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7,299자) · 2002~2008년, 성남
지하 기도실
이재명의 삶 · 네오
2003년 7월과 9월, 성남 수정구의 인하병원과 성남병원이 차례로 문을 닫았다. 450병상과 250병상, 구시가지의 핵심 병원 두 곳이었다. 54만 명이 사는 수정·중원구에 남은 큰 병원은 200병상 남짓의 중앙병원 하나였다. 병원은 필요한데 장사가 되지 않으니 병원이 떠났다.
그보다 한 해 앞서 이재명은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원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었다. 시민이 세금을 내는 까닭이 시민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세금으로 병원을 짓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시의 생각은 달랐다. 운동장도 짓고 헬스장도 지을 수 있지만 병원은 안 된다고 했다. 의사들의 영업 영역을 침범할 수 없고, 수정·중원구에는 대학병원을 데려오려 하고 있으며, 있던 병원들도 경영난 끝에 문을 닫았는데 시립병원을 세우면 적자 때문에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방자치법의 주민발안 제도를 파고들었다. 성남시민모임을 비롯한 서른 개 남짓의 단체가 동네 스물네 곳에 추진단을 꾸렸다. 이십 일 만에 1만 8,595명이 서명했다. 한겨울이었고, 시민들은 언 손을 녹여 가며 손도장을 찍었다. 2003년 12월, 추진위는 그 서명을 붙여 「성남시 지방공사 성남의료원 설립 및 운영조례안」을 청구했다. 운동이 모은 지지 서명은 20만 명에 이르렀다. 주민이 직접 발의한 시립병원 조례는 전국에서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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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4일, 조례안이 성남시의회 제114회 임시회에 올라왔다. 의석의 다수는 한나라당 시의원들이었고, 시장 이대엽도 한나라당이었다. 사십칠 초 만에 「심의 보류」가 떨어졌다. 기한 없는 보류였고, 사실상의 부결이었다. 병원을 세울 타당성부터 조사해야 하고, 일부 시의원은 조례안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는 것이 시의회의 설명이었다. 다른 지역 시립병원은 의료서비스의 질이 낮고 만성 적자에 허덕인다는 말도 나왔다. 시민단체들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조례를 부결시키는 부담을 피하려 했다고 맞섰다.
이재명은 방청석에 있었다. 함께 방청하던 시민들이 날치기는 무효라고 울부짖으며 자리를 뜨는 시의원들과 의장을 쫓아다녔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시의회 안팎을 차지한 주민 100여 명은 밤을 새우며, 민의를 저버린 탄핵의 후폭풍을 보고도 풀뿌리 민주주의의 자리에서 또 폭거를 저질렀다고 성토했다. 이재명은 기자에게, 당리당략에만 치우쳐 민생을 돌보지 않는 지방의원은 더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일을 총선과 연계해 응징하겠다고도 했다.
이튿날 주민 30여 명이 본회의장 입구를 막아섰다. 주민과 공무원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시청 현관 유리창이 깨졌다. 오후 3시 임시회는 폐회했고 조례안은 5월 회기로 넘어갔다. 경찰은 주민 33명을 연행했다. 추진위는 성명을 내어 시민의 염원을 짓밟은 시장과 시의회 의장, 조례안 상정을 거부한 시의원들을 시민의 뜻으로 철저히 응징하겠다고 했고, 농성하던 시민들을 모두 연행한 것은 의료 공백이 풀리기를 바라는 시민들에게 내린 사형선고와 같다고 했다. 성남시공무원직장협의회는 동료 직원 7명이 다쳤다며 폭력 시위를 강력히 규탄했다. 추진위는 본회의장 소란에 유감을 밝히고 피해를 입은 시의원들에게 깊이 사과하면서도, 조례안을 비정상적으로 묶어 두고 방청객 30명을 고소한 시의회에 유감을 표했다.
시의원들에게 욕설을 하고 잡아끌었다는 혐의, 특수공무집행방해로 이재명도 고발됐다. 설립운동의 대표였던 그가 함께 책임을 졌다. 수배령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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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청 옆 수정구 태평동에 주민교회가 있었다. 1980년대 반독재 운동과 빈민운동을 이끈 이해학 목사의 교회였다. 경찰을 피한 이재명은 그 교회 지하 기도실로 숨어들어 거기서 먹고 잤다. 어둡고 습한 지하였고, 그는 씻지도 못했다.
