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20자)

라이브

제주 한 달 살기 · 석담율

새벽 두 시⁠, 나는 안거리 이불 속에서 휴대전화 불빛에 얼굴을 대고 있었다⁠. 동영상 채널에서 「⁠라이브 방송 처음 하는 법⁠」을 찾아 세 번째 영상을 보는 중이었다⁠. 화면 속 스무 살쯤 된 청년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이 빨라서⁠, 나는 재생 속도를 0⁠.75배로 낮췄다⁠. 그래도 빨랐다⁠.

영상이 끝나자 다음 영상이 저절로 올라왔다⁠. 「⁠60대 재혼⁠, 이것만 알면 성공한다⁠」 아래에는 「⁠황혼 연애 첫 데이트 옷차림⁠」이 있었고⁠, 다음에는 「⁠제주 한 달 살기에서 인연 만난 썰⁠」이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이불 위에 엎었다⁠. 기계가 사람 속을 넘겨짚는 것은 담임이 학부모 상담에서 하던 짓과 비슷했다⁠. 다른 점은 기계가 넘겨짚고도 미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엊그제 보낸 마흔일곱 상자가 어제 저녁부터 서울에 닿고 있었다⁠. 제자 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흉터 귤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찍은 사진⁠, 「⁠참 잘했어요⁠」 도장 찍힌 뚜껑을 들고 웃는 사진⁠, 다섯 살쯤 된 아이가 귤을 양 볼에 문 사진⁠. 「⁠선생님 흉터가 맛있어요⁠」 「⁠뚜껑 보고 회사에서 울 뻔했어요⁠」 「⁠저희 팀장님이 열 상자 더 달래요⁠」 주문은 백예순 상자로 늘어 있었다⁠. 나는 엎어 둔 휴대전화를 다시 뒤집었다⁠. 잠은 다 달아났다⁠.

선묵은 귤을 먹을 때 꼭 껍질을 한 줄로 길게 깠다⁠. 끊기지 않으면 한 해 운이 좋다고 했다⁠. 끊기면 다시 하나를 깠다⁠. 그래서 선묵 옆에는 늘 귤이 두 개씩 놓여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손가락으로 이불 위에 나선을 그려 보았다⁠. 선묵이라면 지금 이 시간에 휴대전화를 빼앗아 가고 불을 껐을 것이다⁠. 내일 장사할 사람이 눈이 빨가면 귤이 시어 보인다고 했을 것이다⁠. 나는 선묵이 하지 않은 잔소리를 들으며 영상을 하나 더 보았다⁠.

*

아침 아홉 시⁠, 윗밭 한가운데 귤 상자 두 개를 쌓고 맨 위에 빨래집게로 휴대전화를 물렸다⁠. 대봉 씨는 처음부터 조건을 걸었다⁠.

“⁠얼굴은 안 나옵니다⁠.⁠”

“⁠손은요⁠?⁠”

“⁠손은⁠… 손은 됩서⁠.⁠”

대봉 씨는 화면 밖에 쪼그려 앉아 손만 들이밀었다⁠. 볕에 그을린 손등에 가위 자국이 하얗게 나 있었다⁠. 나는 동그란 안경을 고쳐 쓰고 귤색 조끼 단추를 하나 더 채웠다⁠. 교실 문을 열기 전 숨을 들이쉬던 버릇이 그대로 나왔다⁠.

“⁠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늘솔초 문은영입니다⁠.⁠”

접속한 사람은 열한 명이었다⁠. 그중 아홉이 제자였다⁠. 「⁠선생님 출석 부르실 거예요⁠?⁠」 「⁠저 지각 아니에요⁠」 나는 귤 하나를 화면 가까이 들었다⁠.

