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6,141자) · 2025년 3월 26일, 서울고법과 안동

그 길로 안동

이재명의 삶 · 네오

2025년 3월 26일⁠,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광화문 천막 당사에 있었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날도 헌법재판소는 선고일을 알리지 않았고⁠, 3월을 넘겨 4월 초중순으로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재판관 8명 가운데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임기는 4월 18일까지였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은 헌법재판소를 향해 말했다⁠. 헌정 질서를 지켜야 할 대통령이 헌정 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라고 했다⁠. 내란 수괴 혐의로 기소된 대통령에게 다시 면죄부를 주면 아무 때나 군사 쿠데타를 해도 되느냐고⁠, 이것은 비상계엄 면허증을 주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나라의 지휘탑이 무너져 혼란과 혼돈 이 자체라고 했고⁠, 선고를 계속 미루는 것 자체가 헌정 질서를 위협한다고 했다⁠. 박찬대 원내대표가 말을 보탰다⁠. “⁠국민은 헌재가 제 역할을 제때 할 거라 믿으며 탄핵 이후 100일 넘게 기다렸다⁠.⁠”

국민의힘은 다른 곳을 가리켰다⁠. 호준석 대변인은 지금은 국가 재난 상황인데 민주당 의원들이 달려간 곳은 헌법재판소 앞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국민의 눈물을 외면하지 말고 국회에서 대책 마련에 나서기 바란다⁠.⁠” 경북에서는 산불이 닷새째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이재명은 피고인석에 서야 했다⁠.

*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앞에 민주당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60여 명이 모였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항소심 선고 날이었고⁠, 이들은 법원 앞에 서서 선고 공판을 응원했다⁠.

1심은 넉 달 전이었다⁠. 2024년 11월⁠, 1심 재판부는 이재명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대로 확정되면 피선거권을 잃는 형이었고⁠, 이 선고로 이재명은 정치 인생 최대의 위기에 놓였다⁠. 공직선거법 사건에서 벌금 100만 원 이상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고 5년 동안 피선거권이 제한되는데⁠, 집행유예가 확정되면 이 기간이 10년이었다⁠. 쟁점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20대 대선 때 방송에서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몰랐다고 한 발언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남 분당구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의 용도 지역을 올린 것이 국토교통부의 압박 때문이었다고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이었다⁠.

법원에 도착한 이재명에게 취재진이 질문을 던졌다⁠. 한마디만 하고 지나갔다⁠.

“⁠끝나고 하시죠⁠.⁠”

이재명은 이 자리의 사람들과 악수하며 법정으로 향했고⁠, 지지자들이 이재명의 이름을 불렀다⁠. 양복 안에는 방탄복을 입고 있었다⁠.

오후 2시께⁠, 서울고법 형사6-2부가 선고를 시작했다⁠. 재판장은 최은정 부장판사⁠, 배석은 이예슬·정재오 판사였다⁠. 판결 이유를 읽는 데 한 시간 사십 분 가까이 걸렸다⁠. 그동안 의원들은 법정 밖에서 선고를 지켜봤다⁠.

재판부는 먼저 김문기 처장에 관한 발언을 짚었다⁠. 검사가 문제 삼은 네 차례의 방송 발언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골프 발언의 증거로 나온 사진도 다시 봤다⁠.

“⁠사진은 원본을 일부 떼낸 것이라 조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재판부는 이재명의 발언을 골프를 안 쳤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없고⁠, 허위라고 인정하기도 힘들다고 판단했다⁠. 이 대목이 법정 밖에 전해지자 지지자들이 「⁠이재명⁠」을 외치며 환호했다⁠. 재판부는 백현동으로 넘어갔다⁠.

