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6,756자) · 2026년 1월 18일~6월 8일, 봉하마을과 청와대 영빈관

고개 들면 진다

이재명의 삶 · 네오

2026년 6월 8일 오전 10시, 청와대 영빈관에 내외신 기자 160여 명이 앉았다.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이었다. 연단에 선 이재명 대통령은 흰 바탕에 하늘색 줄무늬가 들어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지난해 8월 15일 저녁 광화문광장에서 국민대표 80명에게서 임명장을 받던 국민임명식 날 맸던 넥타이였다. 청와대는 그 넥타이를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과 희망의 대한민국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그 저녁 광장의 무대에서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불렀다. “21대 대통령 이재명은 대한민국 주권자의 충직한 일꾼으로서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로 성큼성큼 직진하겠다.” 마지막 임명장을 놓은 국민대표 가운데에는 광복군 독립운동가 목연욱 지사의 아들로 1945년 8월 15일에 태어난 광복둥이 목장균과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 있었다. 열 달 뒤 그 넥타이가 다시 영빈관 연단에 올라왔다.

그가 기념사를 읽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적 위기 속에서 숨 돌릴 틈도 없이 닻을 올린 국민주권정부가 이제 1년이 됐습니다.”

그는 내란과 계엄이 부른 민주주의의 위기, 국제질서의 격변이 부른 통상과 안보의 위기, 중동전쟁이 부른 민생의 위기를 차례로 불렀다. 그 위기들을 지나 온 한 해였다. 회견의 표어는 「대체 불가 대한민국」이었다. 그는 2026년을 세계 어떤 나라도 대신할 수 없는 나라의 꿈이 시작되는 해로 만들겠다고 했다. 회견은 100분으로 잡혀 있었다.

기념사에는 2년째의 목표 넷이 들어 있었다. 초격차 산업 강국, 글로벌 외교·안보 강국, 규범과 규칙이 지켜지는 정상 사회, 그리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정부였다. 그는 국민과의 직접 소통으로 국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공직의 책임성을 강화한 일을 지난 1년의 가장 희망적인 변화로 꼽았다. 민생 앞에 부처 칸막이가 없는 정부, 치열하게 토론하되 신속하게 집행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했다. 마지막 문장은 5,200만 주권자의 지혜를 등불 삼아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겠다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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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의 잣대는 아홉 달 전에 정해졌다. 2025년 9월 16일 국무회의가 123대 국정과제를 확정했고, 그 아래에 564개 실천과제가 달렸다. 2025년 5월 12일 대선 후보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10대 공약을 낸 지 넉 달 만이었다. 그날 그는 국무위원들 앞에서 말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주권자의 뜻이 담긴 123대 국정과제를 나침반 삼아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을 꼭 만들겠다.”

첫 채점은 2026년 1월 18일에 나왔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5년도 국정과제 정책만족도를 발표했는데, 7점 만점에 4.77점으로 2013년 조사가 시작된 뒤 가장 높았다. 2025년 11월 6일부터 12월 18일까지 일반국민 1만 9,200명과 정책수요자 9,600명에게 물은 결과였다. 정책의 필요성은 5.29점, 내용의 적절성은 4.95점, 정책 대응성은 4.76점이었다. 낮은 쪽도 함께 적혔다. 전반적 만족도는 4.56점, 효과 달성도는 4.50점이었다. 필요성과 효과 사이에 0.79점의 틈이 있었다. 국정목표별로는 혁신경제가 4.87점으로 가장 높았고, 기본이 튼튼한 사회가 4.81점으로 뒤를 이었다. 응답자의 72퍼센트쯤이 국정과제를 잘 알거나 어느 정도 안다고 답했다.

이튿날 저녁 그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국정 성과가 2013년 조사 시행 이후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고 알린 뒤 이렇게 썼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정부는 국정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민의 요구와 시대적 사명을 반영한 국정과제를 마련하고, ‘속도와 성과’를 핵심 기조로 국정운영에 매진해 왔다.” 그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미비한 부분을 신속히 보완하겠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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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3일 오후 2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 특설무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전국에서 2만 5천여 명이 봉하를 찾았다. 대통령은 김혜경 여사와 함께 왔다.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 씨, 5년째 빠짐없이 온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가 같은 자리에 있었고, 김민석 국무총리와 우원식 국회의장도 앉았다. 현직 대통령이 추도식에 온 것은 9년 만이었다.

꼭 1년 전 이날, 그는 대선을 열하루 앞둔 민주당 후보로 이곳에 왔었다. 검은 정장 차림으로 헌화대에서 묵념한 뒤 국화 한 송이를 받아 들고 묘소인 너럭바위 앞으로 홀로 걸어갔다. 무릎을 꿇고 꽃을 놓은 그는 일 분가량 묵념했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헌화대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그날 방명록에는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국민이 주인인 나라, 진짜 대한민국으로 완성하겠다고 적었다.

