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6,277자) · 2025년 9월 15일 · 12월 11일~23일, 서울과 세종과 부산
박수 쳐주세요
이재명의 삶 · 네오
2025년 9월 15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회의장에 60여 명이 둘러앉았다. 스타트업 대표와 학계 전문가, 관계 부처 장차관들이었다. 새 정부의 첫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였고,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토론을 이끌었다.
“기업인 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낡은 규제를 혁신해야 한다.”
그는 규제를 거미줄에 빗댔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부처 사이의 입장 차이로 얽힌 거미줄 같은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는 것이 이번 정부의 목표라고 했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줄이자는 말은 아니었다.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고 축소하고 필요한 규제는 확대하자.”
대통령 직속으로 규제 합리화 위원회를 만들겠다는 약속도 그 자리에서 나왔다. 그의 말이 오래 머문 곳은 배임죄였다. 7,000억 원을 벌 수 있었는데 왜 5,000억 원밖에 못 벌었느냐며 배임죄를 묻는다고 했고, 한국에서는 투자 결정을 잘못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말이 돈다고 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시간표를 내놓았다.
“9월 중 배임죄 등 1차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고, 연말까지 후속 작업을 해서 1년 내 전 부처 경제 형벌 규정의 30퍼센트를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기업 규모에 따른 규제와 경제 형벌의 과도한 부분도 고치겠다는 보고에 대통령은 구 부총리가 말씀하신 대로 잘 하면 될 것 같다고 받았다.
AI 학습에 공공데이터를 쓰게 하는 방안과 자율주행·로봇 규제를 두고 토론이 이어졌다. 이익을 어떻게 나누고 책임을 누가 질지 다 따져 완벽하게 하려다가는 버스가 다 지나간 다음이 될 거라고 대통령은 말했다. 그리고 결론을 냈다. “신속하게 결정하고 책임질 건 정부가 지는 방향으로 가도록 하겠다.”
열닷새 뒤인 9월 30일, 당정은 국회에서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공식화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맞받았다. 대통령이 직면한 대장동·백현동 비리 의혹과 법인카드 관련 범죄가 모두 업무상 배임죄인데, 그걸 없애자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형법에서 배임죄 조항이 지워지면 진행 중인 같은 혐의의 재판은 유무죄를 가리지 않고 끝내는 면소 판결로 닫힐 것으로 보였다. 국민의힘은 이 법을 명백한 「이재명 구하기법」이라고 불렀다.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반겼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 의사결정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계기가 될 거라고 했다. 당의 TF에 참여한 오기형 의원은 완전 폐지라기보다 대체 입법을 어떻게 유형화할지 보면서 가는 것이라고 했다. 5월 12일 선관위에 낸 10대 공약 1번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강국」에 담긴 것은 민간 AI 투자 100조 원 시대와 AI 인재 양성, AI 데이터센터였다. 규제 합리화는 공약 바깥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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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뒤인 12월 11일, 정부 부처의 새해 업무보고가 시작됐다. 정부 출범 반년 만이었고, 업무보고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생중계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국정 청사진을 투명하게 제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해 달라고 지시해 두었다. 넉 달 전인 8월 13일 청와대 영빈관 국민보고대회에서 그는 이렇게 약속했었다. “국민의 정책효능감을 배가시켜 나가고 이 모든 과정을 국민들께 투명하게 공개하겠다.”
첫날부터 질문은 매서웠다. 마약과 총기류 적발이 어려운 까닭으로 이명구 관세청장이 인력과 장비 부족을 꼽자 대통령이 말했다. “필요한 일 하라고 국민들이 세금을 내는 것이고, 세금으로 더 나은 삶을 만들어달라는 것인데, 인력이 없어서 필요한 일을 못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국토교통부 업무보고가 이어졌다. KTV와 유튜브가 그 장면을 그대로 내보냈다. 대통령이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불렀다.
“1만 달러 이상은 (해외로) 못 가지고 나가게 돼 있는데, 100달러짜리로 수만 달러를 책갈피에 끼고 나가면 안 걸린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그래요?”
“현재 기술로는 발견이 좀 어렵다.”
“안 걸린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책을 다 뒤져 보라.”
