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5,977자) · 2020년 3월~12월, 경기도
10만 원과 1퍼센트
이재명의 삶 · 네오
2020년 3월 24일 오전, 수원 경기도청 브리핑룸에 세 사람이 나란히 섰다. 가운데가 경기도지사 이재명이었고, 양옆에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과 염종현 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이 섰다. 코로나19 여파에 맞서 내놓는 비상경제대책이었다.
이재명이 발표한 것은 숫자 하나였다. 도민 한 사람에게 10만 원, 네 식구면 40만 원이었다. 소득을 묻지 않았고 나이도 묻지 않았다. 전날 밤 자정을 기준으로 경기도민이면 미성년자도 받았고, 외국인만 빠졌다. 1,326만 5,300여 명이었다.
“코로나19로 맞게 된 역사적 위기 국면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부자에게까지 왜 주느냐는 물음이 나올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답을 먼저 내놓았다. “고소득자 제외는 고액납세자에 대한 이중차별인데다 선별비용이 과다하고, 미성년자도 세금 내는 도민이며 소비지출 수요는 성인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제외ㆍ차별을 하지 않았다.”
돈은 현금이 아니라 지역화폐로 나갔다. 받은 날부터 석 달이 지나면 사라지는 돈이었다. 쓰지 않으면 도로 거둬들였다. 재원 1조 3,642억 원은 재난관리기금과 재해구호기금을 헐고, 지역개발기금 7,000억 원을 안에서 빌려 메웠다. 전날 도의회 안전행정위원회가 재난기본소득 지급 조례안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결해 두었다. 그는 회견을 이렇게 맺었다.
“소액이고 일회적이지만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이 국가 차원의 기본소득 논의의 단초가 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정책으로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
발표가 끝나자 경기지역화폐 홈페이지에 사람이 몰렸고, 접속이 폭주해 사이트가 한동안 멈췄다. 인터넷에는 반대 댓글도 붙었다. 읍·면·동 주민센터에 직접 가서 신청해야 한다는 대목을 두고 한 댓글은 이렇게 꼬집었다.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신청해야 한다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 시점에 직접 신청받는 게 아이러니하다.”
두 해 전 도지사 선거에서 그가 앞세운 공약 가운데 하나가 지역화폐 유통이었다. 2019년까지 조례를 만들고 핀테크 기반의 금융 시스템을 갖춘 뒤, 2022년까지 지역화폐를 발행해 통용하겠다고 했다. 그 지역화폐가 이날 전 도민의 손에 쥐어질 돈의 그릇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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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반대는 도 안에서 먼저 나왔다. 장덕천 부천시장이 트위터에 「기본소득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제목을 달고 글을 올렸다.
“부천 인구 87만명에게 10만원씩을 지급하면 870억원이 소요되는데, 이렇게 하는 것보다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2만여명에게 400만원씩 주는 게 낫다고 본다.”
도 안의 시장이 도지사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받아친 셈이었다. 이튿날 경기도에서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재난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시·군 주민은 대상에서 빼고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 재원을 여주시처럼 자체 돈을 보태 따로 주겠다는 시·군에 얹어 주는 방안도 함께 들여다본다고 했다. 여주시는 시민 모두에게 10만 원을 따로 더 주겠다고 밝힌 참이었다. 장덕천 시장이 맞받았다.
“경기도가 부천시만 빼놓고 안 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
부천만 빼는 것은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원칙과 어긋난다는 비판도 함께 일었다. 정부 쪽에서도 선이 그어졌다. 발표 날 늦은 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SNS에 적었다. “일각에서 실제 사용처가 없는 상태에서 돈을 푸는 엇박자 정책이 될 가능성도 지적한다.”
3월 26일, 장덕천 시장이 페이스북에 「재난기본소득에 관하여」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자기 글이 그토록 큰 혼란을 낳을 줄 몰랐다고 썼다. “사실 저는 제 의견을 올리면서 파장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몇 줄 아래에서 스스로를 탓했다.
