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6,134자) ·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

주문

이재명의 삶 · 네오

2025년 4월 4일 아침 7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하나둘 출근하기 시작했다. 주심 정형식 재판관이 맨 먼저 들어왔고,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문형배까지 여덟 명이 빠짐없이 나왔다. 9시 30분, 여덟 사람은 마지막 평의에 둘러앉아 결정문의 몇몇 표현을 손수 고쳤다. 계엄의 밤으로부터 넉 달이 지나 있었다.

사건이 헌재로 넘어온 것은 2024년 12월 14일이었다. 그날 국회는 재적 300명이 모두 투표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대통령의 직무는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날 여의도에서는 대형 스피커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흘러나왔고, 시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췄다. 같은 날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에서는 탄핵에 반대하는 집회가 따로 열렸다. 헌재에는 여섯 달 안에 결론을 내야 하는 시한이 주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91일,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63일이 걸린 심판이었다. 이번에는 그보다 길었고, 선고일이 잡히기까지 광장은 겨울과 봄을 건넜다. 그사이 1월 15일 아침, 경호처의 차벽과 철조망을 넘어 관저에 들어간 공수처와 경찰이 오전 10시 33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현직 대통령이 체포된 것은 헌정사에서 처음이었다. 그 열흘 전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린 한남대로에서 시민들이 은박 담요를 뒤집어쓰고 밤을 새웠다.

바깥은 이미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헌재에서 멀지 않은 안국역 6번 출구 앞에는 「윤석열 8 대 0 파면을 위한 결의대회」에 나온 시민들이 모였다. 경찰이 비공식으로 센 숫자가 오전 10시 30분에 1만여 명이었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자 1만 5,000명이 섰다. 두 광장은 같은 생중계 화면을 기다렸다.

여의도 국회에서도 양당 지도부가 같은 화면 앞에 앉기로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선고 직전인 10시 40분에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열고, 모두발언을 마친 뒤 다 함께 TV 생중계를 지켜보기로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오전 10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회의실에 그대로 남아 선고를 보기로 했다. 결정이 나오면 양당 모두 곧바로 긴급 의원총회를 열 참이었다. 그 자리에 당 대표 이재명이 있었다. 아흐레 전인 3월 26일, 그는 서울고법에서 공직선거법 사건 항소심 무죄를 받고 그 길로 고향 안동의 산불 대피소로 내려갔었다. 넉 달 전 그가 담을 넘어 들어간 국회였다.

*

10시 59분, 재판관 여덟 명이 대심판정에 들어섰다.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정형식, 김복형, 조한창, 정계선. 그들은 방청석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사진기자들이 셔터를 누를 동안 자리에서 기다렸다. 11시 정각, 문형배가 첫 문장을 읽었다.

“지금부터 2024헌나8 대통령 윤석열 탄핵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사건번호 가운데 「헌나」는 탄핵심판 사건에 붙는 글자다.

그는 읽는 사이사이 고개를 들어 국회 측 자리와 대통령 측 자리를 번갈아 봤다. 11시 5분, 탄핵소추가 적법한지를 따지는 대목이 끝났다. 그다음부터 결정문은 12월 3일 밤을 한 장면씩 되짚었다. 국회 담장 안으로 군인을 들여보낸 대목에서 문형배의 목소리가 대통령의 지시를 그대로 옮겼다.

“피청구인은 육군특수전사령관 등에게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으니,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는 등의 지시를 하였습니다.”

헌재는 그 지시가 국회에 계엄 해제 요구권을 준 헌법 조항을 어겼고,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과 불체포특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그날 자정 무렵 군 헬기가 국회 상공에 나타났고, 총을 멘 군인들이 헬기에서 내려 국회 안으로 들어왔다. 의원들은 숲과 지하 통로를 지나 본회의장으로 들어갔고, 보좌진은 소화기를 뿌리며 유리문을 막았다. 12월 4일 새벽 1시 1분, 본회의장 전광판에 재석 190, 찬성 190이 떴다. 결정문은 그 밤이 어떻게 끝날 수 있었는지도 적었다.

