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6,962자) · 2024년 2월 27일~8월 18일, 계양과 용산

칠백 일

이재명의 삶 · 네오

2024년 2월 27일,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발표가 또 한 사람의 이름을 비켜 갔다. 국회에서 안규백 전략공천관리위원장이 서울 중·성동갑의 결과를 읽었다.

“서울 중·성동갑에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전략공천한다.”

그 지역구를 바라던 사람은 친문의 얼굴로 꼽히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같은 날 고민정 최고위원이 지도부를 떠나며 말했다. “지도부 안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 당 안에는 ‘유령 여론조사’와 ‘현역 하위 20% 평가’를 둘러싼 말이 돌았고, 친명계가 공천을 사사로이 주무른다는 ‘사천’ 논란이 그 뒤를 따랐다. 설훈 의원과 박영순 의원이 탈당을 선언했다. 김영주, 이수진 의원에 이어 공천을 앞두고 당을 떠난 현역들이었다.

비명계는 임종석이 잘려 나간 까닭을 다르게 읽었다. 당대표 이재명이 다음 당권과 대권을 두고 겨룰 사람을 미리 치우려 한다는 해석이었다. 의원총회에서는 이재명과 문재인을 함께 내걸던 명문 정당의 깃발이 사라졌다는 말까지 나왔다. 정필모 의원은 더 이상 불공정 경선을 할 수 없다며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장 자리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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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당 밖에서는 민주당 대표를 지낸 송영길이 따로 길을 내고 있었다. 그는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6,650만 원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불법 정치자금 7억 6,3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2023년 12월 19일 구속됐고, 2024년 1월 구속기소됐다. 재판은 아직 1심에 있었다. 3월 7일, 그는 갇힌 채로 소나무당을 만들었다.

3월 1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기자회견장에 소나무당 황태연 대표 권한대행이 섰다. 그는 송영길이 광주 서구갑에 출마한다고 대신 알렸다. 민주당의 위성정당 민주연합에 함께하려던 길은 열리지 않았다. 민주당에서 공식 답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황태연은 그 침묵을 이렇게 읽었다.

“이재명 대표가 송영길을 버린 것 같다.”

사흘 뒤 3월 14일, 광주시의회에서 송영길의 아내 남영신이 남편의 자필 선언문을 펼쳤다. 서울구치소에서 손으로 써 내보낸 글이었다. 선언문은 검찰을 정면으로 겨눴다. “윤석열·한동훈 검찰 카르텔은 정치적 반대자는 압수수색·구속하고 국민과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읽어 내려가던 남영신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송영길은 자신이 옥중에서 당선되면 표적·별건 수사로 대표되는 검찰 공포 정치가 끝나리라고 했다. 선언문의 끝은 부탁이었다. “검찰 독재에 흔들리지 않고 맞서는 정권 교체 희망의 소나무를 광주에 심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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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이튿날 새벽, 인천 계양구의 선거사무소에서 이재명은 아내 김혜경과 나란히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 두 사람이 화면 앞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사진에 남았다. 계양을의 상대는 국민의힘 원희룡 후보였다. 당선이 정해지자 그는 소감을 내놓았다.

“저에 대한 지역 유권자 여러분의 선택은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이기도 할 것이고 민주당과 저에 대해 민생을 책임지라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지역 발전을 이뤄내달라는 책임을 부과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당대표라 제 지역구에 다 마음을 쏟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국 지원을 다녀야 하지 않느냐고 권해 준 사람이 많았다. 그는 그 권고에 참으로 깊이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약속을 하나 보탰다. “계양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계양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부부는 함께 지지자들 앞에 나가 인사했다. 원희룡 후보는 페이스북에 계양 주민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적었다.

개표가 끝나자 숫자가 굳었다.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합쳐 175석을 얻었고,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합쳐 108석에 머물렀다.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이었고 녹색정의당은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지역구 254곳 가운데 민주당이 161곳, 국민의힘이 90곳을 가져갔다. 서울 48곳 중 37곳, 경기 60곳 중 53곳, 인천 14곳 중 12곳이 민주당이었다. 부산에서는 18곳 가운데 한 곳만 민주당이 이겼고, 호남 28곳은 전부 민주당이었다.

광주 서구갑에서 송영길은 14,292표, 17.38퍼센트를 얻었다. 민주당 조인철 후보가 68.42퍼센트로 이겼다. 소나무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은 0.43퍼센트였다.

같은 날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마이크 앞에 섰다. 넉 달 전 법무부 장관을 그만두고 당을 맡은 사람이었다.

“민심은 언제나 옳다. 국민의 선택을 받기에 부족했던 우리 당을 대표해 국민께 사과드린다.”

