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6,121자) · 2025년 6월 3일~4일 새벽, 여의도

함께 가자

이재명의 삶 · 네오

2025년 6월 3일 저녁 8시 정각, 투표가 끝나자마자 지상파 방송 3사가 출구조사 결과를 내보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51.7퍼센트, 국민의힘 김문수 39.3퍼센트, 개혁신당 이준석 7.7퍼센트, 민주노동당 권영국 1.3퍼센트였다. 한국리서치와 입소스,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이 그날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국 325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온 8만 146명에게 물은 결과였다. 오차범위는 ±0.8퍼센트포인트였고, 두 사람 사이는 12.4퍼센트포인트였다.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박수를 쳤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얼굴은 침울했다. 이재명은 인천 계양구 자택에서 개표를 지켜봤다. 2024년 12월 3일 밤, 텔레그램에 「국회로」 세 글자를 남기고 아내 김혜경이 모는 차로 국회를 향해 떠났던 바로 그 집이었다. 그 밤부터 이날까지 182일이었다.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로 60일 안에 치르게 된 선거였고, 그 사이 5월 1일에는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후보 자격이 흔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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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스무이틀 전, 그는 약속부터 적어 냈다. 5월 12일,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이재명 후보의 10대 공약을 제출했다. 첫 번째 공약의 이름은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강국」이었다. 민간 분야 AI 투자 100조 원 시대를 열고, AI 데이터센터를 지어 「AI 고속도로」를 깔겠다고 했다. 세부 항목에는 고성능 GPU 5만 개 이상을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온 국민이 무료로 쓰게 하는 「모두의 AI 프로젝트」가 들어 있었다. AI 시대를 이끌 인재를 기르는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약속도 같은 항목에 있었다.

두 번째는 「내란극복과 K-민주주의 위상 회복」이었다. 계엄을 선포할 때 국회의 계엄 해제권을 더 단단히 보장하고, 정치 보복의 관행을 끊고, 수사와 기소를 나누겠다는 약속이었다. 검사도 징계로 파면할 수 있게 하고 온라인 재판을 들이겠다는 항목이 뒤따랐다. 국회의 계엄 해제권은 2024년 12월 4일 새벽 1시 1분, 국회가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직접 행사한 권한이었다.

세 번째는 「가계·소상공인 활력 증진 및 공정 경제 실현」으로, 지역사랑상품권과 온누리상품권 발행을 늘리고 주주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을 하겠다고 했다. 네 번째는 「세계질서 변화에 실용적으로 대처하는 외교안보 강국」, 다섯 번째는 「국민의 생명·안전 보호」였다. 필수 의료에 충분한 보상 체계를 세우고 지역의사·지역의대·공공의료사관학교를 새로 만들겠다는 내용이 다섯 번째에 들어갔다.

여섯 번째 「세종 행정수도와 ‘5극 3특’ 추진」에는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집무실을 임기 안에 짓겠다는 약속이 담겼다. 일곱 번째는 「노동 존중 사회」였다. 포괄임금제 금지를 근로기준법에 못 박고, 범정부 차원에서 주 4.5일제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5월 1일 노동절에 한국노총과 맺은 협약서에 담겼던 주 4.5일제는 열하루 뒤 민주당의 10대 공약에도 올랐다. 여덟 번째 「생활안정으로 아동·청년·어르신 등 모두가 잘사는 나라」에는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18세까지 차츰 넓히겠다는 약속이 들어갔다. 아홉 번째는 「저출생·고령화 위기 극복」, 열 번째는 「기후위기 적극 대응」이었다. RE100 산업단지를 만들고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닫겠다고 했다.

