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6,699자) · 2025년 8월 23일~26일, 도쿄와 워싱턴
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
이재명의 삶 · 네오
2025년 8월 23일,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도쿄 하네다공항에 내렸다. 취임 80일째였고, 그가 대통령으로서 처음 찾아가는 양자 방문국이 일본이었다.
일본 신문과 방송이 그 선택을 하나씩 셈했다. FNN프라임 온라인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방문한 첫 대통령이라고 썼고, 요미우리신문은 1987년 민주화 이후 8월에 일본을 찾은 첫 한국 대통령이라고 적었다. 8월은 광복절이 있는 달이었다. 일본 언론은 그 달을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가장 높아지는 때라고 불렀다.
마이니치신문은 김혜경 여사를 두고 눈에 띄지 않고 그늘에서 대통령을 받치는 사람이라고 썼다. 일본 누리꾼들은 매우 수수해 보인다는 글을 남겼다.
석 달 전, 대선을 아흐레 앞둔 5월 25일에 그는 SNS로 외교안보 공약을 내놓았다. 일본은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고 했다. 그리고 그 관계를 다루는 방식을 둘로 나눴다.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과거사·영토 문제는 원칙적으로, 사회·문화·경제 영역은 전향적·미래지향적으로 대응하겠다”
10대 공약 4번은 「세계질서 변화에 실용적으로 대처하는 외교안보 강국」이었다. 도쿄에서의 하루는 그 두 갈래가 한자리에서 시험받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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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보다 먼저 잡힌 일정은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재일동포 오찬 간담회였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 김이중 단장과 오사카민단 김명홍 단장을 비롯해 동포 200여 명이 자리를 채웠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김용범 정책실장이 대통령 곁에 앉았다.
그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순국선열의 희생을 떠올렸을 때 유난히 마음이 쓰였던 사람들이 재일동포였다고 말을 꺼냈다. 동포들이 고국에 해 준 일을 하나하나 짚었다. 주일 대한민국 공관 열 곳 가운데 아홉 곳이 동포들의 기부로 세워졌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88년 올림픽 때도 IMF 외환위기 때도 역사적 고비마다 발벗고 고국에 손을 내밀어주셨다.”
말은 거기서 고국이 동포에게 한 일로 넘어갔다. 박정희 정부 시절이던 1975년, 재일교포 21명이 간첩 혐의로 조작 기소됐다. 그때 고국에 와 있던 재일교포 유학생이 200~300명이었으니, 열에 하나가 간첩으로 구속된 셈이었다. 피해자들은 거짓 자백을 할 때까지 구타가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무죄 판결은 2011년부터 2022년까지 줄줄이 나왔다. 2021년 8월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강종헌, 허경조, 박영식, 김승효, 김정사가 반세기 가까이 늦은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동포 여러분이 걸어온 길은 대한민국 현대사와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 직시해야 할 부끄럽고 아픈 역사가 있다.”
그는 많은 재일동포가 억울하게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가 폭력의 희생자와 가족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면서 공식적으로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
동포들이 박수로 답했다. 고국의 대통령이 일본 땅에서, 고국이 그들에게 한 일을 두고 머리를 숙인 자리였다. 박수는 그 문장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는 한 세기 전의 일도 꺼냈다.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일본에서 학살된 조선인들이었다. “100년 전 아라카와 강변에서 벌어진 끔찍한 역사, 여전히 고향 땅에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골들의 넋을 결코 잊지 않겠다.” 그리고 약속 하나를 남겼다.
“다시는 반인권적인 국가 폭력이 벌어지지 않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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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그를 맞았다. 그는 두 나라를 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이라고 불렀다.
회담이 끝나고 두 정상은 공동언론발표문을 냈다. 한일 정상이 공동발표문을 채택한 것은 2008년 4월 이후 17년 만이었다. 두 정상은 셔틀외교가 일찍 되살아난 것을 평가했다. 수소와 AI에서 손을 잡고, 저출산·고령화와 방재처럼 두 나라가 함께 앓는 문제를 다룰 당국 간 협의체를 띄우기로 했다.
과거사는 그 문서의 의제가 아니었다. 대신 이시바 총리 쪽이 한 문장을 넣었다.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문장이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적어 넣었던 그 선언이었다.
저녁에는 관저에서 두 정상 내외의 만찬이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 이시바 총리와 이시바 요시코 여사가 한 식탁에 앉았다. 잔에는 대통령의 고향 경북 안동의 안동소주와 이시바 총리의 고향 돗토리현의 맥주가 나란히 따라졌다. 이시바 총리 고향의 조리법을 따른 이시바식 카레가 나왔고, 김치를 고명으로 얹은 한국식 장어구이가 나왔다. 후식은 오카야마산 백도였다. 한국 대통령이 복숭아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일본 쪽이 고른 과일이었다.
