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6,586자) · 2016년 10월~2018년 3월, 서울과 성남

공장 마당의 출마

이재명의 삶 · 네오

2016년 10월 28일 밤, 성남시장 이재명은 JTBC 「썰전」에 나와 한 문장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 방송을 마친 그는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렸다. 점 두 개로 말을 끊고 「해요」로 맺는, 시장의 공지라기에는 가벼운 글이었다.

“비상상황..저도 내일 6시 청계광장 집회 참석해요.”

그는 같은 글에 대통령이 이미 대통령 자격과 권위를 잃었는데도 하야는 물론 거국내각조차 거부했다고 적었다.

이튿날은 토요일이었다. 저녁 6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범국민 촛불집회」가 열렸다. 첫 번째 촛불집회였고, 광장에는 2만여 개의 촛불이 켜졌다. 현직 시장이 단상에 올랐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는 대통령이 나라의 지배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는 머슴이자 대리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대통령을 겨눴다. “박근혜 대통령이 마치 지배자인냥 여왕인냥 ‘상왕 순실이’를 끼고 대한민국을 우롱하고 있다.” 촛불을 든 사람들 앞에서 그는 한 문장을 더 보탰다.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국민이 맡긴 위대한 통치권한을 근본도 알 수 없는 무당의 가족에게 통째로 던져버린 것은 용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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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냈다. 이재명은 대통령이 끝까지 하야를 거부했다고 했다. 이제 정치권에서 탄핵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11월 11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그는 역풍을 무서워하는 쪽을 향해 되물었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서 집행하는 쪽이 어떻게 역풍을 맞습니까?”

법대로, 상식대로, 국민이 원하는 대로 대의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튿날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대학로 시민대행진에 섰다.

숫자가 따라 움직였다. 10월 23~24일 알앤써치 조사에서 5.3퍼센트로 5위였던 그의 지지율은 11월 13~14일 조사에서 10.9퍼센트, 3위가 됐다. 기초자치단체장이 유력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12월 3일, 6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서울에만 32만 명이 모였다고 셌고, 주최 측은 160만 명이라고 했다. 시위대는 청와대에서 100미터 떨어진 효자치안센터 앞까지 나아갔다. 죄수복을 입힌 대통령 인형이 행렬에 있었고, 세월호 희생자들의 얼굴을 본뜬 석고 가면이 들렸다. 이재명은 거리에서 연설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새누리당이 박정희 향수를 이용해서 집권하려고 만든 생각도 없는 인형이었다고 했다.

같은 거리를 다르게 본 신문도 있었다. 뉴데일리는 이재명이 공직자의 본분을 내던지고 시위대를 선동한다고 썼고, 그의 말을 특유의 자극적인 발언이라고 불렀다. 12월 6~8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18퍼센트였다. 한 달 사이 10퍼센트포인트가 올랐고, 20퍼센트의 문재인 전 대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2퍼센트포인트 차였다. 같은 조사에서 탄핵에 찬성한 사람은 81퍼센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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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3일, 느닷없는 한파가 닥쳤다.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공단의 오리엔트시계 공장 마당에 1,000명 가까운 사람이 모였다. 공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직원, 일하는 엄마들, 장애인들이 많았다. 오전 11시, 이재명이 공장 정문으로 걸어 들어왔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가사로 한 노래가 흘렀다. 마당 곳곳에는 지지자 모임 「손가락혁명군」의 현수막이 붙었고, 그 옆에는 지게에 짐을 진 그의 캐리커처와 「국민머슴」이라는 글귀,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다는 「억강부약」 현수막이 나란히 걸렸다. 몇몇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SNS 생중계를 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20대 안모 씨는 평일 오전이라 오지 못하는 팬들을 위해 실시간 중계를 준비했다고 했다.

그는 1979년부터 2년 남짓 이 공장에서 일했다. 시계 문자판에 묻은 잉크를 아세톤과 시너로 지우는 일이었고, 그 냄새를 너무 오래 맡아 후각을 잃었다. 2,300명쯤이 함께 일하던 큰 공장이었고, 건물의 원형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날 그는 그 마당에서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고 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원래는 무대 위에서 하려던 순서였다. 그러나 어머니 구호명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몸을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이재명은 무대 아래로 가서 휠체어의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아내 김혜경과 두 아들, 누나와 형과 남동생이 그 곁에 섰다.

출마선언문을 읽는 동안 그는 여러 번 목이 멨다. 그는 마당에 선 사람들에게 열세 살의 봄을 이야기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1976년 봄부터 깔끔한 교복 대신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걸친 채 어머니 손을 잡고 공장으로 향했다.”