“⁠공공기관 용도 변경과 관련해 다각도로 압박 받는 상황을 인정할 수 있다⁠.⁠”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는 협박도 받았다는 이재명의 말은 이때의 압박감을 부풀린 표현일 수는 있어도 허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정치적 의견 표명이라 허위사실 공표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법정 밖의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재판부가 결론을 읽었다⁠.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이르지 못해 무죄를 선고한다⁠.⁠”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했다⁠. 넉 달 전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나왔던 사건이 두 갈래 모두 무죄로 뒤집혔다⁠.

*

법정을 나온 이재명은 지지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표정은 다소 굳어 있었다⁠. 지지자들은 환호하며 이재명의 이름을 외쳤고⁠, 이재명은 동료 의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취재진 앞에서 이재명은 먼저 재판부를 말했다⁠.

“⁠진실과 정의에 기반해서 제대로 된 판결을 해주신 재판부에 먼저 감사드린다⁠.⁠”

다음 말은 길었다⁠. 이 당연한 일을 이끌어 내는 데 이 많은 에너지가 들고 국가 역량이 소진된 것이 참으로 황당하다고 했다⁠. 검찰과 정권이 자신을 잡으려고 증거를 조작하고 사건을 조작하느라 쓴 역량을 산불 예방이나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썼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됐겠느냐고 했다⁠. 법원 앞에 모인 사람들을 두고 말을 이었다⁠. 이 많은 사람이 여기 모여 있는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산불은 번져 가고 누군가는 죽어 가고 있지 않으냐고 했다⁠. 검찰에는 한 문장을 따로 남겼다⁠. “⁠이제 검찰도 자신들의 행위를 좀 되돌아보고 더 이상 이런 국력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네 글자를 꺼냈다⁠. 사필귀정 아니겠느냐고 이재명은 물었다⁠. 짧은 소감을 마친 이재명은 차로 걸어가며 선고를 기다려 준 의원들과 밝은 얼굴로 악수했다⁠.

선고 직후 이재명은 SNS에 짧은 글을 올렸다⁠. 개인적 고난은 한 차례 넘겼지만⁠, 산불 피해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떠올리니 걱정이 앞선다고 적었다⁠. 마지막 줄은 행선지였다⁠.

“⁠지금 안동으로 간다⁠.⁠”

당내 비명계 주자들도 같은 네 글자를 꺼냈다⁠. “⁠사필귀정이다⁠, 이번 기회에 선거법과 사법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

판결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곧 나왔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말했다⁠. “⁠법원의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 권영세는 대법원을 바라봤다⁠. “⁠대법원에서 신속하게 6·3·3원칙에 따라 재판해 정의가 바로잡히길 기대한다⁠.⁠” 선거 사건은 1심을 여섯 달⁠, 2심과 3심을 각각 석 달 안에 끝내라는 원칙이었다⁠. 검찰은 선고 두 시간 삼십여 분 만에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무죄를 받은 이날로 사건은 대법원을 향하게 됐다⁠.

이날 이재명의 일정에 안동은 확정돼 있지 않았다⁠. 판결이 나오고 나서야 이재명은 행선지를 정했고⁠, 국회에 들르지 않았다⁠. 이튿날 잡혀 있던 소상공인연합회 간담회는 뒤로 미뤄졌다⁠. 황정아 대변인은 이재명이 선고와 상관없이 산불 피해를 계속 걱정해 왔고⁠, 고향이 안동이라 마음이 더 쓰였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가 이 길을 전했다⁠.

“⁠2심 선고 직후 서울고등법원을 나와 곧장 산불피해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안동다목적체육관으로 가고 있다⁠.⁠”

*

나흘 전인 3월 22일⁠, 경북 의성에서 산불이 났다⁠. 불은 바람을 타고 동쪽으로 번져 안동과 청송⁠, 영양⁠, 봉화⁠, 영덕을 덮쳤고⁠, 닷새째인 이날에도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불길이 지나간 안동 일대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이때까지 안동에서만 사망자가 세 명 나왔다⁠. 불길은 하회마을 직선거리 약 5킬로미터 앞까지 다가왔고⁠, 주민들이 대피했다⁠. 안동은 이재명의 고향이었다⁠. 이틀 전인 3월 24일⁠, 이재명은 경남 창녕군민체육관에 차려진 산청군 산불진화대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오후 8시께⁠, 이재명은 안동 운흥동 다목적체육관에 닿았다⁠. 이재민 대피소가 차려진 곳이었고⁠, 이재명은 회색 패딩을 입고 있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기창 안동시장⁠, 민주당 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장과 김병주 최고위원⁠, 문대림·한병도 의원이 함께했다⁠.

