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6,996자) · 2025년 9월~2026년 9월, 서울·경주·세종·판교
아무나 쓸 수 있게
이재명의 삶 · 네오
2025년 10월 30일 저녁, 서울 삼성역 근처의 깐부치킨 매장에 세 사람이 들어와 앉았다.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이었다. 전날 매장을 미리 둘러보고 청소까지 했던 김승일 깐부치킨 대표가 직접 쟁반을 날랐다. 탁자에는 치킨과 치즈스틱이 깔렸고, 그 곁에 맥주와 소주를 섞어 내리는 소맥 제조기가 섰다.
젠슨 황은 소맥을 한 모금 맛보더니 술이 싱겁다며 제조기에 소주를 더 부었다. 닭다리를 손에 쥐고 뜯다가 그가 좌중을 둘러봤다.
“제가 너무 못나게 먹나요?”
매장 밖에는 소식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이 수백 명이었다. 젠슨 황은 치킨과 치즈스틱, 감자튀김을 들고 나가 그들에게 먹으라고 권했다. 그러고는 옆자리의 두 회장을 가리켰다.
“이 친구들 돈 많다.”
오늘 저녁은 공짜라고 그가 덧붙였다. 200만 원어치 골든벨을 실제로 울린 사람은 이재용 회장이었다. 정의선 회장은 자기는 치맥을 자주 먹는다고 하더니 한마디를 더 얹었다. “2차는 제가 살게요.” 이 회장은 한 어린이의 티셔츠에 「예준이 효자 되세요」라고 써 주었다. 자리를 뜨면서 그는 행복이 별것 아니라고 했다. 좋은 사람들끼리 맛있는 것 먹고 한잔하는 게 행복이라고 했다. 아이폰을 내밀며 함께 사진을 찍자는 사람에게 그가 받아쳤다. “갤럭시를 가져오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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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인 10월 31일 오후,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엔비디아가 발표문을 내놓았다. 한국 정부와 삼성, SK, 현대차, 네이버에 인공지능용 GPU를 26만 장 넘게 공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와 삼성, SK, 현대차가 5만 장씩, 네이버클라우드가 6만 장을 받는다. 정부 몫 5만 장은 국가 AI컴퓨팅센터를 비롯한 공공 부문으로 가고, 공급은 앞으로 5년에 걸쳐 차례로 이뤄진다. 블랙웰 GPU 26만 장에는 고대역폭 메모리 HBM3E가 208만 개쯤 들어갈 것으로 셈해졌다. 발표장에서 이재용 회장이 오래된 인연을 꺼냈다. “25년 전 엔비디아는 삼성 D램을 사용해 지포스 256을 출시했다.” 젠슨 황은 기자들 앞에서 두 메모리 회사를 형제라고 불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나의 칩 형제(Chip brothers)다.”
같은 날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젠슨 황을 만났다. 이재용, 최태원, 정의선 회장과 네이버 이해진 의장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목표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AI 수도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는 엔비디아와 자율주행차와 로봇 같은 피지컬 AI에 30억 달러를 함께 넣기로 했다. 그때까지 국내에 있던 AI용 GPU는 6만 장이었다.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이 새 숫자가 놓일 자리를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이 저만큼 앞서 있고 (다른 국가들이) 3등 싸움을 한다.” 그는 한 문장을 보탰다. “현시점 기준으로 보면 (한국까지) 3강이 맞다.”
다섯 달 전인 5월 12일, 이재명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낸 10대 공약의 1번은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강국」이었다. 그 세부에 고성능 GPU 5만 개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약속과, 한국형 챗GPT를 온 국민이 무료로 쓰게 하는 「모두의 AI」 프로젝트가 들어 있었다. 닷새 뒤 그는 AI 투자 100조 원 시대를 열어 AI 세계 3대 강국으로 우뚝 서겠다고 했다. 26만 장은 GPU 약속의 다섯 배를 넘었다. 다만 정부가 직접 쥐는 것은 공약대로 5만 장이었고, 나머지 21만 장은 기업들의 몫이었다.
