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322자)

포클레인

제주 한 달 살기 · 석담율

밤새 밖거리 짐을 날랐다⁠. 짐이 많지 않아서 손수레 세 번이면 끝났다⁠. 대봉 씨 짐은 춘옥 삼촌 집 창고로 갔고⁠, 미랑 씨 캐리어는 현 삼촌네 빈방으로 갔다⁠. 총회에서 하얀 조개껍데기를 들고 나간 현 삼촌네 할망이 밤 열한 시에 미랑 씨 방에 이불을 깔아 주었다⁠. 조개껍데기는 할망 몸빼 주머니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할망은 내 얼굴을 보지 않고 이불만 폈다⁠.

“⁠집 헐라고 하얀 거 넣은 건 아니여⁠.⁠”

할망은 한마디만 남기고 방을 나갔다⁠.

마지막 짐은 대봉 씨가 들었다⁠. 윗밭 사다리였다⁠. 대봉 씨는 사다리를 어깨에 메고 올레를 내려가다가 정낭 앞에서 멈췄다⁠. 막대 세 개가 다 내려져 있었다⁠. 대봉 씨는 막대를 하나씩 들어 올려 돌기둥 구멍에 꽂았다⁠. 하나⁠, 둘⁠, 셋⁠. 멀리 오래 간다는 표시였다⁠. 대봉 씨는 막대를 다 꽂고 한참 서 있다가 사다리를 고쳐 메고 내려갔다⁠. 나는 뒤에서 손전등을 비췄다⁠. 손전등 불빛 안에서 대봉 씨 수건이 하얗게 흔들렸다⁠.

*

11월 17일 아침 여섯 시 반⁠, 내 한 달 살기 마지막 날이었다⁠. 선묵의 즐겨찾기 사진 밑에 「⁠한 달⁠」이라고 적혀 있던 한 달이 끝나는 날이었다⁠.

굴착기는 해안 도로에서 올레 입구로 들어오는 갈림길에 멈춰 있었다⁠. 노란 바가지를 접고⁠, 궤도에 흙을 묻힌 채였다⁠. 운전석의 기사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평식 씨네 하청 대신 섬바람이 급하게 부른 다른 업체라고 했다⁠.

올레 입구에 솥이 하나 올라앉아 있었다⁠. 춘옥 삼촌이 새벽 다섯 시에 돌을 괴어 솥을 걸고 불을 지폈다⁠. 몸국이 끓고 있었다⁠. 솥 옆에 플라스틱 의자 열 개가 길을 가로질러 놓였고⁠, 할망들이 의자마다 앉아 있었다⁠. 고추 할망은 올레 양쪽 돌담 사이에 빨랫줄을 매고 몸빼 바지 세 벌을 널었다⁠. 바지가 바람에 부풀어 길을 막았다⁠.

현 삼촌은 경운기를 몰고 와서 올레 한가운데에 세웠다⁠. 시동이 안 걸린다고 했다⁠. 현 삼촌은 경운기 옆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대구 아저씨는 대구 아주머니가 돌려준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굴착기 앞에 서서 차량 통제를 했다⁠. 통제할 차량은 굴착기 한 대뿐이었다⁠. 편집자 손님은 돌담 위에 휴대전화를 세우고 라이브를 켰다⁠. 「⁠모살개 올레 · 몸국 · 마지막 날⁠」

굴착기 기사가 운전석에서 내려와 담배를 물고 우리를 보았다⁠. 할망 열둘⁠, 손님 셋⁠, 경운기 하나⁠, 빨랫줄 하나⁠, 솥 하나⁠. 기사는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았다⁠.

“⁠삼촌들⁠, 저도 시켜서 온 사람이우다⁠.⁠”

“⁠알아⁠. 그러니 국이나 먹어⁠.⁠”

춘옥 삼촌이 몸국 한 그릇을 떠서 내밀었다⁠. 기사는 그릇을 받아 들고 굴착기 궤도에 걸터앉아 먹었다⁠. 한 숟가락째에 기사가 숟가락을 멈추고 국을 내려다보았다⁠. 두 숟가락째에 기사가 눈을 감았다⁠. 세 숟가락째에 국물을 들이켰다⁠. 기사의 어머니도 제주 사람이라고 했다⁠.

