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6,101자) · 1990~1991년, 서울과 성남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요?

이재명의 삶 · 네오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갓 연 이재명의 하루는 변론과 접견⁠, 상담과 판례 분석으로 꽉 차 있었다⁠. 낮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뛰었고⁠, 밤이면 지역 활동가들과 허름한 술집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토론을 벌였다⁠. 울분에 찬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단골 술집 주인이 이들 일행을 남겨 두고 먼저 퇴근해 버릴 지경이었다⁠.

어느 날 이재명은 이 피폐한 일상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재명의 어머니는 혼례식장에서 맞절을 할 때 아버지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그래도 오래 연애하고 결혼한 사람들과 사는 모습이 달라 보이지 않았다⁠. 결정하기 전까지는 오래 고민하지만⁠, 일단 정하면 과감하고 빠르게 실행하는 것이 이재명의 방식이었다⁠. 이재명은 8월이 가기 전에 만난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실행력을 높이려고 주변에 공언까지 했다⁠.

“⁠8월이 가기 전에 결혼할 사람을 만날 겁니다⁠.⁠”

그렇게 다섯 번의 소개팅이 잡혔다⁠.

*

세 번째 자리는 교회에서 이어졌다⁠. 이재명의 셋째 형수와 김혜경의 어머니가 같은 교회에 다녔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장가 안 간 시동생과 피아노 레슨을 하는 딸을 만나게 해 주기로 했다⁠. 소개하는 사람 없이 둘이 알아서 만나는 007 미팅이었다⁠.

김혜경은 1966년생⁠, 2남 1녀의 장녀였다⁠. 선화예고를 거쳐 숙명여대 피아노과에 85학번으로 들어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였던 같은 해⁠, 김혜경은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오스트리아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1990년 8월의 어느 수요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 커피숍이었다⁠. 직원이 작은 종이 달린 팻말을 들고 가게 안을 돌았고⁠, 종소리에 고개를 든 김혜경은 팻말에 적힌 제 이름을 보았다⁠. 김혜경이 손을 들자 입구 쪽에 있던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했다⁠. 남자는 벽돌만 한 카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김혜경의 눈에 남자는 완전 아저씨 같았다⁠. 인물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반지에는 까닭이 있었다⁠. 이 무렵 어린 변호사들은 나이 들어 보이려고 일부러 결혼한 사람처럼 반지를 끼고⁠, 차림도 아저씨처럼 꾸몄다⁠.

남자 쪽은 달랐다⁠.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김혜경을 보는 순간⁠,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재명은 첫눈에 반했다⁠. 첫 자리에서 자기는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했다⁠. 살아온 이야기와 집안 사정도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다⁠. 두 집안의 형편은 차이가 많이 났다⁠. 김혜경은 제 처지를 당당하게 말하는 이 모습이 싫지 않았다⁠. 둘은 차를 마셨고⁠, 저녁까지 함께 먹었다⁠. 총각이 맞나 싶던 의구심은 이재명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동안 차츰 감탄으로 바뀌었다⁠. 감정이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맞은편 남자가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고 혼자 진도를 빼고 있다는 사실을⁠, 김혜경은 모른 채 집에 돌아갔다⁠.

이튿날 목요일 오후 3시⁠, 이재명은 예고도 없이 차를 몰고 김혜경의 집 앞으로 왔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나오라고 했다⁠. 차에 오른 김혜경 옆에서 이재명은 핸들을 탁 꺾으며 말했다⁠.