빠진 것도 있었다. 3년 전 대선의 10대 공약에 들어 있던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과 연 100만 원 전 국민 기본소득은 이번 목록에 없었다. 한겨레는 주요 후보들의 10대 공약에 여성과 성평등이 보이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재명의 10대 공약에서 「여성」이라는 말은 두 번 나왔고, 「성평등」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여성·성평등 공약을 따로 내놓은 후보는 민주노동당 권영국뿐이었다. 민주당 중앙선대위 진성준 정책본부장은 나중에 나올 전체 공약집에 여성 공약이 따로 담길 것이라고 답했다. 대선 전에 거론되던 기획재정부 분리도 10대 공약에서 빠졌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신율 교수는 예산 기능을 기재부에서 대통령실로 옮기면 행정 권력이 크게 강해지고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질 수 있다는 지적을 의식해, 정부 개편의 속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맞수의 1호 공약은 길이 달랐다. 김문수 후보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내걸고 법인세 최고세율을 24퍼센트에서 21퍼센트로 낮추겠다고 했다. 그는 기존 재원을 활용하므로 추가 재정 소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재명의 공약은 재정을 넓혀 성장의 길을 닦는 쪽이었다. 아동수당을 18세까지 넓히는 데에만 해마다 8조 3,0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재원은 지출 구조를 고치고 성장으로 세수를 늘려 마련하겠다고 했고, 추경에 더해 2차 추경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1호 공약은 「대통령 힘 빼고 일 잘하는 정부」였다. 정부 부처를 19개에서 13개로 줄이고 3부총리제를 두겠다고 했다. 뉴시스는 두 사람의 1호 공약을 「추경 등 돈 풀어 성장」과 「기업 규제·세제 완화해 성장」으로 나란히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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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3사가 「당선 확실」을 띄운 뒤인 3일 밤 11시 46분쯤, 이재명이 계양구 아파트에서 나왔다. 태극기 배지를 달고 파란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다. 그는 자택 앞에 몰려든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여러 차례 고개를 숙였다. 한 지지자가 꽃바구니를 건넸다. 그는 말을 아꼈다.

“개표가 진행 중이라서 뭐라고 말씀드리기 섣부르다.”

그리고 한 문장을 보탰다. “제게 주어진 큰 책임과 사명을 우리 국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수행하도록 하겠다.”

그는 여의도 민주당사에 들렀다가 국회 앞으로 갔다. 당이 연 「국민개표방송」 행사장이었다. 반년 전 계엄의 밤, 그가 차 안의 생중계로 시민들을 불러 모은 곳도 국회 앞이었다. 그동안 따로 활동해 온 김혜경이 이날 처음으로 그와 동행했다. 두 사람은 꽃다발을 받아 들고 시민들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인사했다.

날짜가 6월 4일로 넘어가자 그는 우리 국민들의 위대한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새벽 1시 10분쯤, 그가 국회 앞 무대의 마이크 앞에 섰다. 첫 문장은 감사였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시민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러분이 내게 기대하시고 맡긴 그 사명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반드시 확실히 이행하겠다.”

그는 앞에 선 사람들이 지나온 시간을 불렀다. 작년 12월 3일 그 내란의 밤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풍천노숙하며 간절히 바랐던 것 가운데 하나가, 이 나라가 평범한 시민들의 나라라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명을 하나씩 셌다. 첫째는 내란을 확실히 극복하고,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을 겁박하는 군사 쿠데타가 다시는 없게 하는 일이었다. 5월 12일 선관위에 낸 두 번째 공약이 그 자리에서 첫 번째 사명이 됐다. 둘째는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내일 당선자로 확정되는 그 순간부터 온 힘을 다해서 여러분들의 이 고통스러운 삶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장 확실하게 회복시켜드리도록 하겠다.”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일도 사명에 넣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을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

그는 안전을 말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가의 제1의 책임을 완벽하게 이행하는 안전한 나라를 꼭 만들도록 하겠다.” 안보는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낫고, 그보다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를 만드는 것이 진짜라고 했다. 한반도 정세를 최대한 빨리 안정시켜 코리아리스크를 줄이고, 안보 때문에 민생이 더 나빠지지 않게 하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통합을 말했다.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진짜 이웃으로 함께 사는 공동체를 꼭 만들겠다고 했다.

“통합된 나라, 대통령의 책임은 국민을 통합시키는 것이다. 큰 통치자가 아니라, 국민을 크게 통합시키는 대통령의 그 책임을 결코 잊지 않겠다.”

그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 이야기도 꺼냈다.

“잠시 다투었을지라도, 우리를 지지하지 않은 그 분들도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그는 어려움이 잠시라고 했다. “우리가 겪는 이 잠시의 어려움은 위대한 역량을 가진 우리 국민들이 힘을 합쳐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마지막은 짧았다. “이제 우리는 모두 위대한 대한민국의 위대한 똑같은 대한국민이다.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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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는 그날 저녁 8시 출구조사가 나온 뒤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새벽 1시가 다 돼서야 서울 봉천동 자택을 나섰다. 당에서 준비한 꽃다발은 받지 않았다. 굳은 얼굴로 선 그의 승복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투표가 끝나고 다섯 시간 반 만인 새벽 1시 반이었다.

