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6,254자) · 2023년 8월 31일~9월 23일, 국회와 녹색병원
혼자 몸이 아니고
이재명의 삶 · 네오
2023년 8월 31일은 이재명이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된 지 한 해가 되는 날이었다.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말했다.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
이어서 그는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다고 했다. 마지막 수단이라는 말이 앞에 붙었다. “오늘부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 항쟁을 시작하겠다.”
그날 오후 1시, 국회 본관 앞에 천막이 섰다. 천막에 걸린 현수막에는 「무너지는 민주주의 다시 세우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차림으로 탁자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박광온 원내대표와 조정식 사무총장, 최고위원들이 곁에 앉았다.
요구는 세 가지였다. 민생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데 대해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할 것, 일본 오염수 방류에 반대한다고 밝히고 국제해양재판소에 제소할 것, 국정을 전면 쇄신하고 내각을 바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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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그는 천막 안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많은 의원이 꼭 이렇게까지 단식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데, 자기 답은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천막 둘레는 처음부터 둘로 갈렸다. 「개딸」이라 불리는 지지자들 사이로 보수 유튜버들이 섞여 들었다. 유튜버들은 천막을 향해 외쳤다. “단식 전에 법인카드로 먹은 초밥부터 뱉어내자.” “이제 그만 감옥 가자.” 지지자들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성희롱성 구호로 맞받았다. 그 어지러운 광경이 여섯 시간가량 이어졌다.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그 단식을 단식쇼라 부르며 검찰 수사를 막으려는 또 다른 사법 방해라고 했다. “단식을 통해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개딸들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무언의 압박에 불과하다.” 당 안에서도 냉소가 나왔다. 한 비명계 의원은 누가 봐도 본인 사법리스크 때문에 개딸들을 총동원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비명계 의원은 정기국회에서 야당에 유리한 이슈를 다 잡아먹는 악수 중의 악수라고 했다.
그 오후 정기국회 본회의에 다녀온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사오 분 통화했다. 문재인은 윤석열 정부의 폭주가 너무 심해 제1야당 대표가 단식하는 상황이 염려스럽다며 마음으로 응원을 보낸다는 뜻을 전했다. 이재명은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전쟁하는 형국이라 더 이상 고를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했고,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같은 날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조사 일정을 두고는 검찰과 신경전이 오갔다. 이재명 측은 4일 오전에 먼저 조사를 받겠다고 했고, 검찰은 오전 두 시간 만에 조사를 끝낼 수는 없으니 준비한 조사를 다 하겠다고 변호인에게 알렸다. 저녁이 되자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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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오후, 김진표 국회의장이 천막을 찾았다. 그는 날이 덥고 습한데 견디기 힘들지 않으냐고 먼저 물었다. 이재명이 답했다.
“더운 것이야 견디면 되는데 미래도 암울하고, 정치가 사라지는 것 같다.”
의장은 위로만 하고 돌아가지 않았다. “국회가 순리대로 못 가서 이 대표가 여기에 앉아있는 것 같다.” 그는 대통령의 거부권이 예고된 법안을 민주당이 거듭 단독으로 처리하는 것이 과연 나라를 위해 옳으냐고 물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열 가지 가운데 예닐곱이라도 살리고 서넛은 양보하는 타협이 의회민주주의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국민은 정치에서 어느 한쪽만 잘못했다고 보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이재명은 국무위원들이 국회에 와서 도발하는 것을 한 번쯤 막아 달라고 되받았다. 의장이 너무 무리하지 말고 건강에 유의하라고 하자, 그는 고맙다며 많이 도와 달라고 했다.
이틀 뒤 오전에는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왔다. 이만큼 각오를 보였으니 이제 단식을 접고 실질적인 방법을 함께 찾자는 말이었다. 이재명의 답은 바뀌지 않았다. “정치가 아니라 전쟁을 하는 정부를 합리적인 논쟁으로 막을 수 없기에 단식을 중단할 수 없다.” 9월 8일에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김동연 경기지사가 천막에 들렀다. 김동연이 말했다. “(정부여당이) 곡기를 끊게 할 게 아니라 끊어진 대화를 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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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오전 10시 20분께, 단식 열흘째의 이재명이 수원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차에서 내렸다. 그는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손을 흔들었다. 우원식, 조정식, 정청래, 박찬대 의원을 비롯한 열여섯 명 남짓이 곁에 있었다. 쌍방울 그룹의 대북송금과 관련한 제3자 뇌물 혐의 조사였다.
