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6,360자) · 2025년 6월 4일, 국회 로텐더홀과 용산
지금 즉시
이재명의 삶 · 네오
2025년 6월 4일 아침 8시 7분께, 인천 계양구의 사저에서 전화가 이어졌다. 수화기 건너편은 김명수 합동참모본부 의장이었다. 이재명은 두 시간 남짓 전부터 대통령이었다. 오전 6시 21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당선을 확정하는 순간 임기가 시작됐고, 군 통수권도 그 자리에서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에게서 그에게로 넘어왔다. 인수위원회도 준비 기간도 없이 시작된 아침이었다.
합참의장은 통수권 이양을 보고하고 북한군의 동향을 알렸다. 우리 군의 대비태세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대통령은 반년 전 겨울밤의 장병들을 꺼냈다. 비상계엄 사태 때 군 장병들이 국민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부당한 명령에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그래서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것을 정말 잘한 일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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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32분, 그는 부인 김혜경과 함께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단지 앞에는 주민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현수막에는 「우리 아파트의 자랑 이재명님, 제21대 대통령 당선을 축하드립니다」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고, 어느 집 베란다에는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소년공 꼭 성공하세요」
주민들은 그의 자서전을 들고 나와 있었다. 대통령은 책을 받아 하나씩 친필 서명을 했고, 손을 내미는 사람마다 악수를 하며 고맙다고 했다. 부모 품에 안겨 나온 아기들에게는 말을 걸고 머리를 쓰다듬었으며, 아이를 받아 안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자서전에 서명을 받던 한 지지자가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인사는 십 분 가까이 이어졌고, 9시 41분에 부부는 차에 올랐다.
첫 행선지는 서울 동작구의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오전 10시 10분께 참배를 마친 그는 방명록에 한 줄을 남겼다.
「‘함께 사는 세상’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 국민과 함께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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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께 차가 여의도 국회에 닿았다. 초여름의 맑은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반년 전 계엄군이 밀고 들어왔던 그 본청 한가운데, 국회 로텐더홀에 약 300명이 모여 있었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조희대 대법원장, 여야 정당 대표와 국회의원, 국무위원들이었다. 보궐선거로 뽑힌 대통령이라 예포도 군악 퍼레이드도 없이 약식으로 치르는 취임식이었다. 그가 선서문을 읽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 및 민족 문화의 창달에 노력해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
취임사의 첫 문장은 인사였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이 선택해 주신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이재명 인사드립니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는 숫자 하나를 두 번 불렀다. “5200만 국민이 보내주신 5200만 가지 열망과 소망을 품고 오늘부터 저는 대한민국 21대 대통령으로서 진정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향한 첫 발을 내딛습니다.”
그날 취임사에서 가장 많이 나온 낱말은 「성장」으로 22번이었고, 「세계」가 17번, 「문화」가 13번, 「경제」가 12번, 「평화」가 10번이었다. 그는 정책의 출처를 따지지 않겠다고 했다.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쓸 것입니다.” 그는 자기 정부의 이름도 미리 붙였다. “이재명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반년 전의 밤을 한 문장으로 닫았다.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주권을 빼앗는 내란은, 이제 다시는 재발해선 안 됩니다.”
그 연설에는 시한이 붙은 약속이 하나 있었다.
“불황과 일전을 치른다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곧바로 지금 즉시 가동하겠습니다.”
국회 잔디광장에서는 수백 명의 지지자가 큰 화면으로 취임사를 지켜봤다. 파란색 바람막이를 입고 두건을 쓴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른일곱 살 이모씨는 이 대통령의 취임이 감격스럽다고 했다. “내란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마흔두 살 박영빈씨의 말은 조금 달랐다. “처음에는 지지하지 않았지만 12·3 계엄을 계기로 지지하게 됐다.” 선서를 마친 대통령이 국회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었고, 잔디광장의 사람들을 향해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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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국회 사랑재에서 비빔밥이었다. 취임사에서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사람이 정당 대표들과 처음 마주 앉은 상이었다. 우원식 의장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김선민 조국혁신당 대표 권한대행,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가 한 상에 앉았다. 우 의장이 비빔밥을 두고 말했다. “하나로 어우러지는 특성이 있다.”
