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33자)
동파육
강호 배달 라이더 · 하로운
열아흐레 밤, 만두집 뒷방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조합은 하루 새 서른여섯이 됐다. 비룡 짐꾼 아홉에 다른 상단 심부름꾼 넷이 더 붙었다. 다들 화방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이었다. 내가 물에 빠진 이야기를 하자 웃음이 터졌고, 반석이 한 말을 옮기자 웃음이 뚝 그쳤다.
“금지령이 서면 비룡 마차뿐이라고?”
“짐꾼은? 짐꾼도 마차 꽁무니 따라 뛰잖아.”
“마차가 문 앞까지 가면 짐꾼은 필요 없지.”
비룡 짐꾼 맏이가 무릎을 쳤다.
“그래서 그랬구먼. 칼자국 표사가 거처에서 나올 때마다 담 모퉁이에서 뭘 끄적이더라고. 우리는 일각 맞추느라 숨이 넘어가는데 표사는 붓을 꺼내. 나는 표사가 시를 쓰는 줄 알았지.”
대팔이 상을 쳤다. “화방에 구멍을 내자. 배 밑에. 노름판째 가라앉게.”
“그럼 우리가 죄인 되지.”
“그럼 뭐 해. 표결 날 대청 문턱에서 또 소매 걷고 말만 해?”
할멈이 부엌에서 국자를 들고 나왔다가, 이번엔 던지지 않고 국자로 대팔 어깨를 톡 쳤다.
“말을 하려면 증인이 있어야지. 너희 말만으로 연합 어른들이 믿겠냐?”
증인. 설매와, 설매 사부. 둘 다 거처에 있었고, 거처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대팔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표결이 망하면, 본선 첫날 우리 다 쉬자. 서른여섯이 다 같이. 강호가 배달 없이 하루 살아 보라고.”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지만, 아무도 고개를 젓지 않았다.
*
사월 스무날 새벽, 단교 난간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단교는 백제가 시작되는 자리의 돌다리인데, 겨울에 눈이 덮이면 다리 가운데만 먼저 녹아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붙은 이름이다. 사월에는 끊어진 데가 없었다. 호수 위로 물안개가 무릎 높이에 깔렸고, 고산 기슭 매화나무 사이로 첫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나는 난간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문파 거처에는 대문이든 뒷문이든 창이든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다리는 거처가 아니었다.
설매가 지난번 창 너머로 말해 준 것이 있었다. 사부님은 새벽마다 단교까지 걸어 나와 호수를 보며 숨을 고른다고. 화산 장로는 잠이 없다고. 설매 말을 믿고 해 뜨기 전부터 앉아 있었다. 할멈이 싸 준 주먹밥 두 개가 벌써 배 속에 없었다.
물안개 사이로 흰 수염이 나타났다. 송학 진인은 칼집을 짚고 천천히 다리로 올라오다가, 난간 위의 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거처에 발을 들이지 말라 하였거늘.”
“여긴 다리입니다, 도장님. 거처 아닙니다.”
“말재주는 짚신보다 낫구먼.”
진인은 나를 지나쳐 다리 가운데로 가려 했다. 나는 난간에서 내려와 진인 앞을 막지 않고 나란히 걸었다. 막으면 도전이 되니까.
“도장님, 세 번째 창 일은 제가 날랐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런데 화방에 판 건 제가 아닙니다.”
“판 자가 판 적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해가 뜨는 것만큼 흔한 일이외다.”
“그래서 이걸 가져왔습니다.”
품에서 쪽지를 꺼냈다. 물에 젖었다가 마른 종이는 쭈글쭈글했고, 먹은 번졌지만 글씨는 남아 있었다. 진인의 눈이 쪽지에 닿는 순간 걸음이 멈췄다. 「화산 송학 장로. 밤마다 동파육 한 접시. 비룡으로. 「학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시킴.」
물안개가 다리 위로 슬금슬금 올라왔다.
*
“학 노인은 다른 노인이오.”
진인의 목소리가 반 마디 높아져 있었다.
“항주에 학 노인이 한둘이겠소? 백제 끝에도 학을 기르는 노인이 있고.”
“도장님 소매에서 동파육 냄새가 납니다. 대청에서도 났고, 지금도 납니다.”
진인이 무의식중에 소매를 들어 코에 댔다. 대고 나서야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리고 소매를 홱 내렸다. 흰 수염 아래로 목이 붉어졌다. 설매 귀가 빨개지던 것과 똑같은 붉은색이었다. 사부와 제자는 닮는다.