숫자가 커지자 걱정도 커졌다. 업계지 딜사이트는 26만 장을 돌리려면 기가와트 규모의 전력이 더 필요한데, 송전과 변전 설비 사업의 절반 이상이 늦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한 업계 관계자가 말했다. “열 관리, 전력망 확대 등 제반 기술 및 시설이 선 구축되지 않으면, 최신 모델인 블랙웰도 앞선 H100~200 제품만 못한 성능을 구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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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대는 그릇은 그보다 먼저 빚어지고 있었다. 9월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창업지원센터 프론트원에서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가 열렸다. 스타트업들이 드나드는 건물에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 100여 명이 모였다. 대선 때 그는 국민과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100조 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바깥 사정부터 짚었다. “무역장벽 강화, 통상 환경 불확실성의 어려운 시기에 미국, 중국 등 주요국들이 첨단 전략 산업에 대규모로 국가적 투자 지원을 확대하는,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펀드의 숫자를 그 자리에서 바꿨다.
“우리가 전에 100조 원 규모 펀드를 얘기했는데 좀 더 과감하게 펀드 규모를 150조 원으로 50% 더 늘려서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금융이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전당포식 영업을 버리고 생산적 금융으로 크게 돌아서야 한다고 했다. “잘되는 기업은 더 잘되게 하고,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도록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해야 대한민국 경제에 미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경계할 것을 말했다. “정말 중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이게 부패의 재원이 될 수도 있어 걱정스럽다.”
반대편에서는 다른 기억을 꺼냈다. 국민의힘 김대식 의원은 국가 채무 증가를 전제로 한 관제펀드는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민참여 뉴딜펀드 10개는 평균 수익률이 2.14퍼센트로, 1년 만기 예금금리에도 못 미쳤다. 정권이 바뀌면 펀드를 철 지난 유물처럼 처리해 버리는 관행이 문제라는 금융권의 말도 기사에 실렸다.
12월 11일, 서울 여의도 한국산업은행에서 펀드가 출범했다. 정부보증채권 75조 원과 민간자금 75조 원을 5년 동안 굴린다. 직접 지분투자에 15조 원, 간접투자에 35조 원, 인프라 투융자와 초저리 대출에 50조 원씩을 나눴고, 산업별로는 AI에 30조 원, 반도체에 20조 9,000억 원이 갈 것으로 점쳐졌다. 지방정부와 산업계, 사업부처가 낸 투자 수요는 100여 건, 153조 원으로 목표액을 이미 넘어 있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말했다. “향후 20년 성장엔진을 마련하는 국민성장펀드의 여정을 금융권·산업계·정부가 함께 만들어 가겠다.”
펀드의 1호 투자처는 전남 해남의 솔라시도 기업도시에 들어설 국가AI컴퓨팅센터였다. 삼성SDS 컨소시엄이 2조 5,000억 원을 들여 2028년까지 짓고, GPU 1만 5,000장 이상을 스타트업과 연구자, 기업에 내주는 시설이었다. 펀드는 최대 2,000억 원을 넣기로 했다. 명현관 해남군수는 센터의 해남 유치 확정을 군의 미래 100년을 좌우할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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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인 12월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업무보고가 열렸다. 대통령은 한글과 산수를 가르치듯 모든 국민에게 인공지능을 익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동네 아주머니와 아저씨,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무나 쓸 수 있게 해 줘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사정을 털어놓았다. “사실 AI를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
대통령의 대답이 곧바로 나왔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고는 목표를 못 박았다. AI를 어떻게 쓰고 왜 중요한지 아는 국민을 적어도 90퍼센트 이상으로 만들어 놔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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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9일, 판교테크노밸리의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AI 국민비서」가 개통됐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정신아 카카오 대표,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무대에 섰다. 카카오톡과 네이버 앱의 대화창에 「주민등록등본 떼줘」라고 한 줄 치면, 정부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고도 등본이 나온다. 개통 이틀 전 직접 써 본 기자는 요청부터 본인 인증까지 15초쯤 걸렸다고 적었다. 발급할 수 있는 전자증명서는 100여 종이었고, 전국 1,200여 곳의 공공시설과 회의실도 대화창에서 예약할 수 있었다. 네이버는 검색 결과에 발급 배너를 띄우고 체육시설을 예약하면 근처 맛집까지 이어 주겠다고 했고, 카카오는 음성 대화를 붙이겠다고 했다. 5월 13일부터 카카오의 국민비서는 글자 대신 목소리로도 부탁을 받았다. 개통을 앞두고 행안부의 한 관계자는 정식 서비스가 시작돼도 시범 서비스와 기능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용 데이터와 국민 의견을 받아 서비스를 넓혀 가겠다는 말이 뒤따랐다.
