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6,173자) · 1993~2004년, 성남
싸움닭
이재명의 삶 · 네오
아들 둘은 연년생이었다. 1992년에 큰아이가, 1993년에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를 막 낳고 큰애가 돌을 갓 지났을 무렵, 김혜경은 하나는 안고 하나는 업은 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 들어오느냐고, 그녀는 수화기에 대고 울면서 물었다. 자란 환경도 너무 달랐고,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느라 너무 힘든 때였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크게 싸운 것이 그때였다.
남편 이재명은 성남에서 시민모임을 처음 만들어 가고 있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노동 사건과 시국 사건을 맡았고, 해고무효 소송이나 뺑소니, 대여금 소송 같은 민사 사건도 많이 받았다. 아내의 말로는, 남편은 한 번 무엇에 집중하면 그것만 보는 사람이었다.
금요일마다 그는 성남의 성직자와 사회운동가, 지역 활동가들과 어울렸다. 그를 성남YMCA로 이끈 이상락, 성남YMCA의 이용원, 김해성 목사, 천용욱 성공회 신부가 그 자리에 있었다. 이들은 그 모임을 「금요회」라고 불렀고, 주고받는 술잔에는 지역의 일이 담겼다. 지방자치제를 이용해 의회로 들어가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풀뿌리 시민운동을 골랐다. 1995년 3월 30일, 그는 뜻을 함께하기로 한 지역 사람들을 모아 성남시민모임을 창립했다. 성남에서 처음 조직된 시민단체였다.
*
첫 싸움은 1996년, 성남 대장동에 들어설 수도권 남부 저유소였다. 모임은 건설을 막으려 했고, 성남시로부터 석 달 동안 숙의를 거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닷새 뒤 건축 허가가 났다. 국가사업이라 저유소는 그대로 지어졌고, 모임이 얻어 낸 것은 더 단단한 안전대책이었다. 그 뒤로도 모임은 시청을 상대로 이런저런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투명하게 모두 공개하라는 것이 그가 시에 자주 하던 말이었다. 시장실 앞에서 농성을 하다 시청 직원들과 드잡이를 벌인 날도 있었다.
성남 시민운동의 쌍두마차로 불린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이 이재명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모임에서 집행위원장과 정책국장을 지낸 신상진이었다. 두 사람의 길이 늘 같지는 않았다. 서울공항 때문에 성남의 건물들은 높이 제한에 묶여 있었고, 신상진은 그 제한을 풀자고 나섰다. 그가 함께하자고 하자 이재명은 그것이 결과적으로 시장을 돕는 꼴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 무렵 그의 별명은 시장과 싸우는 「싸움닭」이었다. 그는 뒷날 블로그에 그 시절을 이렇게 적었다.
「분명 국민이 주인인 시대는 되었건만 여전히 그들 위에 군림하고 제 뱃속 채우기에 급급한 행정관료들과 싸우느라 길 위에 설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로서 그는 쫓겨난 사람들 편에 섰다. 1990년 분당 신도시 개발로 살던 자리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을 대표하던 이호승이 이주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그의 변론을 맡은 사람이 이재명이었다. 이호승은 훗날, 침투한 세력으로 의심받던 자신을 그가 변호했다고 말했다.
부부는 월세로 시작해 오래 전세를 살았다. 바깥일을 그렇게 열심히 할 거면 집이라도 한 채 사 놓고 하라고, 김혜경은 시민운동에 매달리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많이 했다. 유치원 친구 엄마들이 놀러 와서는 변호사도 전세를 사느냐며 신기해했다. 외환 위기 끝에 집값이 가장 쌀 때인 1999년, 두 사람은 처음으로 제 집을 샀다. 아내는 훗날 그때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
분당 한가운데 백궁동과 정자동 일대는 상업·업무지역으로 묶인 노른자 땅이었다. 성남시가 그 땅을 주거지역으로 바꾸려 한다는 말이 들려왔고, 이재명은 그것을 막으려고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땅을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바꾸면 땅값이 뛰고, 그 이익은 특정 개발업체에 몰린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1999년 10월 16일, 그는 조선일보에 칼럼을 보내 이렇게 썼다.
「그대로 놔두자. 건설업체와 지주인 토지공사는 막대한 이익이 있지만 성남시와 분당 주민들은 손실과 고통만 강요받는 사업이다.」
상대는 성남시장 김병량이었다. 함께 활동한 한 사람의 말로는, 김대중 정부 때였고 김병량은 원래 자신들이 밀던 시장이었다. 그래도 그 시장을 상대로 부당한 일에 반대하는 이재명을 보며, 그는 패기 넘치는 변호사라고 생각했다.