“⁠껍질 보세요⁠. 이 오톨도톨한 점들이 기름샘이에요⁠. 손톱으로 살짝 누르면 향이 튀어요⁠. 향이 셀수록 껍질이 얇고 속이 차요⁠.⁠”

대봉 씨 손이 화면 안으로 들어와 귤을 받아 들고 껍질을 깠다⁠. 한 번에 꼭지부터 밑동까지 나선으로 돌아가며 끊기지 않게 깠다⁠. 댓글이 쏟아졌다⁠. 「⁠삼촌 손 기술 뭐야⁠」 「⁠껍질이 리본처럼 내려와요⁠」 「⁠손만 나와도 잘생김⁠」 나는 웃음을 참느라 볼 안쪽을 깨물었다⁠. 대봉 씨는 댓글을 못 보았다⁠. 돋보기를 안 쓰고 있었다⁠.

한창 껍질 이야기를 하는데 화면 귀퉁이로 꽃무늬 수건이 들어왔다⁠. 춘옥 삼촌이 빙떡 접시를 들고 귤밭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이건 뭐 하는 거여⁠? 테레비여⁠?⁠”

“⁠삼촌⁠, 지금 방송 중이에요⁠.⁠”

“⁠방송⁠? 그럼 나도 나와야지⁠.⁠”

춘옥 삼촌은 빙떡 접시를 귤 상자 위에 올려놓고 화면 정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마가 화면의 반을 덮었다⁠.

“⁠여기 귤 사는 사람들⁠, 잘 들어⁠. 귤은 못생겨도 혀는 안 속아⁠. 눈으로 사지 말고 입으로 사⁠.⁠”

댓글 창이 한동안 멈췄다가 터졌다⁠. 「⁠할머니 자막 좀요⁠」 「⁠혀는 안 속아 명언⁠」 「⁠할머니 귤 열 상자 주세요⁠」 접속한 사람이 백 명을 넘더니 삼백⁠, 칠백으로 올라갔다⁠. 누군가 춘옥 삼촌의 말을 잘라 짧은 영상으로 올렸다는 댓글이 달렸다⁠. 춘옥 삼촌은 영문을 모르고 빙떡을 들어 화면에 대고 흔들었다⁠.

“⁠이것도 팔아⁠?⁠”

“⁠빙떡은 안 팔아요⁠, 삼촌⁠.⁠”

“⁠왜 안 팔아⁠. 나 손 빨라⁠.⁠”

댓글 사이로 낯선 이름 하나가 끼어들었다⁠. 「⁠이거 연출이죠⁠? 할머니 돈 받고 나온 거 다 보임⁠」 제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기 전에 내가 먼저 화면을 보며 말했다⁠.

“⁠거기 질문한 분⁠, 좋은 질문이에요⁠. 연출이면 할머니가 저렇게 화면을 이마로 가리시겠어요⁠?⁠”

춘옥 삼촌이 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더니 글자를 못 읽고 나한테 물었다⁠. 내가 읽어 주자 춘옥 삼촌은 빙떡 하나를 집어 화면에 바짝 들이밀었다⁠.

“⁠돈은 안 받았어⁠. 대신 너 귤 사면 이거 하나 얹어 보내 주마⁠. 먹어 보고 연출인지 말해⁠.⁠”

낯선 이름은 오 분 뒤에 귤 두 상자를 주문했다⁠. 주문 메모란에 「⁠빙떡 꼭이요⁠」라고 적혀 있었다⁠. 춘옥 삼촌은 밤늦도록 빙떡을 다시 부치느라 메밀가루 두 봉지를 썼다⁠.

라이브는 한 시간 사십 분 만에 끝났다⁠. 휴대전화가 뜨거워서 귤 상자 위에 내려놓자 상자 골판지가 데워졌다⁠. 주문 창의 숫자는 오후 내내 올라갔고⁠, 해가 질 무렵 천 상자를 넘겼다⁠. 나는 숫자를 보고 대봉 씨를 보았다⁠. 대봉 씨는 윗밭 나무를 하나씩 손으로 짚으며 세고 있었다⁠. 스무 그루였다⁠.