인하병원 노조 부위원장 정해선이 먹을 것을 들고 지하로 내려왔다. 함께 병원 설립 운동을 해 온 사람이었다. 시의회에는 한나라당 시의원들이 버티고 있었고, 조례가 통과될 길은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앉아 있던 이재명에게 정해선이 시장으로 나와 보라고 했다.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무슨 시장이에요. 차라리 이장을 하고 말지.”
정해선은 울면서 선거에 나와 달라고 했다.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 이재명은 선배가 싸 온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1만 8,595명이 한겨울에 언 손으로 지장을 찍어 만든 조례였고, 그것이 몇몇 정치인의 손에서 순식간에 휴짓조각이 됐다. 도시락을 먹다가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터졌다. 그 지하 기도실에서 그는 울었고, 울면서 마음을 정했다.
현실을 바꾸자. 기득권 세력은 이익이 없는 한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관심이 없다. 저들이 하지 않으면 우리 손으로 바꾸자. 다른 이에게 요청할 것이 아니라 시장이 되어 내 손으로 바꾸자.
학교 대신 도시락을 싸 들고 공장으로 다니던 시절, 그 길가와 공장 담벼락에는 유난히 개나리가 많았다. 어느 순간 그 꽃은 그의 눈에서 사라졌다. 두 해 뒤 그는 블로그에 그 봄을 적었다.
「그러던 개나리가 갑자기 다시 나타났다. 2004년 3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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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가 조례안을 또 보류했다. 이틀 뒤 추진위는 조례 제정을 가로막는 장애를 없애겠다며 시의회를 상대로 낸 고발과 헌법소원을 모두 거둬들였다. 대신 시가 끝내 시민의 열망을 무시하면 주민소환으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시립병원을 추진하는 동안 시가 고발한 시민 가운데 11명이 기소됐다.
그해 여름 이재명은 벌금형 두 건을 받았다. 7월 28일에는 음주운전으로 벌금 150만 원이었다. 그는 훗날 이 일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8월 26일에는 공용물건손상과 특수공무집행방해로 벌금 500만 원이었다. 시민 1만여 명이 발의한 조례를 다루던 시의회가 사십칠 초 만에 폐회하자 시민들과 함께 항의한 일이었고, 운동의 공동대표로서 책임을 졌다고 그는 훗날 선거 공보의 소명란에 적었다.
2005년 8월 23일, 성남 노사모 회원으로 활동하던 이재명은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그는 입당의 이유를 숨기지 않았다.
“내년 지방선거 경기 성남시장 후보 출마를 염두에 두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그날 그가 낸 「시민에게 드리는 글」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역권력을 책임있고 최선을 다하는 시민의 권력으로 바꿔야 하며, 그 역할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시대적 의무감을 느껴 이 길을 선택했다.」
그해 11월 3일, 시의회는 한 시의원이 발의한 시립병원 조례안을 다시 부결했다. 열이틀 뒤 운동본부는 1만 8,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조례 제정을 다시 청구했다. 시립병원을 지으면 운영을 맡을 곳으로 꼽히던 분당서울대병원의 관계자는 그동안 성남시에서 아무 제안도 받은 적이 없다며, 시에 병원을 지을 뜻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라고 했다. 2006년 3월 16일, 우여곡절 끝에 조례안이 시의회를 통과했다. 주민이 발의한 조례로 공공병원을 세우기로 한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었다. 민주노동당은 논평에서 그것을 성남시민의 값진 승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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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4일, 열린우리당은 경기 지역 기초단체장 후보를 발표하면서 이재명을 성남시장 후보로 내세웠다. 집에서는 다른 싸움이 벌어졌다. 김혜경은 결혼 전부터 세상에서 제일 못 할 짓이 정치인의 아내라고 생각해 온 사람이었다. 남편이 시장 선거에 나간다고 하자 그녀는 정말 많이 말렸고, 이혼하자고 협박도 했다. 그래도 선거가 시작되자 그녀는 경로당을 돌며 남편의 사진을 꺼내 하나하나 보여 주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노인들 앞에서 한참을 설명했다.