이재명을 보자마자 이재민들은 불을 빨리 꺼 달라고 했다⁠. 날 선 말도 나왔다⁠. 왜 이제야 오느냐고⁠,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는 이재민이 있었다⁠. 이재명이 답했다⁠.

“⁠오늘 빨리 와야 됐는데⁠.⁠”

재판 때문에 늦어진 걸음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리고 약속을 보탰다⁠. “⁠불도 빨리 끄고 집도 빨리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지금 도와주면 뭐 하느냐는 말도 들었다⁠. 화내실 만하다고 했고⁠, 잘 챙기겠다고 했다⁠.

대피소를 돌며 이재명은 이재민들의 말을 들었다⁠. 한 어르신이 말했다⁠. “⁠잘 살았는데 다 타고 아무 것도 남은 게 없다⁠.⁠” 다른 어르신은 잃은 것을 하나씩 셌다⁠. “⁠텔레비전도 타고 전 재산 2000만원도 다 탔다⁠.⁠” 다 타고 아무것도 없다는 하소연 앞에서 이재명은 사정을 숨기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저희가 잘 챙기겠다⁠.⁠” 이재민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안할건 없어요⁠. 우리 어머니가 평생 세금 내셨잖아요⁠. 체면 없는거 아니에요⁠. 당당하게 요구해도 돼요⁠. 이 나라의 주인이잖아요⁠. 저희가 잘 챙겨드릴게요⁠.⁠”

당장 집이 없어 아무것도 없으니 주거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호소가 이어졌다⁠. 나라가 해야 할 일이 이런 일 아니겠느냐고 했다⁠. 국가가 세금을 거둬서 할 일은 재난 상황에서 국민이 먹고살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철우 지사에게 이재명은 집 이야기를 꺼냈다⁠. 터를 잡고 집을 새로 지으려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충청권 수해 때 조립식 모듈러 주택을 썼으니 이 방식으로 빨리 진행하라고 했다⁠. 이재민들이 바라는 것을 황정아 대변인이 전했다⁠. “⁠큰 집 필요 없고 작은 집이어도 좋으니 빨리 마련됐으면 한다고 하셨다⁠.⁠” 취재진에게 이재명은 먼저 도와 시의 수고를 말했다⁠. “⁠우리 이철우 경북도지사님과 안동 시장님이 잘 챙기고 계신 것 같다⁠.⁠” 다음은 앞으로 할 일이었다⁠. “⁠일단 이재민들에 대해 지금 상태의 지원도 중요하겠고⁠, 이분들이 최대한 신속하게 생계 터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주거 지원이나 다른 지원들을 미리 준비해야 될 것 같다⁠.⁠” 걱정도 내비쳤다⁠. “⁠워낙 규모가 큰 재난이라서 지금 전국적으로 충분히 물량이 있을지도 걱정이 되긴 한다⁠.⁠” 지금부터라도 챙겨 보겠다고 했다⁠.

*

두 곳의 대피소를 도는 사이⁠, 한 고령의 어르신이 이재명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헌법 첫 조의 문장이었다⁠. 제1조 1항과 2항의 앞머리가 노인의 입에서 하나로 이어져 나왔다⁠. 이날 광화문에서 헌정 질서를 말하고 오후에 서초동 법정에서 무죄를 받은 사람에게⁠, 산불 대피소의 노인이 이 문장을 돌려주었다⁠. 어르신은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나라가 온통 시끄러우니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대통령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 생각 좀 제발 해달라⁠!⁠”

이재명이 답했다⁠.

