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821자) · 2025년 1월 3일~15일, 한남동
은박 담요
이재명의 삶 · 네오
2025년 1월 3일 오전 6시 10분을 조금 넘겨,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청사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차량 다섯 대가 나섰다. 그랜저와 K5 승용차, 카니발 승합차에 수사관 20여 명이 서너 명씩 나눠 탔다. 공수처 청사 3층에는 영상조사실이 마련돼 있었고, 조사를 맡을 두 부장검사는 100쪽이 넘는 질문지를 준비해 두었다. 차 안에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있었다. 대통령이 세 차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자, 서울서부지방법원이 2024년 12월 31일 발부한 영장이었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경호처가 막아설 경우를 두고 미리 말해 두었다. “경호처에 집행 방해시 특수공무집행 방해로 의율할 수 있음을 이미 경고했다.”
7시 20분께 차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도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관저 근처에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이른 새벽부터 모여 있었다. 안전모를 쓰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이들은 경찰과 맞서며 「문재인 이재명 구속」, 「경찰은 길을 열어라」, 「경호처 힘내라」를 외쳤다. 관저 입구는 경호처가 버스와 차량으로 막아 두었다. 공수처 수사팀은 관저 앞에서 기다렸고, 7시 50분께 경호처 쪽 사람과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오전 8시 4분, 공수처가 기자단에 공지를 보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은 헌정사에서 처음이었다. 공수처 30명과 경찰 50명, 80명이 관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경찰 70명은 관저 밖에서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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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저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1차 저지선과 2차 저지선을 지나 관저 건물 앞까지 갔다. 거기서 길이 막혔다.
경호처 직원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저지선에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55경비단과 33군사경찰경호대 병력이 인간띠로 동원돼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군 병력이 앞을 막아서자 공수처와 경찰은 크게 당황했다. 공수처는 박종준 경호처장에게 체포영장과 수색영장을 내보이고 협조를 요청했다. 박 처장은 경호법과 경호구역을 이유로 마지막까지 수색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치하는 사이 관저 밖에 있던 경호처 인원 50여 명이 안으로 보강됐다.
관저 밖 집회 무대에서는 다른 소식이 돌았다. 군 경호대가 공수처와 대치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자 무대의 발언자가 외쳤다. “우리는 우리의 대통령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다섯 시간이 넘도록 아무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후 1시 30분쯤 공수처가 집행을 멈췄고, 1시 40분에 기자단에 이 결정을 알렸다.
“금일 체포영장 집행과 관련, 계속된 대치상황으로 사실상 체포영장 집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집행을 막는 과정에서 현장 인원들의 안전이 걱정됐다고 공수처는 덧붙였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더 보탰다. “법에 의한 절차에 응하지 않은 피의자의 태도에 심히 유감을 표한다.” 다섯 시간 삼십 분 넘는 대치 끝에 수사관들이 관저를 나왔다. 공무집행방해로 체포된 사람은 없었다. 관저 근처의 지지자 수천 명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우리가 이겼다」고 환호했고, 「만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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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말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불법적인 영장 집행 과정의 위법 상황에 법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영장 집행 시도를 공수처와 정치 판사의 부당한 거래로 이뤄진 월권적인 행위라고 불렀다. 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더 심하게 다뤄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앞서 한 말을 다시 꺼냈다. “법적·정치적 책임을 다하겠다던 발언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박찬대는 이어 요구했다. “체포영장 집행을 가로막는 자들을 현행범으로 즉각 체포하라.”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최상목 부총리를 향해 말했다. “지금 즉시 경호처에 영장 집행 협조를 지시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영장이 정상 집행되도록 하라.”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한 문장을 냈다. “공수처의 적법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은 경호처는 국가기관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군 병력을 사적으로 동원해 정당한 공무집행에 저항하는 것은 명백한 국헌문란이라고 했다.
체포영장의 유효기간은 1월 6일까지였다. 관저의 차벽 앞에서 사흘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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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서울 전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이른 새벽부터 눈발이 날렸다.