2000년 5월, 성남시는 끝내 백궁·정자지구의 중심상업지구를 아파트 단지로 바꿔 주었다. 이재명은 뒷날 자서전에 시가 주민 여론조사를 조작하면서까지 바꿔 주었다고 적었고, 이 사업이야말로 성남시가 사업자에게 특혜를 준 사건이라고 판단했다고 썼다. 상업용지를 사들였다가 용도 변경을 따낸 회사는 에이치원이라는 급조된 업체였다. 그 땅에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파크뷰가 들어섰다. 2001년 3월 9일 선착순 분양이 열리자 첫날 1만여 명이 몰렸다. 김병량 시장은 에이치원의 홍원표 회장과 일면식도 없다고 했다.
시청과 각을 세울수록 집 전화가 자주 울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오는 것은 협박이었다. 그는 총기 소지 허가를 받아 6연발 가스총을 차고 다녔다. 2001년, 그는 한 인터뷰에서 집을 나서는 아침을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아들이 학교 가기 무섭다고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지 않을 때는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의구심에 빠지기도 한다.”
바짓가랑이를 붙든 아이는 몇 해 전 엄마 품에 안기고 등에 업혀 있던 연년생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도 모임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바깥에서 싸움닭으로 불리던 그를, 아내는 굉장히 여린 사람이라고 했다.
*
2002년 5월 3일, 동아일보 1면 머리에 한 줄이 실렸다. 「고위공무원 판검사 국정원직원 등 130여명 분당 고급아파트 특혜분양」. 진승현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이 항소심 재판부에 낸 탄원서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경쟁률이 100 대 1을 넘던 그 아파트 가운데 일부가 고위층에게 빼돌려졌다는 주장이었다. 검찰이 내사에 들어갔다.
이 일을 두고 성남시민모임 집행위원 이재명 변호사가 기자에게 입을 열었다.
“지난 99년 11-12월께 분당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추진과정에 일부 고위인사의 개입 의혹이 있다는 내용을 담은 국정원 보고서를 확인한 적이 있다.”
그 보고서를 본 것은 1999년 12월 말 용도변경 공람공고가 나기 전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여권 실세와 고위층 친인척, 개발업체 관계자, 청와대 파견 공무원, 지역 인사 둘이 땅을 사들이고 용도를 바꾸는 데 끼어들었다는 의혹이 거기 담겨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였다. 나흘 뒤인 5월 7일, 야당 한나라당의 박방희 부대변인은 용도변경을 둘러싸고 여권 국회의원과 성남시장, 시행사 회장을 잇는 삼각 커넥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방송을 앞둔 어느 날, 성남의 이재명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자장면을 시켜 먹고 있었다. 벽에는 개업 때부터 떼지 않은 「민생변호 세정평온」 액자가 걸려 있었다. KBS 2TV 「추적 60분」의 최철호 PD가 이재명을 인터뷰하러 와 있었다. 최 PD는 김병량 시장에게 인터뷰를 청했다가 기회를 얻지 못했고, 시장 쪽에 자신이 수원지검 검사라고 전갈을 넣어 두었다. 그때 시장 쪽에서 회신 전화가 걸려 왔다. 최 PD는 서아무개 검사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재명이 훗날 밝힌 바로는, PD가 담당 검사인데 도와줄 테니 사실대로 말하라고 시장을 이끌었다. 그 통화가 녹음됐다. 녹음된 통화에서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1998년 성남시장) 선거 때 홍 사장이 직원들한테 휴가를 보내서라도 (나를) 지원하겠다고 한 건 사실입니다. 직원들이 나가 홍보한 거지요. 아는 사람들한테 일일이 지지하라고.”
일면식도 없다던 사람이었다. 녹음에는 홍 회장이 다음 달 지방선거에서도 시장의 선거를 돕겠다고 다짐하는 목소리까지 들어 있었다.
그 방에서 이재명이 무엇을 했는지는 뒤에 법정이 가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가 최 PD에게 추가로 물을 것을 적어 주고, 답을 듣다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신호를 보냈다고 판단했다. 이재명의 설명은 달랐다. 특혜분양사건대책위 집행위원장으로 인터뷰를 하던 중에 PD가 담당 검사의 이름과 사건의 중요한 사항을 물어 알려 줬을 뿐이고, 주도해서 사칭한 사람은 방송국 PD였다고 했다. 그를 사무실에서 쫓아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도 했다. 최철호의 말은 또 달랐다. 그는 2022년 2월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수원지검에 경상도 말을 쓰는 검사가 있느냐고 묻자 이재명이 검사 한 사람의 이름을 대 주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이 스피커에 귀를 대고 시장의 답을 직접 들으며 추가 질문을 메모했다고도 했다. 불법으로 녹음한 것이라 그대로 내보낼 수 없다고 하자 익명의 제보자가 준 테이프처럼 꾸미자는 말을 이재명이 했고, 그래서 성남의 한 다방에서 테이프를 건네받는 것처럼 방송했다는 주장이었다. 그 방의 일을 두고 법원의 판단과 두 사람의 말이 서로 엇갈렸다.