“국민의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선되신 이재명 후보님 축하드립니다.”

그는 자신에게 보내 준 성원을 잊지 않겠다고 했고, 함께 뛰어 준 당원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말을 더 남겼다.

“대한민국은 어떠한 위기에 부딪히더라도 국민의 힘으로 위대한 전진을 계속해 왔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과분한 성원을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사 앞의 일부 지지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선 불복! 부정 선거!” 그들은 부정선거이니 대선에 불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은 논평에서 새 대통령에게 당부했다.

“갈등으로 분열된 대한민국을 하나로 단합해 ‘우리’의 대통령이 아닌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돼 달라.”

이십 분 전 국회 앞에서, 이긴 사람은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했다. 이십 분 뒤 진 사람은 굳은 얼굴로 이긴 사람에게 축하한다고 말했다. 두 문장 사이에서 182일의 겨울과 봄이 끝났다.

개표가 끝났을 때 이재명의 표는 1,728만 7,513표였다. 득표율 49.42퍼센트로,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였다. 3년 전 윤석열 후보가 얻은 1,639만 4,815표보다 89만 2,698표가 많았다. 김문수 후보는 41.15퍼센트, 이준석 후보는 8.34퍼센트, 권영국 후보는 0.98퍼센트, 무소속 송진호 후보는 0.10퍼센트를 얻었다. 투표율은 79.4퍼센트로 1997년 이후 가장 높았다. 득표율은 과반에 조금 못 미쳤다. 역대 최고 득표율은 18대 대선 박근혜 후보의 51.55퍼센트로 남았다.

그날 경기 과천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당선증을 대신 받았다. 5월 12일 같은 선관위에 냈던 열 개의 약속이 이제 당선증과 함께 한 사람의 이름 아래 놓였다.

출처 · 한겨레, 2025년 6월 3일, 「〔출구조사〕 이재명 51.7%-김문수 39.3%-이준석 7.7%」 · 뉴스1, 2025년 6월 4일, 「파란 넥타이 맨 이재명 “위대한 결정 경의”…김혜경 여사 ‘첫 동행’」 · 정책브리핑, 2025년 6월 4일, 「이재명 당선인 “첫 번째 사명, 내란극복…민주주의 회복시킬 것”」 · 일요신문, 2025년 6월 4일, 「〔전문〕 ‘당선 확실’ 이재명 “내란 확실히 극복하고 민주주의 회복하겠다”」 · MBC, 2025년 6월 4일, 「김문수 “결과 겸허히 받아들여” 승복 선언」 · 경향신문, 2025년 6월 4일, 「‘1728만 7513표’ 기록 세운 이재명···역대 대통령선거 최다 득표」 · 뉴시스, 2025년 5월 1일, 「이재명 “반도체법 주52시간 예외 적용 실익 없어…예송논쟁 벗어나야”(종합)」 · 뉴시스, 2025년 5월 12일, 「이재명 10대 공약 발표…“포괄임금 금지하고 세종의사당 임기 내 건립”」 · 남도일보, 2025년 5월 12일, 「〔21대 대선 10대 공약〕 이재명 “AI 등 집중육성 새 성장기반 구축”」 · 뉴시스, 2025년 5월 13일, 「〔대선공약 비교〕①이재명·김문수, 1호 공약 보니…“추경 등 돈 풀어 성장” vs “기업 규제·세제 완화해 성장”」 · 한겨레, 2025년 5월 12일, 「대선 후보들 10대 공약서 ‘여성·성평등’은 어디에?」 · 아시아경제, 2025년 5월 14일, 「이재명 10대 공약에 빠진 ‘기재부 분리’…국정 실익이냐, 비대화 우려냐」 · 경향신문, 2025년 5월 29일, 「〔불법계엄의 밤 이후〕 이재명의 177일···라이브 켜고 “국민들 힘 보태달라” 국회 담 넘어 계엄 해제 주도」 · 오마이뉴스, 2024년 12월 4일, 「국회 긴급 본회의, 190명 계엄령 해제 요구 의결」 · 서울신문, 2024년 12월 4일, 「‘담 넘는 이재명’ 240만명이 봤다…유튜브·SNS에 생중계된 비상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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