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6,252자) · 2025년 7월~12월, 국회와 용산
계엄의 문을 잠그다
이재명의 삶 · 네오
2025년 7월 3일 오후,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의 전광판에 숫자가 떴다. 재석 259, 찬성 255, 반대 0, 기권 4였다. 계엄법 개정안이었다. 반년 전 겨울밤 계엄군이 밀고 들어왔던 바로 그 건물에서, 국회는 그 밤에 일어난 일을 한 조항씩 법으로 막았다.
계엄이 선포된 뒤라도 계엄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군인과 경찰은 국회 경내에 들어올 수 없게 됐다. 국회의장이 요청하거나 허가한 때만 예외였고,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었다. 국회의원과 국회 소속 공무원이 국회에 드나들거나 회의를 여는 것을 막으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였다. 그 밤 의원들은 경찰이 막아선 정문을 피해 담을 넘었고, 보좌진은 책상과 의자를 쌓아 본청 문을 막았다. 이제 그 밤처럼 국회의 문을 막아서는 일은 범죄가 됐다.
조항은 국무회의도 겨눴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에 알릴 때는 국무회의의 일시와 장소, 출석자 수와 발언 내용을 적은 회의록을 함께 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하며 헌법재판소는 12·3 계엄 직전의 국무회의를 이렇게 적었다. “개의 선포, 의안 상정, 제안 설명, 토의, 산회 선포, 회의록 작성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조항이 있었다. 계엄 아래에서 체포되거나 구금된 국회의원도 계엄 해제를 의결하는 본회의에는 나올 수 있게 했다.
그 법의 뿌리는 5월 12일 중앙선관위에 낸 10대 공약의 두 번째 줄이었다. 「내란극복과 K-민주주의 위상 회복」이라는 제목 아래 계엄을 선포할 때 국회의 해제권을 더 굳게 보장하겠다는 약속이 적혀 있었다. 계엄법에 반대한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같은 날 소액주주의 권리를 넓힌 상법 개정안도 재석 272명 가운데 찬성 220, 반대 29, 기권 23으로 여야 합의를 거쳐 통과됐다. 새 정부의 「협치 1호」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장석에서 말했다. “어려운 쟁점이 있던 법안인데 여야가 합의해 줘 감사하다.”
7월 1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가 계엄법 공포안을 의결했다. 8월에는 행정안전부 경찰국이 생긴 지 3년 만에 공식으로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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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차례는 검찰이었다. 10대 공약의 같은 두 번째 줄에 수사와 기소를 나누고 기소권 남용을 사법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약속이 있었다. 8월 13일 국정기획위원회는 검찰청을 폐지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기소청을 나누는 안을 내놓았다. 9월 16일 국무회의는 123대 국정과제를 확정하며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와 계엄 통제, 방첩사 폐지와 경찰국 폐지를 권력기관 개혁 과제로 묶었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다짐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주권자의 뜻이 담긴 123대 국정과제를 나침반 삼아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을 꼭 만들겠다.”
9월 25일 저녁 6시 30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오르자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이 연단에 섰다. 무제한 토론이었다. 그는 개편이 졸속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재외동포청 신설·국가보훈부 승격·여가부 폐지 등 간소한 개편안을 내놨는데도 여가부 폐지를 제외한 (법안) 처리에 넉 달이 걸렸다.”
그는 이번 안과 견줬다. “정부·여당의 정부조직 개편안은 총 13개 항목에 걸친 방대하고 심대한 항목인데도 열흘 만에 통과를 시도하고 있다.” 상임위원회 토론이라도 있었다면 무제한 토론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필리버스터를 한다는 이유로 ‘발목잡기’란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당이) 프레임을 좀 잘못 짠 것 같다.” 그리고 자기 당의 자리를 그었다. 국민의힘은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개혁에 반대한다고 했다.
밤이 새도록 본회의장 의석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의원들은 조를 짜서 번갈아 자리를 지켰다. 우원식 의장과 이학영 부의장이 의장석을 교대로 맡았고, 의장이 토론 중에 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토론자에게 허락된 것은 화장실뿐이어서, 화장실에 가는 길에 휴게실에 들러 초콜릿과 바나나를 먹는 일도 있었다. 민주당 박홍배 의원은 의장단의 맞교대를 두고 근로기준법상 과로사 기준에 들어가는 초장시간 노동이라고 했다.
