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6,414자) · 2014년 1월~7월, 성남

모라토리엄 졸업

이재명의 삶 · 네오

2014년 1월 27일, 성남시청 한누리실에 기자들이 모였다. 지급유예를 선언한 지 3년 6개월 만에, 같은 시장이 같은 빚을 두고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성남시 ‘비공식 부채’를 지난해 말 모두 정리해 모라토리엄을 졸업했다.”

그는 처음 빚의 크기부터 다시 불렀다. “성남시는 모라토리엄 당시 판교특별회계 5400억원, 시청사 부지 잔금을 포함한 미편성 법적 의무금 1885억원 등 모두 7285억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판교특별회계에서 빼 쓴 돈은 현금으로 3,572억 원을 돌려놓고, 일반회계에서 274억 원을 직접 쓰고, 회계 안의 자산 493억 원을 정리해 갚았다. 남은 1,061억 원은 정산이 끝나지 않은 채 장부에 남겨 두었다. 시청사 부지 잔금 같은 법적 의무금은 2010년에 1,365억 원, 2013년에 520억 원을 냈다. 3년 6개월 동안 현금으로 청산한 빚이 5,731억 원이었다. 그는 그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도 한 문장으로 말했다. “그동안 예산을 깎고 사업 투자순위를 조정하는 등의 노력으로 큰 채무를 청산했다.” 성남의 선언이 계기가 돼 2011년 나라 차원에서 지방재정의 위기를 미리 살피는 경보 시스템이 들어섰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처음부터 꾸며 낸 위기가 아니었다는 증거도 함께 내밀었다. 감사원이 2013년 1월에 펴낸 지방행정 감사백서였다.

“지난해 1월 감사원이 발간한 지방행정감사백서에서 ‘민선 4기 성남시가 판교 공동사업자에게 지불해야 할 돈이 5,200억원에 달함에도 가용재원이 681억원에 불과해 이를 단기간에 상환할 수 없게 됐다’고 기술했다.”

같은 백서에는 다른 대목도 실려 있었다. 성남시가 2010년 7월 12일 일방적으로 지불유예를 선언하는 등 판교특별회계 운영과 판교택지개발사업 추진에 차질을 가져왔다는 문장이었다. 한 권의 백서가 양쪽의 근거가 됐다.

성남시의회 새누리당 의원들은 같은 숫자를 다르게 읽었다. 그들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당시 현금 유동성 위기를 불러올 만한 빚 독촉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선언 자체가 정치적 꼼수였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빚을 갚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급하지 않은 빚을 급하다고 외쳤다는 반박이었다. 같은 날 시의회 새누리당협의회는 시장에게 공을 넘겼다.

“모라토리엄 졸업이 거짓이 아니라면 ‘이재명시장 모라토리엄 관련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수용해 오명을 벗어나길 요구한다.”

*

엿새 뒤인 2월 2일, 시장은 경기일보에 기고문을 실었다. 그 무렵 정부는 지방부채 100조 원 시대를 맞아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지자체의 자치권을 거두는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는 제기된 의문을 넷으로 나눠 스스로 묻고 답했다. 선언을 할 상황이었는가, 빚을 실제로 얼마나 갚았는가, 성남의 이름에 상처를 냈는가, 꼭 필요한 사업까지 멈췄는가.

첫 물음에는 감사원 백서를 다시 꺼냈다. 백서는 일반회계의 구멍을 판교특별회계로 메워 숨긴 빚을 드러냈고, 관련자 징계까지 요구했다며 그는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냐고 적었다. 빚의 셈은 회견 때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갔다. 5,731억 원을 현금으로 청산했지만 그사이 지방채가 1,159억 원 늘었으니, 그것을 빼면 최종적으로 갚은 빚은 4,572억 원이라고 그는 적었다. 성남의 이름에 상처를 냈느냐는 물음에는 IMF 사태를 끌어왔다. 나라의 재앙이던 IMF를 금 모으기 운동으로 상징되는 국민의 참여와 뼈를 깎는 노력으로 넘었을 때, 책임자는 비판을 받았지만 위기를 넘은 국민은 더 높이 평가받았다고 썼다.

마지막 물음 앞에서 그는 한 발 물러섰다. 꼭 필요한 사업까지 진행되지 못했다는 지적은 일면 맞다고 인정했다. 해 오던 사업을 모두 유지하면서 빚을 갚는 것은 불가능했다. 기존 투자 사업을 처음부터 다시 따졌고, 집행 시기와 규모를 조정했다. 보여 주기 위한 전시성 예산을 줄이고, 보도블록은 재활용했으며, 밀린 세금은 더 끈질기게 거뒀다. 그렇게 아낀 돈이 빚으로만 가지는 않았다. 사회복지 예산은 2010년 7월보다 2천억 원 넘게 늘었고, 일반회계에서 복지가 차지하는 몫은 26퍼센트에서 36퍼센트로 올라갔다. 해마다 1,500억 원의 빚을 갚으면서도 해야 할 일은 놓치지 않았다고 그는 썼다.

