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6,730자) · 2025년 10월 29일~11월 1일, 경주

이가 흔들린 협상

이재명의 삶 · 네오

2025년 10월 29일 오전 11시 30분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태운 전용기가 김해국제공항에 내렸다. 그는 경주로 올라와 APEC 최고경영자 서밋 연단에 먼저 섰다. 연설 도중 그는 한국 산업통상부 장관 김정관을 가리켜 매우 강경하고 뛰어난 협상가라고 했다. 그보다 앞선 10월 16일에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미국으로 날아갔고, 사흘 뒤 돌아와 APEC을 계기로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외환시장에 영향이 없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다가섰다는 말도 했다.

오후 2시 10분쯤, 트럼프가 국립경주박물관에 닿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를 맞았다. 두 사람은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신라의 유물이 놓인 전시실을 둘러봤다. 그다음 이재명이 상자 하나를 열었다. 무궁화대훈장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이 훈장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금 190돈과 은 110돈에 자수정과 루비와 칠보를 박아 두 달쯤 걸려 만든 훈장이었고, 금값만 1억 3천만 원 남짓이었다. 목에 거는 경식장과 정장, 부장, 금장까지 네 벌이었다. 김태진 외교부 의전장이 수여의 뜻을 읽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의 물꼬를 터주신 트럼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면서 평화와 번영에 미리 감사하는 마음으로 훈장을 드린다.” 이재명이 말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통령님께 각별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드린다. 한국과 미국 간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

이어 그는 천마총 금관을 본뜬 모형을 건넸다. 지금 남은 신라 금관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하다는 금관이었다. 트럼프가 말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선물이다. 지금 당장 착용하고 싶을 정도다. 미국과 한국 간 동맹관계는 특별하고, 앞으로도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소중히 간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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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훈장 상자가 열리기까지 다섯 달이 걸렸다.

대선을 아흐레 앞둔 5월 25일 오전, 후보 이재명은 SNS에 외교·안보 공약을 올렸다. 그 가운데 한 줄이 관세였다. “상호 이익을 균형있게 조정하며 관세를 협상하겠다.” 취임하고 두 달이 안 된 7월 31일, 한미는 큰 틀에 합의했다.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1,000억 달러어치 에너지를 사들이는 대신, 상호관세를 25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내리는 내용이었다. 그날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대강당에서 장차관 워크숍이 열렸다. 대통령이 연단에 섰다.

“촉박한 기간과 녹록지 않은 여건이었지만 정부는 오직 국익을 최선으로 협상에 임했다.”

그는 이 협상이 좁게 보면 기업들의 해외 시장 이야기지만 사실은 국민들에게 지워질 수 있는 부담이라고 했다. 그는 말을 하면 악영향을 줄까 봐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했다. 곁에 있는 참모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안다고 했다. 그리고 한미 통상협상을 입에 올리다가, 그 사이 자기 이가 흔들렸다고 했다.

큰 틀 뒤의 세부는 석 달 가까이 풀리지 않았다. 자동차에 붙는 관세는 그사이에도 25퍼센트 그대로였다. 9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미국이 내민 안에 동의했다면 자신은 탄핵당했을 것이라고 했다.

9월 22일, 국민의힘 지도부가 경북 경산의 자동차 부품 회사 일지테크 공장을 찾았다. 그날 대통령은 유엔총회에 가려고 미국으로 떠나는 길이었다. 장동혁 대표가 말했다.

“관세 협상이 타결되기만 목빠지게 기다리는 우리 기업들은 새까맣게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그는 이어 말했다. “자동차업계는 벌써 심한 타격을 입고 관세 협상이 타결되기를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부품업계는 그 불안이 더하다.” 대통령의 타임 인터뷰를 두고는 관세 협상이 사실상 완전히 실패였음을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송언석 원내대표가 말했다.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 관세가 일본은 15%로 내려갔는데, 우리는 아직 25% 관세를 물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정부가 관세 문제를 기업에 떠넘기고 발을 빼려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송언석 원내대표의 말은 더 날이 서 있었다. “합의문 필요없을 정도로 잘된 회담을 했다고 국민을 상대로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은 대통령실 담당자와 관련 책임자를 당장 경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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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천년미소관에서 회담이 열렸다. 모두발언에서 이재명은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서 요청 하나를 공개로 꺼냈다.

“핵추진잠수함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을 수 있도록 대통령님께서 결단해주시면 좋겠다.”

그는 곧바로 선을 그었다. “우리가 핵무기를 적재한 잠수함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유도 댔다. 디젤 잠수함은 물속에 오래 머물지 못해 북한이나 중국 쪽 잠수함을 쫓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뒤에 그 말이 특정 국가의 잠수함을 가리킨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회담은 87분 동안 이어졌다. 오찬 자리에서 트럼프가 한국 쪽 참석자들을 둘러봤다. 많은 분들을 알고 있다고, 그들과 협상을 해 왔는데 아주 강경한 협상가들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몇 시간 전 서밋 연단에서 김정관 장관을 두고 한 말과 같은 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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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10시, 경주 APEC 국제미디어센터의 브리핑 연단에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섰다. 첫마디는 이랬다.