그는 선거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난다고 했다. 대통령실에도 책임이 있지 않으냐는 물음이 나오자 그가 답했다.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고, 그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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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오후 1시 30분쯤, 이재명을 태운 검은 카니발이 국회를 떠났다. 천준호 당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대변인이 배석자로 따랐다. 오후 2시쯤 차가 용산 대통령실 로비에 닿자 홍철호 정무수석이 로비에서, 정진석 비서실장이 현관에서 그를 맞았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720일 만에 두 사람이 처음 마주 앉는 자리였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회담은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대표 이후 약 6년 만이었다.

2층 집무실에는 대통령실이 내놓은 우엉차와 한과, 과일이 놓였다. 우엉차는 이재명이 좋아한다는 차였다. 대통령은 그가 앉을 의자를 손수 빼 주었다. 이재명은 파란 계열 넥타이에 태극기 배지를 달았다. 2023년 3월 정부가 강제동원 배상안을 발표했을 때 받은 뒤로 줄곧 달고 다닌 배지였다. 대통령과 정진석, 홍철호의 넥타이는 붉은 계열이었다.

“아이고, 대통령님.”

“오랜만입니다.”

대통령은 선거운동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다들 건강은 회복했느냐고 물었다. 이재명은 아직 회복이 많이 필요하다고 답하고 고맙다고 했다. 가덕도에서 그의 목에 칼이 들어온 지 넉 달이 채 되지 않았다. 그가 날씨를 꺼냈다. “오늘 비가 온다고 했던 거 같은데 날씨가 좋은 것 같다.” 대통령이 받았다. “이 대표님하고 만나는 걸 우리 국민들이 다 고대하셨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좋은 날씨는 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

덕담이 끝나자 이재명이 검은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두툼한 A4 원고가 나왔다. 열 장이었다. 자리를 뜨려던 기자들을 그가 불러 세웠다.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께 드릴 말씀을 써 가지고 왔다. 대통령님 말씀 먼저 듣고 말씀드릴까 했는데.” 대통령이 말했다. “손님 말씀 먼저 들어야죠. 말씀하시죠.”

그는 원고를 읽기 전에 한마디를 얹었다. “저희가 오다보니까 한 20분정도 걸리는데 실제 여기 오는데 한 700일이 걸렸다.” 대통령이 소리 내어 웃었다. 이어 그가 말했다. “저는 정말로 대통령님께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다음 십오 분 넘게, 그는 원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5,400자였다. 이번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은 잘못된 국정을 바로잡으라는 준엄한 명령이라고 했다.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저의 입을 빌린 우리 국민들의 뜻이다.”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이태원 참사 특별법, 채 상병 특검법이 차례로 나왔다. 그는 스웨덴의 한 연구기관 이야기도 꺼냈다.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평가받던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서 스웨덴 연구기관이 독재화가 진행 중이다, 이런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합니다.” 원고는 대통령의 가족에게까지 닿았다.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 갔다. 이따금 고개만 끄덕였다.

원고의 끝에서 그는 정치가 추한 전쟁이 아니라 아름다운 경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리고 한 문장을 읽었다.

“상대를 죽이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문장을 읽은 사람은 1월 2일 부산 가덕도에서 왼쪽 목을 찔리고 살아 돌아온 사람이었다. 칼은 1.4센티미터의 상처를 내고 근육 속 동맥을 끊었다. 1월 10일 병원 문을 나서던 날, 그는 국민이 살려 준 목숨이라 남은 생은 국민을 위해서만 살겠다고 했다.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전쟁 같은 정치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도 했다. 넉 달 뒤, 그 사람이 대통령의 탁자 앞에서 이 문장을 원고에 적어 와 읽었다.

“일방적인 말씀인데 긴 시간 들어주셔서 고맙다.” 대통령이 답했다. “평소에 우리 이 대표님과 민주당에서 강조해오던 얘기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문이 닫힌 뒤로 2시간 15분이 흘렀다. 누가 더 많이 말했는지를 두고 셈이 갈렸다. 민주당은 대통령과 이재명의 발언이 85대 15쯤이었다고 했고, 홍철호 정무수석은 7대 3이라고 했다. 민생회복지원금에 대해 대통령은 선을 그었다. “물가, 금리, 재정 상황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지금은 어려운 분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오후 4시 10분을 조금 넘겨 회담이 끝났다. 합의문은 없었고 독대도 없었다. 두 사람은 2층 로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회담 뒤 이재명은 짧게 말했다.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박성준 수석대변인도 말을 보탰다. “회담에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실 쪽 홍철호는 회담이 갑자기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이 대표가 과한 표현도 쓰다 보니 대통령이 웃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

5월 30일 오후 5시쯤, 송영길이 경기 의왕의 서울구치소 문을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가 보석을 허가해 구속 163일 만이었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혐의를 다투겠다고 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성실히 임하고, 최선을 다해 무죄를 입증하도록 노력하겠다.”