문답은 자꾸 엇나갔다. 이 사장이 보안검색은 칼이나 유해물질을 주로 찾는 일이라고 하자 대통령은 안 한다는 얘기냐고 되받았다. 이번에도 적발해 세관에 넘겼다는 대답에는 외화 불법 반출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는데 자꾸 옆으로 샌다고 했다. 이 사장이 대답하지 않자 대통령은 목소리를 높여 지금 다른 데 가서 노시냐고 물었다. 의논하고 있었다고 이 사장은 해명했다. 대통령은 이 사장에게 이집트 후르가다공항 등 해외 공항 사업도 물었다. 초기 단계라는 대답에 사업 전망과 발주 계획을 되물었고, 답이 나오지 않자 임기를 물었다. 그러고는 사장을 맡은 지 3년이나 됐는데 업무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보고서에 쓰인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하고 보고를 끝냈다. 이 사장은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6월에 임명된 사람이었다.
이틀 뒤 이 사장은 불법 외화 반출은 세관의 업무라고 반박했다. 그는 하나를 더 걱정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그 일로 온 세상에 책갈피에 달러 숨기면 검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대통령이 해법으로 내놓은 수하물 전수 개장 검색을 하면 공항이 마비될 거라고도 했다. 반대편에서는 인천공항공사 사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이 공사와 세관이 맺은 양해각서를 꺼냈다. 공사가 맡는 검색 범위에 「미화 1만 불 초과의 외화」가 들어 있었고, 그 각서는 이 사장 임기 2년차인 2024년 8월 5일에 맺어진 것이었다. 공사는 관세법상 외화 밀반출 단속은 관세청 몫이고 공사는 지원할 뿐이라고 맞섰다. 인천공항에서 엑스레이 판독을 맡았던 한 퇴직자는 지폐 위조 방지 장치가 잘된 일부 나라의 지폐를 빼면 대부분 판독이 어렵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수법을 공개한 덕에 오히려 예방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반박했다.
12일 국토부 보고에서 대통령은 철도 차량 납품 지연 사태를 두고 이미 납기를 어기고 있는 업체에 또 낮은 값으로 낙찰받을 기회를 줬다고 짚었다. “감시 역량이 전혀 작동하지 못한 것이다. 제가 보기엔 정부기관들이 사기당한 것 같다.” 70퍼센트까지 주는 선급금을 20퍼센트를 넘지 않게 바꾸라고 지시했고, 30년째 이어진 새만금 개발에는 이렇게 말했다. “주권자들에게 헛된 희망이나 실현이 거의 어려운 희망을 계속 주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고에서는 AI 이야기가 나왔다. 앞으로 인공지능을 쓰지 못하면 산수나 한글을 깨치지 못한 것과 같아진다며, 동네 아주머니와 아저씨, 할아버지와 할머니 누구나 쓸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AI를 쓸 수 있게 만들라고 했다.
그날 대통령은 동북아역사재단 박지향 이사장에게 환빠 논쟁이 있지 않느냐고,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 질문이 화면에 그대로 나간 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말했다. “논란이 아닌 것을 의미 있는 논란이 있는 것처럼 억지로 만들어 혼란을 일으켰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더 날을 세웠다. “부정선거를 믿는 대통령 다음이 환단고기를 믿는 대통령이라니 대한민국이 걱정된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생중계 업무보고가 공직사회의 긴장을 높인다고 평가하면서도, 이 사장을 향한 질타가 전 정권 인사에 대한 압박이라는 반발을 불렀다며 절제를 주문했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도 한쪽을 인정했다. “생중계를 통해 지엽적인 부분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해석되는 문제들은 있다.” 그래도 생중계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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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같은 세종의 회의장에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차례가 왔다. 둘째 주의 첫머리였다.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농담으로 열었다.
“요즘 업무보고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져 생중계 시청률도 많이 나올 것 같다. 넷플릭스보다 더 재미있다는 설도 있더라.”
그러고는 공무원들에게 말을 건넸다. “약간 긴장되죠? 또 무슨 폭탄이 떨어질까. 진짜 문제는 모르는데 아는 척 하는 거예요. 그럼 판단이 왜곡됩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된다고 했고, 이틀 했더니 이것도 물어봐 달라, 저것도 물어봐 달라는 메시지가 엄청나게 온다고 했다. 그리고 공직자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를 짚었다.
“공직자는 국민으로부터 보수를 받으며 국민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상사가 아닌 국민에 충성해야 한다.”
문답은 그날도 꼬리를 물었다. 마약 사범 재소자 교육을 누가 맡느냐를 두고 대통령과 서국진 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이 몇 번을 주고받았다.
“나눠서 하면 나눠서 하고 혼자 하면 혼자 하는 거지 그게 뭐 주로 혼자 하는 게 어디 있어요?”
“나눠서도 합니다.”
“어디가 하냐고요, 나눠서.”
이사장은 보호관찰소와 법무부, 그리고 자기네 센터를 차례로 꼽았다.