청사 앞에서 그는 대통령을 향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내각 총사퇴로 국정을 쇄신하라고 다시 요구했다. 그리고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뜻의 화무십일홍을 꺼냈다.
“권력은 강하고 영원할 것 같지만 그것도 잠시간 뿐이다.”
그는 한 문장을 더 남겼다. “정치 검찰을 악용해 조작과 공작으로 잠시 숨기고 왜곡할 수 있겠지만 진실은 영원히 가둘 수 없다.” 이어지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청사로 들어갔다.
이튿날 오후 3시 30분쯤에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국회 본청 앞 천막에 왔다. 이낙연이 건강에 이상은 없느냐고 묻자 이재명은 아직은 좀 견딜 만하다고 했다. 이낙연이 말했다. “국민들도 이 상황을 많이 착잡하게 보고 있다. 단식을 거두시고 건강을 챙기셨으면 한다.” 이재명은 와 주어 고맙다고 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건강도 챙겨야겠지만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조금이라도 막아야 될 것 같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늘 처음 복대를 했는데 훨씬 낫다.”
사 분가량의 만남이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마치고도 한동안 손을 잡고 있었다.
9월 12일, 단식 13일째의 그는 오후 1시 39분 다시 수원지검에 들어갔다. 조사는 네 시간 사십 분 만인 오후 6시 11분에 끝났다. 청사를 나서며 그는 검찰이 증거는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니 증거라는 게 있을 수 없어 의미 없는 문서 확인으로 아까운 시간을 다 보냈다.” 그는 한 문장을 더 보탰다. “국민이 맡긴 권력으로 정적 괴롭히는 데나 집중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된다.”
단식 14일째, 그는 천막을 걷고 국회 안 당대표실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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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아침, 당대표실에서 단식을 이어 가던 그의 혈당이 급속히 떨어졌다. 탈수 증상까지 겹쳐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민주당이 부른 구급차가 오전 7시 10분께 그를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옮겼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이 상태를 전했다.
“탈수 등 증상을 보여 정신이 혼미한 상황이었다.”
생리식염수를 맞는 응급조치가 이어졌다. 그사이 오전 9시께, 검찰이 백현동 사업 특혜 의혹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으로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9시 35분께 그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녹색병원으로 다시 옮겨졌다. 여의도에서 찻길로 20킬로미터가 넘는 곳이었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의 싸움 끝에 2003년 9월 문을 연 공익병원이었고, 파인텍 굴뚝 농성 노동자들과 우원식 의원이 단식을 마치고 치료받은 곳이었다. 한민수 대변인은 단식 치료 경험이 있는 전문의들이 있는 병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식을 멈추겠다고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말했다. “단식 중단을 정중히 요청한다.” 그는 한 가지를 더 제안했다. “건강을 회복하는 대로 여야 대표 회담을 열고 치열하게 민생을 논의하자.” 그날 오전 본회의에 들어가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 앞에서 달리 말했다. “수사받던 피의자가 단식해서 자해한다고 해서 사법 시스템이 정지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안된다.” 그러면 앞으로 잡범들도 다 이렇게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소환 통보를 받고 나서 시작하는 단식은 처음 본다고도 했다. 민주당은 대표를 조롱하는 것 아니냐며 격앙했다. 같은 날 윤재옥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상임위를 전면 보이콧한 것을 두고, 대표가 병원에 갔다고 국회 전체를 멈추는 게 국민을 위한 일이냐고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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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오후 3시 30분, 녹색병원 병실의 문이 열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었다. 퇴임 뒤 처음 서울에 온 걸음이었다. 천준호 비서실장과 서영교 최고위원, 박홍근 전 원내대표, 윤건영 의원이 그를 안내했다.
기력이 떨어진 채 병상에 있던 이재명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문재인이 그를 말리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 이야기를 나눴다. 문재인은 열흘 동안 굶었던 자신의 단식을 떠올렸다.
“내가 열흘 단식할 때 힘들었는데, (단식한 지) 20일이니 얼마나 힘들까 싶다.”
그는 단식을 말렸다. “단식의 결기는 충분히 보였고, 길게 싸워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몸이 이제 그 한 사람의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이제는 이 대표 혼자 몸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함께 아파하고, 안타까워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는 걸 늘 생각하라.”
이재명이 답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는 왜 굶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짧게 말했다. “세상이 망가지는 것 같고, 끝없이 떨어지는 나락 같아 단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먼 길을 온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런 걸음까지 하시게 해서 죄송하다.”