6월 말, 이재명은 연임에 도전하려고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7월 10일 출마를 선언하며 그는 한 단어를 내걸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여야 한다.” 맞수 김두관은 민주당이 제왕적 1인 정당이 됐다고 몰아세웠다. 이재명은 당원이 선택한 것을 제왕적이라 부르는 건 오해라고 받았다.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것이 제왕이라고 할 수 없다.”

8월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민주당 제1차 정기전국당원대회가 열렸다. 정견 발표에서 그는 정권의 불법과 부정 때문에 민생경제와 외교, 안보, 민주주의가 모두 퇴행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다. 작은 차이를 넘어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자.”

결과가 발표됐다. 이재명 85.40퍼센트, 김두관 12.12퍼센트, 김지수 2.48퍼센트였다. 권리당원에서 88.14퍼센트,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85.18퍼센트를 받았고, 대의원에서는 74.89퍼센트였다. 2년 전 그가 세운 77.77퍼센트를 넘어선 숫자였고, 김대중 이후 민주당 계열에서 처음 나온 대표 연임이었다. 그는 당기를 들어 흔들었다. 수락연설에서 그는 두 사람을 불렀다.

“민주당 신임 대표로서 윤석열 대통령께 영수회담을 제안한다.” 곧이어 그는 여당 대표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께도 대표회담을 제안한다.”

중앙일보는 이재명 일극 체제가 완성됐다고 썼다. 그 체제가 넘어야 할 산으로는 중도층과 함께 재판이 꼽혔다. 그는 일곱 개 사건, 열한 개 혐의로 네 개의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중 공직선거법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의 1심 선고가 가을로 다가오고 있었다.

출처 · 한겨레, 2024년 2월 28일, 「임종석도 컷오프…민주당, 불붙은 ‘공천 화약고’」 · 뉴스1, 2024년 3월 11일, 「옥중 송영길, 광주 서구갑 출마 선언…민주 위성정당 참여는 불발」 · 머니투데이, 2024년 3월 11일, 「‘소나무당’ 옥중 창당 송영길, 광주 서구 출마…변희재·최대집 영입」 · 국민일보, 2024년 3월 14일, 「〔포착〕송영길, 광주 서구갑 ‘옥중 출마’…눈물 보인 부인」 · 시사저널, 2024년 3월 14일, 「송영길 “희망의 소나무 광주에 심어달라”…광주 서구갑 ‘옥중 출마’」 · 아시아경제, 2024년 4월 11일, 「옥중창당·옥중출마…송영길과 소나무당 성적표는?」 · YTN, 2024년 4월 11일, 「22대 총선 개표 완료...민주 175석·국민의힘108석 확정 〔2024 총선〕」 · 오마이뉴스, 2024년 4월 11일, 「‘재선’ 이재명 “정권심판뿐 아니라 민생·지역발전 책임도 주셨다”」 · 뉴시스, 2024년 4월 11일, 「이재명, 인천 계양을 당선 확실…“국정 퇴행 멈추게 할 것”〔4·10 총선〕」 · 연합뉴스, 2024년 4월 11일,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부족한 당 대표해 국민께 사과”(종합)」 · 경향신문, 2024년 4월 29일, 「태극기 배지달고 “독재화” 언급한 이재명···비공개에서 윤 대통령이 85% 발언」 · 중앙일보, 2024년 4월 29일, 「이재명 의자도 직접 빼준 尹, 5400자 청구서에 표정 굳어졌다」 · 경향신문, 2024년 4월 29일, 「720일 만의 영수회담, 성과없이 끝났다」 · 오마이뉴스, 2024년 4월 29일, 「윤 대통령 만난 이재명 “상대 죽이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정치 보여주자”」 · 경향신문, 2024년 1월 4일, 「이재명 집도의 “1.4cm 자상, 어려운 수술···부산대병원서 전원 요청”」 · 경향신문, 2024년 1월 10일, 「퇴원 이재명 “죽임의 정치 끝내야”…당 분열·지지율 당면 과제」 · 연합뉴스, 2024년 5월 30일, 「법원, ‘돈봉투 의혹’ 송영길 보석 허가…163일만에 석방(종합)」 · 파이낸셜뉴스, 2024년 5월 30일, 「‘돈봉투 의혹’ 송영길 보석 석방…“최선 다해 무죄 입증할 것”」 · 경향신문, 2024년 7월 10일, 「이재명 “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 · 연합뉴스, 2024년 8월 18일, 「민주당 대표에 이재명…역대 최고득표율 85%로 DJ 이후 첫 연임(종합)」 · 한겨레, 2024년 8월 18일, 「DJ 이후 첫 대표 연임 이재명 “더 유능한 민생 정당돼야”」 · 중앙일보, 2024년 8월 18일, 「이재명 일극체제 완성…중도 확장-10월 1심 판결 ‘넘을 산’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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