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25자)

공람

제주 한 달 살기 · 석담율

춘옥 삼촌의 숨비소리가 밤새 방문 틈으로 들어왔다⁠. 나는 이불을 덮고 누워 천장을 보았다⁠. 말했으면 선생이 귤 팔아 줬겠느냐는 물음이 천장에 붙어 있었다⁠. 대답은 쉬웠다⁠. 팔았을 것이다⁠. 육천이라는 숫자를 알았어도 첫날 밤 말뚝을 뽑았을 것이다⁠. 대답이 쉬워서 더 화가 났다⁠. 대봉 씨는 내 대답을 몰라서 숨긴 것이 아니었다⁠. 내 대답을 알아서 숨긴 것이었다⁠. 나한테 짐을 지우기 싫어서⁠.

아침에 대봉 씨가 귤 한 소쿠리를 들고 올레를 내려오는 것이 부엌 창으로 보였다⁠. 나는 뒷문으로 나가 갯가로 내려갔다⁠. 바위 뒤에 쪼그려 앉아 있는데 춘옥 삼촌이 보말 바구니를 들고 따라 나왔다⁠.

“⁠둘이 숨바꼭질하냐⁠?⁠”

“⁠아니에요⁠, 삼촌⁠.⁠”

“⁠대봉이는 소쿠리 놓고 갔어⁠. 소쿠리에 귤만 있고 말은 없더라⁠. 그놈은 어릴 때부터 말 대신 먹을 걸 놓고 가⁠.⁠”

춘옥 삼촌은 바구니를 내려놓고 내 옆에 앉았다⁠. 물 빠진 바위 위로 갈매기가 걸어 다녔다⁠.

“⁠오늘 시청 간다며⁠. 나도 가⁠.⁠”

“⁠삼촌이 왜요⁠?⁠”

“⁠계획도에 내 바당이 있는지 봐야지⁠.⁠”

*

서귀포 가는 버스에서 춘옥 삼촌은 맨 앞자리에 앉아 기사에게 길을 가르쳤다⁠. 기사는 이 노선을 열두 해째 다닌다고 했다⁠. 춘옥 삼촌은 열두 해면 아직 애기라고 했다⁠. 편집자 손님은 뒷자리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웃음을 참았다⁠. 춘옥 삼촌은 꽃무늬 블라우스에 해녀회 회장 시절 받았다는 은색 소라 브로치를 달았다⁠. 무릎 위의 비닐봉지에는 삶은 보말이 한가득이었다⁠. 춘옥 삼촌은 이쑤시개로 보말 살을 빼 내 입에 하나⁠, 편집자 손님 입에 하나⁠, 제 입에 하나 넣었다⁠. 짭조름하고 쫄깃했다⁠. 버스 안에 바다 냄새가 퍼졌다⁠. 앞자리 학생이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보았다⁠. 춘옥 삼촌이 학생 입에도 하나 넣어 주었다⁠.

서귀포시청 별관 이층 끝 방에 공람 자리가 있었다⁠. 긴 책상 위에 두꺼운 서류철이 세 권 놓였고⁠, 벽에 커다란 계획도가 붙어 있었다⁠. 담당 직원이 방명 서류에 이름과 주소를 받았다⁠. 춘옥 삼촌은 서류를 나에게 밀었다⁠. 나는 춘옥 삼촌 이름 옆에 「⁠모살개 해녀회 전 회장⁠」이라고 덧붙였다⁠. 직원이 눈을 크게 떴다⁠.

계획도는 우리 셋보다 컸다⁠. 나는 동그란 안경으로 전체를 보고⁠, 돋보기로 바꿔 글자를 읽고⁠, 다시 안경으로 바꿔 전체를 보았다⁠. 그러기를 다섯 번 하자 편집자 손님이 휴대전화로 계획도를 찍어 크게 키워 보여 주었다⁠. 휴대전화가 내 돋보기보다 나았다⁠.