만찬이 끝나자 두 정상은 일본식 방인 화실로 자리를 옮겨 식후주를 따로 들었다. 위성락 실장이 그 저녁을 이렇게 평했다. “일본 측이 만찬을 통해 한국을 배려하려는 여러 모습이 관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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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일본의 아사히·마이니치·닛케이·산케이 신문에는 대통령의 서면 인터뷰가 실렸다. 강제징용과 위안부를 묻는 질문에 그는 대표적인 과거사 문제이고 국민으로서 매우 가슴 아픈 일이라고 답했다.
“이는 경제적 문제이기 전에 진실과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진심으로 위로하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나 앞 정부의 합의를 뒤집지는 않겠다고 했다. “국가 간 관계에서 신뢰와 정책의 일관성은 매우 중요하다. 전임 대통령도 또 전임 정권도 국민이 뽑은 국가의 대표여서 그들이 합의하거나 이미 한 국가 정책을 쉽게 뒤집을 수는 없다”
이튿날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의기억연대는 실용외교라는 명분에 역사정의가 가려졌다고 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성명에서 역사 정의를 외면한 회담 결과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역사를 봉인하고 미래지향을 선언한다고 일본의 책임은 없어지지 않는다.”
공약은 과거사를 원칙대로 다루겠다고 했다. 도쿄의 문서에는 그 원칙이 빠져 있었다. 같은 날 동포들 앞에서 숙인 고개와 저녁의 공동발표문 사이에, 그 거리가 그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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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오후, 전용기가 워싱턴 근교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내렸다. 취임 82일째였다.
워싱턴의 일은 이미 한 고비를 넘어와 있었다. 7월 31일,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다. 미국이 8월 1일부터 매기려던 상호관세 25퍼센트가 15퍼센트로 내려갔고, 쌀과 소고기는 더 열지 않았다. 그 대신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그날 오전 그는 SNS에 썼다.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
8월 25일 오전 9시 20분, 정상회담을 세 시간여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렸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
회담을 앞두고 사람들이 걱정한 것은 이른바 젤렌스키 모멘트였다. 그해 2월 28일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당한 굴욕을 두고 생긴 말이었다.
오후 12시 40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두 정상이 마주 앉았다. 방 안은 금색으로 새로 꾸며져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먼저 그 방 이야기를 했다.
“대통령께서 오벌 오피스를 새로 꾸미고 있다는데, 밝고 황금색으로 빛나는 게 정말 보기 좋다.” 그는 한마디를 더 얹었다. “미국이 다시 위대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는 한국의 사정도 숨기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친위 쿠데타로부터 회복된 지 얼마 안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을 받았다. “오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반도 이야기로 넘어갔다. 전 세계에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은 한반도에도 평화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피스메이커(peacemaker)를 하시면 페이스메이커(pacemaker)로 열심히 지원하겠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갔다. “전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한반도도 평화를 만들어주셔서 김정은도 만나시고 북한에도 ‘트럼프월드’를 지어서 골프도 치게 해주시길 바란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두터운 관계를 가져왔다고 했다. “올해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방명록에 서명할 때 웃음이 한 번 더 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이 들고 간 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좋은 펜(nice pen)입니다. 괜찮으시면 제가 사용하겠습니다.”
“영광이죠. 대통령님이 하시는 사인에 아주 잘 어울릴 겁니다.”
펜은 그 자리에서 선물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로 쓰지는 않겠지만 아주 영광스럽고 소중하게 간직하겠다고 했다. 공식 선물로는 HD현대 오정철 기장이 손으로 만든 거북선 모형과 이름을 새긴 맞춤 퍼터가 건너갔다. 이 대통령은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피습 사진이 실린 사진첩을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 사진첩을 건넸다. 그가 남긴 친필 메시지는 이랬다. “당신은 위대한 지도자다. 한국은 당신과 함께 더 높은 곳에서 놀라운 미래를 갖게 될 것이다. 난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다”
오찬 자리에서도 배려가 이어졌다. 위성락 실장이 그 장면을 전했다. “오찬 말미에 명패와 메뉴에 전부 서명해 직접 주거나, 예정에도 없는 백악관 기념품 가게에 우리를 안내해 선물을 고르게 해줬다” 같은 날 한국 기업들은 1,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그날 오후 그는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단에 섰다. 초청 강연 뒤 질의응답에서 그는 한국이 오래 지켜 온 균형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미국이 중국을 강하게 견제하기 전까지 한국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말했다.