걱정도 함께 나왔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는지, 등본 같은 신원 정보를 어떻게 지키는지가 숙제로 남았다. 8월 31일 조선일보 곽수근 기자는 AI가 나 대신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개인 정보와 권한을 AI에 더 넘겨줘야 한다고 썼다. 출시 목표에 쫓기기보다 AI가 우리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무엇까지 대신하게 할지부터 정하라는 요구였다. 공약의 다른 한쪽인 「모두의 AI」는 SK텔레콤과 KT, 카카오가 그해 안에 무료 서비스를 내놓기로 했고, 이듬해 예산 2,500억 원이 잡혔다. 2028년 이후의 재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참여 기업의 한 관계자는 전 국민에게 무료로, 무제한으로 계속 서비스하는 구조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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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오전 8시, 국민이 직접 돈을 넣는 국민참여성장펀드가 문을 열었다. 국민투자금 6,000억 원에 정부 재정 1,200억 원을 얹고, 손실이 나면 국민투자금의 20퍼센트까지 정부가 메워 주는 상품이었다. 미래에셋증권의 온라인 물량은 10분쯤 만에, KB증권은 20분 만에 동났다. 5대 시중은행에 배정된 220억 원어치도 다 팔렸다. 서울 구로구의 조기덕 씨는 그날 펀드에 들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급한 일 처리하고 부랴부랴 나왔는데 완판 됐다고 하네요.”
이튿날,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서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권양숙 여사,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와 마주 앉았다. 문 전 대통령이 펀드 이야기를 꺼냈다. 첫날 온라인 물량이 완판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나도 가입해보려 했는데 순서가 오기 전에 마감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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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 행정안전부가 정부24의 AI 국민비서가 알아듣는 질문의 예를 내놓았다. 맞춤법이 틀린 문장이었다.
「71세 혼자 사는 노인인데 정부에서 주는 ‘혜탁’을 알고 싶다」
혜택을 혜탁으로 잘못 친 그 한 줄에도, 국민비서는 혼자 사는 노인에게 맞춘 돌봄 정보를 내놓는다. 열 달 전 세종의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은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무나 쓸 수 있어야 한다고 했고, 장관이 모르는 국민이 많다고 하자 자기도 잘 모른다고 답했다. 경주에서 약속된 26만 장의 GPU도, 여의도에서 출범한 150조 원의 펀드도 결국 그 한 줄 앞에서 시험을 받는다. 자판 위에서 한 글자를 잘못 누른 사람이, 물어본 것을 제대로 돌려받는가?