계획도에 모살개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 1단계는 돌담집과 윗밭⁠, 아랫밭⁠, 현 삼촌네 밭을 비롯한 귤밭 서른 필지였다⁠. 밭 자리마다 객실동과 주차장과 진입로가 그려져 있었다⁠. 돌담집 올레는 진입로가 되어 있었다⁠. 2단계는 바다였다⁠. 포구가 「⁠전용 해변 및 마리나⁠」⁠, 마을 공동 소유의 해안 땅이 「⁠해안 산책로 및 스파동⁠」이 되어 있었다⁠. 모살물 자리에는 작은 네모 하나와 「⁠용천수 취수 시설⁠」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불턱 자리에는 점선 동그라미 하나와 「⁠전통 경관 조경 시설(⁠이전⁠)⁠」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춘옥 삼촌이 계획도 앞으로 다가가 점선 동그라미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손톱에 보말 껍질 가루가 끼어 있었다⁠.

“⁠이전이 뭐여⁠?⁠”

“⁠옮긴다는 말이에요⁠, 삼촌⁠.⁠”

“⁠불턱을 어디로 옮겨⁠. 바당을 옮기냐⁠?⁠”

담당 직원이 다가와 2단계는 마을 공동 소유 땅이 들어가서 마을 총회에서 매각을 의결해야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1단계 땅은 대부분 계약이 끝났고⁠, 남은 것은 돌담집과 몇 필지라고 했다⁠. 나는 진입로로 그려진 올레를 보았다⁠. 포구로 내려가는 길은 돌담집 올레 하나뿐이었다⁠. 돌담집을 사지 못하면 바다로 가는 길이 없었다⁠.

*

계단을 내려오는데 로비에서 양 본부장이 시청 직원 둘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관 심의를 앞두고 서류를 넣으러 왔다고 했다⁠. 양 본부장은 우리를 보고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다가왔다⁠. 춘옥 삼촌 브로치를 보고 잠깐 멈칫했다⁠.

“⁠삼촌⁠,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버스 타고 왔지⁠. 명휘야⁠, 불턱을 옮긴다고⁠?⁠”

로비에 앉아 있던 민원인 몇이 고개를 돌렸다⁠. 양 본부장은 목소리를 낮췄다⁠.

“⁠삼촌⁠, 모살개에 물질하는 해녀가 지금 몇 분입니까⁠? 넷입니다⁠. 평균 나이가 일흔여덟이고요⁠. 불턱에서 불 피운 게 언제입니까⁠? 다들 탈의장에서 온수로 씻으십니다⁠. 불턱은 이제 사진 찍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잘 옮겨서 잘 보이게 해 드리겠다는 겁니다⁠. 해녀회에는 보상금도 나갑니다⁠.⁠”

“⁠사진 찍는 자리⁠.⁠”

춘옥 삼촌이 따라 했다⁠. 양 본부장의 얼굴이 굳었다⁠. 표준어가 흔들렸다⁠.

“⁠삼촌⁠, 우리 어멍 불턱에서 얼어 죽게 일했수다⁠. 한겨울에 그 불 쬐면서도 덜덜 떨었수다⁠. 나는 그거 보면서 컸수다⁠. 그게 그렇게 지킬 자리우꽈⁠?⁠”

“⁠느 어멍이 불턱에서 웃었던 건 못 봤지⁠? 느는 학교 가 있었으니까⁠.⁠”

춘옥 삼촌은 브로치를 손으로 만졌다⁠.

