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6,322자) · 2023년 9월 20일~27일, 국회와 서울구치소

정문 앞 30미터

이재명의 삶 · 네오

2023년 9월 20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의 병상에서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단식 21일째를 맞고 있었다. 국회 본관 앞 천막에서 시작한 단식은 이틀 전 병원으로 옮겨 와서도 멈추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는 백현동 개발 특혜의 배임, 검사 사칭 재판을 둘러싼 위증교사, 쌍방울 대북송금의 뇌물 혐의로 그의 구속영장을 청구해 둔 터였다. 회기 중인 국회의원을 구속하려면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했고, 국회는 이튿날 체포동의안을 표결하기로 했다.

그날 그는 페이스북에 부결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명백히 불법부당한 체포동의안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검찰독재의 폭주기관차를 국회 앞에서 멈춰 세워 달라.”

같은 날 그는 범죄 증거가 충분하다면 표결이 필요 없는 비회기 중에 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맞다고도 했다. 석 달 전인 6월 19일, 그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저를 향한 정치 수사에 대해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겠다는 약속도 그 연설에 들어 있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그 약속을 꺼내 들었다. 당당하게 걸어가겠다던 사람이 국민을 속이고 거짓말을 했다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안에서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비이재명계 의원이 같은 연설을 되짚었다. 6월 연설에서 한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로 갔느냐는 말이 의원들 사이에 돈다고 했다. 다른 곳도 아닌 국회 대표연설에서 한 대국민 약속이었다는 말이었다. 민주당 의원총회는 당론을 정하지 않았고, 의원 각자가 판단하기로 했다.

*

9월 21일,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앞에 이 대표 지지자들이 모였다. 친이재명계 원외단체 더민주전국혁신회의가 연 집회였고, 주최 측은 1,000명으로 신고했지만 오후 2시를 넘기며 사람이 불어났다. 경찰은 4,000여 명으로 셌다.

오후 2시 무렵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연단에 올랐다. 그는 가결을 주장하는 의원들을 역사가 기억할 것이라며 부결을 외쳤다. 그 자신도 검찰 수사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2021년 전당대회 때 그의 캠프에서 돈봉투가 오갔다는 의혹이었다. 다섯 달 전인 4월 22일, 그는 프랑스 파리의 한 사무실에서 기자들 앞에 섰다.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고 오늘부로 민주당을 탈당하고자 한다.”

그리고 귀국해 검찰 조사에 임하겠다고 했다. 그의 외곽 조직 「평화와 먹고사는 문제 연구소」가 불법 후원금 창구였다는 의혹에는, 한 푼도 그 연구소의 돈을 쓴 적이 없다며 부인해 왔다. 이틀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2부 법정에서는 그의 캠프에서 일한 강래구 측 변호인이 당대표 선거의 형사책임은 최종적으로 총괄 라인인 송영길이 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날 본회의장에는 세 자리가 비었다. 병상의 이재명, 미국 순방을 수행 중인 박진 외교부 장관, 그리고 수감 중인 윤관석 의원의 자리였다. 검찰은 송영길 캠프에서 일한 강래구 전 한국감사협회장이 의원들에게 줄 몫으로 300만 원씩 든 돈봉투 20개, 모두 6,000만 원을 윤관석에게 건넸다고 보고 있었다.

본회의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체포동의 이유를 설명했다.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민주당 의석에서 항의가 터졌고, 고성이 본회의장을 오갔다. 재적 298명 가운데 295명이 투표했다.

오후 4시 42분,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의 스크린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찬성 149, 반대 136, 기권 6, 무효 4.

가결 정족수 148표를 한 표 넘긴 숫자였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가 야당 대표의 체포에 동의했다. 민주당에서 최소 29명이 찬성했고, 기권과 무효까지 더하면 서른아홉 명이 이탈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회 앞 지지자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망연자실한 얼굴들 사이로 이상하리만큼 차분한 공기가 한참 이어졌다. 스크린이 본회의 중계를 끝내고 집회장을 비추자, 곳곳에서 여성 지지자들이 눈물을 쏟았다. 얼마 뒤 성난 외침이 터졌다. “당사라도 부수자.” “민주당 의원들이 사람이냐.” 오후 5시 15분쯤 사람들은 민주당사로 몰려가 문을 열라고 외쳤고, 경찰과 몸이 부딪쳤다.