출처 · 서울신문, 2025년 10월 31일, 「깐부치킨 대표가 직접 서빙…젠슨 황은 소주 더 부었다 〔‘치맥회동’ 이모저모〕」 · 허프포스트코리아, 2025년 10월 30일, 「간밤에 어린이를 만난 이재용이 뜻깊은(?) 사인을 남겼다」 · 아이뉴스24, 2025년 10월 31일, 「엔비디아, AI GPU 한국에 26만장 이상 공급 〔APEC 2025〕」 · 전북일보(연합뉴스), 2025년 10월 31일, 「韓공급 GPU에 ‘HBM 208만개’ 탑재…삼성·SK하이닉스 수혜 기대」 · 데일리안, 2025년 11월 4일, 「GPU 26만장 = HBM 208만개…삼성·SK하닉, 메모리 패권 강화」 · 서울신문, 2025년 10월 31일, 「李대통령, 젠슨 황 접견…엔비디아, 블랙웰 26만장 공급」 · 머니투데이, 2025년 10월 31일, 「이재명 대통령, 젠슨 황 만나 ‘GPU 26만장’ 확보…‘전세계 3등’」 · 동아일보, 2025년 10월 31일, 「韓에 6만장 있는 AI GPU…젠슨 황이 26만장 ‘통큰 공급’ 약속」 · 뉴시스, 2025년 5월 12일, 「이재명 10대 공약 발표…“포괄임금 금지하고 세종의사당 임기 내 건립”」 · 뉴시스, 2025년 5월 13일, 「〔대선공약 비교〕①이재명·김문수, 1호 공약 보니…“추경 등 돈 풀어 성장” vs “기업 규제·세제 완화해 성장”」 · 연합뉴스, 2025년 5월 17일, 「이재명 “AI 3대 강국 우뚝…‘국민·기업 100조 펀드’ 조성”」 · 딜사이트, 2025년 11월 17일, 「GPU 26만장, 그 무게를 버텨라」 · YTN, 2025년 9월 10일, 「〔현장영상+〕 이 대통령 “국민성장펀드, 성장 기회와 과실 나누는 게 중요”」 · 경향신문, 2025년 9월 10일, 「이 대통령 “국민성장펀드 150조원 조성”···50조원 더 늘린 한국판 국부펀드 만든다」 · 데일리안, 2025년 11월 18일, 「文정부판 뉴딜펀드 데자뷔?…150조 펀드 나왔지만, 실효성 여전히 의문」 · CBS노컷뉴스, 2025년 12월 11일, 「150조 국민성장펀드 출범…AI에 30억 투입」 · 경향신문, 2025년 12월 11일, 「첫발 뗀 국민성장펀드, 153조 투자수요 몰려」 · 뉴시스, 2025년 12월 11일, 「국가AI컴퓨팅센터, ‘국민성장펀드 1호 투자’ 확정…해남군 “환영”」 · 동아일보, 2025년 12월 12일, 「과기장관 “AI 활용 모르는 국민 많다”…李 “나도 모르겠다”」 · 뉴스1, 2026년 3월 10일, 「“주민등록등본 떼줘”…네카오 ‘AI 국민비서’ 시범서비스 시작」 · 머니투데이, 2026년 3월 7일, 「“카톡에서 등본 발급? 15초면 끝”...‘AI 국민비서’ 써보니」 · 뉴시스, 2026년 3월 9일, 「〔현장〕“등본 떼줘” 한마디면 끝…네이버·카카오, 정부 공인 ‘AI 비서’ 됐다」 · JTBC, 2026년 6월 19일, 「“등본 발급해줘” 한마디로 복잡한 행정업무 한번에 ‘AI 국민비서’시대 열린다」 · 조선일보, 2026년 8월 31일, 「〔전문기자의 시선〕 모두에게 ‘AI 비서’ 준다는 정부… 내 정보는 어디까지 내줘야 하나」 · 조선비즈, 2026년 9월 18일, 「李 대선 공약이었던 ‘모두의 AI’… “전 국민 무제한 무료” 현실성은」 · SBS Biz, 2026년 5월 22일, 「“사려고 했는데 완판이네”…‘국민성장펀드’ 첫날 뜨거웠다」 · 경향신문, 2026년 5월 23일, 「문재인 전 대통령 “국민성장펀드 완판됐다더라”···이 대통령 “국민 모두 함께 힘 모아”」 · 서울신문, 2026년 9월 29일, 「“몰라서 못 받는 혜택 없게”…AI가 먼저 찾아 신청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