“한편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헌재는 국회도 그냥 두지 않았다. 국회가 정부 인사들을 상대로 탄핵소추를 22건이나 발의한 일을 두고 문형배는 꾸짖는 문장을 읽었다.

“국회가 탄핵소추사유의 위헌·위법성에 대해 숙고하지 않은 채 법 위반의 의혹에만 근거하여 탄핵심판제도를 정부에 대한 정치적 압박수단으로 이용하였다는 우려를 낳았습니다.”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내도록 노력했어야 한다는 문장이 뒤따랐다.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공적 결정을 내리는 일에도 선이 있다고 했다.

“이에 관한 정치적 견해의 표명이나 공적 의사결정은 헌법상 보장되는 민주주의와 조화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문은 「그러나」로 넘어갔다. 계엄이 선포되던 날 헌재에 걸려 있던 탄핵심판은 검사 한 명과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것뿐이었다. 다음 문장은 대통령을 향했다.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하였어야 합니다.”

*

11시 16분, 결정문이 위반의 무게를 재는 대목으로 들어섰다. 결정문은 대통령이 어긴 것이 법 조항만이 아니라고 했다. 문형배는 대통령이 져야 했던 책무 하나를 소리 내어 읽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하였습니다.”

이어진 문장은 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하였습니다.”

대통령을 파면해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만큼 크다는 판단이 나왔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그날 아침 평의에서 몇몇 표현을 고쳤을 뿐, 결론은 처음 그대로였다. 문형배가 읽기를 멈추고 시각을 확인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방청석을 바라보며 주문을 읽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같은 문장이 안국역 앞과 한남동 관저 앞의 화면에도 떴다. 안국역 앞에 걸린 결의대회 이름 그대로, 8 대 0이었다.

첫 문장부터 주문까지 이십이 분이 걸렸다. 일어서서 퇴정하던 문형배가 옆자리 김형두 재판관의 어깨를 두드렸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 가운데 몇은 허탈하게 웃었고, 몇은 허공을 보다가 자리를 떴다.

*

한남동 관저 앞에서는 문형배가 대통령에게 불리한 대목을 읽을 때마다 고함이 터졌다. “미쳐 돌았구나.” “거짓말하지 말라.” “이게 말이 되냐.” 주문이 나오자 누군가 「탄핵 무효」라고 적힌 팻말을 땅에 던졌고, 스크린만 말없이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체념한 듯 한숨을 쉬며 담배를 피우는 지지자도 있었다. 한 지지자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우리 대통령님 어떡해.”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스크린으로 선고를 지켜보던 국민변호인단 소속 500명도 흥분했다. 「윤 is back」이라고 적힌 피켓을 내동댕이치며 눈물을 보이는 지지자들도 있었다. “우리 어떡하면 좋아.” 국민변호인단은 탄핵 기각을 기대하며 「직무복귀 환영 퍼레이드」를 준비해 두었다. 퍼레이드는 열리지 못했다.

전광훈 목사는 다음 날을 예고했다. “탄핵을 인정할 수 없는 분들은 내일 오후 1시 광화문광장에 모이라.” 파면된 대통령은 법률대리인단을 통해 짧은 글을 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는 부족한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해 준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한다고 적고 이렇게 이었다.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합니다.” 글은 기도로 끝났다. “사랑하는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

국회에서는 이재명이 곧바로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국민에게 먼저 공을 돌렸다.

“위대한 국민들이 위대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되찾아왔다. 계엄군의 총칼에 쓰러져간 제주 4‧3, 광주 5‧18에 맞선 국민들과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장병들의 용기가 오늘의 위대한 빛의 혁명을 이끌었다.”

그날 오전 헌재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이라고 적은 것을, 그는 국민과 장병의 용기라고 불렀다. 그는 그날을 촛불 혁명에 이은 빛의 혁명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도 현직 대통령이 두 번째로 탄핵된 일을 두고 다시는 없어야 할 헌정사의 비극이라고 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정치권이 깊이 성찰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도 했다. 국민과 함께 대통합의 정신으로 무너진 민생과 평화, 경제와 민주주의를 되살리겠다고 했고,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헌법은 대통령이 궐위되면 60일 안에 후임자를 뽑도록 정해 두었다. 그 60일의 셈이 그날 11시 22분에 시작됐다.

