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83자)

삼촌네 방

제주 한 달 살기 · 석담율

춘옥 삼촌의 코 고는 소리는 길게 들이쉬다가 끝에 휘파람처럼 새어 나왔다⁠. 처음 듣는 밤에는 바깥에 바람이 이는 줄 알았다⁠. 해녀가 물속에서 참았던 숨을 물 위로 올라와 한꺼번에 내쉴 때 휘이 하고 나는 소리를 숨비소리라고 부른다는 것을⁠, 나는 이튿날 아침 춘옥 삼촌한테서 들었다⁠.

“⁠물질 오십 년 하면 잘 때도 숨비소리가 나와⁠.⁠”

“⁠삼촌⁠, 그럼 밤새 물질하신 거예요⁠?⁠”

“⁠꿈에서는 아직 열 길도 들어가⁠.⁠”

내 방은 부엌 옆의 작은 방이었다⁠. 벽에 고무 잠수복이 걸린 못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장판 밑에서 미역 냄새가 올라왔다⁠. 창을 열면 돌담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캐리어는 대봉 씨가 들어다 주었다⁠. 퇴실일은 28일이었지만 나는 26일 아침에 짐을 쌌다⁠. 쫓겨나는 날을 기다리는 것보다 제 발로 나가는 날을 고르는 편이 나았다⁠. 대봉 씨는 아무 말 없이 캐리어를 어깨에 메고 올레를 내려왔다⁠. 빠졌던 바퀴가 어느새 다시 끼워져 있었다⁠. 언제 고쳤느냐고 묻자 대봉 씨는 바퀴를 고친 적이 없다고 했다⁠. 거짓말할 때 수건을 고쳐 쓰는 사람이었다⁠. 수건을 두 번 고쳐 썼다⁠.

*

물이 빠진 아침⁠, 춘옥 삼촌을 따라 갯가에 나갔다⁠. 검은 바위 사이에 물웅덩이가 거울처럼 깔려 있었다⁠. 춘옥 삼촌은 허리를 꺾고 바위 틈에 손을 넣어 손톱만 한 고둥을 집어 냈다⁠. 보말이라고 했다⁠. 나는 바위 위에서 두 번 미끄러졌고⁠, 세 번째에는 춘옥 삼촌이 내 허리띠를 뒤에서 잡았다⁠.

“⁠육지 삼촌은 귤밭에서는 빠르더니 바당에서는 아기네⁠.⁠”

“⁠바위가 귤나무보다 미끄러워요⁠.⁠”

“⁠귤나무는 가만있고 바당은 움직이니까⁠.⁠”

포구 옆 바위 사이에 돌담을 둥글게 두른 자리가 있었다⁠. 바람을 막는 낮은 담 안에 그을린 돌이 몇 개 놓여 있었다⁠. 해녀들이 물질 끝내고 불을 피워 언 몸을 녹이던 불턱이었다⁠. 불턱 옆 바위 밑에서는 맑은 물이 솟아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손을 넣자 바닷물보다 차가웠다⁠. 혀에 대 보니 짜지 않았다⁠. 땅속을 흘러 바다 바로 앞에서 솟는 민물⁠, 마을 사람들은 이 용천수를 모살물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빨래하고⁠, 여름에는 애들 씻기고⁠. 명휘 그놈도 여기서 엉덩이 까고 씻었어⁠.⁠”

춘옥 삼촌은 불턱 담에 걸터앉아 보말 바구니를 무릎에 올렸다⁠.

“⁠명휘 어멍이 물질을 참 잘했주⁠. 숨이 길었어⁠. 근디 빚 지고 갔어⁠. 잠수복이며 테왁이며 장비가 다 빚이었지⁠. 명휘가 열여덟에 육지 간 게 그 빚 갚으러 간 거라⁠.⁠”

춘옥 삼촌은 빚 이야기를 하면서 보말을 하나씩 바구니에 굴려 넣었다⁠. 나는 마당에 말뚝을 박던 양 본부장의 매끈한 표준어를 떠올렸다⁠. 열여덟에 이 바위를 떠난 아이가 서른일곱 해 만에 말뚝을 들고 돌아온 것이었다⁠.