*

본회의장을 나온 민주당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눈물을 보였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 많이 놀랍고 충격적이라고 했다. “지도부가 의원들에게 여러차례 부결을 호소했는데도 다른 결과가 나와 안타깝게 생각한다.”

놀란 쪽은 국민의힘도 같았다. 본회의장에서 김기현 대표와 이철규 사무총장은 웃는 얼굴이었지만, 수석대변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부결을 예상하고 규탄대회를 준비해 두었다가 없던 일로 하고 비공개 의원총회만 열기로 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이 말했다. “저희들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방탄을 위한 그 어떤 꼼수도 법치를 피해 갈 수 없음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같은 본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도 찬성 175표로 가결됐다.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넘은 것도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그날 밤 박광온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가 모두 물러났다. 조정식 사무총장도 사의를 밝혔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표결 결과가 지도부의 논의와 요청, 설득과 다른 방향으로 나와 그 모든 상황에 책임을 진다고 설명했다. 밤 11시 50분께 최고위원회는 입장문을 내고, 본회의 가결 투표를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해당행위로 규정했다.

이튿날 아침, 송영길은 BBS 라디오에 나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때와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고 했다. “걱정은 했지만 설마 (가결)될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부터 30여 명 의원들이 보여 온 일관된 행태가 또 확인됐다고 했다.

9월 23일, 의료진이 즉각 단식을 멈추라고 강하게 권고했다. 이재명은 24일 만에 단식을 끝내고 회복 치료에 들어갔다. 법원에는 나가겠다고 했다.

*

9월 26일 아침 8시 30분께, 녹색병원 앞에 민주당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정청래·고민정·박찬대·서영교·서은숙 최고위원, 조정식 사무총장, 정태호 민주연구원장, 천준호 비서실장, 김영진 정무조정실장, 박홍근·조오섭 의원이 그를 배웅했다. 박찬대는 눈물을 훔쳤다. 단식을 끝낸 지 사흘째 되는 아침이었다.

오전 10시 3분, 카니발 한 대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서관 앞에 닿았다. 빗길 탓에 예정보다 20분가량 늦었다. 이재명은 검은 정장에 넥타이 없이 차에서 내렸다.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왼손에는 우산을 쥐었다. 걸음은 몇 번이나 비틀렸지만 그는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고 20미터를 걸었다. 그는 땅만 보며 걷다가 포토라인에서 잠시 고개를 들었고, 기자들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았다. 차 문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구십 초가 걸렸고, 박균택 변호사가 그 곁을 따랐다. 석 달 전 국회 연단에서 말한 대로, 그는 제 발로 영장심사 법정에 들어갔다.

심문은 아홉 시간 이십 분 동안 이어졌다. 검찰은 영장청구서에 이렇게 적었다.

「피의자에게는 11년 이상 36.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어야 한다」

오후 7시 50분, 심문이 끝났다. 그는 경기 의왕의 서울구치소로 옮겨져 결과를 기다렸다. 구치소 앞에는 지지자들이 모여들었고, 비는 밤이 깊도록 그치지 않았다.

*

9월 27일 새벽 2시 24분께,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쉰 살, 사법연수원 29기로 법조계에서 꼼꼼한 원칙주의자로 불리는 판사였다. 2월의 첫 영장도 그에게 배당됐었다. 그때는 체포동의안이 부결돼 심사가 열리지 않았다.

판단은 혐의마다 갈렸다.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백현동 사업에서 공사의 참여를 배제한 부분에는 관여를 의심할 만하지만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대북송금에 대해서는 이렇게 적었다.

「핵심 관련자인 이화영의 진술을 비롯한 현재까지 관련 자료에 의할 때 피의자의 인식이나 공모 여부, 관여 정도 등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

위증교사와 백현동은 이미 확보된 사람과 물건의 자료에 비추어 증거를 없앨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결론은 한 문장이었다.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하여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울중앙지검은 곧바로 입장을 냈다. 이화영의 진술을 근거로 다툼의 여지를 말한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위증교사가 소명됐는데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는 것은 앞뒤가 모순이라고 했다.

*

새벽 3시 50분께, 서울구치소 안쪽에서 휠체어 한 대가 정문 쪽으로 나왔다. 교도관들이 곁을 따랐다. 정문을 30미터쯤 앞두고 휠체어가 멈췄다. 이재명은 부축을 받아 일어섰고, 거기서부터 걸었다. 정문에 이르자 그는 곁을 따라온 교도관들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정문 밖에서는 수백 명이 일곱 시간 넘게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기각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들은 울면서 서로를 끌어안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출입문 앞에 줄지어 섰다. 지지자들은 「이재명」을 외쳤다.