9월 26일 오전 10시께, 본회의장 방청석에 초등학생들이 견학을 왔다. 텅 빈 의석을 내려다보는 아이들에게 우 의장은 네 개의 법을 법마다 24시간씩 토론하다 보니 의원들이 밖에 있거나 조별로 들어와 자리에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연단의 박수민 의원도 아이들에게 덕담을 건넸다. 그는 아이들의 미래를 두고 지금껏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시간이라고 했다.
“여러분들이 걸어가시면 된다.”
밤을 꼬박 새운 그는 그 덕담을 건네다 눈물을 보였다.
오전 11시 42분, 그는 연단에서 내려왔다. 열일곱 시간 십이 분이었다. 지난해 8월 자신이 세운 열다섯 시간 오십 분을 넘어선 역대 최장 기록이었다. 송언석 원내대표가 페이스북에 적었다. “어제 저녁 6시 반부터 시작해서 잠도 안 자고 밤을 지새우며 세운 기록이다.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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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무제한 토론이 시작된 지 24시간이 지나 표결이 열렸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나오지 않았다. 총투표수 180표 가운데 찬성 174, 반대 1, 기권 5였다. 반대 한 표는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의 것이었고, 기권에는 조국혁신당 의원들이 있었다.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생긴 검찰청의 폐지가 78년 만에 확정됐다. 수사는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의 중대범죄수사청이, 기소는 법무부 장관 소속의 공소청이 맡게 됐다. 검찰청 폐지는 1년 뒤로 미뤘다. 기획재정부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갈라 이듬해 1월 2일부터 나뉘기로 했고, 환경부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통상부로, 여성가족부는 성평등가족부로 이름을 바꿨고, 통계청과 특허청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올라섰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말했다. “추석 귀향길 라디오 뉴스에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드리겠다고 약속을 드렸는데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기쁘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의 말은 더 길었다. “김대중 대통령님에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숙제를 짚었다. “남아 있는 과제라 하면 국민 위한 공소청·중수청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완벽하지 않다 하더라도 빈 구석이 최소한이 되도록, 보여지지 않을 수 있도록 잘 챙기겠다.”
본회의장은 쉬지 않았다. 곧바로 방송통신위원회를 없애는 법이 올라왔고,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다시 무제한 토론의 첫 주자로 섰다. 우 의장과 이 부의장의 맞교대는 4박 5일 동안 이어졌다.
9월 28일, 검찰동우회 회장인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역대 법무부 장관·검찰총장들이 공동 명의로 입장문을 냈다. “이는 위헌 법률이므로 즉각 폐기돼야 한다.” 헌법 89조가 검찰총장의 임명을, 12조와 16조가 검사의 영장 청구권을 분명히 적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이 법을 입법권의 남용이자 정략적 폭거라고 불렀고, 헌법소원을 비롯한 모든 수단으로 바로잡겠다고 했다. 같은 날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도 방통위를 없애는 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헌법소원과 가처분까지 모든 법률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법이 처리된 까닭을 이렇게 봤다. “강성 지지자인 ‘개딸’에게 추석 귀성 선물을 주기 위해 충분한 협의 없이 법을 통과시켰다.”
9월 30일, 용산 대통령실의 국무회의가 정부조직법 공포안을 의결했다.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앞에 두고 검찰을 겨눴다.
“검사들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하고, 무죄가 나오면 면책하려고 항소·상고해서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형사처벌권을 남용해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지 않느냐. 이를 왜 방치하느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준다.”
형사소송법의 기본은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데 있다고 그는 말했다. 정 장관이 답했다. “검찰은 그 반대로 운영돼왔다.” 그는 항소와 상고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제도적으로 규정을 다 바꾸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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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약속이 그해 안에 법이 되지는 못했다. 11월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었다. 「명백히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으며, 이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조항이었다. 1949년부터 공무원법에 박혀 있던 복종 의무 조항을 지우는 일은 입법예고 단계였고, 시행은 이듬해 말쯤으로 내다봤다.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은 검토 중이었다.