“⁠오늘은 바다를 보러 갑시다⁠.⁠”

어디 갈래⁠, 뭐 먹을래 하고 묻지 않고 어디 가자고 먼저 말하는 남자였다⁠. 핸들을 꺾는 이재명의 입매가 선명했고⁠, 웃는 얼굴이 참 깨끗했다⁠. 김혜경은 속으로 한번 만나 볼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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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부터 성남의 동료들과 단골 술집은 이재명의 머리에서 싹 지워졌다⁠. 잠시라도 안 보면 못 견딜 지경이었다⁠. 오전에만 일하고 오후에는 땡땡이를 치고⁠, 이재명은 거의 매일 김혜경을 만나러 쫓아갔다⁠. 이재명의 집은 법원 앞이었고 김혜경의 집은 송파였다⁠. 퇴근하면 이재명이 김혜경을 데리러 왔고⁠, 둘은 남한산성에도 가고 강릉에도 갔다⁠. 김혜경은 부드럽고 따스했으며 밝고 유쾌했다⁠. 극빈한 집에서 소년공으로 버텨 온 이재명에게⁠, 반듯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김혜경의 많은 것이 낯설었다⁠. 이 낯선 것들이 다 좋았다⁠. 당일치기로 다녀오느라 귀가가 늦었고⁠, 김혜경은 이때마다 어머니에게 많이 혼났다⁠.

처음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당일치기로 강원도 설악산 오색약수를 보러 갔다⁠. 큰 방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 이재명이 같이 살자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결혼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네 번째 만남에서 청혼했다고 기억했다⁠. 김혜경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재명은 이 웃음을 보고 차인 건 아니구나 싶었다⁠. 이재명의 인생에서 그렇게 빠진 상대는 없었고⁠, 그러니 결혼해야 했다⁠. 김혜경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좀 더 지켜보자는 마음이었다⁠.

반지도 분위기도 없던 이 청혼을 두고⁠, 김혜경은 나중에 이게 프러포즈였느냐고 물었다⁠. 가만 보니 시간이 너무 늦었더라고 이재명은 답했다⁠. 집에 바래다주면 엄청 깨질 것 같아서 그냥 결혼하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청혼을 하고도 잡혀 있던 소개팅이 두 번 남아 있었다⁠. 이 사실을 김혜경에게 털어놓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소개해 준 사람들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만나라는 윤허가 내려왔다⁠. 두 자리에 더 나갔다⁠. 나중에 다섯 번째 소개팅의 아가씨가 괜찮았다고 김혜경 앞에서 까불다가 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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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8월⁠, 이재명은 양가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사귀자며 송파의 김혜경 집에 먼저 인사를 갔다⁠. 9월에는 김혜경이 이재명의 어머니 구호명에게 인사를 드렸다⁠. 이재명은 어머니의 사진을 품고 시험공부를 했을 만큼 어머니가 각별한 아들이었다⁠. 결혼 전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혼자 살겠다고 고집했다⁠.

그래도 김혜경은 몇 번을 더 만나도 가타부타 답이 없었다⁠. 이 사람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았고 죽을 것 같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이재명은 일기장 여섯 권을 내밀었다⁠. 열다섯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10년 동안 쓴 일기였다⁠. 그에게는 승부수였다⁠.

“⁠난 이렇게 살아온 사람입니다⁠. 내 속을 숨김없이 보여드릴 테니 같이 살만하다 생각하면 결혼합시다⁠.⁠”

제 삶을 솔직하게 다 보여 주어야 한다고⁠, 속이면 안 된다고 이재명은 여겼다⁠. 무리한 작전이 분명했다⁠.

일기장 속에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머니 손에 이끌려 학교 대신 공장으로 간 이야기가 있었다⁠. 아침 일찍 시장 청소를 도우라고 깨우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도 있었고⁠,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때의 마음가짐도 적혀 있었다⁠. 김혜경의 마음에 오래 남은 대목은 따로 있었다⁠. 공장으로 출근하는 길이 학생들의 등굣길이었다⁠. 좋아하던 여학생이 저쪽에서 교복을 입고 걸어오는데 이재명은 공장으로 가야 했다⁠. 마주쳤으니 어쩔 수 없이 인사는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날의 제 모습을 일기장에 적어 두었다⁠. 이 대목을 김혜경은 몹시 짠하게 읽었다⁠.