점심은 보말칼국수였다⁠. 보말을 삶아 바늘로 살을 빼내고⁠, 내장째 참기름에 볶아 국물을 냈다⁠. 국물이 푸르스름했다⁠. 한 숟가락 뜨자 바다 냄새가 혀 뒤로 넘어가고⁠, 끝에 쌉쌀한 맛이 남았다⁠. 나는 국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았다⁠. 춘옥 삼촌은 빈 그릇을 보고 그제야 내 이름을 처음 불렀다⁠.

“⁠은영아⁠, 한 그릇 더 먹어라⁠.⁠”

*

오후 두 시⁠, 마을 경로당에 할망 열둘이 모였다⁠. 춘옥 삼촌이 아침에 집집을 돌며 불러 모은 것이었다⁠. 경로당 벽에 작은 화이트보드가 있었다⁠. 화투 점수를 적던 판이라 귀퉁이에 지워지지 않은 숫자가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보드 앞으로 나갔다⁠. 할망 열둘의 눈이 나를 보았다⁠. 서른 해 동안 수많은 첫 수업을 했는데⁠, 이렇게 무서운 첫 수업은 처음이었다⁠.

“⁠삼촌들⁠, 집에 빈방 있으시죠⁠?⁠”

“⁠있지⁠. 아들 방⁠, 딸 방⁠, 영감 방⁠.⁠”

맨 앞의 할망이 대답하자 다른 할망들이 웃었다⁠. 영감 방이라는 말에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나는 보드에 그림을 그렸다⁠. 집 하나⁠, 귤나무 하나⁠, 사람 둘⁠. 서울에서 한 달 살러 오는 손님이 할망 집 빈방에 묵고⁠, 아침마다 귤을 따고⁠, 할망 밥을 먹는다⁠. 손님은 숙박비를 덜 내고⁠, 할망은 방세를 받고⁠, 귤밭은 일손을 얻는다⁠.

“⁠수눌음이네⁠.⁠”

춘옥 삼촌이 말했다⁠. 할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눌음이라는 말 하나가 내 그림 세 장보다 빨랐다⁠. 질문이 쏟아졌다⁠.

“⁠손님이 밥 맛없다 하면⁠?⁠”

“⁠그럼 그 손님 귤 따는 데로 보내요⁠. 배고프면 다 맛있어요⁠.⁠”

“⁠손님이 남자여⁠?⁠”

“⁠부부도 오고⁠, 혼자도 와요⁠.⁠”

“⁠일흔 밑이여⁠?⁠”

경로당이 뒤집어졌다⁠. 질문한 할망은 뻔뻔하게 웃었고⁠, 옆 할망이 등을 때렸다⁠. 나는 웃다가 마커 뚜껑을 떨어뜨렸다⁠.

웃음이 가라앉자 나는 미랑 씨가 짚은 것을 하나씩 꺼냈다⁠. 농사짓는 집이 제 집 빈방으로 손님을 받으려면 농어촌민박으로 신고해야 한다⁠. 소방 점검을 받고⁠, 밥을 차리려면 위생 교육을 받는다⁠. 신고 서류는 읍사무소에 같이 가서 낸다⁠. 할망들 얼굴이 하나씩 굳었다⁠. 서류라는 말에 굳는 얼굴은 교무실이나 경로당이나 같았다⁠.

“⁠서류는 내가 들고 가요⁠. 삼촌들은 도장만 들고 오세요⁠.⁠”

할망 셋이 손을 들었다⁠. 춘옥 삼촌⁠, 현 삼촌네 할망⁠, 고추 할망이었다⁠. 집 세 채가 붙었다⁠. 세 집 모두 돌담을 맞대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든 할망들 손등에 「⁠참 잘했어요⁠」가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

경로당 문이 열리고 양 본부장이 들어왔다⁠. 양손에 떡 상자를 들고⁠, 뒤에 직원 하나가 전단지 뭉치를 안고 따라왔다⁠. 양 본부장은 신발을 벗고 할망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큰절을 했다⁠. 할망들이 놀라 엉덩이를 들썩였다⁠.