이틀 전 영장을 막아 낸 쪽의 환호가 울렸던 이 한남대로, 관저 앞 차선 바닥에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연 집회였다. 이들은 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을 빨리 체포하고 구속하라고 요구했다. 눈발이 날리는 동안 이들은 은박 담요로 몸을 꽁꽁 싸맨 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얇은 은박이 바스락거렸다. 은박 담요를 뒤집어쓰고 줄지어 앉은 모습은 은박지로 싼 초콜릿, 키세스를 떠올리게 했다. 담요를 두른 사람들끼리 소시지를 나눠 먹었다.
이날 오전 엑스에 사진과 함께 글 하나가 올라왔다.
“국민들 키세스 됐다! 내란 수괴는 국민 그만 고생시키고 빨리 나와라!”
화면으로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이름을 붙였다. 「키세스 동지」, 「한남동 키세스 시위대」였다. 누군가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키세스들」이라고 적었다. 현장에 오지 못한 사람들은 민주노총 등에 후원금을 보내고 이 내역을 올리며 눈 속의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관저의 차벽 안에서 영장은 멈춰 있었고, 차벽 밖 아스팔트 위에서 시민들은 은박을 두르고 밤을 새웠다.
1월 6일 공수처가 체포영장을 다시 청구했고, 이튿날 서울서부지법이 영장을 다시 발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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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오전, 박종준 경호처장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출석했다.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였다. 출석하며 박종준이 말했다.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물리적 충돌이나 유혈사태가 일어나선 안 된단 생각으로 그동안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여러 차례 전화 드려 정부기관 간 중재를 건의 드렸다.”
그러면서도 박종준은 영장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 신분에 걸맞은 수사 절차가 진행돼야 하고, 지금 같은 체포영장 집행 방식은 아니라고 했다. 조사에 앞서 사직서를 냈고, 최상목 권한대행이 오후 4시께 사표를 수리했다. 경호처는 김성훈 경호차장이 대행하게 됐다. 같은 날 MBC 라디오는 관저에서 근무하는 경호처 직원이 지인에게 보냈다는 메시지를 공개했다. 대다수 직원은 명령이라 마지못해 이 자리에 있고, 그냥 열어 줄 수 없으니 서 있는 정도라는 내용이었다. 관저 경비를 맡은 군과 경찰은 경호처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이미 밝혀 두었다. 국방부는 체포영장 저지에 병력을 투입한 것은 부적절했다며 2차 집행에는 협조하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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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첫 변론은 사 분 만에 끝났다. 이튿날인 1월 15일 새벽, 공수처와 경찰이 다시 관저 앞에 섰다. 전날 밤 관저 앞에서 연좌 농성에 들어간 윤 대통령 지지자 50여 명을 기동대가 해산해, 체포조가 들어갈 길은 미리 터 두었다.
이번에는 숫자가 달랐다. 1차 때 120명이던 경찰 인원이 여덟 배가 넘는 1천 명 선으로 늘었다. 현장 경험이 많은 서울과 수도권 광역수사단 형사들이 들어왔고, 진입조와 체포조와 호송조가 미리 나뉘었다. 차벽과 철조망으로 요새가 된 관저에 들어가려고 사다리와 절단기도 챙겼다. 모두가 예상한 관저 정문 말고 관저 뒤 매봉산 등산로로 들어가는 길도 계획해 경호처의 시선을 흩뜨렸다. 관저 주변에는 기동대 54개 부대 3,200여 명이 배치됐다. 1차 때는 45개 부대 2,700여 명이었다.
공수처가 관저 앞에서 영장을 제시했다. 경찰이 사다리를 걸치고 차벽을 넘었다. 1·2·3차 저지선은 대부분 차벽이었다. 열이틀 전 인간띠를 이뤘던 수방사 병력은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경호처 직원으로 보이는 몇몇이 관저 입구에 모였지만, 들어가는 과정에서 충돌은 없었다. 영장을 제시하고 세 시간쯤 지나 수사관들이 3차 저지선을 넘었다.