어머니 이야기에서 그는 연설을 잠시 멈췄다. 고된 밭일만으로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어려워 어머니는 약장사를 하고 밀주까지 팔았다. 그리고 부엌 구석에서 흐느꼈다고 그는 말했다. 그 어머니가 휠체어에 앉아 아들의 출마 선언을 듣고 있었다.

그가 울컥할 때마다 지지자들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연설이 끝나자 그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무대 위로 불러 소개했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이 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노동자들도 무대에 올라왔다. 성남의 청년배당을 받은 청년과 무료산후조리원 혜택을 받은 주부도 연단에 섰다. 창문 너머로는 지금 이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마당을 내다봤다. 그 가운데 금모 씨가 말했다.

“그래도 노동자로 일했던 분이 출마한다고 하니 가족같기도 해 뿌듯하다.”

회견 뒤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그날의 눈물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공장에서 코흘리면서 일하던 꼬맹이가 대선 선호도 3위 올랐다. 그것만 해도 영광이지만 저를 둘러싼 사람들 모두가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흔들렸던 것 같다.”

질문은 곧 날을 세웠다. 전날 안희정 충남지사는 세금을 누구에게 더 나눠 주는 정치는 답이 아니라고 했다. 국민은 공짜 밥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기본소득 같은 공약이 포퓰리즘 아니냐는 물음에 이재명은 비유로 받았다. “불효자가 효자인 형제에게 ‘왜 부모에게 잘보이려고 그러냐’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 성남시가 해낸 무상교복, 산후조리비, 노인 일자리를 하나씩 들고 그 가운데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비리보다 100배 낫지 않나.”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격차가 크다는 질문도 나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는 경선에서 반드시 이기게 될 것이다.”

*

숫자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12월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뒤, 촛불 정국에서 18퍼센트까지 올랐던 그의 지지율은 반토막이 났다. 이듬해 3월 경향신문은 그를 선명성과 추진력을 갖춘 흙수저 정치인으로 그리면서도, 포용하는 리더십이 모자라고 반대자를 설득해 타협점을 찾는 과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평했다. 시정 공약 96퍼센트를 이룬 배경에는 시의회를 돌아 이해당사자와 직접 소통한 방식이 있었다고 짚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시장의 정책은 훌륭하지만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는 기득권의 타협 제안은 다 차단한다고 했다. “결국 믿을 것은 손가락밖에 없다.”

2017년 4월 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더불어민주당 마지막 순회경선이 열렸다. 수도권·강원·제주 경선이었다. 수도권에서 그는 22퍼센트, 14만 5,688표를 얻어 2위에 올랐다. 그러나 네 번의 순회경선을 모두 더한 숫자는 달랐다. 문재인 93만 6,419표, 57.0퍼센트. 안희정 35만 3,631표, 21.5퍼센트. 이재명 34만 7,647표, 21.2퍼센트였다. 2위와는 5,984표 차였다. 문재인 후보가 수락 연설에서 말했다. “오늘 우리에게 승자와 패자는 없다.”

결과가 나온 뒤 일부 이재명 지지자들은 문 후보를 비판하며 행사장을 떠났다. 경선에 승복하지 못하는 지지자들 앞에서 이재명이 말했다.

“울지 말고, 탓하지 말고, 세상 사람들을 우리가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구나, 우리의 진심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구나, 우리가 더 많이 준비해야 되겠구나, 우리의 정성이 아직 부족했구나, 이렇게 생각하자.”

취재진 앞에서 그는 결과를 받아들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개시’치고는 괜찮았다.”

그는 현역 자치단체장이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일 60일 전부터 자치단체장이 정당의 정치 행사에 나서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패배한 후보가 승자의 손을 번쩍 들어 줄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이 순간부터 현역 자치단체장이라 말 한마디 하면 가는 수가 있어 조심하겠다.” 관중석의 지지자들에게 그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여러분의 열정과 이 눈물이 합쳐져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격류를 만들 것이라고 했고, 고개를 숙였다. 경선장을 빠져나가는 그의 등 뒤에서 지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나흘 뒤 문 후보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문 후보가 우리 집안 큰형님 같다고 했다.

*

2018년 3월 14일, 이재명은 성남시장직을 내려놓았다.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나서기 위해서였다. 시장이 된 지 8년 만이었다.