“⁠느 어멍은 불턱에서 제일 크게 웃던 사람이여⁠. 물에서 나와 불 앞에 앉으면 그날 잡은 것 자랑하고⁠, 남의 서방 흉보고⁠, 노래하고⁠. 느 어멍 노래 들으려고 다른 마을 해녀도 왔어⁠. 그 자리를 사진 찍는 자리라고 해⁠?⁠”

양 본부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로비의 형광등이 지지거렸다⁠. 나는 춘옥 삼촌 옆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본부장님⁠, 2단계는 마을 총회에서 정한다고 들었어요⁠. 마을 사람들한테 계획도 그대로 보여 드려도 되죠⁠?⁠”

“⁠보여 드리십시오⁠. 저도 보여 드릴 겁니다⁠. 일자리가 몇 개인지⁠, 집마다 보상금이 얼마인지도 같이요⁠.⁠”

양 본부장은 말을 마치고 직원들에게 돌아갔다⁠. 등이 꼿꼿했다⁠. 춘옥 삼촌이 로비 의자에 털썩 앉았다⁠. 숨이 가빴다⁠. 편집자 손님이 자판기에서 귤 주스를 뽑아 왔다⁠. 춘옥 삼촌은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건 귤 맛이 아니여⁠.⁠”

*

점심은 서귀포 시장에서 먹었다⁠. 시장 골목 가판마다 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한 봉지 가격이 모살개 파치 한 상자보다 쌌다⁠. 나는 가판 귤 하나를 사서 까 먹었다⁠. 달았지만 얇았다⁠. 단맛이 혀 위에서 바로 녹아 없어졌다⁠. 혀에 남는 게 없는 귤이 이렇게 싸게 팔리는데 육천을 귤로 갚을 수는 없었다⁠. 시장 바닥이 그것을 숫자보다 먼저 가르쳐 주었다⁠.

춘옥 삼촌이 갈치 가게 앞에서 주인과 값을 두고 다투는 동안 나는 재온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묵의 보험금은 내 이름으로 된 통장에 두 해째 그대로 있었다⁠. 통장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았다⁠. 재온에게 물은 것은 통장이 아니었다⁠.

“⁠재온아⁠, 아빠 보험금 말이야⁠.⁠”

“⁠엄마⁠.⁠”

재온의 목소리가 대번에 낮아졌다⁠.

“⁠라이브 다 봤어⁠. 엄마⁠, 그거 그 아저씨 육천 때문이지⁠? 엄마⁠, 그거 내가 말한 거랑 똑같아⁠. 제주에서 만난 남자⁠, 갑자기 돈 문제⁠.⁠”

“⁠그 아저씨는 엄마한테 돈 달라고 한 적 없어⁠. 숨겼어⁠.⁠”

“⁠숨긴 게 더 무섭다고⁠, 엄마⁠.⁠”

재온은 숨을 세 번 쉬었다⁠. 코로 쉬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다 들렸다⁠.

“⁠아빠 돈이야⁠. 아빠가 엄마 쓰라고 남긴 돈이야⁠. 처음 본 아저씨 빚 갚으라고 남긴 게 아니라⁠.⁠”

“⁠엄마가 쓰는 거야⁠. 엄마가 쓰라고 남긴 돈이니까⁠.⁠”

재온은 대답 대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시장 골목 한가운데서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서 있었다⁠. 춘옥 삼촌이 갈치 두 마리를 들고 와서 내 얼굴을 보더니 갈치 한 마리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돌아오는 버스에서 춘옥 삼촌은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고개가 내 어깨로 기울더니 이윽고 숨비소리가 났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휘파람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두리번거렸다⁠. 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보았다⁠. 나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 보였다⁠.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라디오 소리를 줄였다⁠. 열두 해째 이 노선을 다닌 애기 기사였다⁠.

편집자 손님이 통로 건너에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계획도를 찍은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며 무엇인가 만들고 있었다⁠.

“⁠선생님⁠, 이거 마을 분들 보시게 짧은 영상으로 만들까요⁠? 1단계는 귤밭⁠, 2단계는 바다⁠. 불턱 자리에 「⁠이전⁠」 글씨 크게⁠.⁠”

“⁠할망들이 휴대전화로 보실 수 있을까요⁠?⁠”

“⁠경로당 텔레비전에 연결하면 돼요⁠. 제가 할게요⁠. 이건 일로 할게요⁠. 돈 받고⁠.⁠”

편집자 손님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춘옥 삼촌 저녁상에서 내가 들은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를 줄지는 나중에 정하자고 했다⁠.

