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6,297자) · 2025년 7월~2026년 9월, 대전과 서울과 부산
인권 회복
이재명의 삶 · 네오
2025년 7월 4일,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 시민 350명이 모였다. 「충청에서 듣다, 충청 타운홀 미팅」이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이재명 대통령이 시민들 앞에서 빚 이야기를 꺼냈다.
“7년 동안 연체되고 5000만원 이하 장기 연체 소액 채권은 탕감하자”
그는 빚이 사람을 어떻게 묶는지부터 풀었다. “사람들이 빚을 지면 신용불량이 된다. 통장이 있으면 압류당하니 취직도 못 하고 아르바이트도 못 한다.”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못 하면 정부 입장에서도 손실이라고 했다. 이런 것을 방치하는 것이 옳으냐고 묻고, 차라리 못 갚는 게 확실한 빚은 탕감하자고 했다.
코로나 때 문을 닫은 가게들 이야기로 넘어갔다. 다른 나라는 국가 돈으로 위기를 넘었는데 우리는 개인에게 돈을 빌려줬고, 그래서 다들 빚쟁이가 됐다고 했다. 소상공인이 파산하고 문을 많이 닫았으니 정부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도덕적 해이를 걱정하는 목소리에는 이렇게 되물었다. 갚을 능력이 되는데 빚을 탕감해 줄지 모르니 7년 신용불량으로 살아 보겠느냐고. 그리고 한 가지를 덧붙였다.
“정상적으로 갚는 분들도 많이 깎아줄 생각이고, 앞으로도 (탕감 제도를) 추가할 생각”
같은 날 여의도에서는 국회 본회의가 몇 차례나 시간을 미룬 끝에 31조 8,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통과시켰다. 재석 182명 가운데 찬성 168명, 반대 3명, 기권 11명이었고, 국민의힘은 표결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추경 안에 장기연체채권 소각 프로그램 몫으로 4,000억 원이 들어 있었다. 정부는 그 추경의 87.5퍼센트를 9월 말까지 집행하겠다고 했다.
약속의 뿌리는 대선 공약집에 있었다. 「15대 정책과제」 가운데 가계와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고 활력을 높이겠다는 항목 아래, 장기소액연체채권 소각 등을 위한 「배드뱅크」 설치가 들어 있었다. 한시적으로 대규모 펀드를 만들어 민간 금융사의 부실채권을 사들이고 소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공약이 나왔을 때 한성대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모든 자영업자의 빚을 대신 갚아주기보다 좀비 자영업자의 퇴로를 열어주는 관점에서 채무조정·탕감을 시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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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의 숫자는 그보다 나흘 앞서 나와 있었다. 6월 30일,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를 공개했다. 2020년부터 2025년 4월까지, 7년 넘게 연체된 5,000만 원 이하의 무담보 빚을 스스로 갚은 사람이 361만 2,119명이었다. 정부가 탕감하겠다는 113만 4,000명의 세 배가 넘었다. 강 의원은 정부의 장기 연체채권 소각 프로그램을 정면으로 겨눴다.
“‘장기 연체채권 소각 프로그램’ 추경 사업은 결국 채무에 대한 자기 책임 원칙을 무너뜨리고 성실하게 빚을 갚은 국민과의 형평성 문제를 유발하며, 빚을 안 갚으면 언젠가 정부가 갚아줄 거라는 도덕적 해이를 사회 전반에 심어줄 수 있다”
그 자료를 실은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일해 빚 갚은 360만 명은 분해 울고, 현금 없는 사람은 집 없어 운다」. 빚을 갚은 사람과 갚지 못한 사람, 같은 나라의 두 무리가 같은 돈을 두고 서로 다른 쪽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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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뉴스1이 「빚 갚는 사람들」이라는 기획을 실었다. 기사는 빚을 탕감받으려고 일부러 버티는 사람들이 정말 우리 사회의 다수인지를 묻는 데서 시작했다.
기사 속 A 씨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25년 전 그는 운영하던 피아노 교습소를 닫았다. 폐업과 함께 빚이 여러 곳에 겹쳤고, 추심을 피해 몇 차례 이사를 다니는 사이 주민등록이 지워졌다. 법으로는 없는 사람이 됐다. 그는 한 교회에 숨어 소일거리로 생계를 이었다. 교회의 도움으로 200만 원을 모아 방 한 칸을 얻었지만, 주민등록을 되살리지는 못했다. 다시 빚 독촉이 시작될까 하는 두려움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와 마주 앉은 사람은 시민단체 롤링주빌리의 유순덕 상임이사였다. 상담은 40분이 걸렸다. 유 이사는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원금의 80퍼센트가 깎이고 이자가 면제됐다. 그가 다달이 갚을 돈은 6만 원이 됐다. 주민등록이 돌아오자, 일흔다섯이 되도록 한 번도 받지 못한 기초연금과 주거급여도 신청할 수 있었다.