“⁠집도 빨리 챙기고 최선을 다하겠다⁠.⁠”

이재명은 이재민들과 자원봉사자⁠, 소방대원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 대피소에 머문 시간은 사십 분쯤이었다⁠. 이 밤 안동에 묵었다⁠. 이튿날에는 산불에 불탄 의성 고운사를 둘러보고 의성과 청송⁠, 영양의 대피소를 찾을 계획이었다⁠. 산불 비상 상황 때문에 여야가 요청해 이튿날 국회 본회의도 열리지 않게 됐다⁠. 헌법재판소의 선고일은 이날까지 잡히지 않았다⁠.

출처 · 경향신문⁠, 2025년 5월 29일⁠, 「⁠〔불법계엄의 밤 이후〕 이재명의 177일⁠…⁠」 · 대전일보⁠, 2025년 3월 26일⁠, 「⁠헌재⁠, 尹선고일 다음주로 연기되나⁠…4월 선고 전망도⁠」 · 서울신문⁠, 2025년 3월 26일⁠, 「⁠이재명 “⁠진실·정의 기반 제대로 된 판결⁠”⁠…민주당 의원 60여명 집결⁠」 · 국민일보⁠, 2025년 3월 26일⁠, 「⁠이재명⁠, 선거법 2심 무죄⁠… 최대 사법리스크 해소⁠」 · 뉴시스⁠, 2025년 3월 26일⁠, 「⁠‘⁠이재명 선거법 무죄⁠’ 선고 최은정·이예슬·정재오 판사는 누구⁠」 · 주간동아⁠, 2025년 3월 26일⁠, 「⁠이재명 선거법 항소심 무죄⁠… 고법 ‘⁠김문기·백현동 발언 허위사실 공표 아냐⁠’⁠」 · 머니투데이⁠, 2025년 3월 26일⁠, 「⁠“⁠이 순간에도 산불 번져⁠”⁠.⁠.⁠.‘⁠무죄⁠’ 날개 단 이재명⁠, 고향 안동 찾는다⁠」 · 오마이뉴스⁠, 2025년 3월 26일⁠, 「⁠‘⁠사법 부담⁠’ 털어낸 이재명⁠, 안동 산불현장으로 직행⁠」 · MBC⁠, 2025년 3월 26일⁠, 「⁠무죄 직후 산불 챙기러 안동으로‥‘⁠사법리스크⁠’ 고비고비 역전극⁠」 · 한겨레⁠, 2025년 3월 26일⁠, 「⁠‘⁠무죄⁠’ 이재명⁠, 법원에서 바로 안동 산불현장으로⁠」 · 한국일보⁠, 2025년 3월 26일⁠, 「⁠‘⁠선거법 2심 무죄⁠’ 이재명⁠, 안동 산불 현장 찾아 “⁠오늘 빨리 와야 됐는데⁠”⁠」 · 프레시안⁠, 2025년 3월 26일⁠, 「⁠이재명⁠, 고향 안동 산불 대피시설 방문⁠… “⁠국민 생각 좀 해달라⁠” 호소⁠」 · 한국경제⁠, 2025년 3월 26일⁠, 「⁠산불 번진 안동 간 이재명⁠…“⁠조립식 주택이라도 빨리 지원하자⁠”⁠」 · 노컷뉴스⁠, 2025년 3월 26일⁠, 「⁠이재명⁠, 안동 이재민 만나 “⁠터전 복귀 위해 최대한 지원⁠”⁠」 · 헤럴드경제⁠, 2025년 3월 27일⁠, 「⁠항소심 무죄 직후 고향 안동찾은 이재명⁠…산불 이재민 위로⁠」 · 서울경제⁠, 2025년 3월 27일⁠, 「⁠산불 현장 찾은 이재명 “⁠미안할 건 없어요⁠. 평생 세금 냈는데 당당히⁠”⁠」

7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