*

“⁠윗밭에서 많이 나와야 삼백 상자우다⁠. 파치 다 털어도 오백 안 되고⁠.⁠”

대봉 씨가 말했다⁠. 모자란 귤은 이웃 밭에서 와야 했다⁠. 대봉 씨는 이웃에 부탁하는 일을 귤 따는 일보다 어려워했다⁠. 나는 조끼를 고쳐 입고 앞장서 올레를 내려갔다⁠. 대봉 씨는 두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첫 집은 돌담 건너 현 삼촌네였다⁠. 마당에 귤 상자가 탑처럼 쌓여 있었다⁠. 주스 공장 트럭이 모레 온다고 했다⁠. 현 삼촌은 내 얘기를 듣고 대봉 씨를 보았다⁠.

“⁠대봉이 니가 사람을 데리고 왔댄⁠?⁠”

“⁠내가 따라온 거우다⁠.⁠”

내가 파치 한 상자에 주스 공장의 두 배를 부르자 현 삼촌은 입을 벌렸다⁠. 나는 마당에 선 채로 현 삼촌네 파치를 한 알 까 먹었다⁠. 흉터가 많았고 달았다⁠. 현 삼촌은 마당 귀퉁이에서 담배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본부장이 우리 밭도 보고 갔어⁠. 값은 잘 쳐준댔고⁠. 아들놈이 서울서 팔라고 난리여⁠.⁠”

“⁠팔기 전까지는 귤이 달려 있잖아요⁠. 달려 있는 동안은 파세요⁠. 제가 팔아 드릴게요⁠.⁠”

두 번째 집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마당에서 고추를 말리던 할망은 내 얘기를 끝까지 듣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 손주가 내년에 대학 가⁠. 본부장이 땅값 주면 등록금이 되고⁠, 귤 팔면 귤값이 돼⁠. 둘 중에 뭐가 크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할망 말이 맞았다⁠. 대봉 씨가 내 소매를 살짝 당겼다⁠. 나가자는 뜻이었다⁠. 할망은 나가는 우리 등에 대고 귤 한 봉지를 내밀었다⁠.

“⁠팔지는 않아도 먹는 건 먹어⁠. 육지 삼촌 얼굴이 시어 보여⁠.⁠”

해가 질 때까지 세 집을 더 돌았다⁠. 세 집 모두 담 너머로 서로의 마당이 보이는 집이었다⁠. 대봉 씨는 집집마다 돌담 앞에서 수건을 벗어 손에 쥐고 들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걸음을 늦춰 대봉 씨와 나란히 걸었다⁠. 대봉 씨 작업복에서 귤껍질 냄새가 났다⁠.

“⁠동네 사람들한테 부탁하는 게 그렇게 어려우세요⁠?⁠”

“⁠부탁은 안 어렵수다⁠. 빚진 걸 들키는 게 어렵지⁠.⁠”

돌담집에 돌아오자 가족 단톡방에 글이 서른 개 넘게 쌓여 있었다⁠.

「⁠엄마 이거 엄마야⁠?⁠」

「⁠회사 사람들이 다 봤어⁠. 부장님이 우리 어머니 아니냐고 물어봤어⁠」

「⁠할머니 혀는 안 속아 그거 우리 팀 단톡방 프로필 됐어⁠」

「⁠어머님 저희 엄마도 다섯 상자 주문하셨대요⁠」

「⁠엄마 답장⁠」

「⁠엄마 그 손은 누구 손이야⁠」

나는 마지막 글에만 답했다⁠. 「⁠집주인 손⁠.⁠」 재온은 한참 아무것도 쓰지 않다가 「⁠손이 왜 그렇게 오래 나와⁠」라고 보냈다⁠. 나는 휴대전화를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라디오에서는 도가 비상품 감귤 산지 폐기를 확정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남는 귤을 밭에 묻어 값을 받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루에 쌓인 파치 상자를 보았다⁠. 이 마을에서 내일 땅에 묻힐 귤과 서울로 올라갈 귤은 생김새가 똑같았다⁠.