일곱 시가 조금 못 되어 미랑 씨가 현 삼촌네에서 올라왔다⁠. 패딩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한 손으로 배를 받치고 있었다⁠. 미랑 씨는 할망들 사이 빈 의자에 털썩 앉았다⁠. 고추 할망이 무릎 담요를 미랑 씨 배에 덮어 주었다⁠. 미랑 씨가 나를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아빠 집 헐리는 거 서울에서 사진으로 보긴 싫어서요⁠.⁠”

뒤이어 평식 씨가 작업 트럭을 몰고 해안 도로에 나타났다⁠. 트럭 짐칸에 평식 씨네 직원 셋이 타고 있었다⁠. 일하러 온 차림이 아니었다⁠. 평식 씨는 트럭을 굴착기 옆에 세우고 내려서 어머니 솥 옆에 쪼그려 앉았다⁠. 직원들은 할망들 의자 뒤에 줄지어 앉았다⁠. 평식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솥 밑의 불을 뒤적였다⁠. 춘옥 삼촌이 아들에게 국 한 그릇을 떠 주었다⁠.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

일곱 시에 양 본부장이 왔다⁠. 어젯밤 총회 때 입은 셔츠 차림 그대로였다⁠. 눈이 붉었다⁠.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양 본부장은 경운기와 빨랫줄과 솥을 차례로 보고⁠, 굴착기 궤도에서 몸국을 먹는 기사를 보았다⁠. 한숨을 쉬지 않았다⁠. 빨랫줄 밑으로 허리를 숙여 지나 올레를 올라갔다⁠. 나와 대봉 씨가 뒤따라 올라갔다⁠. 정낭 막대 세 개를 대봉 씨가 하나씩 빼 담에 기대 놓았다⁠. 남의 집 막대를 빼는 손이 떨렸다⁠.

미랑 씨가 의자에서 일어나 양 본부장을 불러 세웠다⁠.

“⁠오빠⁠.⁠”

양 본부장이 돌아보았다⁠. 미랑 씨는 배를 받친 채 양 본부장 앞으로 갔다⁠. 공항에서 내밀던 손을 잡지 않던 사람이었다⁠.

“⁠이 집 헐면 나 평생 오빠 안 봐⁠. 우리 애들도 오빠 안 보게 할 거야⁠.⁠”

“⁠미랑아⁠, 너는 이 집 팔자고 나한테 메일 보낸 사람이야⁠.⁠”

“⁠알아⁠. 팔자고 했지⁠. 헐자고는 안 했어⁠.⁠”

양 본부장은 대답하지 못하고 올레를 올라갔다⁠. 미랑 씨는 선 채로 숨을 골랐다⁠. 고추 할망이 미랑 씨를 의자에 도로 앉혔다⁠.

돌담집 마당은 비어 있었다⁠. 첫날처럼 비어 있었다⁠. 툇마루에 귤 바구니도 없었다⁠. 양 본부장이 마당 가운데 서서 휴대전화를 꺼내 보여 주었다⁠. 새벽 여섯 시에 온 영어 메일이었다⁠. 투자사가 계약에서 빠진다는 통보였다⁠.

“⁠형님⁠, 회사는 저한테 일주일을 줬습니다⁠. 일주일 안에 산 땅으로 뭐라도 할 방법을 가져오라고요⁠. 못 가져오면 저는 끝입니다⁠. 회사도 이 땅 다 팔아서 빚 갚고 나가겠지요⁠. 그럼 이 집은 경매로 갑니다⁠. 형님 집이 형님 빚 때문이 아니라 제 빚 때문에 경매로 가는 겁니다⁠.⁠”

대봉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 본부장이 담에 손을 얹었다⁠.