왜 출마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도권 내에서 적법한 권한으로 부정부패를 없애고 시민과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가능해 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 온 맑은 사회, 시민 중심의 합리적 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
그가 내건 공약에는 1공단 공원화와 시립병원 건립이 있었다. 구도심 재개발에 쓸 1조 2,0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하고, 고도 제한을 풀고 용적률을 조정하겠다고도 했다. 인구 100만 명에 한 해 예산이 2조 원에 가까운 도시였다. 시장이 되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답했다.
“혈세가 새는 예산낭비와 부정비리를 척결하고, 시민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 투명행정을 구현하겠다.”
선거를 앞둔 5월, 성남시가 시립병원 건립 계획을 확정해 발표했다. 시민단체가 확정을 재촉하자 시기를 앞당겼다고 했다. 일부 시장 후보와 시민단체는 구시가지의 의료 공백을 3년 가까이 내버려 두다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병원을 짓겠다는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시가 위험한 도로를 다섯 달 앞당겨 임시 개통하자 이재명은 날을 세웠다.
“한나라당 후보로 나선 이대엽 시장이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관권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대엽은 벌여 놓은 재개발 사업과 새 사업을 마무리하려고 출마했다며 재임 중 재산세를 내린 것을 성과로 꼽았다. 민주당 장영하, 민주노동당 김미희까지 네 사람이 뛰었다. 마지막 휴일인 5월 28일 아침에는 네 후보가 모두 남한산성으로 갔다. 표가 있는 곳은 같았다. 이재명은 골목골목을 발로 뛰고 있다고 했다.
“투표 마지막 날까지 젊음을 무기로 성남의 전 유권자와 만날 생각이다.”
성남은 보수의 텃밭으로 불렸고, 노무현 정부의 레임덕으로 여당의 인기는 떨어져 있었다. 선거 전날인 5월 30일, 두 사람은 모두 성남시청 앞 광장 유세로 선거운동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재명은 23.75퍼센트를 얻었다. 이대엽은 54.01퍼센트였다. 그 첫 선거 때 아내는 정말 이혼하려고 했다. 가장 힘든 선거였고,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그녀는 돌아봤다. 그래도 본인이 정치를 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말리겠느냐고 그녀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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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그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 후보의 팬클럽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의 대표를 맡았다. 2008년 2월, 18대 총선을 앞두고 그는 통합민주당의 성남 중원구 공천을 신청했다. 신청자 다섯 사람 가운데 그의 이력 칸에는 「2006년 성남시장 후보」가 적혔다. 경선은 전 유권자를 상대로 한 전화 여론조사였고, 후보들은 결과에 승복한다는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3월, 조성준 전 노사정위원장이 그를 누르고 공천을 받았다. 며칠 뒤 당은 그를 분당갑에 공천했다. 상대는 16대와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한나라당 현역 고흥길이었다.
4월 9일 치러진 선거에서 이재명은 2만 3,822표, 33.23퍼센트를 얻었다. 고흥길은 4만 6,396표, 64.73퍼센트였다. 당선 소감에서 고흥길은 선의의 경쟁을 벌인 이재명, 최정환 두 후보도 수고 많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낙선이었다.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에서 울며 마음을 정한 날로부터 네 해가 지나 있었다.