“도장님은 동파육을 비룡으로만 시키셨지요. 풍운은 화산 거처에 못 들어가니까요. 그러면 도장님 동파육을 아는 건 비룡 표사뿐입니다. 그런데 이 쪽지가 화방 노름판 탁자에 꽂혀 있었습니다. 설매 쪽지도 거기서 나왔고요. 거처 안의 일을 판 건 비룡입니다.”
진인은 말이 없었다. 대신 손이 움직였다. 소매가 바람을 쳤다. 늙은 손이 쪽지를 낚아채러 날아왔는데, 빠르기가 설매 칼보다 한 뼘은 빨랐다. 나는 몸을 젖혔다. 쪽지가 진인 손끝 반 치 앞에서 비켜 갔다.
“내놓으시오.”
“안 됩니다.”
진인이 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엔 두 손이었다. 나는 난간 위로 뛰어올랐다. 진인이 난간을 따라 나를 쫓았다. 화산 장로가 새벽 단교 난간 위에서 배달꾼을 쫓는 광경을, 다행히 물안개 말고는 아무도 보지 않았다. 내가 난간 돌기둥을 디딤 세 번에 건너면 진인은 두 번에 건너왔다. 진인의 칼집 끝이 내 짚신 뒤꿈치를 한 번 스쳤고, 두 번째에는 내 머리띠 매듭을 스쳤다. 진보덕이 세 번 묶어 준 매듭이 아니었으면 머리띠가 또 잘렸을 것이다. 물안개 속에서 놀란 물오리 떼가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칼집도 안 뽑았는데 숨이 막혔다. 다리 끝 돌사자 머리 위에서 나는 겨우 진인을 돌아봤다.
“도장님, 저 피하는 거 하나는 잘합니다. 해 뜰 때까지 피할 수 있어요. 해 뜨면 단교에 사람이 많아집니다.”
진인이 멈췄다. 어깨가 오르내렸다. 예순넷의 숨이었다.
“사부님?”
물안개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다리 입구에 설매가 서 있었다. 도복 위에 낡은 겉옷을 걸치고, 손에 목검을 들었다. 새벽 수련을 몰래 나온 모양이었다. 설매는 돌사자 위의 나와 난간 앞의 사부와 내 손의 쪽지를 차례로 봤다.
“차돌이, 아니, 라이더가 왜 여기 있어요? 사부님은 왜 숨이 차세요?”
*
셋이 다리 한가운데 돌계단에 앉았다. 진인이 가운데, 설매와 내가 양옆에. 진인은 오래 호수만 봤다. 물안개가 걷히면서 멀리 호심정 섬의 정자 지붕이 드러났다. 결승이 열릴 섬이었다.
“내 사부님은 제자들을 굶겨 가르쳤소. 굶어야 칼이 맑아진다고. 나도 그렇게 배웠고, 맑아졌소. 예순 해를.”
진인이 수염을 쓸었다.
“그런데 늙으니 굶으면 잠이 안 오더이다. 칼은 맑은데 잠이 안 와. 그래서 밤에 한 접시만. 한 접시만 먹고 자면 새벽에 칼이 더 맑았소. 그걸 제자들한테 말할 수가 있었겠소? 굶어서 맑아지라고 가르친 사람이.”
설매가 사부를 빤히 봤다. 화가 났는지 웃음이 났는지 볼이 들썩거렸다.
“사부님, 저는 굶으면 칼이 왼쪽으로 반 치 흔들려요.”
“그것도 노름판에 팔렸다더구나.”
“그러니까요. 그걸 판 게 비룡이면, 사부님이 연합에서 말씀해 주세요. 차돌이 판 게 아니라고.”
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말하면 화산 장로가 제자 몰래 동파육을 먹었다는 것까지 연합 대청에 펼쳐진다. 화산의 체면은 화산 혼자 것이 아니외다. 결승을 앞둔 네 이름까지 같이 펼쳐져. 노름판에 이름이 오른 화산 제자를 연합이 결승에 그대로 올리겠느냐?”
“제 결승은 제가 지켜요.”
“네 결승은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진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단단해졌다. 설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돌계단에서 일어나 진인 앞으로 갔다. 쪽지를 내밀지는 않았다.
“도장님, 표결이 오월 초사흘입니다. 이 쪽지는 제가 갖고 있겠습니다. 그날까지 아무한테도 안 보여 드립니다.”
“그날은?”
“그날은 도장님이 정하세요. 일어나실지, 앉아 계실지.”