이번에는 무대 위에서 추도사를 읽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왔고, 야당 대표로 왔으며, 대통령 후보로 인사드렸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국민 여러분께서 임명해 주신 대통령으로 이 자리에 섰다.”

그는 이어 말했다. “당신께서 떠나신 후 이 땅에는 수많은 ‘노무현’들이 다시 태어났다.” 자신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했다. 반칙과 특권 없이도 성공할 수 있고, 땀 흘린 만큼 정당한 대가를 얻는 사회를 그는 고인이 남긴 꿈으로 불렀다. “대통령님의 못다 이룬 꿈을 국민주권정부가 반드시 완수하겠다.” 추도사의 끝은 다짐이었다.

“때로는 멈춰서고, 때로는 넘어질지라도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

유족 대표로 노건호 씨가 섰다. 그는 아버지의 삶과 정치를 이렇게 돌아봤다. “냉소와 적대의 악순환 가운데에서도 선의와 진정성의 정치를 많은 분들의 마음에 남겼다는 점에서 아버님의 삶과 정치는 값진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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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뒤인 5월 26일, 국무조정실과 문화체육관광부가 1주년 성과자료집 두 권을 냈다. 한 권은 국민 체감도가 높은 38개 대표 성과를 골라 그림으로 풀었고, 다른 한 권은 123대 국정과제마다 추진 실적과 남은 계획을 적었다. 5월 28일 국무총리실은 564개 실천과제 가운데 523개, 93퍼센트가 목표 일정대로 가고 있다고 집계했다.

숫자를 보는 눈이 하나만은 아니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조영호 교수는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생중계하는 시도가 공직사회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고 봤다. 다만 정책은 숙의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고 했고, 실시간 소통이 역효과를 부르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엿새 뒤에는 유권자의 채점이 나왔다.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를 잃었다. 함께 치른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경기 평택을과 부산 북갑을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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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관의 질문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질문은 민생·경제, 정치·외교·안보, 사회·문화 세 분야로 나뉘었고, 사회자와 대통령이 매체를 지목하면 기자가 일어나 물었다. 대학언론 기자 대학생 두 사람의 질문도 순서에 들어 있었다. 질문지를 미리 맞춘 순서는 없었다. 선거 결과를 묻는 질문에 그는 도대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것조차도 국민이 자신에게 또는 이 정권에 주는 경고라고 답했다.

“더 낮은 자세로 더 겸손해야 한다.”

그는 이겼느냐 졌느냐는 기준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이길 것을 졌거나 이겨야 하는 곳을 졌다면 문제가 다르고, 최소한 성공은 아니라고 했다. 선거 기간의 자신을 두고는 웃음 섞인 고백이 나왔다. “선거에서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표정은 중립이 잘 안 되더라.” 회견장에 웃음이 퍼졌다. 그는 민주당 박지원 의원에게서 들은 말을 옮겼다.

“골프와 선거는 고개를 들면 진다.”

“저도 사실 너무 쉽게 생각한 측면도 있다.” 그는 옆에 있는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1억 개의 눈과 귀를 갖고 5천만 개의 입으로 말하는 거대한 지성체들은 속일 수 없다고 했다. 국민은 다 보고 듣다가 어느 순간 행동한다고 했고, 역시 무서운 존재라고 했다. 선거 뒤 이삼 일은 자신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털어놓은 그는 결론은 자신의 부족함이었다고 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주어진 권한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지금보다 더 해야 되겠습니다. 더 빠르게, 더 힘들여서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정 기조는 바뀔 게 없다고 그는 못 박았다.

여당을 향한 말도 있었다. “야당일 때는 막 공격하면 되지만 집권했을 때는 비전을 끊임없이 제시해야 한다.” 야당은 창을 잘 찔러야 하지만 여당은 그릇이 돼야 하고, 최대한 많이 모아 포용과 통합을 잘해야 한다고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를 두고는 이제는 또 다른 역할을 맡는 게 더 적정하다고 했다. 새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농담을 섞었다. “정말 열심히 하시고 잘하셔서 (중소벤처기업부) 공무원들이 좀 괴롭다고 하는데 그 괴로움을 다른 공무원들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주식시장 질문에는 짧게 답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너무 과도하게 눌려 있었다.” 그는 이어 말했다. “결국 주가 상승으로 국민 전체가 혜택을 보게 됐다.” 부동산을 두고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 부동산 투기 공화국을 탈피하는 게 이 나라가 살아가는 길이고 살아남는 길이다.” 세제를 비롯한 각종 정책을 정리해 7월 중 한꺼번에 발표하겠다고 했다.