“국민들께 보고드린다. 대한민국 정부는 10월 29일 미국과의 관세협상 세부내역에 합의했다.”

3,500억 달러는 현금 2,000억 달러와 조선업 협력 1,500억 달러로 나뉘었다. 현금은 한 해에 200억 달러를 넘겨 내지 않는다는 상한이 붙었다. 대미 최대 수출품인 자동차의 관세는 25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내려 일본, 유럽연합과 같아졌다. 김용범 실장은 조선 협력에 새 배를 지을 때 장기 금융으로 돈을 대는 선박 금융을 넣어 외환시장의 부담을 줄이고 우리 기업이 배를 수주할 길도 넓혔다고 했다. 투자를 담을 특수목적법인은 우산 모양으로 짜서, 한 사업에서 손실이 나도 다른 사업에서 메울 수 있게 했다고 했다. 그가 타결 대신 합의라는 말을 고른 데는 까닭이 있었다.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는 끝까지 두 나라가 부딪친 쟁점이었고, 구체적인 비율은 문서에 적히지 못했다.

밤사이 여의도의 말이 갈렸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이 매우 논리적으로 설득한 쾌거라고 했다. 김병기 원내대표가 말했다. “한미 관세협상의 성공적 타결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대내외의 압박과 낭설을 이겨 낸 국익·실용·실리 외교의 큰 성과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부담이 이제부터라고 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이 말했다. “이번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마무리됐다.” 그는 2,0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내보내면 외환시장이 흔들릴 수 있고, 그런 약속에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동혁 대표가 말했다. “합의내용인지 전부인지에 대해서도 국민들께 정확히 밝혀야 한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붙은 50퍼센트 품목관세는 그대로 남았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 문제는 미국에 더 요청해야 하고 아직 조정이 안 됐다고 했다. 동국제강의 한 관계자가 말했다. “지금처럼 높은 관세가 이어지면 (대미 수출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뉴스1은 철강·알루미늄 품목관세에 묶인 중소 부품사들이 타결 소식에도 울상이라고 전했다.

*

이튿날 10월 30일, 트럼프가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렸다. 한미 군사동맹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 전 회담장에서 나온 요청에 답했다. 한국어로 옮겨진 문장은 이랬다.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배를 지을 곳으로는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꼽았다. 한화그룹이 2024년 12월에 사들인 필리조선소였다. 한국 정부가 그 뒤 정리한 문서에는 상업적 농축과 재처리,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적혔다. 연료를 어떻게 들여올지와 배를 어디서 지을지는 다음 협의로 넘어갔다.

같은 날 김용범 실장은 국제미디어센터 중앙기자실에 다시 섰다. 그는 하루 전 새벽까지의 일을 꺼냈다. 28일 밤까지도 전망은 어두웠다.

“자정까지도 양국간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고 비관적이었다.”

그러다 29일 오전,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일사천리로 매듭이 지어졌다고 그는 말했다. 반도체 관세는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조건을 곧 나올 공동 설명자료에 담았다고 했다. 농산물에 대해서도 한 문장을 남겼다. “쌀·소고기를 포함한 농산물 추가 시장 개방을 철저히 방어했다.” 미국 쪽에서 합의를 달리 읽히게 하는 말이 나온다는 물음에는 이렇게 답했다. “정치인의 언어는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말을 논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의 기준은 두 나라가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문서에 어떻게 적을지를 두고 아직 오가는 중이라고 했다.

11월 1일, 송언석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중국 잠수함을 입에 올린 것을 외교적 실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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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서쪽으로 한참 떨어진 광주에서는 숫자가 다르게 읽혔다. 광주 제조업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몫이 44퍼센트였고, 미국으로 나가는 광주 물건의 76퍼센트가 자동차였다. 기아 광주공장은 한 해 전 51만 3천여 대를 만들었고, 그 가운데 18만여 대가 미국으로 갔다. 그해 9월 말까지 광주가 내보낸 자동차는 56억 4,400만 달러어치였고, 그 가운데 32억 8,700만 달러어치가 미국행이었다. 광주의 자동차 부품 업체는 680여 곳이었다. 25퍼센트 관세가 붙어 있던 2분기, 기아의 영업이익은 2조 7,600억 원으로 한 해 전보다 24퍼센트 줄었다. 현대차는 3분기에 관세 영향이 본격화하면서 영업이익이 1조 8천억 원 줄었다고 밝혔다. 인천의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그 몇 달을 이렇게 말했다. “완성차 업계가 흔들리니 대응 여력이 부족한 중소 부품 업체는 더 타격이 컸다.”