진인은 한참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다 칼집을 짚고 일어났다.
“화산 거처는 오늘부터 비룡을 들이지 않겠소. 비룡 표사가 거처 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없을 게요. 그 이상은 표결 날 내가 정하겠소.”
진인은 다리를 내려가다 돌아서서 설매를 불렀다. 설매는 목검을 쥐고 일어나며 내 소매를 슬쩍 잡아당겼다.
“단오에 만두 꼭 와. 세 번째 창 말고 결승장으로.”
“결승장엔 왜?”
“거기까지 올라갈 거니까.”
설매가 사부를 따라 물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진인 소매에서 나던 동파육 냄새가 다리 위에 조금 남았다가 아침 바람에 흩어졌다.
*
풍운 골목에 들어서는데 문간이 조용했다. 라이더들이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아무도 말을 안 했다. 대팔이 턱으로 안을 가리켰다.
계산대 앞에 곽만금이 앉아 있었다. 우리 가게 의자는 곽만금한테 작아서 엉덩이 반이 공중에 떠 있었다. 진보덕은 계산대 너머에 서서 주판도 안 만지고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계산대 위에 붉은 비단 보자기가 펼쳐져 있고, 보자기 위에 은자 덩이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은자 옆에 종이 한 장.
곽만금이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짚신 대표 왔구먼. 새벽 단교 바람은 찼소?”
어떻게 알았는지 묻지 않았다. 항주 어디든 비룡 짐꾼이 지나간다.
“진 사장한테 좋은 말씀을 드리던 참이오. 장사는 장사고, 이웃은 이웃이라 하지 않았소. 풍운을 비룡 청하방 지점으로 하는 게요. 진 사장은 지점장. 전당포 은자 서른 냥은 오늘 내가 갚아 드리고, 단오 뒤 보름에 날아갈 집은 그대로 진 사장 집이오.”
진보덕의 눈썹이 움찔했다. 전당포 기한까지 곽만금이 알고 있었다.
“조건은 둘이오. 라이더 조합인지 뭔지는 오늘로 없던 일로 하고, 풍운 라이더는 비룡 짐꾼으로 들어오시오. 품삯은 비룡 짐꾼 품삯대로. 그리고 짚신 대표는 항주를 떠나 주시오. 화방 지붕에서 내 물건을 훔쳐 간 사람을 내 지점에 둘 수는 없지 않소.”
“훔친 건 국주님 물건이 아니라 제 도장입니다. 깎다 만 거요.”
곽만금은 웃었다. 이번에도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그 도장은 호수 밑에 있지 않소? 없는 물건을 두고 다툴 건 없지.”
진보덕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고 갈라졌다.
“국주, 우리 라이더들은 지붕 타는 놈들이오. 짐꾼으로 마차 꽁무니에 붙여 놓으면 다리가 썩소.”
“금지령이 서면 항주에 지붕은 없소, 진 사장. 지붕 없는 데서 지붕 타는 다리는 쓸 데가 없지. 내가 지금 그 다리들 밥줄을 이어 주겠다는 게요. 장사는 장사고.”
“차돌이는 빼 주시오. 빚도 아직 남았소.”
“그 빚까지 내가 갚아 드리리다. 짚신 대표 몫은 그걸로 깨끗이 끝나는 게요.”
진보덕의 주먹이 계산대 위에서 쥐어졌다가 풀렸다. 곽만금은 진보덕의 주먹을 보고 웃었다. 철권 곽만금이 웃으면서 남의 주먹을 내려다보는 얼굴은, 아이가 개미를 내려다보는 얼굴과 닮아 있었다.
곽만금이 의자에서 일어나자 의자가 삐걱 소리를 내며 안도했다. 곽만금은 진보덕 앞에 종이를 밀어 놓았다.
“본선 둘째 날까지 드리리다. 사월 스무엿새에 이 자리에 다시 오겠소. 도장은 그때 찍으시오.”
곽만금이 나가고 문간의 라이더들이 일제히 진보덕을 봤다. 진보덕은 은자 덩이도 종이도 만지지 않았다. 보자기 귀퉁이만 손가락으로 접었다 폈다 했다.
“사장님, 안 찍으실 거죠?”
진보덕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대신 할멈 부엌 쪽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할멈! 오늘 만두는 서른만 빚어. 부름이 없다.”
할멈의 대답 대신 반죽 치대는 소리가 멈췄다. 은자 덩이 위로 아침 햇살이 비쳐 들었다. 풍운 가게 안에서 가장 밝은 물건이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