빚이 다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남은 빚을 A 씨는 갚기로 했다.
“빚 갚으면서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는 북받친 눈물을 하염없이 쏟았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남겼다.
“신용 회복이 아니라 인권 회복이 된 것 같다.”
유순덕 이사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담자의 대부분은 빚을 회피하려는 게 아니라 가능한 범위 안에서라도 꼭 갚고 싶어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채무 조정 제도가 있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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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일 오전, 서울 중구 신용회복위원회 본사에서 새도약기금이 출범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연 자리였다. 7년 넘게 연체된 5,000만 원 이하 무담보 빚, 16조 4,000억 원어치를 사들여 113만 4,000명의 빚을 정리하는 기금이었다. 갚을 능력을 잃은 연체자를 돕기 위한 배드뱅크였다. 정부가 4,000억 원을 냈고 금융권이 4,400억 원을 보탰다.
기준은 소득과 재산이었다. 소득이 중위소득 60퍼센트 이하, 1인 가구로 치면 한 달 154만 원 이하이고 회수할 재산이 없으면 빚을 전부 소각한다. 갚을 힘이 모자라면 원금을 최대 80퍼센트까지 깎는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상환능력 심사 없이 그해 안에 먼저 소각하기로 했다.
양혁승 새도약기금 대표이사는 기금을 정부 포용금융 정책의 핵심 수단이라고 불렀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축사를 했다. 그는 새도약기금이 빚을 덜어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빚의 굴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다시 경제 활동의 주체로 서게 돕는 새로운 도약의 장치라고 했다. 정정훈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은 약속 하나를 보탰다.
“캠코는 자산관리자로서 모든 절차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해 국민 신뢰를 지켜 나가겠다”
열사흘 뒤인 10월 14일 오후, 대통령은 「디지털 토크 라이브」에서 다시 빚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한 번 빚지면 죽을 때까지 쫓아다녀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을 다른 나라는 국가 부채를 늘려 넘겼는데 우리는 힘없는 개인에게 떠넘겼다고 했다. 집합금지명령 같은 온갖 규제로 영업을 못 해 늘어난 빚은 재정이 감당할 몫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평생 고생시키면 좋아지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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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8일, 부산국제금융센터 캠코마루에서 첫 소각식이 열렸다. 이억원 위원장과 양혁승 새도약기금 대표, 정정훈 사장, 이재연 국민행복기금 대표, 그리고 국민 대표 네 명이 참석했다.
이억원 위원장은 그날의 소각이 단순한 빚 탕감이 아니라고 했다. 연체 때문에 경제 활동이 묶였던 사람이 다시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하게 돕고, 나아가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는 출발점이라고 했다.
그날 사라진 빚은 1조 1,000억 원어치였다. 사회 취약계층 7만 명의 장기 연체채권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6만 6,000명, 중증장애인이 3,000명, 보훈대상자가 1,000명이었다. 그 가운데 60대가 42.2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70대 이상도 27.8퍼센트였다. 50대 이상이 90퍼센트였다. 빚이 3,000만 원 이하인 사람이 80퍼센트를 넘었고, 연체 기간이 20년에서 25년 사이인 사람이 49.1퍼센트였다.
12월 22일부터 소각 대상자들의 휴대전화로 문자가 가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와 고객센터, 전국 열두 곳의 상담센터에서도 제 빚이 지워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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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은 분기마다 이어졌다. 2026년 3월 9일 2차로 6,286억 원어치가 지워졌고, 대상자들에게는 3월 23일 문자가 갔다. 그 가운데 6,000억 원가량이 기초생활수급자와 중증장애인, 보훈대상자의 빚이었다. 그때까지 사들인 채권 7조 7,220억 원 가운데 22.8퍼센트가 정리됐고, 사람으로 치면 20만 명 남짓이 빚에서 풀려났다. 6월 30일 3차로 6만 9,000명의 빚 4,992억 원어치가 더 지워졌다. 그 안에는 기금이 사들인 뒤 소멸시효가 끝난 채권 1,000억 원어치, 1만 2,000명분도 들어 있었다. 누적 소각액은 2조 2,583억 원이 됐다. 소각 대상자에게는 통장 압류 같은 법적 조치가 풀리고 통신비 지원 같은 혜택이 따랐다. 기금은 상환능력 심사를 마치는 대로 4분기에 더 소각하겠다고 했다.
2026년 7월 16일, 이억원 위원장은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나와 왜 빚을 지우는지를 다시 풀었다. 그는 7년 넘게 연체된 5,000만 원 이하의 빚을 10년, 20년 계속 추심하며 끌고 갈 것이냐고 되물었다.