대통령은 정당 대표들에게 부탁했다. “자주 시간을 내주시라. 의제도 관계없이 편하게 대화하면 좋겠다.” 그는 이어 말했다. “모든 것을 혼자 다 100% 취할 수는 없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해 가급적 모두가 동의하는 정책으로 국민이 나은 삶을 꾸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김용태 비대위원장은 축하를 건네면서도 이튿날의 본회의를 정면으로 짚었다. “여당이 내일 본회의에서 처리하려고 하는 공직선거법과 형사소송법,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심히 우려스럽다.” 비빔밥 한 상 위에서 취임 첫날의 협치와 갈등이 나란히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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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 대통령이 직접 섰다. 첫 인선을 발표하는 자리였는데, 그는 사무실 이야기부터 했다.
“지금 용산 사무실로 왔는데 꼭 무덤 같다. 아무도 없다. 필기도구 제공해줄 직원도 없다.”
컴퓨터도 프린터도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앞 정부가 대통령실의 시스템을 넘겨주지 않았고, 파견 나왔던 공무원들은 원래 부처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준비된 것이 있어 인선은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얹었다.
“결재를 해야 되는데 결재할 시스템이 없다.” 손으로 써서 지장이라도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지장 찍으려는데 인주도 없다.”
기자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웃음이 가라앉자 그는 이름을 불렀다. 국무총리 후보자 김민석 의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강훈식 의원, 국가안보실장 위성락 의원, 경호처장 황인권 전 육군 대장, 대변인 강유정 의원이었다. 그는 국민에게 충직한지, 그 분야의 전문성과 능력이 있는지, 국정철학을 이해하는지를 먼저 봤다고 했다. 경제 부처 인선은 뒤로 미뤘다. 경제를 살릴 대책이 더 급하다고 했다. “추경 편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은 흩어진 파견·전입 공무원들에게 복귀 명령을 냈고, 강유정 대변인은 대부분이 이튿날까지 돌아올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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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30분, 텅 비었던 그 청사에서 첫 비상경제점검TF 회의가 열렸다. 취임 첫날 그가 내린 1호 행정명령이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위원회의 차관급 관료들, 그리고 한국개발연구원과 산업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원장들이 테이블에 앉았다. 안건은 넷이었다. 추경을 꾸릴 재정 여력이 있는지, 추경이 곧바로 경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지, 미국과의 통상 현안을 어떻게 풀지, 그리고 민생의 어디가 무너지고 있는지였다.
대통령은 회의 참석자들에게 자기 휴대전화 번호를 건넸다. 작고 세세한 발상이든 법을 고쳐야 할 일이든, 직급과 상관없이 언제든 제안해 달라고 했다. 회의는 밤 9시 50분에야 끝났다. 두 시간 이십 분이었다. 강유정 대변인이 결과를 전했다. “회의 참석 재정당국자들은 빠짐없이 의견을 개진하며 대통령의 경제 운영 기조에 동의했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추후 보고하기로 했다.” 낮에 취임사로 한 약속은 그렇게 그날 밤에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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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뒤인 6월 9일, 두 번째 TF 회의에서 대통령이 물었다.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이 보고했다. 정치가 불확실한 사이 맥주와 라면값이 올랐고, 브라질 조류독감 탓에 계란과 닭고기값도 걱정이라고 했다. 5월 소비자물가는 1.9% 올랐는데 라면은 1년 전보다 6.2% 뛰어 1년 8개월 만에 가장 크게 올라 있었다. 대통령은 물가 대책을 다음 회의까지 보고하라고 했다.
그 약속의 뿌리는 선거 때 낸 공약에 있었다. 5월 12일 중앙선관위에 낸 10대 공약의 세 번째가 「가계·소상공인 활력 증진 및 공정 경제 실현」이었고, 그 아래 지역사랑상품권과 온누리상품권의 발행 규모를 늘리겠다는 약속이 적혀 있었다. 6월 20일 무렵 정부가 내놓은 추경안은 30조5천억 원이었다. 전 국민 소비쿠폰에 13조2천억 원, 지역사랑상품권에 6천억 원, 저소득·차상위층에 1조5천억 원이 들어갔다. 국가채무는 1300조6천억 원, 국내총생산의 49%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야당은 정면으로 막아섰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번 추경안을 한마디로 사이비 호텔 경제학의 대국민 실험장이라고 불렀다. 그는 추경의 절반에 이르는 예산이 포퓰리즘적 현금 살포에 들어간다고 했다. 김은혜 정책수석부대표는 바닷물에 빗댔다.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퍼줄 수는 없다고 했고, 이렇게 덧붙였다. “내 세금으로 내가 쿠폰을 받아쓰고 우리 자녀들이 갚아야 한다.” 강민국 의원은 이를 이듬해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매표 행위라고 불렀다.