그가 이 글의 첫머리에서 공을 돌린 쪽은 시청이 아니었다.

“3년 만에 모라토리엄을 졸업한 것은 시민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기고문의 마지막 문단은 3년 반 동안 깎인 예산을 견딘 시민들에게 건네는 인사였다.

“모라토리엄 졸업은 대규모 예산삭감과 초긴축예산을 견뎌낸 시민의 덕분이다. 그래서 축하와 감사도 시민의 몫이다. 성남시민 여러분, 모라토리엄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4년 전 7월,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시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매 달라고 부탁했었다. 이번에는 시장이 시민을 축하하고 있었다.

*

그해 6·4 지방선거는 세월호 참사 뒤에 치러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재명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의 첫 일정을 야탑역에 차려진 세월호 분향소에서 시작했다. 그는 지난 4년을 이렇게 정리했다. “민선 5기 재임 4년간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탄탄한 성장의 주춧돌을 마련했다.”

맞선 사람은 국회의원 출신의 새누리당 신영수 후보였다. 5월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은 오차범위 안에서 다퉜다. 새정치연합 공천에서 떨어져 새정치국민의당으로 나선 전 경기도의회 의장 허재안,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선 전 분당구청장 박영숙이 뒤를 쫓았다. 판세는 성남의 오랜 지도와 거꾸로 움직였다. 야권 성향이던 본시가지에서는 여당 후보가, 보수 성향이던 분당에서는 야당 후보가 선전한다는 관측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생각해 조용한 정책선거를 내걸었던 신영수 후보가 5월 23일 포문을 열었다. 그가 들고 나온 무기는 모라토리엄이었다.

“4년 전 이 후보의 과장된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재정자립도 1위인 성남시가 하루아침에 ‘부도 난 도시’가 됐다.”

그는 모라토리엄의 전제인 외부 기관의 지불 요청이 있었는지 확인해 보니 없었다고 했다. 판교특별회계와 일반회계 사이에 돈이 오간 일을 모라토리엄으로 엮은 것은 자작극이라며 감사원에 해명요구서를 냈다. 이 시장 4년 동안 부채가 558억 원에서 2,100억 원으로, 채무가 90억 원에서 1,193억 원으로 불었다고 주장했다. 청렴도 조사에서 성남시가 전국 227개 자치단체 가운데 164위에 그쳤다는 숫자도 꺼냈다. 그가 지난 4년에 내린 평가는 한 문장이었다. “민선 5기 이재명 현 시장 집행부는 부끄러움과 무기력, 좌절, 불편함이 시민 곁을 떠나지 않은 불행한 4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시장의 조건을 내걸었다. “시장은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시민화합형 후보여야 한다.” 본시가지 유권자들이 현 시장에게 실망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재명 후보는 성적표로 맞섰다.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를 통해 94%의 공약 이행률을 인증받았다.” 새 약속도 내놓았다. 100만 시민의 주치의 제도를 만들고, 교육지원 예산 1,000억 원을 확보하고, 시민경찰대를 창설하겠다고 했다. 무료 산후조리원은 20~30대 젊은 부부를 위한 좋은 공약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진짜 약속과 거짓 약속의 경쟁이라고 불렀다. 5월 14일 출마를 선언하며 내건 성남시민권리선언에는 범죄와 재해로부터 안전할 권리, 경제적 이유로 건강을 위협받지 않을 권리, 부담 없이 교육받을 권리를 적었다.

“삶의 질 세계 100대 도시를 만들겠습니다.”

*

6월 4일 밤, 표가 열렸다. 이재명 후보가 23만 9,685표, 55.1퍼센트를 얻었다. 신영수 후보는 19만 1,749표, 44.0퍼센트였다. 보수 성향이 짙다는 분당에서도 그는 여당 후보를 8퍼센트 차로 앞섰다. 구시가지 수정구에서도, 신시가지 분당구에서도 그가 이겼다.

6월 5일 새벽, 재선된 시장이 소감을 밝혔다.

“깨어있는 100만 시민 모두의 승리이자 상식과 정의의 승리입니다. 분당신도시 건설 이후 최초로 성남 본시가지와 분당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진 새로운 역사의 시작입니다.”

선거 내내 그를 따라다닌 말들도 그는 그냥 넘기지 않았다. 법원과 경찰, 선관위가 불법이라고 규정했는데도 가족 사이의 내밀한 가정사를 왜곡해 정치적으로 악용했다고 그는 말했다. “흑색선전 네거티브가 난무했지만, 저는 정책선거로 일관했고 현명한 시민들은 현혹되지 않고 바른 결단을 해 주셨습니다.” 그는 민선 5기에 이어 다시 성남호의 키를 맡겨 준 100만 시민에게 고맙다고 했다. 지난 4년을 두고는 전임 시정의 잘못을 고치고 기초를 바로잡는 데 힘을 쏟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뒤 긴축과 예산 감축으로 빚을 갚아 재정을 되살렸고, 공약 이행률 전국 최고의 시정을 펼쳤다는 것이 그의 결산이었다. 시민의 눈물을 닦고 시민들과 함께 성남을 삶의 질 세계 100대 도시로 키우겠다는 약속이 뒤를 이었다.