선거 날 벌어진 선관위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그는 너무 안일했다고 반성했다. 그 일을 지적하며 거리로 나선 청년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 문제를 지적하는 청년들에 대해 참으로 귀하고 존경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질문자로 뽑힌 기자가 매일신문이라고 소속을 밝히자 그가 말했다. “아, 하필이면 왜 거기를 찍었지.” 회견장이 다시 웃었다. 대학생 기자 두 사람은 영상으로 질문을 보냈다. 이대학보 정보연 선임기자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청년들이 겪는 시간의 불평등과 소득 격차를 물었다. 그가 말했다. “지방균형발전과 청년 문제를 섞어놨다. 얼마나 어려운 질문이냐.” 그는 대학생 기자들의 질문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웃었다.

100분으로 잡혀 있던 회견은 낮 12시 47분에야 끝났다. 21개 매체가 질문했고,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이 시간을 알린 뒤에도 질문은 이어졌다. 마지막 질문에 답한 그가 강유정 수석대변인을 돌아봤다.

“너무 말이 길었는데 다음에 따로 한 번 더 하자.”

그리고 한마디를 더 얹었다. “기자회견 자주 하자.” 이유도 붙였다. “나는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못하게 한다. 사고 날까 봐.” 두 시간 사십칠 분의 문답을 마친 그는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회견이 끝나고 국민의힘의 논평이 나왔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렇게 썼다. “지난 1년간의 실정에 대한 처절한 성찰도, 책임도, 해법도 찾아볼 수 없는 자화자찬과 남 탓의 종합판이었다.” 그는 국민이 확인한 것은 대체불가한 성과가 아니라 대체불가한 현실 인식 부재와 자기합리화였다고 했다. 장동혁 대표도 말을 보탰다. “오늘 대통령 취임 1주년 회견을 보며 ‘이재명 유니버스’가 따로 있단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출처 · 데일리안, 2025년 9월 16일, 「4년 연임제 개헌부터 권력기관 개혁까지…李정부 ‘123대 국정과제’ 확정」 · 뉴시스, 2025년 8월 15일, 「이 대통령, 광복절에 ‘국민 임명식’…국민대표 80명에 임명장 받는다」 · 오마이뉴스, 2025년 8월 15일, 「“국민이 대통령 고용했다는 사실 실감한 임명식”」 · 연합뉴스, 2026년 1월 18일, 「행정연 “국정과제 만족도 4.77점…2013년 조사 시작 이후 최고”」 · 뉴시스, 2026년 1월 19일, 「이 대통령 “국정과제 만족도 조사 이래 최고…국민 실질 변화 성과”」 · 머니투데이, 2025년 5월 23일, 「이재명, 노무현 묘역 참배하며 눈물…문재인 부부-권양숙 여사와 점심」 · 연합뉴스, 2026년 5월 23일, 「‘내 삶의 민주주의’…노무현 전 대통령 17주기 추도식 엄수」 · 뉴시스, 2026년 5월 23일, 「이재명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못다 이룬 꿈 국민주권정부가 반드시 완수”」 · 한겨레, 2026년 5월 23일, 「노건호 “냉소 속 진정성의 정치 남긴 아버님”…2만 5천 시민 추모」 · 쿠키뉴스, 2026년 5월 23일, 「이재명, 1년 만에 대통령으로 봉하行…노무현 17주기 추도식 참석」 · 정책브리핑, 2026년 5월 26일, 「국민이 만든 대전환의 길…국민주권정부 1주년 성과자료집 발간」 · 머니투데이, 2026년 5월 28일, 「‘라이브 국정’ 李대통령 취임 1년…‘ACE 리더십’ 빛났다」 · MBC, 2026년 6월 8일, 「이재명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 주요 내용은?」 · 뉴시스, 2026년 6월 8일, 「〔전문〕이재명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 기념사」 · 서울신문, 2026년 6월 9일, 「‘약속대련’ 없었던 즉문즉답… 초심 넥타이 매고 165분 소통」 · MBC, 2026년 6월 8일, 「이 대통령 “지선 결과, 국민의 경고‥‘골프와 선거는 고개 들면 진다’”」 · 경향신문, 2026년 6월 8일, 「“선거는 고개 들면 진다” 격전지 패배 여 지도부 우회 비판」 · 시사저널, 2026년 6월 8일, 「〔일문일답〕 “공소취소? 법과 상식대로” 취임 1주년 李대통령 ‘말말말’」 · 아시아경제, 2026년 6월 8일, 「李 “골프·선거는 고개 들면 진다”, “기자회견 또 하자”…167분 마라톤 회견」 · 뉴스1, 2026년 6월 8일, 「“왜 거길 찍었지”“표정은 중립이 안돼”…웃음오간 李대통령 167분 문답」 · 뉴스1, 2026년 6월 8일, 「國힘 “李 기자회견, 성찰·책임·해법 없는 자화자찬·남탓 종합판”」 · 데일리안, 2026년 6월 8일, 「국민의힘, 李대통령 1주년 회견에 “허황된 말잔치”…장동혁 “독재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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