식약처 보고 도중, 대통령이 사람 하나를 찾았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 불이 나 정부의 국민신문고가 멈췄을 때, 식약처가 따로 시스템을 만들어 민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앞서 국무회의에서 오유경 식약처장이 보고한 일이었다. “주말에 전산팀 직원들이 그야말로 밤을 새워 식의약 국민신문고를 만들었다.” 문을 연 첫날 70여 건의 민원이 들어왔다. 그때 대통령은 처장이 훌륭하니 직원들도 열심히, 빨리 하는 모양이라고 했었다.
그는 그 일의 담당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오 처장이 김익상 팀장이 이 자리에 와 있을 거라고 답했다.
“네, 아주 훌륭하게 잘 처리했어요.”
객석에서 김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 감사합니다.”
“박수 쳐주세요.”
주말 밤을 새운 전산팀의 일이 처음으로 한 사람의 이름을 얻는 자리였다. 대통령은 응급조치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대응한 일을 다시 짚었고, 너무 잘하셨다고 거듭 말했다.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회의장의 손뼉이 한 팀장에게 모였다. 그날 생중계 화면에는 질타를 받는 기관장만이 아니라, 주말 밤을 새운 팀장이 일어서는 모습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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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마지막 업무보고는 부산에서 열렸다. 대통령은 지난 열사흘을 돌아봤다. 생중계로 진행된 이번 업무보고를 통해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높아지고 국민의 주권의식도 다져졌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쏟아진 비난도 그는 제 입으로 옮겼다.
“대통령이 경박하게 저렇게 장난스럽게 하냐, 권위 없다, 품격 없다는 비난도 있기는 하다.”
세상일은 양면이 있다고 그는 말을 이었다. 잃는 점이 있다면, 재미있다고 여기게 해 관심을 끌어올린 것은 성과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리고 숙제를 남겼다. 최소한 업무보고서에 자기가 쓴 글자의 뜻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몰랐지만 6개월 뒤 다시 할 때는 또 다른 방식으로 체크해 보겠다.”
국민에게도 그는 기다려 보라고 했다. 겨울이 지난 뒤에 공직사회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출처 · 아시아경제, 2025년 9월 15일, 「李 “대통령 직속 규제 합리화委 만들 것”…속도전 당부(종합)」 · 쿠키뉴스, 2025년 9월 15일, 「李대통령 “거미줄 규제 과감히 걷어내겠다…배임죄도 대대적 개정”」 · 뉴시스, 2025년 9월 15일, 「이 대통령 “기업 괴롭히는 배임죄…대대적으로 고쳐야”(종합)」 · 서울신문, 2025년 10월 1일, 「배임죄 폐지 공식화에 정치권 충돌… 與 “성장 도움” 野 “이재명 구하기”」 · 뉴시스, 2025년 5월 12일, 「이재명 10대 공약 발표…“포괄임금 금지하고 세종의사당 임기 내 건립”」 · 경인일보, 2025년 8월 13일, 「국정기획위 ‘국민보고대회’ 5대 목표·23대 전략·123대 과제 제시」 · 경향신문 사설, 2025년 12월 14일, 「생중계 업무보고, 국정 긴장 높이고 길 잡는 무대 되어야」 · 뉴시스, 2025년 12월 12일, 「이 대통령 “국토부 부정부패 요소 많아”…기관장엔 “저보다도 몰라” 공개 질타도(종합)」 · 한국일보, 2025년 12월 15일, 「〔팩트체크〕 이 대통령 질타한 달러 반출 검색, 세관? 인천공항공사?」 · 헤럴드경제 미주판, 2025년 12월 17일, 「이학재 사장의 동문서답, 책갈피속 달러 불법 반출 ‘수십년 전 뉴스 보도’… 업무 능력 논란 확산 거세져」 · 한국일보, 2025년 12월 15일, 「야 “부정선거론자 다음이 ‘환단고기’냐” 맹폭... 대통령실 “연구 지시 아냐” 진땀 해명」 · 헤럴드경제 미주판, 2025년 12월 14일, 「대통령 업무보고 중반 돌입…논란의 생중계는 계속」 · 데일리안, 2025년 12월 16일, 「李대통령 “생중계 업무보고 국민 관심 높아져…넷플릭스보다 재밌단 설도”」 · SBS, 2025년 12월 16일, 「“박수 쳐주세요” 이 대통령 칭찬…업무보고 중 어땠길래」 · 이데일리, 2025년 12월 16일, 「李대통령, 부처별 업무보고 도중 공무원 공개 칭찬…사연은」 · 경북매일, 2025년 12월 23일, 「李 대통령 “생중계 방식 업무보고 6개월 후 다시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