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31자)

밭담

제주 한 달 살기 · 석담율

새벽 여섯 시⁠, 나는 올레를 뛰어 올라갔다⁠. 예순 살이 뛰면 무릎이 먼저 소리를 냈다⁠. 정낭 막대는 다 내려져 있었다⁠. 밖거리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귤밭 너머에서 쇳소리가 났다⁠. 굴착기 궤도가 돌을 씹는 소리였다⁠.

대봉 씨는 이미 윗밭에 있었다⁠. 작업복 단추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수건만 질끈 동여맨 채였다⁠. 돌담 너머 현 삼촌네 밭이었던 땅에 노란 굴착기가 들어와 있었다⁠. 귤나무 몇 그루가 벌써 뿌리째 뽑혀 밭 가장자리에 눕혀져 있었다⁠. 뿌리에 붙은 흙에서 김이 올랐다⁠. 나무가 뽑힌 자리마다 덜 익은 귤이 흩어져 있었다⁠.

굴착기 옆에 평식 씨가 도면을 들고 있었다⁠. 형광 조끼를 입고 모자를 눌러쓴 얼굴은 어젯밤 춘옥 삼촌 부엌에 무릎 꿇었던 얼굴과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평식아⁠, 이 담은 손대지 마라⁠.⁠”

대봉 씨가 윗밭과 현 삼촌네 밭 사이의 밭담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허리 높이의 검은 담이 밭 경계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형⁠, 도면엔 회사 땅 경계가 담 가운데로 지나가우다⁠. 담 절반은 회사 거라⁠.⁠”

“⁠이 담 반은 우리 아방이 쌓은 거여⁠. 나 아홉 살 때 돌 날랐어⁠.⁠”

“⁠알아마씸⁠. 나도 그때 돌 날랐잖수과⁠.⁠”

평식 씨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은 잠깐 아홉 살과 다섯 살로 돌아간 얼굴이었다⁠. 평식 씨는 도면을 접고 굴착기 기사에게 손짓했다⁠. 경계 안쪽 담만 걷으라는 뜻이었다⁠. 굴착기 바가지가 들렸다가 담 위로 내려왔다⁠. 돌 몇 개가 바가지에 걸려 들렸다⁠. 그런데 밭담은 위아래 돌이 서로 이를 물고 있어서⁠, 한쪽을 들자 나머지가 따라 무너졌다⁠. 열 걸음 길이의 담이 윗밭 안쪽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돌 하나가 대봉 씨 장화 앞에 굴러와 멈췄다⁠.

대봉 씨가 무너진 담을 넘어 굴착기 바가지 앞으로 갔다⁠. 바가지가 대봉 씨 머리 위에서 멈췄다⁠. 기사가 놀라 경적을 울렸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봉 씨 옆으로 따라 들어갔다⁠. 바가지 끝에서 흙이 우수수 내 동그란 안경 위로 떨어졌다⁠.

“⁠형⁠! 선생님⁠!⁠”

평식 씨가 손을 들어 기사를 멈췄다⁠. 굴착기 엔진이 잦아들었다⁠. 아침 새 소리가 그제야 들렸다⁠.

현 삼촌이 밭 아래 길에서 올라왔다⁠. 평식 씨보다⁠, 굴착기보다 늦게 온 사람이었다⁠. 현 삼촌은 무너진 담 앞에 멈춰 대봉 씨를 보지 못했다⁠.

“⁠대봉아⁠, 미안허다⁠. 서울 아들이 무릎 수술비 대 준다고 팔라고 해서⁠.⁠”

“⁠삼촌 밭이니 삼촌이 판 거우다⁠.⁠”

대봉 씨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현 삼촌은 무너진 돌 하나를 주워 윗밭 쪽으로 밀어 놓고⁠, 고개를 숙인 채 내려갔다⁠. 평식 씨가 나에게 다가와 수건 한 장을 내밀었다⁠. 안경을 닦으라는 것이었다⁠.