강조병 광주상공회의소 기획조사본부장은 자동차 부품 업체도 완성차 업계와 똑같이 15퍼센트의 관세를 물게 됐으니, 가격 경쟁력에서 충분히 맞설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오병성 한국자동차부품협회 회장도 같은 숫자를 봤다. “25%에서 15%로 떨어졌으니까 저희로서는 다른 나라보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아주 긍정적 신호가 있고요.”

다섯 달 전 SNS에 올린 한 줄은 그렇게 광주와 인천의 부품 공장까지 내려왔다. 그 사이 대통령이 관세를 두고 입을 다문 까닭은 7월의 강당에서 이미 털어놓은 그대로였다. 말을 하면 협상에 악영향을 줄까 봐서였다. 그날 그는 가까이 있는 참모들은 안다고 했다. 이가 흔들리던 그 몇 달 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를.

출처 · 동아일보, 2025년 10월 29일, 「트럼프, 한국측에 “강경한 협상가들”…훈장받고 “당장 착용하고 싶다”」 · 세계일보, 2025년 10월 29일, 「李대통령, 트럼프에 무궁화대훈장…금관 모형도 선물」 · 헤럴드경제, 2025년 10월 29일, 「트럼프, 李에 받은 무궁화대훈장…금 190돈 들어갔다」 · MBN, 2025년 5월 26일, 「이재명 “한미동맹 복원·남북 대화 재개”…외교안보 4대 공약 발표」 · 이코노미조선, 2025년 8월 8일, 「〔3500억弗 투자·1000억弗 에너지 구매로 트럼프 설득〕 한미 무역 협상 타결…상호 관세 25%→15%」 · 머니투데이, 2025년 7월 31일, 「관세협상 타결 후···이재명 대통령 “노심초사, 이가 흔들렸다”」 · 국민일보, 2025년 9월 22일, 「장동혁, ‘탄핵당했을 것’ 李대통령 인터뷰에 “관세협상 완전실패 인정”」 · 조선비즈, 2025년 9월 22일, 「車부품업체 찾은 野 “李대통령도 관세협상 실패 인정, 책임자 경질해야”」 · 헤럴드경제, 2025년 9월 22일, 「자동차부품 업체 찾은 국힘 “관세 협상 지연, 韓기업 속 타들어간다” 〔이런정치〕」 · 아이뉴스24, 2025년 10월 15일, 「김용범 정책실장, 16일 미국행…관세 협상 주요 ‘분기점’ 될 듯」 · 머니투데이, 2025년 10월 19일, 「김용범 “관세협상, APEC 계기 타결 가능성↑…외환시장 영향 없어야, 의견 접근”」 · 헤럴드경제, 2025년 10월 29일, 「李대통령, 트럼프에 ‘北·中쪽 잠수함’ 거론하며 핵추진잠수함 설득」 · 조선비즈, 2025년 10월 29일, 「김용범 정책실장이 ‘타결’ 대신 ‘합의’를 말한 까닭은」 · 세계일보, 2025년 10월 30일, 「경주서 한미 관세협상 극적 타결…연 상한 200억달러·車관세 15%」 · 헤럴드경제, 2025년 10월 29일, 「與 “한미 관세협상 쾌거”…국힘 “부담 이제부터”」 · 뉴시스, 2025년 10월 29일, 「한미관세협상 타결…與 “실용외교의 큰 성과” 野 “현금 투자 규모 커 국민 부담”」 · 무등일보, 2025년 10월 30일, 「‘韓·美 관세타결’ 광주는 ‘안도’...전남은 ‘시름’」 · 경기일보, 2025년 10월 31일, 「‘한미 관세 협상’ 인천 자동차·부품 웃고, 철강 울고…바이오는 안도 한숨」 · 뉴스1, 2025년 10월 31일, 「“50% 품목관세 그대로” 中企부품사, 협상타결에도 ‘울상’」 · 전북일보, 2025년 10월 30일, 「트럼프 “韓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美필리조선소에서 건조”」 · 머니투데이, 2025년 10월 30일, 「김용범 정책실장 “美반도체 관세,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게 문서 반영”」 · 데일리안, 2025년 11월 3일, 「트럼프엔 금관, 시진핑엔 바둑판…경주 APEC 무엇을 남겼나」 · 정책브리핑, 2025년 12월 8일, 「이재명 정부 첫 6개월의 기록, 국민께 보고드립니다」 · 헤럴드경제, 2025년 11월 1일, 「송언석 “한중 회담, 빈 수레 외교…서해 구조물 등 현안 해결 못 해”」 · 광주MBC, 2025년 10월 31일, 「한미정상, 자동차 관세 15% 합의…광주 기업들 안도」 · MBN, 2025년 10월 30일, 「한미 관세협상 극적 타결…자동차 업계 최대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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