5월 18일, 「추적 60분」 455회 「특혜 의혹 분당 파크뷰, 무슨일이 있었나」가 전파를 탔다. 나흘 뒤인 5월 22일, PD에게서 녹음 파일을 넘겨받은 이재명은 성남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과 고발 과정에 대한 김병량 시장의 육성을 공개하겠다고 밝히고, 그는 녹음을 틀었다. 시장과 홍원표 회장의 친분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회견장에 흘렀다. 직접 증거가 아니라 정황이었지만 파장은 컸다. 여당 소속 시장을 시민단체가 들이받은 그 일로, 성남 일대에 이재명이라는 이름이 좋게 오르내렸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 자리는 이대엽에게 넘어갔다.
*
당황한 시장 쪽은 이재명을 배후로 지목해 고소했다. 검찰이 자신의 인터뷰와 PD의 사칭 전화를 한데 묶어 사칭을 도운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그는 훗날 말했다. 2002년 7월 4일, 검찰은 이재명을 공무원자격사칭과 무고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시장의 육성을 세상에 내놓은 변호사가 구치소에 갇혔다. 그의 기억으로는 그때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열 명쯤이 구치소로 위로 접견을 왔고, 보수 신문들은 이재명의 구속이 지나치다는 사설을 썼다. 2003년 7월 1일, 법원은 무고와 공무원자격사칭을 유죄로 보고 그에게 벌금 150만 원을 선고했다. 최철호 PD는 선고유예를 받았다고 훗날 말했다.
이듬해 7월, 이번에는 시장이었던 사람이 잡혀 들어갔다. 수원지검은 김병량 전 시장을 제삼자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2000년 8월 파크뷰 시행사에 압력을 넣어, 자신의 선거를 도운 건축사사무소가 파크뷰 설계용역을 맡아 3억 원의 이득을 보게 했다는 혐의였다. 그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04년 12월 24일, 대법원이 이재명의 상고를 기각했다. 벌금 150만 원이 확정됐다. 파크뷰를 둘러싼 싸움의 끝에서, 시장에게는 뇌물죄가 남았고 변호사에게는 검사 사칭이라는 이름의 전과가 남았다.
출처 · 중앙일보(여성중앙 3월호), 2017년 3월 1일, 「〔여성중앙 3월호〕 이재명 성남시장의 아내 김혜경」 · 여성동아, 2017년 1월 31일, 「〔#exclusive #interview〕 이재명 성남시장 부인 김혜경」 · 중앙일보, 2025년 5월 12일, 「소년공·인권변호·노동운동…‘참혹한 삶’을 스승 삼은 이재명 〔대선주자 탐구〕」 · 중앙일보, 2025년 6월 4일, 「“인생 밑바닥서 기어올라왔다”…비주류의 삶, 정치자산 됐다」 · 중앙일보, 2021년 10월 11일, 「호·불호 극명히 갈리는 남자…이재명 인생 바꾼 ‘2004년 그 일’」 · 조선일보, 2021년 10월 30일, 「〔아무튼, 주말〕 22년 전 이재명 “분당 그대로 놔두자, 건설업체만 막대한 이익”」 · 시대, 2025년 4월 27일, 「‘소년공’ 출신 이재명, 다시 대선 길에 나서다」 · 동아일보, 2021년 10월 21일, 「〔김순덕의 도발〕‘대장동 게이트’는 파크뷰사건 판박이었나」 · 동아일보, 2025년 4월 29일, 「“차라리 이장하지”라던 이재명, 시장 되자 “성남 빚 지불유예” 주목」 · 연합뉴스, 2002년 5월 4일, 「검찰, ‘공직자 특혜분양“ 내사(종합)」 · 연합뉴스, 2002년 5월 7일, 「한나라 ’대통령퇴진” 서명운동」 · 조선일보, 2023년 3월 27일, 「이재명 위증교사? 재소환된 21년 전 ‘검사 사칭 보이스피싱’ 그 날」 · 헤럴드경제, 2016년 7월 3일, 「‘잠룡’ 이재명 성남시장 ‘전과’ 전격 공개」 · 이데일리, 2022년 2월 24일, 「‘이재명 검사 사칭’ 연루 PD “李 관여 안했다? 굉장히 모욕적”」 · 뉴시스, 2024년 11월 25일, 「〔일지〕이재명 ‘검사사칭’ 사건부터 ‘위증교사’ 1심 무죄까지」 · 연합뉴스, 2010년 12월 2일, 「성남시, 역대 민선시장 3명 모두 구속 ‘불명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