“과거에 한국은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태도를 취한 게 사실이지만, 이제 과거처럼 이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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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은 공동성명도 공동기자회견도 없이 끝났다. 서울에서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인사말에서 간밤의 한미 정상회담을 한마디로 역대급 외교참사라고 불렀다. 나경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썼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한마디로 이 대통령의 체면을 지키려, 국민의 어깨에 더 무거운 짐을 얹힌 외교였다.” 새로 뽑힌 장동혁 대표는 짧게 잘랐다.
“평가가 불가능한 정상회담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반대로 봤다. “매우 전략적인 언어 선택으로 협상가다운 기지를 발휘했다.” 다만 자동차 관세를 언제 내리는지는 정해지지 않았고, 3,500억 달러를 어떤 구조로 넣을지도 문서로 묶이지 않았다. 그 숙제는 워싱턴을 떠날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출처 · 동아일보, 2025년 8월 23일, 「“한국 대통령 엄청나다” 日언론-누리꾼 관심…“김 여사 수수해”」 · 한겨레, 2025년 8월 23일, 「“반일감정 최고조 시기”…이 대통령 ‘8월 방일’ 주목하는 일본 언론」 · MBN, 2025년 5월 26일, 「이재명 “한미동맹 복원·남북 대화 재개”…외교안보 4대 공약 발표」 · 남도일보, 2025년 5월 12일, 「〔21대 대선 10대 공약〕 이재명 “AI 등 집중육성 새 성장기반 구축”」 · 경기일보, 2025년 8월 23일, 「李 대통령, 국가 폭력 재일동포 피해자에 머리 숙여 사과」 · 노컷뉴스, 2025년 8월 23일, 「방일 李대통령, 재일동포에 ‘간첩조작사건 공식으로 사과’」 · 연합뉴스, 2025년 8월 23일, 「李대통령 ‘국가폭력 없어야’…재일동포 만나 간첩조작사건 사과(종합)」 · MBC, 2025년 8월 23일, 「이 대통령, 재일동포 간담회서 고개숙여 사과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께 위로’」 · 파이낸셜뉴스, 2025년 8월 23일, 「李대통령 사과한 ‘재일동포 간첩단’ 조작검사 누구? ..박정희·박근혜 정부서 승승장구」 · 뉴스1, 2025년 12월 3일, 「李, 재일동포와의 약속…‘간토 대학살’ 진상규명 특별법 국회 통과」 · 더팩트, 2025년 8월 23일, 「李, 강제징용·위안부 합의 “국가 간, 신뢰·정책 일관성이 중요”」 · 뉴시스, 2025년 8월 23일, 「이 대통령-이시바, 과거사 제외하고 미래지향적 협력 ‘맞손’…전략적 소통 강화」 · 뉴스토마토, 2025년 8월 23일, 「한·일 “양국 관계 미래지향적 발전”…공동언론발표(전문)」 · 헤럴드경제, 2025년 8월 23일, 「이시바, 李대통령에 ‘안동소주·찜닭’ 대접…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양국 정상 만찬」 · 데일리안, 2025년 8월 24일, 「시민단체들, ‘위안부 미언급’ 한일회담에 “역사정의 외면” 비판」 · 세계일보, 2025년 8월 25일, 「〔속보〕 李대통령, 미국 앤드루스 공군기지 도착…25일 한미 정상회담」 · 더팩트, 2025년 7월 31일, 「〔무역협상〕 15%·농축산물 시장 방어·정상회담…첫 ‘결실’ 수확한 李 대통령」 · 이코노미조선, 2025년 9월 5일, 「〔한미 동맹 확인한 이재명·트럼프 첫 정상회담〕 대미 외교 첫 고비 넘겼지만 ‘트럼프 입’에 불확실성 여전」 · 헤럴드경제, 2025년 8월 25일, 「李 “김정은 만나달라”…트럼프 “올해 만나고 싶다”」 · 헤럴드경제, 2025년 8월 25일, 「골프채·거북선·마가모자…트럼프 “나이스 펜” 뜻밖의 선물」 · 동아일보, 2025년 8월 26일, 「李대통령 “韓, 과거처럼 ‘안미경중’ 취할 수 없는 상태”」 · 뉴시스, 2025년 8월 26일, 「국힘 “李 한미정상회담, 역대급 외교참사…구체적 성과는 없고 상당한 재정·외교적 부담”(종합)」 · 데일리안, 2025년 8월 27일, 「‘극과 극’ 평가 엇갈린 한미정상회담…“트럼프 사로잡아” vs “뭘 얻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