그는 차에 올랐다. 차는 100미터도 가지 못하고 멈췄다. 비에 젖은 사람들을 보고 그가 다시 내렸다.

“이 늦은 시간에 함께해주신 많은 분들, 그리고 아직 잠 못 이루고 이 장면을 지켜보고 계실 국민 여러분 먼저 감사드립니다. 역시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아도 국민들이 하는 겁니다.”

그는 사법부에도 고개를 숙였다.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증명해주신 사법부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정치 쪽을 향해 말했다. “이제는 상대를 죽여 없애는 전쟁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를 경쟁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로 되돌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는 명절 이야기도 꺼냈다.

“이제 모레면 즐거움이 마땅한 추석이지만 우리 국민들의 삶은, 우리의 경제 민생 현황은 참으로 어렵기 그지 없습니다.”

*

날이 밝자 국민의힘은 비상 의원총회를 열었다. 김기현 대표는 권력의 유무로 구속 여부를 정하는 「유권석방 무권구속」이라고 했고, 사법부가 정치 편향적인 일부 판사들에게 오염됐다는 것이 다시 드러난 날이라고 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극렬 지지층에 휘둘린 오늘 결정이 두고두고 오점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관련자 네 명이 숨졌는데 증거인멸 우려가 없느냐는 글과 법복을 벗으라는 글이 올라왔다. 온라인에서는 판사가 나라를 구했다는 글과 판사를 향한 욕설이 나란히 쏟아졌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유창훈을 흔들림 없이 단단한 법관이라고 했다. 기록을 꼼꼼히 보고 신중하게 판단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같은 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는 송영길 전 대표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정치자금법 위반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였다.

추석은 이틀 뒤였다.

출처 · 한겨레, 2023년 9월 20일, 「이재명, 국회 표결 하루 전 체포안 ‘부결’ 호소…단식 취지 ‘퇴색’」 · 연합뉴스, 2023년 9월 18일, 「이재명 이송된 ‘녹색병원’…야권·노동계 단식투쟁 후 찾은 곳」 · 뉴시스, 2023년 9월 19일, 「‘돈봉투 의혹’ 강래구 “형사책임, 송영길이 져야” 주장」 · 동아일보, 2023년 9월 21일, 「“지키자 이재명”…이재명 체포동의안 표결 앞두고 국회 앞 압박 시위」 · 한국일보, 2023년 4월 23일, 「송영길 “모든 정치적 책임 지고 탈당… 24일 귀국, 검찰 조사 임할 것”」 · 한겨레, 2023년 9월 21일, 「이재명 체포 동의안 가결…찬성 149표, 정족수 1명 넘어」 · 중앙일보, 2023년 9월 21일, 「민주당 최소 29명 반란표 던졌다…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 오마이뉴스, 2023년 9월 21일,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에 ‘표정 관리’ 국힘 “솔직히 예상 못 했다”」 · 데일리안, 2023년 9월 22일, 「“당사라도 부수자” “민주당 의원들이 사람이냐”…개딸들, 눈물 보이며 경찰에 고성」 · 한겨레, 2023년 9월 22일,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혼돈의 민주당…원내지도부 사퇴」 · 헤럴드경제, 2023년 9월 22일, 「송영길,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에 “‘노무현 탄핵’ 기시감, 너무 충격적”」 · 한겨레, 2023년 9월 23일, 「이재명, 의료진 강력 권고에 단식 중단…“법원 출석할 것”」 · 연합뉴스, 2023년 9월 26일, 「‘구속갈림길’ 이재명, 지팡이 짚고 비틀…말없이 영장심사장에」 · 오마이뉴스, 2023년 9월 27일, 「“구속사유·필요성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 · 중앙일보, 2023년 9월 27일, 「‘이재명 영장 기각’ 유창훈 부장판사 누구…“꼼꼼한 원칙 주의자”」 · 서울신문, 2023년 9월 27일, 「“판사가 나라 구했다” vs “판사XX” 이재명 영장 기각 유창훈은 누구?」 · 경향신문, 2023년 9월 27일, 「검, ‘돈봉투 의혹’ 송영길 자택 압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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