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04자)

아들

제주 한 달 살기 · 석담율

재온은 춘옥 삼촌 집 마루에서 잤다⁠. 방이 하나 더 있었지만 춘옥 삼촌이 마루가 시원하다고 우겼다⁠. 새벽 세 시쯤 춘옥 삼촌의 숨비소리가 시작되자 마루에서 벌떡 일어나는 소리가 났다⁠. 재온이 내 방 문을 열고 속삭였다⁠.

“⁠엄마⁠, 밖에 누가 휘파람 불어⁠.⁠”

“⁠삼촌 숨소리야⁠. 해녀 숨⁠.⁠”

“⁠해녀는 자면서도 물질해⁠?⁠”

“⁠꿈에서는 열 길도 들어가신대⁠.⁠”

재온은 한참 문간에 서 있다가 마루로 돌아갔다⁠. 아침에 보니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귀에 휴지를 말아 넣고 자고 있었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할망들이 재온을 데려갔다⁠. 고추 할망이 재온 팔뚝을 주물러 보더니 쓸 만하다고 했다⁠. 대구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불며 재온을 운반 조에 넣었다⁠. 재온은 서울 회사에서 엑셀 표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귤 상자 열 개를 올레 위에서 아래까지 나르자 숨이 턱에 닿았다⁠. 스무 개째에 재온은 길가 돌담에 주저앉았다⁠. 춘옥 삼촌이 지나가다 귤 하나를 재온 입에 물려 주었다⁠.

“⁠서울 아들⁠, 힘 내라⁠. 상자 오십 개 나르면 몸국 준다⁠.⁠”

“⁠어제 세 그릇 먹었는데요⁠.⁠”

“⁠어제 건 어제 거지⁠.⁠”

편집자 손님이 재온을 찍었다⁠. 라이브 화면에 「⁠귤 아들 등장⁠」이라는 글자가 떴다⁠. 늘솔초 제자들이 댓글을 달았다⁠. 「⁠선생님 아드님이세요⁠?⁠」 「⁠저희 때 교실에 놀러 오던 그 꼬마⁠?⁠」 「⁠형 화이팅⁠」 재온은 휴대전화 화면을 보고 귀까지 빨개졌다⁠. 재온이 초등학생 때 내 교실에 와서 칠판에 낙서를 하던 날을 제자 하나가 기억하고 있었다⁠.

재온은 흉터 귤을 하나 까서 먹었다⁠. 오래 씹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온은 해 질 때까지 상자를 쉰두 개 날랐다⁠.

*

오후에 나는 할망 셋을 데리고 대정읍사무소에 갔다⁠. 농어촌민박 신고서를 내는 날이었다⁠. 할망들은 도장을 손수건에 싸서 가슴에 품고 왔다⁠. 담당 직원이 서류를 넘기다 춘옥 삼촌 칸에서 멈췄다⁠. 직업란에 「⁠해녀(⁠은퇴 안 함⁠)⁠」라고 적혀 있었다⁠. 춘옥 삼촌이 직접 부른 대로 내가 받아 적은 것이었다⁠. 직원이 웃음을 참으며 도장을 찍어 주었다⁠.

재온은 읍사무소 대기 의자에 앉아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내가 서류를 넘기고⁠, 할망들 대신 질문에 답하고⁠, 직원에게 소방 점검 날짜를 묻고⁠, 할망들한테 위생 교육 날을 세 번씩 되풀이해 일러 주는 것을 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재온이 내 옆에 붙어 걸었다⁠.

“⁠엄마⁠, 학교에서도 이랬어⁠?⁠”

“⁠이랬지⁠.⁠”

“⁠나 엄마 일하는 거 처음 봐⁠.⁠”

나는 걸음을 멈췄다⁠. 서른 해 동안 출근했는데⁠, 아들은 내가 일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재온이 학교에 다닐 때 나는 남의 아이들 교실에 있었다⁠.

*

저녁에 양 본부장이 춘옥 삼촌 집 마당에 왔다⁠. 이번에는 서류 가방 대신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마루에 앉은 나와 재온 앞에 종이를 펼쳤다⁠.