“⁠삼촌들⁠, 명휘우다⁠. 인사가 늦었수다⁠.⁠”

표준어가 아니었다⁠. 양 본부장은 떡 상자를 열어 돌렸고⁠, 직원이 전단지를 나눠 주었다⁠. 「⁠섬바람리조트 식당 · 객실 정리 · 조경 직원 모집 · 모살개 주민 우선 채용⁠」 아래에 시급이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리조트 문 열면 삼촌들 따님⁠, 며느님부터 쓰쿠다⁠. 삼촌들도 아침 식당에서 일하실 수 있고⁠. 할망 손맛 조식⁠, 그거 손님들이 좋아합니다⁠.⁠”

할망들이 전단지를 돋보기 없이 멀리 들고 읽었다⁠. 시급 숫자에서 눈들이 멈췄다⁠. 양 본부장이 나를 보았다⁠.

“⁠선생님⁠, 민박 한 집에 손님 한 팀이면 한 달에 얼마 남습니까⁠? 리조트 식당 한 달 월급은 그 세 배입니다⁠. 그리고 겨울에도 나옵니다⁠. 귤 없는 달에도요⁠.⁠”

나는 보드 앞에서 마커를 쥐고 있었다⁠. 지울 수 없는 숫자였다⁠. 양 본부장이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쉬웠을 것이다⁠.

“⁠본부장님 리조트 식당에서 할망들 밥을 팔면⁠, 손님은 할망 밥을 먹고 할망은 월급을 받겠죠⁠. 그런데 할망 집은 비어요⁠. 빈집이 마을에 하나씩 늘어요⁠.⁠”

“⁠빈집은 지금도 늡니다⁠, 선생님⁠.⁠”

양 본부장이 춘옥 삼촌이 내민 빙떡 하나를 받아 베어 물었다⁠. 씹다가 멈췄다⁠. 몇 번 더 씹었다⁠. 양 본부장 얼굴에서 표준어가 다 빠져나갔다⁠.

“⁠삼촌⁠, 이거 우리 어멍 빙떡 맛이우다⁠.⁠”

“⁠느 어멍이 나한테 배운 거여⁠.⁠”

춘옥 삼촌이 양 본부장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명휘야⁠, 느 어멍이 불턱에서 늘 뭐랬는지 알아⁠? 바당은 빌려 쓰는 거랬어⁠. 빌려 쓰는 걸 파는 놈은 도둑이랬어⁠.⁠”

양 본부장은 빙떡을 다 먹고 손을 털었다⁠. 일어나며 다시 표준어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빌려 쓰다가 빚만 지고 가셨습니다⁠, 삼촌⁠.⁠”

양 본부장이 나간 뒤 할망 넷이 전단지를 접어 몸빼 주머니에 넣었다⁠. 둘은 전단지를 바닥에 두고 갔다⁠. 나머지는 손에 든 채로 갔다⁠. 경로당이 갈라졌다⁠. 화이트보드에 내가 그린 집과 귤나무와 사람 둘이 남았다⁠.

*

저녁에 미랑 씨가 춘옥 삼촌 집 마당에 왔다⁠. 환불 영수증과 「⁠참 잘했어요⁠」 도장을 들고 있었다⁠. 도장은 돌담집 툇마루에 두고 온 것이었다⁠. 미랑 씨는 부엌 옆 작은 방 문턱에서 내 방을 들여다보았다⁠. 캐리어 하나⁠, 이불 한 채⁠, 벽의 못 자국⁠.

“⁠선생님 짐이 이게 다예요⁠?⁠”

“⁠한 달 살러 온 사람 짐이에요⁠.⁠”

미랑 씨는 도장을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무엇인가 더 말하려다 그만두고 춘옥 삼촌에게 인사하고 나갔다⁠. 나는 미랑 씨 손이 도장을 놓으며 한 번 망설인 것을 보았다⁠.

해가 질 무렵 대봉 씨가 귤 상자 두 개를 손수레에 싣고 올레를 내려왔다⁠. 춘옥 삼촌 마당에 상자를 내려놓고 수건을 벗었다⁠.

“⁠은영 선생 방세우다⁠.⁠”

“⁠방세를 왜 느가 내⁠?⁠”

“⁠선생이 우리 집 귤 팔았으니 귤은 선생 거우다⁠.⁠”

춘옥 삼촌은 상자 뚜껑을 열고 귤을 하나 꺼내 껍질째 냄새를 맡았다⁠. 하나를 까서 반을 입에 넣었다⁠.