이십여 분이 지나 문재인이 병실을 나섰다. 그는 병원 관계자들에게 이재명의 몸 상태를 묻고, 병원장에게 단식을 멈추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도 단식은 멈추지 않았다. 한민수 대변인이 전했다. “병원장이 유동식까지 들고 갔지만, 손도 안 대고 그냥 돌려보냈다.”
병원 앞에서는 일부 지지자들이 「문재인 출당」이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었다. 이재명은 한민수 대변인을 통해 문 전 대통령은 당의 큰 어른이라며 그들을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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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민주당 당무위원회가 대표에게 단식을 멈춰 달라고 요청하기로 의결했다.
9월 23일, 의료진이 즉각 단식을 멈추라고 강하게 권고했다. 강선우 대변인이 병원의 말을 옮겼다. “더 이상의 단식은 환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해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의료진의 소견입니다.” 그리고 결정을 알렸다.
“이 대표는 단식투쟁 24일 차인 오늘부로 단식을 중단하고 본격적인 회복 치료에 들어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23일 단식보다 하루가 길었다. 그가 처음 입에 넣을 것은 미음이었고, 의료진은 양을 조금씩 늘려 가기로 했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단식을 끝낸 그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국회의 기능을 멈춰 세우고, 국무총리 해임 건의 등 국정 혼란까지 야기했던 행위들에 대한 반성과 대국민 사과도 함께 하길 바랍니다.”
사흘 뒤인 9월 26일에는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잡혀 있었다. 민주당은 그가 의료진과 상의해 법원에 나가겠다고 했다.
출처 · 연합뉴스, 2023년 8월 31일, 「이재명, 국회 본관 앞 천막치고 무기한 단식투쟁 돌입」 · 중앙일보, 2023년 9월 1일, 「개딸 몰려온 이재명 단식 풍경…文 “응원 보낸다” 與 “방탄쇼”」 · 조선비즈, 2023년 9월 6일, 「김진표 국회의장, 단식 이재명 찾아 “법안 野 단독처리 자제” 쓴소리」 · 뉴스1, 2023년 9월 7일, 「이정미 “단식 접고 방법 찾자”…이재명 “중단할 수 없어”」 · 뉴시스, 2023년 9월 8일, 「이재명 단식 9일째 격려방문 이어져…여당은 회 판촉행사」 · 오마이뉴스, 2023년 9월 9일, 「단식 10일째 검찰 출석한 이재명, 윤석열 겨냥 “화무십일홍”」 · 머니투데이, 2023년 9월 10일, 「이낙연, 단식 11일차 이재명 방문 …“단식 거두고 건강 챙기시라”」 · 뉴시스, 2023년 9월 12일, 「2차 조사 이재명 “증거 하나 없어”...4시간40분만에 귀가(종합2보)」 · 연합뉴스, 2023년 9월 18일, 「이재명, 단식 19일째 건강악화 병원이송…“정신 혼미”(종합2보)」 · 뉴시스, 2023년 9월 18일, 「이재명 구속영장·한덕수 해임안에 국회 ‘올스톱’…여야 책임 공방」 · 경향신문, 2023년 9월 18일, 「한동훈, ‘병원 후송’ 이재명에 “앞으로 잡범들도 이렇게 하지 않겠나”」 · SBS, 2023년 9월 18일, 「〔스프〕 병원서 단식하는 이재명…병원 밖선 ‘단식 조롱’ 공방」 · 연합뉴스, 2023년 9월 18일, 「이재명 이송된 ‘녹색병원’…야권·노동계 단식투쟁 후 찾은 곳」 · 연합뉴스, 2023년 9월 19일, 「文 “기운 차려 싸우라” 단식 만류…이재명 “잘 알겠습니다”(종합)」 · 한겨레, 2023년 9월 19일, 「문재인 전 대통령 다녀가도 단식…이재명 “세상 망가져서”」 · MBC, 2023년 9월 19일, 「문재인, 단식 20일째 이재명 병문안‥“결기 충분히 보였다” 단식 만류」 · 국민일보, 2023년 9월 20일, 「文 향해 “출당” 외치자… 이재명 “큰 어른인데 어찌”」 · 한겨레, 2023년 9월 23일, 「이재명, 의료진 강력 권고에 단식 중단…“법원 출석할 것”」 · KBS, 2023년 9월 23일, 「이재명, 24일차에 단식 중단…“법원 일정 등 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