7월 4일 본회의는 시간이 대여섯 차례 바뀌었다. 여당 안에서도 검찰 특수활동비를 추경에 넣는 데 반발이 일었다. 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썼다. “검찰 특활비를 이번 추경에 편성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은 그 예산이 검찰의 직접수사를 전제로 한다며, 수사와 기소를 나누겠다는 공약에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했다. 결국 검찰개혁 입법이 끝난 뒤에 집행한다는 부대의견이 붙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이 말했다. “무려 5~6차례 시간이 변경되면서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려운 상황까지 치달았다.”
그날 국민의힘은 본회의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부안보다 1조3천억 원 늘어난 31조8천억 원의 추경이 재석 182명 가운데 찬성 168, 반대 3, 기권 11로 통과됐다. 경기 진작에 17조3천억 원, 민생 안정에 5조3천억 원이 갔고, 소비쿠폰의 국비 보조율은 최대 90%로 잡혔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쿠폰과 소상공인 지원금은 속도가 생명인 만큼 최대한 빨리 풀어야 한다고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다른 데를 봤다. “교부액만으로 집행 실적을 잡으면 실제 경기부양 효과가 왜곡될 수 있다.”
취임사에서 「지금 즉시」라고 말한 날부터 국회 의사봉이 내려온 날까지 서른 날이 걸렸다.
출처 · 세계일보, 2025년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 군통수권 이양보고 받아…“계엄 부당명령 소극대응 잘한 일”」 · 서울신문, 2025년 6월 4일, 「“우리 아파트의 자랑 이재명님” 주민들 ‘들썩’…싸인 받다 눈물까지」 · JTBC, 2025년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 사저 출발해 국립현충원으로 이동」 · 머니투데이, 2026년 1월 2일, 「이재명 대통령, 새해 첫 방명록에 등장한 ‘시그니처’ 문구…의미는」 · 더팩트, 2025년 6월 4일, 「〔현장〕 이재명 대통령 취임…차분한 긴장감 속 ‘희망의 환호’」 · 서울신문, 2025년 6월 4일, 「〔포토〕 이재명 대통령, 시민들 향해 하트」 · 뉴시스, 2025년 6월 4일, 「〔전문〕이재명 대통령 취임선서 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 · 뉴스1, 2025년 6월 4일, 「〔취임사 전문〕 李대통령 “박정희·DJ 모두 필요”…‘성장’ 22번 최다 언급」 · 뉴시스, 2025년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 여야 대표와 ‘비빔밥’ 오찬」 · 경향신문, 2025년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 의장·정당 대표 오찬 “의제 관계없이 자주 대화하자”」 · 머니투데이, 2025년 6월 4일, 「“용산 와보니 꼭 ○○ 같아요”…폭소 터진 이재명 대통령의 첫 브리핑」 · 더팩트, 2025년 6월, 「〔주간政談<상>〕 李 “꼭 무덤같다”…활기 찾은 대통령실, 속은 ‘텅텅’」 · 이투데이, 2025년 6월 4일, 「李 정부 첫 인선…민생-외교안보 전문성·국정 철학 이해 방점」 · 이투데이, 2025년 6월 4일, 「李대통령, 첫 비상경제TF서 추경·대미 통상현안 논의」 · 중앙일보, 2025년 6월 4일, 「이재명 취임 첫날 “비상경제대응TF 신설” 1호 행정명령」 · 세계일보, 2025년 6월 9일, 2차 비상경제점검TF 보도 · 머니투데이, 2025년 6월 9일, 「라면값 2000원에 놀란 李정부…물가 관리에 나선다」 · 뉴시스, 2025년 5월 12일, 「이재명 10대 공약 발표…“포괄임금 금지하고 세종의사당 임기 내 건립”」 · 뉴시스, 2025년 6월 20일, 「국힘, 정부 추경안에 “돈 뿌리는 정치 추경” “무늬만 선별적 복지”」 · 더팩트, 2025년 7월 4일, 「檢특활비 갈등 끝에…‘31.8조’ 李정부 첫 추경안 국회 통과」 · 뉴시스, 2025년 7월 5일, 「올해 2차 추경안, 총 31.8조로 최종 심의·의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