“⁠선생님⁠, 오늘은 경계 안쪽만 걷고 철수하쿠다⁠. 무너진 담은 회사가 다시 쌓아 줄 수 있수다⁠. 시멘트로⁠.⁠”

“⁠시멘트로 쌓으면 바람이 못 빠지잖아요⁠.⁠”

평식 씨가 나를 보았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느냐는 얼굴이었다⁠. 첫날 밤 올레 입구에서 대봉 씨 손을 보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

굴착기가 물러간 뒤 대봉 씨와 나는 무너진 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대봉 씨가 돌을 고르는 순서를 보여 주었다⁠. 크고 넓적한 돌을 맨 아래에 깔고⁠,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얹는다⁠. 돌마다 울퉁불퉁한 면이 있는데⁠, 위 돌의 튀어나온 데가 아래 돌의 움푹한 데에 물리게 놓는다⁠. 돌과 돌 사이 틈은 메우지 않는다⁠. 제주 바람은 담을 밀어 넘어뜨리는 바람이라⁠, 틈으로 바람이 빠져나가야 담이 버틴다고 했다⁠.

“⁠사람도 그렇수다⁠. 꽉 채우면 넘어가⁠.⁠”

대봉 씨는 말을 해 놓고 쑥스러운지 돌만 보았다⁠. 나는 첫 돌을 들었다⁠. 현무암은 구멍이 숭숭 뚫려 가벼워 보였지만 손목이 꺾일 만큼 무거웠다⁠. 두 손으로 들어 아래 돌 위에 얹었다⁠. 돌이 흔들렸다⁠. 대봉 씨가 손을 뻗어 내 손등 위에 제 손을 얹었다⁠. 손바닥이 거칠고 뜨거웠다⁠. 대봉 씨 손이 내 손을 쥔 채로 돌을 반 바퀴 돌렸다⁠. 딸깍 소리가 나며 돌이 제자리에 물렸다⁠. 대봉 씨는 손을 바로 떼지 않았다⁠. 내가 먼저 손을 빼지도 않았다⁠. 돌 하나가 물리는 동안이었다⁠.

열 걸음 길이를 다시 쌓는 데 오전이 다 갔다⁠. 손톱 밑에 검은 돌가루가 끼었고⁠, 목장갑 손가락 끝에 구멍이 났다⁠. 해가 머리 위에 오자 대봉 씨가 윗밭 나무에서 귤 하나를 따 왔다⁠. 둘로 갈라 반을 내밀었다⁠. 나는 받으며 대봉 씨 손에 남은 반쪽을 보았다⁠. 내 것이 조금 더 컸고⁠, 꼭지 반대편 볕 받은 자리였다⁠. 볕 받은 자리가 더 달다는 것은 이 밭에서 사흘 만에 배운 것이었다⁠.

“⁠달다⁠.⁠”

“⁠열흘 지났수다⁠. 선생 온 날부터⁠.⁠”

나는 귤을 천천히 먹었다⁠. 신맛은 이제 혀끝에만 살짝 닿고 지나갔고⁠, 단맛이 목구멍 안쪽까지 오래 남았다⁠.

“⁠미랑 엄마는 왜 서울 가셨어요⁠?⁠”

내가 물었다⁠. 묻고 나서 내가 무례했다는 것을 알았다⁠. 대봉 씨는 귤껍질을 손안에서 오래 굴렸다⁠.

“⁠귤만 보는 남자랑은 못 산다고⁠. 열 해 전이우다⁠. 맞는 말이었수다⁠. 그해 태풍이 와서 귤이 반이 떨어졌는데⁠, 나는 각시 짐 싸는 날에도 떨어진 귤 줍고 있었수다⁠.⁠”

대봉 씨는 귤껍질을 담 틈에 끼워 넣었다⁠. 바람 빠지는 틈이었다⁠.

“⁠선생 서방님은 어떤 분이었수과⁠?⁠”

“⁠귤을 한 줄로 길게 깠어요⁠. 껍질이 안 끊기면 한 해 운이 좋다고⁠. 끊기면 하나를 더 깠고요⁠. 그래서 늘 귤을 두 개씩 먹었어요⁠.⁠”

“⁠욕심쟁이네⁠.⁠”

“⁠네⁠. 욕심쟁이였어요⁠.⁠”

웃음이 나왔다⁠. 웃음 끝에 목이 막혔다⁠. 나는 귤 한 조각을 더 입에 넣었다⁠. 대봉 씨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음 돌을 들었다⁠.