“⁠형님⁠, 기억나십니까⁠? 우리 어멍 간 날⁠.⁠”

“⁠기억나지⁠.⁠”

“⁠어멍 장례 치르고 사흘 뒤에 테왁 판 가게 주인이 왔습니다⁠. 빚 받으러요⁠. 저는 어멍 테왁을 그 사람한테 돌려줬습니다⁠. 빚 대신 받아 가라고요⁠. 그 사람이 테왁을 들고 이 올레를 내려가는 걸 이 담 위에서 봤습니다⁠. 그다음 달에 배 타고 육지로 갔습니다⁠. 열여덟이었습니다⁠.⁠”

양 본부장은 담을 쓰다듬었다⁠. 손바닥이 돌 틈의 바람 구멍을 지나갔다⁠.

“⁠저는 이 마을에 돈을 가지고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어멍 테왁 값보다 큰 돈을요⁠. 그게 리조트였습니다⁠. 형님⁠, 제가 틀렸습니까⁠?⁠”

“⁠안 틀렸어⁠. 늦었지⁠.⁠”

대봉 씨가 말했다⁠. 양 본부장이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웃다가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

나는 마당 가운데로 걸어갔다⁠. 첫날 말뚝이 박혀 있던 자리였다⁠. 조끼 주머니에서 돌돌 만 빨간 깃발을 꺼냈다⁠. 귤 물이 들어 주황빛이 된 깃발이었다⁠. 깃발을 펼쳐 양 본부장에게 내밀었다⁠.

“⁠첫날 대봉 씨한테 돌려 달라고 한 거예요⁠. 이제 본부장님 마당이니까 돌려드려요⁠.⁠”

양 본부장이 깃발을 받아 들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 나를 보았다⁠.

“⁠그리고 이 집⁠, 제가 한 해 빌릴게요⁠.⁠”

마당이 조용했다⁠. 대봉 씨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일 년 치 집세를 한꺼번에 드릴게요⁠. 회사가 이번 주에 가져갈 돈이 필요하시잖아요⁠. 안거리는 귤 따는 한 달 살기 손님을 받고⁠, 마당은 일요일마다 장터를 열고⁠, 밖거리는 제가 살아요⁠. 그리고 본부장님이 양식장 땅에 작은 호텔을 지으시면⁠, 그 호텔 아침상은 할망들이 차리고 귤은 모살개 귤로 대요⁠. 약정서 그대로요⁠.⁠”

“⁠진입로는요⁠? 이 올레를 넓히지 않으면 차가 못 들어갑니다⁠.⁠”

“⁠차가 왜 들어가요⁠? 손님이 걸어가면 되죠⁠. 이 올레로 걸어서 들어가는 호텔이요⁠. 돌담 사이로 귤나무 보면서⁠, 정낭 지나서⁠, 불턱 지나서⁠. 본부장님 리조트에서 그런 거 파세요⁠? 중문에선 못 팔잖아요⁠. 대리석이라 할망들 고무신도 미끄러지던데⁠.⁠”

양 본부장이 깃발을 든 채로 올레를 내려다보았다⁠. 담 너머 귤나무와 담 아래 빨랫줄에 널린 몸빼 바지와⁠, 맨 아래 바다를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리고 하나 더요⁠. 삼 년 안에 마을이 돈을 모으면 이 집을 산 가격 그대로 되살 수 있게 해 주세요⁠. 할망들 빈방에서 나오는 돈으로요⁠.⁠”

대봉 씨가 내 팔을 잡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생⁠, 일 년 치 집세가 어디서 나오우꽈⁠?⁠”

“⁠선묵이 돈에서요⁠.⁠”

“⁠선생⁠.⁠”

“⁠이번엔 대봉 씨 빚이 아니에요⁠.⁠”

나는 대봉 씨 손을 내 팔에서 떼어 두 손으로 감쌌다⁠. 가위 자국이 하얀 손등이었다⁠.