“내부적으로 사전에 개진했으면 좋을 제 의견을 외부로 표출함으로 인해 속도가 필요한 정책들이 영향을 받아 조치가 늦어질 우려가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같은 글에서 그는 경기도 재난기본소득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 가운데 하나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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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이재명은 신청 방법을 내놓았다. 4월 9일부터 지역화폐나 신용카드로 신청을 받고, 4월 20일부터는 행정복지센터와 농협에서 선불카드를 내주었다.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출생연도 끝자리에 따라 신청일을 나눴다. 쓸 수 있는 곳은 연 매출 10억 원 이하의 가게였다.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이 아닌 경제정책으로 사용기간이 제한된 지역화폐로 지급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 자금이 흐르고,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들의 숨통을 틔워 지역경제를 살리는 마중물이 되도록 설계했다.”
감염병과 싸우는 일은 속도전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금은 잘하는 것보다 빨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 때라고 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프랜차이즈 직영점에서는 쓸 수 없는 돈이었고, 그는 도민들에게 부탁했다.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정해진 기간 안에 빠르게 사용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적극 동참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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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 방법을 발표한 바로 그날, 골목상권의 다른 자리에서 싸움이 붙었다. 4월 1일,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수수료 체계를 바꿨다. 한 달에 정해진 돈을 내는 광고 상품 울트라콜 대신, 주문 한 건마다 매출의 5.8퍼센트를 떼는 오픈서비스가 중심이 됐다. 회사는 큰 업주들이 울트라콜을 수십 개씩 사들여 주문을 쓸어 가는 깃발꽂기를 막으려는 개편이라고 설명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매출이 클수록 수수료가 기하급수로 불어나는 정률제는 큰 부담이 된다고 비판하자, 회사는 억울하다는 쪽이었다. “소상공인과 소비자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개편안인데 오해를 받고 있다.”
업주들의 셈은 달랐다. 서울 양천구에서 치킨집을 하는 A씨는 그동안 광고비로 한 달에 50만 원쯤을 냈다. 새 체계에서는 한 달 200만~300만 원이 나갈 것으로 보였다.
“새 수수료율이 5.8%라고 하지만 부가세에 결제 수수료까지 합치면 9.8%나 된다.”
그는 1만 7,000원짜리 치킨 한 마리를 팔면 1,700원에서 2,500원이 남는다고 했다. 전에는 배민이 그 가운데 300원에서 600원쯤을 가져갔는데, 새 체계에서는 1,700원을 가져간다고 했다. 석 달 전인 1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라디오에 나와 이렇게 전한 적이 있었다. “‘배달의민족’이 수수료를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4월 4일, 이재명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독과점 배달앱의 독과점 횡포가 시작되는가 보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 이튿날 그는 공공 배달앱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비판의 말은 더 길어졌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 특히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극심한 이때 배달의 민족 등 배달앱 업체들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 이용료 인상으로 과도한 이윤을 추구하며, 자영업자들을 나락으로 내 몰고 있다.” 공공 앱이 나오기 전까지는 전화로 주문하자는 말도 보탰다.
4월 6일, 서울 마포구 배민라이더스 중부지사 앞에는 배달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날, 개편 엿새 만에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입장문을 냈다.
“코로나19로 외식업주들이 어려워진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고 새 요금체계를 도입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고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
그는 4월 오픈서비스 비용은 상한 없이 낸 돈의 절반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률제를 거둬들이지는 않았다. 개편 뒤 부담이 늘어난 업주와 줄어든 업주의 비율이 거의 같다는 것이 회사의 셈이었다. 김 대표는 정액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영세한 사장님들일수록 부담이 증가하는 불공정한 깃발꽂기 문제를 해결하고 사장님들에게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달 경기도는 공공 배달앱 개발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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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기본소득이 풀린 4월, 매출 10억 원이라는 선이 동네마다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 용인에 사는 한 시민은 동네 작은 마트에서 재난기본소득 카드를 내밀었다가 거절당했다. “동네 작은 마트를 당연히 골목상권이라고 생각했는데 거부당하고, 오히려 대상이 아닐 것 같았던 프랜차이즈 빵집에선 쓸 수 있다니 혼란스러웠다.” 경기도 관계자는 매출을 조금 넘긴 가게 사정도 전했다. “일부 상인은 재난기본소득 효과를 기대하다 10억원 매출을 조금 넘겨 실망하고, ‘기준을 풀어달라’는 민원을 넣기도 했다.” 하남 위례동에 사는 한 시민은 장을 보러 가기 전에 가게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마트 가기 전 재난기본소득을 쓸 수 있느냐고 전화해 보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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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달 뒤인 12월 1일, 경기도주식회사가 만든 공공 배달앱 「배달특급」이 화성과 오산, 파주 세 곳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출시 기념사진에는 이석훈 경기도주식회사 대표와 이재명 지사, 방송인 황광희가 함께 섰다. 가게가 내는 중개수수료는 1퍼센트였다. 지역화폐로 결제할 수 있었고, 충전할 때 받는 10퍼센트 적립에 배달특급 할인 5퍼센트가 더 붙었다.