“시혜나 배려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 이 사람들이 경제생활로 돌아와서 소비자·납세자가 되고 사회가 돌아간다”
상환능력이 있는데 지워 주자는 것이 아니라, 상환능력을 종합적으로 따져 보고 하자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9월에는 다른 쪽에서 물음이 나왔다. 빚을 지워 준 뒤 그 사람이 다시 연체의 굴레에 빠지는지 금융당국이 알지 못하고, 고용·복지 연계도 1년 가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9월 29일 금융위원회가 해명을 냈다. 신용정보원을 통해 신규 대출과 카드 발급, 재연체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상환능력 심사를 거친 사람들의 소각과 채무조정 단계부터는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의 고용·복지 연계 지원을 함께 안내하겠다고 했다. 이른 시일 안에 대상자마다 따로 안내도 하겠다고 했다. 이듬해부터는 취업 상태와 소득 변화, 재연체 여부를 오래 따라가는 패널조사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출범 1년을 앞두고 국민일보가 그 1년을 셈했다. 2026년 7월 말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사들인 채권은 11조 7,378억 원이었다. 금융위가 밝힌 매입 대상 95만 7,000명은 여러 기관에 빚진 사람을 겹쳐 센 숫자였다. 6월 말까지 빚이 지워진 사람은 중복을 빼고 23만 7,000명이었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속도를 짚었다. “앞으로는 매입한 채권의 심사를 얼마나 신속하게 마치고 실제 채무 정리로 연결하느냐가 중요하다” 남은 숙제도 같은 기사에 적혔다. 장기연체채권을 많이 가진 대부업체 상위 30곳 가운데 협약에 들어온 곳은 7월 말까지 15곳뿐이었다. 그리고 형평성의 문제가 다른 얼굴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은 소각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채무조정을 받아 빚을 꾸준히 갚고 있는 사람은 기금의 직접 지원을 받기 어려웠다.
한 달에 6만 원씩 갚아 나가기로 한 A 씨가 바로 그쪽에 서 있었다.
출처 · 중앙일보, 2025년 7월 4일, 「李 “장기연체 빚 탕감, 도덕적 해이? 7년 신용불량자로 살아보겠나”」 · 더팩트, 2025년 7월 4일, 「檢특활비 갈등 끝에…‘31.8조’ 李정부 첫 추경안 국회 통과」 · 헤럴드경제, 2025년 7월 5일, 「소비쿠폰·장기연체채권 소각으로 3개월내 추경 88% 집행…“속도가 핵심”」 · 연합뉴스, 2025년 6월 4일, 「〔이재명 시대〕 ⑦ 소상공인 위기탈출…채무탕감·골목상권 활성화」 · 조선비즈, 2025년 6월 1일, 「채무조정·탕감 공약 6개 발표한 이재명」 · 뉴데일리, 2025년 6월 30일, 「“일해 빚 갚은 360만 명은 분해 울고, 현금 없는 사람은 집 없어 운다”」 · 뉴스1, 2025년 8월 1일, 「25년 동안 ‘사라진 사람’, 40분 상담으로 되살아났다〔빚 갚는 사람들〕②」 · 경향신문, 2025년 10월 1일, 「장기연체채권 배드뱅크 ‘새도약기금’ 출범…기초생활수급자는 심사 없이 올해 소각」 · 머니투데이방송 MTN, 2025년 10월 1일, 「‘113만명 빚 16.4조 탕감’ 새도약기금 공식 출범」 · 한국경제, 2025년 10월 14일, 「李 대통령 “한번 빚지면 평생 쫓아다녀…신속 탕감해야”」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5년 12월 8일, 「장기 연체채권 1조 1000억 원 첫 소각…사회취약층 7만 명 새 출발」 · 비즈워치, 2025년 12월 8일, 「새도약기금 ‘첫 소각’ 연체채권 ‘60대’ 가장 많았다」 · 뉴시스, 2025년 12월 8일, 「금융위, 새도약기금 소각식…“취약층 연체채권 1.1조 소각”」 · 데일리안, 2026년 3월 9일, 「새도약기금, 취약계층 장기 연체채권 6286억원 소각…누적 1조7591억원」 · 한겨레, 2026년 6월 30일, 「새도약기금, 장기연체채권 5천억 추가 소각…누적 27만명 ‘빚 족쇄’ 풀려」 · 파이낸셜뉴스, 2026년 7월 16일, 「정부는 왜 장기연체자 빚을 탕감하나..금융위원장 설명은」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6년 9월 29일, 「〔사실은 이렇습니다〕 금융위 “새도약기금 지원 대상 후속관리 통해 경제적 재기 지원”」 · 국민일보, 2026년 9월 27일, 「‘이재명표 배드뱅크’ 새도약기금 도입 1년…11조원 매입, 빚 탕감은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