“⁠제 일자리예요⁠. 제 아침이에요⁠. 남편이 저 쓰라고 남긴 돈으로 제가 일할 데를 빌리는 거예요⁠. 대봉 씨가 갚을 거 하나도 없어요⁠. 대봉 씨는 이 집 손님이 되는 거예요⁠.⁠”

대봉 씨가 나를 보았다⁠. 수건 밑 이마에 땀이 맺혔다⁠. 수건을 고쳐 쓰지 않았다⁠. 고쳐 쓸 거짓말이 없는 얼굴이었다⁠. 대봉 씨는 내 손 안에서 제 손을 빼지 않았다⁠.

“⁠나도 손님이면⁠, 집세는 뭘로 내우꽈⁠?⁠”

“⁠귤로 내세요⁠. 윗밭 거로⁠.⁠”

대봉 씨는 웃지 않았다⁠. 툇마루에서 일어나 밖거리 뒤 창고로 갔다⁠. 창고는 텅 비어 있었는데⁠, 구석에 대봉 씨가 미처 못 옮긴 귤 바구니 하나가 남아 있었다⁠. 대봉 씨는 바구니를 들고 와서 안거리 툇마루에 놓았다⁠. 첫날 내가 이 마당에 들어섰을 때 바구니가 놓여 있던 자리였다⁠. 대봉 씨는 바구니에서 귤 하나를 집어 내 손에 놓았다⁠.

“⁠첫 달 치우다⁠.⁠”

*

양 본부장이 마당 구석으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 회사 대표였다⁠. 처음에는 표준어로 또박또박 말하다가⁠, 중간에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끝에는 제주 말이 나왔다⁠. 무슨 말을 했는지 다 들리지는 않았다⁠. 「⁠걸어 들어가는 호텔⁠」이라는 말이 두 번 들렸고⁠, 「⁠모살개 귤⁠」이라는 말이 세 번 들렸다⁠. 대봉 씨와 나는 통화가 끝날 때까지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손은 놓았다⁠. 무릎이 닿아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선묵의 즐겨찾기를 열었다⁠. 돌담집 사진은 아직 거기 있었다⁠. 사진 속 마당에는 툇마루에 귤 바구니가 하나 놓여 있었다⁠. 지금 내 옆에 놓인 바구니와 같은 자리였다⁠. 사진 밑의 「⁠한 달⁠」이라는 글자를 엄지로 오래 눌렀다⁠. 선묵이 고른 집을⁠, 선묵이 남긴 돈으로⁠, 선묵이 말한 한 달보다 열한 달 더 빌리는 참이었다⁠. 욕심쟁이네⁠, 선묵이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귤을 두 개씩 까 먹던 사람이니까⁠.

양 본부장이 돌아왔다⁠. 휴대전화를 쥔 손이 땀에 젖어 있었다⁠.

“⁠회사가 받겠답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임차인은 선생님 개인입니다⁠. 일 년 동안 선생님이 여기 계셔야 합니다⁠. 중간에 서울 가시면 계약이 깨집니다⁠.⁠”

“⁠일 년 계시겠습니까⁠?⁠”

양 본부장이 물었다⁠. 첫날 마당에서 명함을 내밀던 목소리와 같은 목소리였다⁠. 다리미로 민 셔츠처럼 매끈한 목소리⁠. 이번에는 끝이 조금 떨렸다⁠.

“⁠네⁠.⁠”

양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빨간 깃발을 접어 셔츠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올레 아래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다⁠. 굴착기 기사가 국그릇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굴착기가 바가지를 접은 채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궤도가 해안 도로의 흙을 씹으며 갈림길을 빠져나갔다⁠. 할망들이 의자에서 일어나 손뼉을 쳤다⁠. 현 삼촌이 경운기 시동을 걸었다⁠. 한 번에 부르릉 살아났다⁠. 대구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길게 불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춘옥 삼촌은 솥 앞에서 국자를 들고⁠, 멀어지는 굴착기 꽁무니에 대고 소리쳤다⁠.

“⁠다음엔 국 먹으러만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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