*

저녁 일곱 시⁠, 마당에 빈 상자가 산처럼 쌓였다⁠. 택배 회사에서 내일 아침 트럭을 두 대 보낸다고 했다⁠. 상자를 접던 손을 멈춘 것은 정낭에서 구두 소리가 났을 때였다⁠. 양 본부장이 서류 가방을 들고 막대 사이로 들어왔다⁠. 상자 더미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라이브 봤습니다⁠. 춘옥 삼촌 말씀이 지금 이십만 번 넘게 돌았더군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정말로요⁠. 그런데 천 상자 팔아서 얼마 남는지 아십니까⁠? 이 마을 귤밭을 다 합치면 한 해 몇만 상자가 나옵니다⁠. 선생님 한 달 뒤 서울 가시면 이 상자는 누가 접습니까⁠?⁠”

양 본부장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숙제를 다 해 온 아이가 질문하는 목소리였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늘 그런 목소리로 왔다⁠.

“⁠오늘 상자는 현 삼촌네 할망이 접으셨어요⁠. 내일은 춘옥 삼촌이 접으신대요⁠. 접는 손은 이 마을에 저보다 많아요⁠.⁠”

“⁠그 손들이 일흔⁠, 여든입니다⁠, 선생님⁠. 저희 리조트 식당은 그분들 딸과 며느리를 쓰겠다는 겁니다⁠. 지금은 다 제주시나 육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돌아올 자리를 만들자는 겁니다⁠.⁠”

나는 다음 말을 찾지 못했다⁠. 마당 끝에서 대봉 씨가 상자를 접던 손을 멈추고 있었다⁠.

“⁠그래서 제안을 드리러 왔습니다⁠. 리조트가 문을 열면 마을 체험 프로그램을 맡아 주십시오⁠. 귤 따기⁠, 해녀 체험⁠, 할망 밥상⁠. 월급 드리고⁠, 숙소도 드립니다⁠. 선생님이 하시는 일을 이 마을에서 계속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상자를 내려놓았다⁠. 손가락에 골판지 가루가 묻어 있었다⁠.

“⁠저 퇴직했어요⁠. 이번에는 제가 고른 일만 해요⁠.⁠”

“⁠고르실 때 보시라고 드리는 겁니다⁠.⁠”

양 본부장은 서류 가방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대봉 씨에게 내밀었다⁠.

“⁠삼촌⁠, 회사에서 일찍 도장 찍어 주시면 삼천을 더 얹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에 싱가포르 투자사 사람들이 옵니다⁠. 그 전에 끝내시지요⁠.⁠”

대봉 씨는 봉투를 받지 않았다⁠. 마당 가운데 쌓인 상자 더미를 보고⁠, 내 손가락의 골판지 가루를 보고⁠, 작업복 가슴 주머니를 만졌다⁠. 돌돌 만 빨간 깃발이 손바닥 밑에서 바스락거렸다⁠.

“⁠잔금 날⁠, 미룹시다⁠.⁠”

“⁠삼촌⁠.⁠”

“⁠귤 다 따고 봅시다⁠. 윗밭 귤이 아직 안 달았수다⁠.⁠”

양 본부장이 봉투를 든 손을 천천히 내렸다⁠. 웃음이 얼굴에서 걷혔고⁠, 표준어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형님⁠, 그건 미룰 수 있는 날이 아니우다⁠.⁠”

양 본부장은 봉투를 도로 넣고 정낭을 나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미랑이도 압니까⁠?⁠”

대봉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구두 소리가 골목 아래로 멀어지자마자 대봉 씨 휴대전화가 울렸다⁠. 대봉 씨는 화면을 보고 굳었다⁠. 받으려다 엄지가 엉뚱한 데를 눌렀고⁠, 마당 가득 스피커 소리가 퍼졌다⁠.

“⁠아빠⁠! 그 라이브에 나온 아줌마 누구야⁠? 아빠 손 나왔잖아⁠. 그 수건 내가 사 준 거잖아⁠!⁠”

대봉 씨가 휴대전화를 이리저리 눌렀지만 소리는 줄지 않았다⁠. 나는 상자 뒤에 숨을 수도 없었다⁠.

“⁠본부장님한테 전화 왔어⁠. 잔금 미루자고 했다며⁠? 아빠⁠, 나 내일 첫 비행기로 내려가⁠.⁠”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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