「⁠섬바람리조트 모살개점 마을 체험 실장 채용 제안⁠」

“⁠선생님⁠, 정식으로 드립니다⁠. 월급⁠, 숙소⁠, 일 년 계약⁠. 귤 따기⁠, 할망 밥상⁠, 해녀 이야기⁠. 선생님이 지금 하시는 일을 리조트 안에서 계속하시는 겁니다⁠. 서울 안 가셔도 됩니다⁠.⁠”

양 본부장은 종이 끝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바람에 날리지 않게⁠.

“⁠조건은 하나입니다⁠. 총회에서 반대하지만 말아 주십시오⁠. 찬성하라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이 마이크 잡고 계획도 틀고 하시면 할망들이 흔들립니다⁠.⁠”

재온이 종이를 끌어당겨 읽었다⁠. 월급 칸에서 눈이 멈췄다⁠. 재온은 엑셀 표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숫자를 보는 눈이 빨랐다⁠.

“⁠엄마⁠, 이거 괜찮은데⁠?⁠”

나는 재온을 보았다⁠. 재온은 서울로 데려가려고 온 아들이었다⁠.

“⁠엄마 여기 있고 싶으면 이거 받아⁠. 그럼 일도 하고 집도 있잖아⁠. 나 그럼 반대 안 해⁠.⁠”

양 본부장이 재온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편을 하나 얻은 얼굴이었다⁠. 나는 종이를 접어 양 본부장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마루에 그냥 두었다⁠.

“⁠생각해 볼게요⁠.⁠”

“⁠16일 전에 말씀 주십시오⁠.⁠”

양 본부장이 나간 뒤 종이는 마루 위에서 바람에 귀퉁이를 떨었다⁠. 나는 종이 위에 귤 하나를 올려놓았다⁠. 귤은 윗밭 맨 위 나무에서 딴 것이었다⁠. 종이가 더는 떨지 않았다⁠.

*

이튿날 아침 재온이 혼자 윗밭에 올라갔다⁠. 나는 한참 뒤에 따라 올라가다 돌담 뒤에서 걸음을 멈췄다⁠. 대봉 씨와 재온이 귤나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대봉 씨는 수건을 쓰고 가위를 들고 있었고⁠, 재온은 빈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둘 다 무슨 말을 먼저 할지 몰라 귤만 보고 있었다⁠.

대봉 씨가 먼저 가위를 내밀었다⁠.

“⁠두 번 자릅서⁠.⁠”

대봉 씨는 첫날 나한테 보여 준 그대로 귤 하나를 손바닥에 받쳐 들고 꼭지를 두 번 잘라 보였다⁠. 재온은 가위를 받아 들고 한 번만 잘랐다⁠. 대봉 씨가 재온 바구니에서 귤을 꺼내 꼭지를 다시 잘랐다⁠. 재온은 열 개를 한 번씩만 잘랐고⁠, 대봉 씨는 열 개를 다시 잘랐다⁠. 첫날의 나와 지금의 재온이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돌담 뒤에서 입을 막았다⁠. 대봉 씨는 내 아들에게도 칭찬 도장 같은 끄덕임을 아끼고 있었다⁠.

열한 번째에 재온이 가위를 멈췄다⁠.

“⁠아저씨⁠, 우리 엄마 좋아하세요⁠?⁠”

대봉 씨가 꼭지를 자르다가 가지를 통째로 잘랐다⁠. 귤 다섯 개가 달린 가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대봉 씨는 가지를 내려다보고⁠, 수건을 벗었다가⁠, 다시 썼다⁠. 두 번 고쳐 썼다⁠.

“⁠귤 따는 데 그런 거 묻는 거 아니우다⁠.⁠”

“⁠엄마가 아저씨 손만 나오는 라이브를 다섯 번 돌려 봤어요⁠. 제가 엄마 휴대전화 시청 기록 봤어요⁠.⁠”

대봉 씨는 바닥에 떨어진 가지를 주워 귤 다섯 개를 하나씩 떼어 재온 바구니에 넣었다⁠. 꼭지를 두 번씩 잘랐다⁠. 다 넣고 나서야 대답했다⁠.