어깨에 기댄 춘옥 삼촌의 머리가 무거웠다⁠. 나는 무릎 위의 가방을 열었다⁠. 안쪽 지퍼 주머니에 통장 하나가 있었다⁠. 선묵의 보험금이 들어 있는 통장이었다⁠. 서울 집 서랍에 두고 오려다가 공항 가는 날 아침 가방에 넣었다⁠. 두 해 동안 열어 보지 않은 통장을 왜 들고 왔는지 나도 몰랐다⁠. 표지에 손톱으로 긁힌 자국이 있었다⁠. 선묵이 통장마다 손톱으로 표시를 하던 버릇이었다⁠. 나는 통장을 열지 않고 다시 지퍼를 닫았다⁠.

모살개에 돌아오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춘옥 삼촌 집 돌담 앞에 미랑 씨가 서 있었다⁠. 패딩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있었다⁠.

“⁠선생님⁠, 잠깐 걸어요⁠.⁠”

미랑 씨와 나는 불턱까지 내려갔다⁠.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라 파도가 불턱 담 밑까지 찰랑거렸다⁠. 미랑 씨는 그을린 돌 하나에 손을 얹고 앉았다⁠.

“⁠어제 그 가계약⁠, 제가 권했어요⁠.⁠”

나는 미랑 씨 옆에 앉았다⁠. 돌이 차가웠다⁠. 파도가 들어올 때마다 불턱 담 틈으로 물방울이 튀어 들어왔다⁠. 미랑 씨는 배를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가 풀었다⁠. 둘째가 발로 찬다고 했다⁠. 엄마가 화나면 꼭 찬다고 했다⁠.

“⁠아빠가 사다리에서 떨어진 날⁠, 저는 서울 산부인과 대기실에 있었어요⁠. 아빠 전화는 사흘 뒤에 왔고요⁠. 그 밤에 「⁠제주 토지 매입 리조트⁠」를 검색했어요⁠. 섬바람에 메일을 보냈어요⁠. 본부장님이 서울까지 와서 저를 만났어요⁠. 모살개 사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8월에 아빠한테 도장 찍게 한 것도 저예요⁠. 이자가 밀려서 경매 이야기가 나올 때였어요⁠.⁠”

미랑 씨는 담 너머 바다를 보았다⁠.

“⁠선생님⁠, 육천 내 주실 거예요⁠? 그럼 아빠는 평생 선생님한테 빚져요⁠. 우리 아빠 그런 거 못 해요⁠. 엄마한테 진 빚도 아직 못 갚아서 혼자 사는 사람이에요⁠.⁠”

나는 시장에서 산 갈치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비린내가 손에 배어 있었다⁠. 미랑 씨 말에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뒤에서 자갈 밟는 소리가 났다⁠.

춘옥 삼촌이 불턱 담 입구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듣고 있었는지 몰랐다⁠. 브로치를 아직 달고 있었다⁠. 춘옥 삼촌은 불턱 안으로 들어와 그을린 돌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바닥으로 돌을 한 번 쓸었다⁠.

“⁠미랑아⁠, 느 아방 집은 느네 집 일이여⁠. 내가 말 안 해⁠.⁠”

춘옥 삼촌이 일어났다⁠. 허리가 꼬부라진 채로 고개를 들었다⁠.

“⁠근디 불턱하고 모살물은 우리 일이여⁠. 해녀회는 안 판다⁠. 총회에서 내가 그렇게 말할 거라⁠.⁠”

춘옥 삼촌은 블라우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버튼 큰 전화기였다⁠. 한 번에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는 동안 우리를 보지 않았다⁠.

“⁠평식아⁠. 어멍이다⁠. 느 회사에 말해라⁠. 모살개 해녀회는 안 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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