서 반석이 다시 나란히 왔다⁠. 반석은 짚신 바닥을 기와에 비비며 감을 찾는 중이었다⁠. 할멈 지붕까지 마지막 셋⁠. 나는 왼쪽으로 돌았고 반석은 오른쪽으로 돌았다⁠. 오른쪽에는 비단 가게 처마가 있었다⁠. 처마 끝에 빨래가 널려 있었다⁠. 반석이 빨래 줄을 손으로 끊지 않고 몸을 낮춰 지나갔다⁠. 반석이 몸을 낮춘 반 박자 사이 내가 할멈 지붕 용마루에 먼저 손을 짚었다⁠.

반석이 한 박자 늦게 내 옆에 내려앉았다⁠. 숨이 찼다⁠.

“⁠빨래 걷어 줄 걸 그랬나⁠?⁠”

“⁠걷었으면 이겼지⁠.⁠”

“⁠이겼으면 남의 빨래가 땅에 떨어졌지⁠.⁠”

반석은 용마루에 걸터앉아 짚신을 벗어 뒤꿈치를 문질렀다⁠. 피가 비쳤다⁠.

“⁠네가 앞장이다⁠. 그믐 밤⁠. 국주가 비룡표국에서 연회를 연다⁠. 관아 사람들⁠, 객잔 주인들 불러서 풍운 합병한 걸 자랑하는 자리야⁠. 대청이 시끄러울 때 금고 방은 비어 있다⁠. 금고 방 들어가는 지붕 창은 내가 안다⁠. 들어가서 가짜 도장이랑 쪽지 묶음만 들고 나온다⁠. 다른 건 손대지 않는다⁠.⁠”

“⁠합병은 아직 안 했잖아⁠. 사장님 도장 안 찍었어⁠.⁠”

반석이 고개를 들어 할멈 지붕 아래 골목을 내려다봤다⁠. 골목 어귀에 곽만금의 마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이 기한 날이었다⁠.

*

라이더들이 풍운 문 앞에 팔짱을 끼고 두 줄로 버텼다⁠. 대팔이 가운데⁠, 비룡 짐꾼 맏이가 옆에⁠. 서른여섯 개의 팔이 엮여서 문이 하나도 안 보였다⁠. 곽만금이 마차에서 내려 라이더들이 엮은 벽을 위아래로 훑었다⁠. 뒤에 칼자국 표사와 표사 둘이 따라 내렸다⁠.

“⁠진 사장이 안에 계시오⁠? 약조한 날이오⁠.⁠”

“⁠사장님은 바쁘십니다⁠.⁠”

대팔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팔은 안 풀었다⁠. 칼자국이 한 발 나서자 곽만금이 손을 들어 막았다⁠.

“⁠장사는 장사고⁠. 진 사장 대답을 듣겠소⁠.⁠”

나는 지붕에서 골목으로 뛰어내려 사람 벽 맨 앞으로 갔다⁠. 곽만금과 한 뼘 거리였다⁠. 곽만금 숨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사장님은 안 찍으십니다⁠. 조합이 그렇게 정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조합인가⁠?⁠”

곽만금 뒤로 포두가 군밤 봉지를 들고 따라 내렸다⁠. 합병에 관아 사람이 증인으로 서야 한다고 곽만금이 데려온 것이었다⁠. 포두는 라이더 벽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이다⁠. 오늘은 도장 찍는 걸 보라더라⁠. 빨리들 끝내라⁠.⁠”

골목 어귀에서 소식 전하는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지나갔다⁠. 「⁠본선 둘째 날 · 화산 위설매 또 이김⁠」⁠. 라이더 몇이 고개를 돌렸다가 도로 팔에 힘을 줬다⁠.

뒤에서 문이 열렸다⁠. 진보덕이었다⁠. 쪽빛 비단 장포가 아니라 앞치마를 두른 채였다⁠. 손에 「⁠풍운⁠」 도장이 들려 있었다⁠. 라이더들이 엮은 팔 사이로 진보덕이 비집고 나왔다⁠.

“⁠비켜라⁠.⁠”

“⁠사장님⁠!⁠”

“⁠가게 주인은 나다⁠. 알겠냐⁠?⁠”

진보덕은 내 어깨를 밀고 곽만금 앞으로 갔다⁠. 곽만금이 품에서 종이를 꺼내 계산대 대신 마차 발판 위에 펼쳤다⁠. 진보덕은 도장에 인주를 묻혔다⁠. 손이 한 번도 떨리지 않았다⁠. 동전 열 닢을 셀 때처럼⁠, 할멈 지붕 기와 한 장을 셀 때처럼⁠. 도장이 종이에 꾹 눌렸다⁠.

“⁠사장님⁠, 왜요⁠?⁠”

진보덕이 처음으로 나를 봤다⁠. 입술이 무어라 움직이려다 닫혔다⁠.

“⁠빚은 다 없는 걸로 해 주마⁠. 네 빚 말이다⁠. 국주가 갚았으니까⁠.⁠”

“⁠그걸 누가 해 달래요⁠!⁠”

“⁠아무도 안 해 달랬지⁠. 그래서 내가 정했다⁠. 혼자 정하고 나중에 말하는 거⁠, 내가 원래 그렇잖냐⁠.⁠”

진보덕은 대답 대신 곽만금에게서 은자 보자기를 받아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빗장 지르는 소리가 났다⁠.

곽만금이 칼자국한테 턱짓했다⁠. 표사 셋이 사다리를 가게 처마에 걸쳤다⁠. 「⁠풍운배달⁠」 간판이 내려왔다⁠. 오래 비바람을 맞아 글씨가 바랜 나무 간판이었다⁠. 표사들은 간판을 골목 바닥에 내려놓고⁠, 대신 검은 바탕에 금박 용이 그려진 새 간판을 올렸다⁠. 「⁠비룡배달 청하방 둘째 지점⁠」⁠.

곽만금은 마차에 오르며 라이더들을 돌아봤다⁠.

“⁠내일 아침부터 비룡 짐꾼 품삯이오⁠. 늦지들 마시오⁠. 그리고 짚신 대표는 항주 밖으로 가는 길이 넓으니⁠, 지붕 말고 땅으로 가시오⁠.⁠”

마차가 떠났다⁠. 라이더 서른여섯은 엮었던 팔을 하나둘 풀었다⁠. 아무도 말을 안 했다⁠. 비룡 짐꾼 맏이가 제일 먼저 고개를 떨궜고⁠, 막내 라이더는 허리띠에 꿴 별패를 하나씩 빼서 손바닥에 굴렸다⁠. 대팔이 바닥에 놓인 옛 간판 앞에 쪼그려 앉아 「⁠운⁠」 자에 묻은 흙을 소매로 닦았다⁠. 나는 간판 한쪽 끝을 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할멈 지붕 위에서 반석이 짚신을 손에 들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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