출처 · 한겨레, 2004년 3월 25일, 「주민발의 ‘시립병원 설립 조례안’ 심의 보류」 · 뉴시스, 2004년 3월 26일, 「성남시립병원설립조례안, 시의회-주민 갈등속 폭력사태 “비화”」 · 뉴시스, 2004년 4월 1일, 「성남시공직협, 시립병원 조례제정관련 폭력시위 규탄 성명」 · 한겨레, 2004년 5월 14일, 「성남 시립병원추진위 고발 취하」 · 연합뉴스, 2005년 8월 23일, 「이재명 변호사, 열린우리당 입당」 · 뉴시스, 2005년 11월 15일, 「시민단체, 성남시립병원 조례제정 청구」 · 서울신문, 2006년 5월 5일, 「성남시립병원 건립 확정」 · 한국일보, 2006년 5월 8일, 「성남 시립병원 설립운동 결실」 · 한겨레, 2006년 5월 16일, 「성남시 잇단 ‘관권 선거’ 논란」 · 뉴시스, 2006년 5월 21일, 「<5.31지방선거-성남>열린우리당 이재명 성남시장 후보 인터뷰」 · 경향신문, 2006년 5월 22일, 「〔클릭 5.31〕‘제2강남’ 성남시장 우리·한나라 접전」 · 뉴시스, 2006년 5월 30일, 「<5.31지방선거-성남>성남시장 후보 마무리 선거전 총력」 · 뉴시스, 2006년 4월 4일, 「<5.31지방선거-경기>열린우리당, 경기지역 단체장 후보 11명 발표」 · 뉴시스, 2006년 5월 28일, 「<5.31지방선거-성남>성남시장 후보들 휴일 “유권자 있으면 어디든 간다”」 · 국민일보, 2006년 3월 16일, 「성남시, 전국 최초로 주민 발의한 시립병원 설립한다」 · 한겨레, 2025년 5월 22일, 「대선후보들의 전과…숨길 수 없으니, 침묵하거나 에두르거나」 · 세계일보, 2008년 2월 25일, 「통합민주당 공천 신청자 명단」 · 데일리안, 2008년 3월 16일, 「공천vs탈락 ‘민주당 45곳 전화 여론 경선 돌입’」 · 서울신문, 2008년 3월 19일, 「〔총선 D-21〕 김효석·최규성 등 현역 전원 공천」 · 뉴시스, 2008년 3월 23일, 「민주, 광주 서갑 조영택 등 3곳 공천자 확정」 · 연합뉴스, 2008년 4월 10일, 「후보 득표현황 경기①(최종)」 · 뉴시스, 2008년 4월 9일, 「<당선자 인터뷰> 분당갑 고흥길 “지역 발전 위해 최선 다하겠다”」 · 한경비즈니스, 2025년 6월 7일, 「가난에 치여 학교도 못 다닌 14살 소년, 대통령이 되기까지〔이재명 시대〕」 · 중앙일보, 2021년 10월 11일, 「호·불호 극명히 갈리는 남자…이재명 인생 바꾼 ‘2004년 그 일’」 · 중앙일보, 2025년 6월 4일, 「“인생 밑바닥서 기어올라왔다”…비주류의 삶, 정치자산 됐다」 · 중앙일보, 2025년 5월 12일, 「소년공·인권변호·노동운동…‘참혹한 삶’을 스승 삼은 이재명 〔대선주자 탐구〕」 · 뉴스1, 2021년 9월 13일, 「이재명 “성남의료원, 정치인 이재명의 시작”」 · 서울신문, 2025년 6월 4일, 「교복도 못 입어 본 이름 없는 소년공… 시민운동 거쳐 정치 입문」 · 동아일보, 2025년 4월 29일, 「“차라리 이장하지”라던 이재명, 시장 되자 “성남 빚 지불유예” 주목」 · 헤럴드경제, 2016년 7월 3일, 「‘잠룡’ 이재명 성남시장 ‘전과’ 전격 공개」 · 신동아, 2021년 7월 20일, 「이재명표 성장전략 기획자 이한주 경기연구원장의 ‘이재명論’」 · 딜사이트, 2025년 6월 4일, 「인간 이재명의 삶…‘소년공’에서 ‘권력 정점’으로」 · 시대, 2025년 4월 27일, 「‘소년공’ 출신 이재명, 다시 대선 길에 나서다」 · 연합뉴스, 2021년 7월 1일, 「‘비주류 흙수저’ 변방의 장수에서 與유력주자로..이재명 누구」 · 여성동아, 2017년 1월 31일, 「〔#exclusive #interview〕 이재명 성남시장 부인 김혜경」 · 중앙일보(여성중앙 3월호), 2017년 3월 1일, 「〔여성중앙 3월호〕 이재명 성남시장의 아내 김혜경」 · 아이뉴스24, 2025년 6월 4일, 「〔2025 대선〕 ‘흙수저 소년공’의 신화…‘희망의 증거’ 된 이재명」 · 한겨레, 2025년 5월 18일, 「지지도 51% 이재명, 역대 유일 ‘과반 득표율’ 박근혜 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