사실 이재명은 딸 가진 집에서 선뜻 결혼시킬 만한 사윗감이 아니었다⁠. 변호사라고 해도 7남매에 홀어머니였고⁠, 개천에서 난 용이었다⁠. 그런데 이재명은 이 이야기를 만난 첫날 다 했다⁠. 숨기려 하지 않았고 변명도 하지 않았다⁠. 고생하고 산 사람들은 대개 빠져나온 쪽으로 다시 눈을 돌리지 않는데⁠, 이재명은 그렇지 않았다⁠. 김혜경에게는 이 모습이 담백하고 깔끔했다⁠.

이재명은 좋은 조건만 늘어놓지 않았다⁠. 사회운동으로 이미 고생하고 있다는 것⁠,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까지 최악의 조건을 다 말했다⁠. 개업하고 보니 상담의 절반이 이혼 상담이었다⁠. 물질적 조건보다 기대가 어그러지거나 서로 함부로 대해서 깨지는 가정이 많았다⁠. 좋은 얘기만 했다가 나중에 나쁜 상황이 오면 더 나쁜 일이 벌어진다고 이재명은 생각했다⁠. 김혜경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고 있었어도 괜찮은 집안이었다⁠. 아내의 말로는 이 무렵 김혜경 앞에 남자가 줄을 서 있었다⁠. 노동 사건을 맡는 변호사에게는 수입이 없었고⁠, 이재명은 월세를 살았다⁠. 만난 지 몇 달 만에 결혼하자면서 돈 300만 원을 빌려 달라고 했다가⁠, 이재명은 사기꾼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았다⁠.

같은 해 10월과 11월 사이에 김혜경은 마음을 정했다⁠. 이 사람과는 포장마차를 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일기장을 비롯한 이재명의 솔직한 모습에서 확신과 믿음을 얻었다고⁠, 김혜경은 나중에 이재명에게 말했다⁠. 김혜경은 청혼을 받아들였다⁠. 무리한 작전은 신의 한 수가 됐고⁠, 이재명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

친정아버지에게 결혼 승낙을 받은 날이었다⁠. 이날 술을 마신 뒤 이재명이 고백할 게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참 뜸을 들였다⁠. 김혜경은 무슨 일인가 싶었고⁠, 숨겨 놓은 아들이라도 있나 했다⁠.

연애하는 동안 이재명은 한 번도 반팔 옷을 입지 않았다⁠. 김혜경은 법조계가 보수적이라 긴팔만 입나 보다 했다⁠. 너무 진지하게⁠, 그리고 어렵게 꺼낸 것은 왼팔 이야기였다⁠. 성남 상대원의 공장에서 프레스에 팔이 눌려 다 휘었다고 했다⁠. 성장판을 다친 팔은 곧게 펴지지 않았다⁠. 차렷 자세가 안 돼서⁠, 서 있으면 껄렁껄렁해 보이는 팔이었다⁠. 사춘기에는 이 팔 때문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 아내 될 사람한테는 알려 줘야 한다고 이재명은 생각했다⁠. 그래도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결혼할 때 크게 넘어야 할 산이라고 이재명은 여겼다⁠.

김혜경은 듣자마자 웃었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요⁠?⁠”

김혜경은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토록 높던 산을 이재명은 이 자리에서 금방 넘었다⁠. 이 한마디가 그에게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됐다⁠. 한여름에도 긴팔만 입던 이재명은 아내를 만나 비로소 짧은 팔 셔츠를 입게 됐다고 훗날 적었다⁠. 이때 이재명은 서른이 훨씬 넘어 있었다⁠.

*

1991년 3월 30일⁠, 두 사람은 결혼했다⁠. 만난 지 7개월 만이었다⁠. 김혜경은 유학을 접었다⁠. 결혼 예물로 반지를 맞췄지만 예약금만 걸어 둔 채 돈이 없어 끝내 찾지 못했다⁠. 남편은 그런 데 돈 쓰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였다⁠. 이재명은 제주를 너무 좋아해서 신혼여행 때 가려고 일부러 아껴 두고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호텔은 7일을 예약했는데⁠, 너무 좋아서 4일을 더 늘렸다⁠. 의뢰인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재판을 다 미루고 11일 동안 제주 구석구석을 돌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손을 잡고 성남 상대원시장으로 갔다⁠. 남편이 청소를 하고 아내가 공중화장실을 지키던 시장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준 생활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며느리에게 국자 세트를 사 주었다⁠.