출발은 매끄럽지 않았다. 화성에 사는 주부 김모(39)씨는 맛집 피자를 시키려다 다른 앱을 켰다. “배달특급을 이용해 맛집 피자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아직 ‘준비중’이라고 떠 있는 가맹점들이 많았다.” 노컷뉴스가 12월 5일 저녁 7시쯤 확인한 한 피자 가게의 예상 배달 시간은 배달특급이 50~60분,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40분 안팎, 쿠팡이츠가 25분 정도였다. 주문 정보가 배달대행사 전산으로 저절로 넘어가지 않아, 오산의 한 중화요리점 사장은 손님 주소를 손으로 옮겨 적어 대행사에 넘겼다. 경기도주식회사 관계자는 이제 시범사업을 시작했을 뿐이라며 문제점을 분석해 고쳐 나가겠다고 했다.
그래도 출시 일주일 만에 가맹점이 5,000곳을 넘었고, 가입한 회원이 6만 명을 넘어섰다. 출시 사흘째인 12월 3일, 오산의 한 식당에 들어온 하루 배달 주문 50여 건 가운데 10퍼센트쯤이 배달특급으로 왔다. 그 식당의 이모(27) 대표가 말했다. “아직 초기라 배달특급 주문이 많은 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쓰게 된 지역화폐로 값을 치를 수 있게 한 것은 잘한 일 같다고 덧붙였다. 오산에서 배달특급을 써 본 진모(42)씨의 말은 이랬다. “지역화폐를 쓸 수 있어 할인에 또 할인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지역 상권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거 같아 더 좋은 것 같다.”
화성에서 식당을 하는 최모(54)씨는 배달특급 가맹점으로 첫 주말을 보냈다. 그 주말 배달특급으로 올린 매출이 300만 원이었고, 그 가운데 수수료로 빠져나간 돈은 3만 원 남짓이었다. 민간 배달앱에 40만 원 가까이 떼이던 것과는 견줄 수 없는 돈이었다. 그가 기자에게 말했다.
“수수료가 확 줄었어요. 100만원 팔면 10만원 넘게 배달앱 중개료로 빠졌는데, 공공배달앱은 비용이 적게 들어 마진율이 훨씬 높은 것 같습니다.”
그 무렵 기자의 사진기에는 치킨집 사장 박모(60)씨가 배달특급 시스템으로 주문을 받는 모습이 담겼다. 1퍼센트짜리 주문이었다.
출처 · 경기일보, 2020년 3월 24일, 「〔속보〕 이재명, 전 경기도민에 10만 원씩 지급」 · 뉴시스, 2020년 3월 24일, 「‘재난기본소득 지급’ 이재명의 정치적 승부수 통할까(종합)」 · 서울신문, 2020년 3월 25일,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10만원 부천시 빼고 검토” 논란」 · 서울신문, 2020년 3월 26일, 「“부천 빼고” 엄포에 장덕천 부천시장 사과 “재난기본소득 지지”(전문)」 · 뉴시스, 2020년 3월 25일, 「홍남기, 추경이어 재난수당 잇단 소신 발언…현금 지원 선 긋기」 · 에너지경제신문, 2020년 4월 1일, 「이재명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9일부터 신청 시작”」 · 머니투데이, 2020년 4월 30일, 「‘재난기본소득’ 카드 냈더니 “안 받아요”..이유를 알아보니」 · 오마이뉴스, 2018년 6월 8일, 「경기도지사 공약 비교, 이재명 ‘지역화폐 유통’, 남경필 ‘일자리 70만개’ 〔6·13지방선거〕」 · 머니투데이, 2020년 4월 6일, 「이재명 분노에 배민 사과…“보완책 내놓겠다”(종합)」 · CBS노컷뉴스, 2020년 4월 9일, 「배달앱 사국지..배민·자영업자·소비자, 그리고 공공」 · CBS노컷뉴스, 2020년 12월 9일, 「“수수료 1%로 숨통” 배달특급..출발선에 놓인 걸림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