12월 3일, 계엄의 밤에서 꼭 1년이 지났다. 그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페이스북에 썼다. “12·3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 그는 계엄에 이은 탄핵이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다고 했고,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한 국민의힘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당대표로서 그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사과는 끝내 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싸움터도 내다봤다. “저들의 화살이 사법부로 향할 것이다. 더 강력한 독재를 위해 사법부를 장악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짓밟는 반헌법적 악법들을 강행할 것이다.” 정청래 대표가 그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받았다. “아직도 내란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국민의힘, 그러니까 국민은 국민의힘을 내란 옹호 정당이라고 규정한다.”
같은 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이 「빛의 혁명 1주년 대국민 특별성명」을 읽었다. 강훈식 비서실장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김용범 정책실장이 곁에 앉았다. 그는 친위 쿠데타 가담자들을 엄정하게 처벌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사적 야욕을 위해 헌정질서를 파괴한 그 무도함은 반드시 심판받아야 한다.” 내란특별재판부를 묻는 질문에는 선을 그었다. “국회는 국회가 할 일이 있고 행정부는 행정부가 할 일이 있다.” 가담자들의 처분을 두고는 이렇게 말했다. “깊이 반성하고 재발의 여지가 없다면 용서하고 포용해야겠지만 숨겨놓고 적당히 넘어갈 순 없다.” 그리고 우리 국민의 위대한 용기와 행동을 기리기 위해 12월 3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정하겠다고 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그 1년의 공을 국민에게 돌렸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민주주의 위기를 평화적인 방식으로 극복해 낸 우리 대한국민들이야말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확신한다.”
1년 전 그 밤, 차 안의 생중계를 보고 여의도로 달려와 국회 앞을 메웠던 사람들이 그 대한국민 안에 있었다. 철수하는 계엄군의 등 뒤에서 물러나라고 외치던 사람들도 거기 있었다.
출처 · 데일리안, 2025년 7월 4일, 「‘여야 합의’ 상법·계엄법 본회의 통과…李정부 ‘협치 1호’ 법안 등극」 · 세계일보, 2025년 7월 3일, 「‘尹정부 폐기’ 상법개정안 국회 통과…새정부 1호 여야합의 처리」 · 경향신문, 2025년 12월 2일, 「계엄 선포 어렵게, 해제는 쉽게…위법한 명령 복종 의무 없앤다」 · 쿠키뉴스, 2025년 7월 15일, 「‘소액주주 권리강화·3%룰’ 상법개정안, 국무회의 통과」 · 뉴시스, 2025년 5월 12일, 「이재명 10대 공약 발표…“포괄임금 금지하고 세종의사당 임기 내 건립”」 · 남도일보, 2025년 5월 12일, 「〔21대 대선 10대 공약〕 이재명 “AI 등 집중육성 새 성장기반 구축”」 · 중앙일보, 2025년 8월 13일,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 1번은 “개헌”…검찰해체→중수청·공소청」 · 데일리안, 2025년 9월 16일, 「4년 연임제 개헌부터 권력기관 개혁까지…李정부 ‘123대 국정과제’ 확정」 · 뉴시스, 2025년 9월 26일, 「野 박수민, ‘17시간 12분’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 경신…“정부조직법 졸속 추진”(종합)」 · 서울신문, 2025년 9월 30일, 「화장실만 허용 24시간 ‘무한필버’… 의장·부의장은 맞교대 ‘극한직업’」 · 뉴시스, 2025년 9월 26일, 「‘검찰청 해체’ 정부조직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방통위설치법 필버 돌입(종합)」 · 서울신문, 2025년 9월 26일, 「정부조직법 與주도로 통과…검찰청 78년 만에 역사 속으로」 · 세계일보, 2025년 9월 28일, 「역대 법무장관·검찰총장 ‘檢 폐지’ 헌소낸다 〔정부조직법 통과 후폭풍〕」 · 경향신문, 2025년 9월 30일, 「이 대통령 “검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소해 고통주고 자기편이면 봐준다”」 · 한국경제, 2025년 12월 3일, 「장동혁 “계엄은 의회 폭거 맞서기 위한 것”…사과 끝내 거부」 · 세계일보, 2025년 12월 3일, 「정청래 “내란사범 끝까지 처벌”…秋 영장기각에 “제2의 내란”」 · 서울신문, 2025년 12월 3일, 「이 대통령 “내란특별재판부 국회가 판단…국민들 노벨평화상 자격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