“⁠내가 사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데리고 시장 골목골목을 돌며 시장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신혼집은 성남의 주공아파트였고⁠, 변호사의 살림이었지만 월세로 시작했다⁠. 신혼살림을 차리자마자 첫아이가 들어섰다⁠. 풍요롭지는 않아도 살림을 하나씩 장만하는 재미가 있었다⁠. 신혼 3개월 때 날이 더워서 선풍기를 한 대 샀다⁠. 김혜경에게 이 선풍기는 나중에 에어컨을 샀을 때보다 좋았다⁠. 이 무렵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김혜경은 선풍기를 샀다고 자랑을 했다⁠.

출처 · 한국경제⁠, 2022년 1월 24일⁠, 「⁠이재명 “⁠김혜경 처음 만났을 때⁠.⁠.⁠” 직접 밝힌 소개팅 뒷이야기⁠」 · 조선비즈⁠, 2022년 1월 24일⁠, 「⁠청혼 후 소개팅 2번 더 나간 이재명 “⁠김혜경 앞에서 까불다 혼났다⁠”⁠」 · MBN⁠, 2022년 1월 24일⁠, 「⁠이재명 “⁠김혜경 만나고 7개월 뒤 결혼⁠.⁠.수다 떨 때 가장 행복⁠”⁠」 · 여성동아⁠, 2017년 1월 31일⁠, 「⁠〔#exclusive #interview〕 이재명 성남시장 부인 김혜경⁠」 · 중앙일보⁠, 2017년 3월 1일⁠, 「⁠〔여성중앙 3월호〕 이재명 성남시장의 아내 김혜경⁠」 · 중앙일보⁠, 2025년 5월 27일⁠, 「⁠“⁠웬 반지 낀 아재⁠? 총각 맞아⁠?⁠”⁠…이재명·김문수 아내들 이야기 〔대선주자 탐구〕⁠」 · 조선일보⁠, 2025년 6월 4일⁠, 「⁠피아노 전공한 김혜경 여사⁠, 李 ‘⁠일기장 프러포즈⁠’에 유학 포기하고 결혼⁠」 · 세계일보⁠, 2025년 6월 5일⁠, 「⁠“⁠첫눈에 반한 그 사람⁠”⁠…피아노 유학 포기하고 이재명 택한 김혜경⁠」 · 매경이코노미⁠, 2025년 6월 4일⁠, 「⁠“⁠김혜경에 첫눈에 반했다⁠”⁠…초짜 변호사의 결혼 성공 비결은 ‘⁠일기장⁠’⁠」 · 중앙일보⁠, 2021년 12월 7일⁠, 「⁠이재명 “⁠첫눈에 반한 김혜경⁠.⁠.다시 태어나도 이 여자와 결혼⁠”⁠」 · MBN⁠, 2017년 1월 28일⁠, 「⁠이재명 부부 첫 방송출연 “⁠연애도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 뉴시스⁠, 2021년 7월 17일⁠, 「⁠김두관⁠, ‘⁠팔 장애⁠’이재명 향한 軍미필 공격에 “⁠비열해⁠”⁠.⁠.⁠.이재명 “⁠고맙다⁠”(⁠종합⁠)⁠」 · 뉴스1⁠, 2026년 3월 30일⁠, 「⁠李대통령 “⁠오늘 결혼기념일⁠…제주 신혼여행⁠, 11일간 재판도 다 미뤘다⁠”⁠」 · 문화일보⁠, 2026년 3월 30일⁠, 「⁠李 “⁠오늘이 결혼기념일⁠” 제주 신혼여행 얘기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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