그 8년 동안 붙은 별명은 「쌈닭」, 「전투형 노무현」, 「사이다」, 「삼식이」, 「무수저」, 「한국의 샌더스」였다. 취임하자마자 선언한 지불유예는 진위 공방을 불렀지만, 자치단체마다 재정을 다시 살피는 계기가 됐다. 무상교복과 산후조리 지원, 청년배당으로 그는 중앙정부, 경기도와 날마다 다퉜고 그 싸움은 대법원 제소로까지 번졌다. 그 사이 용인과 광명, 과천 등 경기도의 여러 시·군이 고교 신입생 무상교복을 추진하고 나섰고, 경기도와 도교육청도 이듬해부터 들이기로 했다. 2014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공약 이행 평가에서 성남시는 가장 높은 SA 등급을 받았다. 그해 선거에서 그는 공약 이행률 94퍼센트를 인증받았다고 했다. 시청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깃발과 현수막이 걸렸고, 시청 광장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섰다.

같은 8년에는 다른 기록도 있었다. 역점사업마다 시의회와 부딪쳤고, 2013년 예산을 두고는 준예산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민선 6기에는 시의회 본회의에 자주 나가지 않아 지방의회를 무시한다는 질타를 받았다. 그의 정치적 역량이 모자란 것 아니냐는 말이 뒤따랐다.

떠나는 날 그는 그 소리들을 먼저 꺼냈다.

“갈등 유발, 시끄럽다, 과격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시민 중심의 정치라는 대의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어 맞서던 도시가 하나로 풀리고 시민들이 성남에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을 성과로 꼽았다. “성남시민은 훌륭한 주권자였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시민에게 남겼다.

“시민께 고맙고, 감사하다. 시민이 주인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출처 · 서울신문, 2016년 10월 28일, 「썰전 이재명, 방송 이어 촛불집회 참가…“토요일 6시 청계광장서 만나요”」 · 시대, 2016년 10월 30일, 「이재명 성남시장 “국민이 맡긴 통치권 무당에 넘어갔다”」 · 주간경향, 2016년 12월, 「〔표지이야기〕 장소로 본 격동의 2016년」 · 프레시안, 2016년 11월 4일, 「문재인 “마지막 요구…박근혜, 국정에서 손 떼라”」 · 노컷뉴스, 2016년 11월 12일, 「이재명 “국민 뜻 따르는 쪽이 왜 역풍 무서워하나?”」 · 서울신문, 2016년 11월 13일, 「야권 대선주자들 촛불 들고 거리로」 · 경향신문, 2016년 11월 19일, 「이재명 10.9%, 나 이제부터 넘버3야!」 · 뉴데일리, 2016년 12월 3일, 「횃불로 바뀐 촛불, 대통령 끌어내자며 법원 결정도 무시」 · 머니투데이, 2016년 12월 9일, 「탄핵 찬성 81%…이재명 지지율 18%, 1위와 2%P차 3위-한국갤럽」 · 머니투데이, 2017년 1월 23일, 「역대급 한파 녹인 이재명 공장 출마선언식..“코흘리개 일꾼이 3위 대선주자 됐다”」 · 뉴스1, 2017년 1월 23일, 「30여년전 소년공 이재명..그때 그곳서 감격의 대권출마 선언」 · 한국경제TV, 2017년 1월 23일, 「이재명 대선 출마 선언, 포퓰리즘 비판에 조목조목 반박 ‘눈길’」 · 뉴시스, 2017년 1월 23일, 「대선 공식 출마 선언한 이재명 성남시장 일문일답」 · 경향신문, 2017년 3월 15일, 「〔민주당 경선 후보 탐구〕(3)이재명 - ‘흙수저’ 정치인, 선명성·추진력 갖춰..포용적 리더십은 부족 평가 ‘걸림돌’」 · 이투데이, 2017년 4월 3일, 「〔종합〕민주 대선후보, 이변없이 문재인… 57%로 본선행」 · 서울신문, 2017년 4월 3일, 「문재인, 경선 합계 57.0% 득표, 대선후보 확정…」 · 한국일보, 2017년 4월 3일, 「안희정·이재명 “문재인 축하.. 정권교체 힘 모을 것”」 · 중앙일보, 2017년 4월 4일, 「안희정·이재명 깨끗한 승복 .. 중국·러시아 외교관들까지 참석」 · 노컷뉴스, 2017년 4월 10일, 「〔뒤끝작렬〕 ‘적극적인 패자’…안희정·이재명의 대인배 행보」 · 서울신문, 2014년 5월 24일, 「〔후보자 인터뷰〕 “시민주치의·무료 산후조리원 약속”」 · 서울신문, 2018년 4월 2일, 「〔단독〕 서울 영등포·관악구 등 16곳 2연속 ‘최우수’」 · 뉴시스, 2018년 3월 14일, 「‘쌈닭·전투형 노무현·무수저’ 이재명 시장의 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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