“⁠윗밭 거네⁠. 두 상자는 한 달 방세로 모자라⁠. 세 상자⁠.⁠”

“⁠삼촌⁠, 작년엔 한 상자에 방 하나 줬잖수과⁠.⁠”

“⁠작년엔 내가 귤값을 몰랐지⁠. 이 선생이 라이브에서 다 말해 버렸잖아⁠.⁠”

대봉 씨가 나를 보았다⁠. 나는 어깨를 들썩였다⁠. 대봉 씨는 손수레를 끌고 다시 올레를 올라갔다가 상자 하나를 더 싣고 내려왔다⁠. 춘옥 삼촌은 세 번째 상자를 받고 나서야 대봉 씨에게 보말칼국수 한 그릇을 떠 주었다⁠. 대봉 씨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국수를 먹다가 국물을 들이켜고 그릇 너머로 나를 힐끔 보았다⁠. 미랑 씨가 내 짐을 보고 간 지 한 시간도 안 되어서였다⁠. 부녀가 번갈아 내 방을 다녀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춘옥 삼촌뿐이었다⁠. 춘옥 삼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봉 씨 그릇에 국물을 한 국자 더 부었다⁠.

라디오에서 도청 경관 심의 위원회가 다음 달 초 모살개 해안 관광단지 계획을 심의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대봉 씨가 숟가락을 멈췄다가 다시 들었다⁠.

밤에 「⁠귤 따는 한 달 살기⁠」 첫 예약이 확정되었다⁠. 대구에서 오는 은퇴 부부⁠, 그리고 서울에서 노트북을 들고 오는 서른 살 영상 편집자였다⁠. 30일에 온다고 했다⁠. 가족 단톡방이 떨었다⁠.

「⁠엄마 쫓겨났다며⁠? 집주인 딸한테⁠?⁠」

「⁠어머님 라이브 댓글에 다 나와요ㅠㅠ⁠」

「⁠엄마 그냥 서울 와⁠. 내가 공항 갈게⁠」

나는 「⁠엄마는 지금 해녀 집에 산다⁠」라고 보냈다⁠. 재온은 「⁠해녀⁠?⁠?⁠」라고 물음표를 두 개 달았다⁠.

*

열 시가 넘어 부엌문이 열렸다⁠. 춘옥 삼촌이 막 숨비소리를 내기 시작한 참이었다⁠. 문턱에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작업 점퍼에 모자를 눌러쓰고⁠,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첫날 돌담집 우영팟에 말뚝을 박던 남자였다⁠. 춘옥 삼촌이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았다⁠.

“⁠평식이 왔냐⁠.⁠”

남자가 모자를 벗었다⁠. 춘옥 삼촌의 눈매가 그대로 있었다⁠.

“⁠어멍⁠, 늦었수다⁠.⁠”

나는 방문 틈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남자는 부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서류 봉투를 열었다⁠. 「⁠모살개 해안 관광단지 사업 주민 동의서⁠」라는 글자가 보였다⁠.

“⁠어멍⁠, 동의서만 써 줍서⁠. 회사에서 마을 사람 동의를 이번 주까지 몇 장 받아 오라고 했수다⁠. 어멍 밭은 안 팔아도 돼⁠. 동의만 하면 돼⁠.⁠”

“⁠느가 그 회사 소장인 거⁠, 동네가 모를 줄 알아⁠?⁠”

“⁠하청이우다⁠. 하청 소장⁠. 이번 공사 못 따면 우리 회사 문 닫아⁠. 우리 딸 등록금은 어떵허라고⁠.⁠”

춘옥 삼촌은 서류를 받지 않았다⁠. 아들이 내민 볼펜을 손등으로 밀어냈다⁠. 평식 씨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앉아 있다가⁠, 방문 틈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평식 씨가 먼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귤 파는 분이지예⁠.⁠”

“⁠네⁠.⁠”

“⁠내일 아침에 현 삼촌네 밭 밭담 헙니다⁠. 현 삼촌이 어제 밭을 팔았수다⁠. 대봉이 형 윗밭이랑 맞붙은 담이우다⁠. 형한테 미리 말해 줍서⁠. 굴착기 기사는 담이 어디까지 누구 건지 몰라마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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