오전 10시 33분, 비상계엄 공조수사본부가 공지를 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는 짧은 문장이었다. 대통령은 경호처 차량을 타고 과천의 공수처로 갔고, 청사 뒤쪽 출입구로 들어갔다. 현직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체포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관저 밖 집회는 별다른 충돌 없이 끝났다.
대통령은 체포되기 전 영상 하나를 녹화해 두었다. 영상 속에서 윤석열이 말했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습니다.”
윤석열은 관저를 나서는 까닭을 이렇게 댔다. “불미스러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서 일단 불법 수사이기는 하지만 공수처 출석에 응하기로 했습니다.” 영장을 두고는 한 문장에 같은 낱말을 세 번 겹쳤다. “이런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무효인 영장에 의해서 절차를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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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권성동 원내대표가 먼저 사과했다. “이런 참담한 상황이 벌여져 국격이 무너진 데 대해 대단히 죄송하고 유감스럽다.” 권성동은 곧바로 영장을 겨눴다. “수사를 위한 체포인지 체포를 위한 체포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름 넷을 차례로 불렀다.
“오동운 공수처장, 우종수 국수본부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제 속 시원한지 묻고 싶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냈다. 두 번째 영장에 형사소송법 제110조와 제111조 조항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집행을 강행한 것은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등 명백한 불법이라고 했다.
이 이름 가운데 하나인 이재명은 이날 말을 아꼈다. 예정돼 있던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했고, 지도부도 공개 발언을 하지 않았다. 의원총회장에서 이재명은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공수처로 향하는 뉴스 화면을 바라봤다. 한 민주당 관계자가 이 침묵의 까닭을 전했다. “정국 상황이 엄중한 만큼 지도부부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의원총회를 마치고 나오자 기자들이 체포를 물었다. 이재명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제는 신속하게 헌정 질서를 회복하고 민생과 경제에 집중할 때라고 했다. 이날 오후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모인 비공개 회의에서 이재명은 단체장들에게 부탁했다. 이 자리에 있던 신정훈 의원이 이재명의 말을 전했다.
“탄핵 정국 하에서 민생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지방 정부가 민생을 좀 챙겨달라.”
같은 날 소상공인위원회 발대식에 보낸 서면 축사에는 골목이 살아야 경기가 살아난다고 적었다. 소비를 살릴 지역화폐 발행을 위한 추경에 더 힘을 쏟겠다는 약속도 거기 있었다.
열흘 전 눈 내린 한남대로에 은박 담요를 쓰고 앉았던 사람들이 바란 일이 이날 오전 관저 안에서 이뤄졌다.
출처 · 오마이뉴스, 2025년 1월 3일, 「공수처, 5시간 30분 대치 끝에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 중지」 · 뉴스1, 2025년 1월 3일, 「尹 체포 불발…민주 ‘경호처 내란공범’ 국힘 ‘공수처 월권’(종합)」 · 한겨레, 2025년 1월 5일, 「한남대로에 등장한 ‘인간 키세스’…“웅장하고 아름답다”」 · 시사저널, 2025년 1월 10일, 「‘尹 체포’ 경호처 저지선 균열?…내부 동요 속 박종준 사퇴」 · 연합뉴스, 2025년 1월 15일, 「수월한 관저 진입 후 尹 체포까지…1차 시도와 어떻게 달랐나」 · 뉴스1, 2025년 1월 15일, 「〔일지〕 45년만의 비상계엄→헌정사 첫 현직 대통령 체포 ‘44일’」 · 경향신문, 2025년 1월 15일, 「윤석열 내란죄 수사 40일 일지…버티고 버티다 ‘체포 망신’ 자초」 · 한겨레, 2025년 1월 15일, 「체포된 윤석열 “불법의 불법의 불법”…600자 최후 메시지」 · 한겨레, 2025년 1월 15일, 「“공수처 불법” 우기는 국힘…권성동 “이재명 이제 시원하냐”」 · 연합뉴스, 2025년 1월 15일, 「이재명 “이제 신속하게 헌정질서 회복하고 민생·경제 집중”(종합2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