“더 열심히, 더 청렴하게, 더 정직하게 일하겠습니다. 또 더 많이 소통하겠습니다. 더 낮은 곳에서 더 높이 시민을 받들겠습니다.”

*

7월 1일 오전 7시 30분, 재선 시장은 집을 나서 걸었다. 비서실장을 비롯해 세 사람이 곁을 따랐다. 시청까지는 4킬로미터쯤이었고, 길은 탄천을 따라 나 있었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는 운동하러 나온 시민들이 있었다. 그는 그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걸었다. 아침 운동을 하던 시민들은 걸어가는 시장을 붙잡고 시정에 대한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그는 그 말을 들었고, 탄천의 시설물이 안전한지 하나씩 살폈다. 거창한 취임 기념행사는 열지 않았다. 시민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며 민선 6기를 시작하자는 뜻이라고 시는 설명했다. 지난 4년 그 산책길에서 들은 쓴소리와 단소리는 시청사를 시민에게 여는 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일로 시정에 들어가 있었다.

오전 10시, 시청 광장에 시민 400여 명이 모였다. 선거 때 약속한 성남시민권리선언이 이날 선언식으로 열렸다. 안전, 건강, 교육, 삶터, 경제, 문화예술, 아이와 어르신, 일자리, 참여 자치, 도시의 미래까지 열 가지 분야였다. 시민과의 약속을 새긴다는 뜻으로 시민들이 손도장을 찍었다.

점심때 시장은 성남동 중원노인종합복지관 경로식당에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어르신 400명에게 점심을 배식했다. 오후 2시에는 수정구 태평동 중앙시장으로 갔다. 불이 나 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된 시장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김순철 중소기업청 차장과 함께 중앙시장을 다시 짓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던 4년 전 여름, 그는 2층 작은 시장실에서 5,200억 원짜리 빚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빚을 졸업했다고 선언한 해 여름, 탄천을 걸어 출근한 시장의 두 번째 4년이 같은 2층 시장실에서 시작됐다.

출처 · 연합뉴스, 2014년 1월 27일, 「성남시 “작년 말 채무 청산..모라토리엄 탈출”」 · 뉴시스, 2014년 1월 27일, 「이재명 성남시장 ‘모라토리엄 졸업’ 선언」 · 한겨레, 2014년 1월 27일, 「성남시, 3년6개월만에 “아듀, 모라토리엄”」 · 아시아경제, 2014년 1월 27일, 「성남시 3년6개월만에 ‘모라토리움’ 졸업」 · 한국일보, 2014년 1월 27일, 「성남시 “채무 7285억 상환.. 3년6개월 만에 모라토리엄 졸업”」 · 세계일보, 2022년 1월 21일, 「‘李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 의혹 많아.. 진실은 무엇인가」 · 경기일보, 2014년 2월 2일, 「〔경기단상〕 지방재정 건전화의 핵심은 시민참여」 · 서울신문, 2014년 5월 24일, 「〔6·4 지방선거 판세 분석〕 경기도 수원·성남 시장」 · 서울신문, 2014년 5월 24일, 「〔후보자 인터뷰〕 “시민주치의·무료 산후조리원 약속”」 · 서울신문, 2014년 5월 24일, 「〔후보자 인터뷰〕 “부도난 도시 4년, 시정 바로잡을 것”」 · 서울신문, 2014년 6월 6일, 「〔6·4 선택 이후〕 “성남 삶의 질 세계 100대 도시 만들 것”」 · 머니투데이, 2014년 7월 28일, 「“법률가에서 정치가로…정치하겠다 마음먹은 날짜도 기억”」 · 티브이데일리, 2014년 6월 5일, 「성남시장 선거결과, 이재명 재선 성공 “상식과 정의의 승리” 소감」 · 연합뉴스, 2014년 6월 5일, 「<인터뷰>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 당선인」 · 오마이뉴스, 2014년 6월 5일, 「이재명 성남시장 당선.. “시민이 행복한 성남으로”」 · 뉴시스, 2014년 6월 5일, 「〔당선소감〕새정치 이재명 성남시장」 · 경향신문 레이디경향, 2014년 11월 1일, 「모라토리엄 졸업, 이제 공공성이다! 이재명 성남시장」 · 경기일보, 2014년 7월 1일, 「이재명 성남시장 민선 6기 “현장 속”으로」 · 아시아경제, 2014년 7월 1일, 「이재명 성남시장 취임첫날 ‘민생행보 눈에띄네’」 · 머니투데이, 2014년 7월 1일, 「이재명 성남시장 민선6기 출범 “민생 현장 속으로”」 · 노컷뉴스, 2014년 7월 1일, 「이재명 성남시장 취임, 민선 6기 “현장 속”으로」 · 서울경제, 2014년 7월 1일, 「이재명 성남시장, 취임식 생략..탄천 산천길서 시민과 대화」

16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모라토리엄 졸업 · 이재명의 삶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