*

미랑 씨가 생수 두 병을 들고 윗밭에 올라온 것은 담을 거의 다 쌓았을 때였다⁠. 미랑 씨는 다시 선 담과 흙투성이 아버지와 손가락 끝이 터진 내 목장갑을 차례로 보았다⁠.

“⁠아빠⁠, 어깨⁠.⁠”

“⁠괜찮다⁠.⁠”

“⁠의사가 무거운 거 들지 말랬잖아⁠.⁠”

미랑 씨는 물병 하나를 아버지 손에 쥐여 주고⁠, 다른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차가웠다⁠. 미랑 씨는 담을 따라 걸으며 돌 사이 틈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았다⁠. 어릴 때 이 담 위를 걸어 다녔을 손이었다⁠.

“⁠선생님⁠, 이 담이 회사 땅이 되면 어차피 다 걷어요⁠.⁠”

“⁠알아요⁠.⁠”

“⁠그런데 왜 쌓으세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봉 씨가 대신 대답했다⁠.

“⁠담이 무너져 있으면 바람이 귤나무를 쳐⁠.⁠”

미랑 씨는 한참 아버지를 보다가 담 맨 위의 돌 하나를 손으로 눌러 보았다⁠. 돌은 흔들리지 않았다⁠. 미랑 씨가 손을 떼고 손바닥의 돌가루를 패딩에 문질렀다⁠.

“⁠아빠⁠, 스무 날 남았어⁠. 그 안에 귤 다 따⁠. 사다리는 내가 잡을 거야⁠.⁠”

미랑 씨는 말을 남기고 윗밭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걸음이 올라올 때보다 느렸다⁠. 배를 받친 손과 담을 짚은 손이 번갈아 바뀌었다⁠. 대봉 씨는 딸의 등이 귤나무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물병 뚜껑을 열지 않았다⁠. 사다리를 잡겠다는 말이 반대인지 허락인지⁠, 대봉 씨도 나도 알 수 없었다⁠.

*

30일 오후⁠, 「⁠귤 따는 한 달 살기⁠」 첫 손님들이 모살개에 내렸다⁠. 대구에서 온 부부는 둘 다 예순다섯이었다⁠. 남편은 세무서에서 은퇴한 사람이었고 목에 호루라기를 걸고 있었다⁠. 아내는 꽃꽂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 캐리어에 꽃가위가 세 개 들어 있었다⁠. 서울에서 온 영상 편집자는 서른 살이었고 노트북 가방을 앞으로 메고 휴대전화를 셀카봉에 끼운 채 내렸다⁠.

대구 아저씨는 도착한 지 한 시간 만에 귤밭에 손님 셋과 할망 셋을 두 줄로 세우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일 조는 윗줄⁠, 이 조는 아랫줄⁠! 꼭지는 두 번⁠! 두 번 안 자르면 벌점⁠!⁠”

춘옥 삼촌이 호루라기 소리에 놀라 귤을 떨어뜨렸다⁠.

“⁠저 양반은 귤 따러 왔나 훈련하러 왔나⁠.⁠”

대구 아주머니는 따 온 귤을 상자에 담다가 꼭지 달린 귤 하나를 맨 위 가운데에 올리고 잎사귀 두 장을 양옆에 꽂았다⁠. 상자가 꽃바구니가 되었다⁠. 할망들이 모여들어 구경했다⁠. 고추 할망이 제 상자도 그렇게 해 달라고 줄을 이었다⁠. 순번은 또 내가 정했다⁠.