*

주문이 떨어진 순간 안국역 앞의 공기는 봄날 따뜻한 햇볕 속에서 한순간 녹아내렸다.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주먹을 들어 올렸고,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들이 웃었다. 청년들은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에 맞춰 제자리에서 뛰었고, 이어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렸다. 어르신들은 어깨춤을 췄다. 사람들 머리 위로 「불꽃남자 정대만」이라고 적힌 깃발이 흔들렸다.

경남 창원에서 올라온 쉰두 살 김미영이 말했다.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걸 목격하게 되니 너무 기쁘다.” 스무 살 대학생 이채현은 윤석열을 끝으로 혐오 정치로 세력을 모으는 일이 더는 없기를 바랐다. 대구 중구에서 온 스물네 살 김정태가 말했다. “드디어 헌재가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받아들인 것 같다.” 전남 장성 백암중학교 1학년, 열세 살 고다윤도 한마디를 보탰다.

“나도 엄마 따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나간 보람이 있다.”

그 사이에 보라색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이었다. 그들은 곁에 선 시민들과 부둥켜안고 울었다. 주먹을 든 노동자와 휠체어의 장애인과 보라색 점퍼가 그날 한 광장에 있었다.

송현광장 쪽에서는 시민들이 서로를 향해 소리쳤다.

“동지야 수고했다. 시민이 최고다!”

결정문은 계엄을 멈춘 힘을 시민들의 저항이라고 적었다. 그 시민들이 안국역 앞에서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스물네 살 권아무개는 그 자리에서 깃발 이야기를 꺼냈다.

“대통령은 파면됐어도 깃발을 놓을 수 없다.”

출처 · MBC, 2025년 4월 4일, 「‘만장일치 파면’까지 숨 졸였던 22분」 · 경향신문, 2025년 4월 4일, 「〔전문〕‘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사건’ 헌재 선고 요지」 · 오마이뉴스, 2025년 4월 4일, 「〔전문〕 “파면 이익이 손실 압도... 주문,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 · 국민일보, 2025년 3월 26일, 「이재명, 선거법 2심 무죄… 최대 사법리스크 해소」 · 한겨레, 2025년 3월 27일, 「‘무죄’ 이재명, 법원에서 바로 안동 산불현장으로」 · 한겨레, 2024년 12월 14일, 「〔속보〕 윤석열 탄핵안 가결, 대통령 직무정지…찬성 204표」 · 한국일보, 2024년 12월 14일, 「〔현장〕 “우리가 해냈다” 외친 200만 시민들… ‘이젠 헌재가 응답하라’」 · 연합뉴스, 2025년 1월 15일, 「수월한 관저 진입 후 尹 체포까지…1차 시도와 어떻게 달랐나」 · 한겨레, 2025년 1월 6일, 「한남대로에 등장한 ‘인간 키세스’…“웅장하고 아름답다”」 · 경향신문, 2024년 12월 4일,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국회, 시민·계엄군·경찰 뒤엉켜 ‘아수라장’」 · 오마이뉴스, 2024년 12월 4일, 「국회 긴급 본회의, 190명 계엄령 해제 요구 의결」 · KBS, 2025년 4월 4일, 「〔특보〕 정치권, 긴장감 속 선고 예의주시」 · SBS Biz, 2025년 4월 4일, 「여야 지도부, 국회서 尹선고 시청…헌재 결정나면 긴급의총 열어」 · 한겨레, 2025년 4월 4일, 「“동지야 수고했다”…광장서 파면 지켜본 시민들 서로에게 감사」 · 연합뉴스, 2025년 4월 4일, 「〔尹파면〕 지지자들 격분·오열…“우리 대통령님 어떡해”(종합)」 · JIBS, 2025년 4월 4일, 「尹, 파면 후 첫 메시지.. “기대 부응 못해 너무 안타깝고 죄송”」 · 시사저널, 2025년 4월 4일, 「이재명, ‘尹 탄핵’에 곧바로 입장 발표…“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시작”」 · 대한민국헌법 제68조 제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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