편집자 손님은 모든 것을 찍었다⁠. 춘옥 삼촌이 담 위에 걸터앉아 귤을 까는 모습⁠, 대구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물고 사다리를 붙잡는 모습⁠, 대봉 씨가 다시 쌓은 담의 틈에 손을 넣어 바람을 재는 모습⁠. 대봉 씨는 휴대전화가 다가오면 수건을 내려 얼굴을 가렸다⁠. 편집자 손님은 수건 가린 얼굴이 더 좋다고 했다⁠.

저녁은 춘옥 삼촌 집 마루에서 몸국을 먹었다⁠. 돼지 뼈를 고은 국물에 바다에서 건진 해초 모자반을 넣고 메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끓인 국이었다⁠. 한 숟가락 뜨자 돼지기름의 고소함이 먼저 혀를 덮고⁠, 뒤따라 모자반이 바다 냄새를 끌고 들어왔다⁠. 메밀이 둘을 묶었다⁠. 대구 아저씨가 두 그릇을 비우고 수첩을 꺼냈다⁠.

“⁠삼촌⁠, 이거 끓이는 순서 좀 불러 주십시오⁠. 매뉴얼로 만들어 놓게⁠.⁠”

“⁠매뉴얼은 손에 있어⁠.⁠”

춘옥 삼촌은 국자를 든 손을 흔들어 보였다⁠. 대구 아저씨는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가⁠, 불 데가 없어서 도로 놓았다⁠. 대구 아주머니가 남편 수첩을 빼앗아 덮었다⁠. 할망들이 박수를 쳤다⁠.

편집자 손님이 내 옆에 앉아 국을 식히며 물었다⁠.

“⁠선생님은 왜 이 일 하세요⁠? 돈도 안 받으시잖아요⁠.⁠”

나는 숟가락을 든 채 멈췄다⁠. 라이브를 켜고⁠, 상자를 접고⁠, 경로당 보드 앞에 서고⁠, 돌을 들어 올리는 동안 한 번도 받아 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퇴직하던 날 교장 선생님이 꽃다발을 주며 이제 푹 쉬시라고 했다⁠. 나는 반년을 푹 쉬었다⁠. 반년 동안 아침 여덟 시 사십 분이면 눈이 저절로 떠졌고⁠, 떠진 눈으로 천장을 보았다⁠.

“⁠일하고 싶어서요⁠.⁠”

말해 놓고 나도 놀랐다⁠. 편집자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국을 마저 먹었다⁠. 서른 살에게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럼 돈도 받으세요⁠. 일이면⁠.⁠”

저녁상을 물린 뒤 편집자 손님이 노트북을 펴고 나를 불렀다⁠. 도청 누리집에 공고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모살개 해안 관광단지 조성 계획 경관 심의 · 주민 의견 제출 11월 5일까지 · 서귀포시청 공람⁠」

“⁠선생님⁠, 공람이면 계획도를 누구나 볼 수 있다는 말이에요⁠.⁠”

나는 돋보기를 쓰고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같은 시각⁠, 해안 도로에 검은 승용차 세 대가 줄지어 멈췄다⁠. 양복 입은 사람들이 내려 포구와 불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영어와 한국말이 섞인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올라왔다⁠. 싱가포르 투자 회사 사람들이라고 평식 씨가 나중에 말해 주었다⁠.

*

해가 지고 대봉 씨가 다시 쌓은 담 앞으로 갔다⁠. 손님들과 할망들은 춘옥 삼촌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고⁠, 나는 목장갑을 돌려주러 남아 있었다⁠. 미랑 씨가 밖거리 앞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선생⁠.⁠”

대봉 씨가 담에 손을 얹은 채 나를 불렀다⁠.

“⁠내일⁠, 우리 마당 엽시다⁠. 장터로⁠. 할망들 음식이랑 귤이랑 다 내놓고⁠.⁠”

“⁠아빠⁠!⁠”

미랑 씨가 마당을 가로질러 왔다⁠. 배를 받친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집 팔 사람이 무슨 장터야⁠. 본부장님 보면 뭐라고 해⁠?⁠”

대봉 씨는 수건을 고쳐 쓰지 않았다⁠. 딸을 똑바로 보았다⁠.

“⁠내 마당이여⁠. 18일까진⁠.⁠”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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