“⁠나 서울 가우다⁠. 18일에⁠.⁠”

“⁠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

“⁠그게 대답이우다⁠.⁠”

재온은 가위를 대봉 씨에게 돌려주었다⁠. 그러고는 열한 번째 귤을 꼭지 두 번 잘라서 바구니에 넣었다⁠. 나는 돌담 뒤에서 발소리를 죽여 내려왔다⁠. 내려오는 내내 귀가 뜨거웠다⁠. 시청 기록까지는 몰랐다⁠.

*

같은 날 점심때 미랑 씨가 반찬 통을 들고 왔다⁠. 대봉 씨가 짐 정리하다가 냉장고에서 꺼낸 자리젓이라고 했다⁠. 춘옥 삼촌이 몸국을 데웠다⁠. 춘옥 삼촌은 국 두 그릇을 마루에 놓고 재온을 데리고 귤밭으로 올라갔다⁠. 일부러 자리를 비우는 걸음이었다⁠. 미랑 씨와 나는 몸국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미랑 씨가 숟가락으로 국을 저었다⁠. 메밀이 풀려 국물이 걸쭉했다⁠.

“⁠엄마가 서울 간 날⁠, 저 스물넷이었어요⁠. 대학 졸업반이요⁠. 엄마가 제 원룸에 짐 풀면서 그러더라고요⁠. 너희 아빠는 귤밭에서 혼자 죽을 사람이라고⁠.⁠”

미랑 씨는 국을 한 숟가락 떠서 먹었다⁠. 삼키는 데 한참이었다⁠.

“⁠작년 겨울에 아빠가 사다리에서 떨어졌을 때⁠, 저 그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났어요⁠. 귤밭에서 혼자⁠. 그래서 무조건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집이 팔려야 아빠가 올라오니까⁠.⁠”

“⁠이제 올라오시잖아요⁠.⁠”

“⁠네⁠. 근데 아빠가 서울 와서 손주 기저귀 갈 때⁠, 그게 아빠예요⁠? 저는 모르겠어요⁠.⁠”

나는 몸국을 한 숟가락 먹었다⁠. 돼지기름과 모자반과 메밀이 혀 위에서 한꺼번에 왔다⁠. 한 가지 맛으로 정리되지 않는 국이었다⁠.

“⁠미랑 씨⁠, 나는 남편 장례식에서 안 울었어요⁠.⁠”

미랑 씨가 숟가락을 멈췄다⁠.

“⁠사흘 동안 손님 신발만 정리했어요⁠. 울면 끝날까 봐요⁠. 남편이 정말 간 게 될까 봐⁠. 두 해 동안 안 울었어요⁠. 남편이 골라 둔 집에 혼자 와서도 안 울었어요⁠. 미랑 씨 아버님이 굴착기 앞을 막고 섰을 때도⁠.⁠”

“⁠그럼 언제 우세요⁠?⁠”

“⁠모르겠어요⁠.⁠”

미랑 씨가 자리젓 통을 열어 내 밥 위에 젓갈 한 점을 올려 주었다⁠. 짰다⁠. 짜서 눈물이 날 뻔했는데 나지 않았다⁠. 미랑 씨는 국을 다 먹고 일어나며 말했다⁠.

“⁠선생님⁠, 저 이제 선생님 막지 않을게요⁠. 아빠는 서울 가요⁠. 그건 정한 거예요⁠. 근데 총회는 선생님 마음대로 하세요⁠. 마을 일이잖아요⁠.⁠”

*

밤 열 시⁠, 재온이 마루에서 나를 불렀다⁠. 같이 걷자고 했다⁠. 우리는 불턱까지 내려갔다⁠. 물이 빠진 시간이라 불턱 담 안이 말라 있었다⁠. 재온은 그을린 돌 하나에 앉았다⁠. 나는 맞은편 돌에 앉았다⁠. 바다에서 찬바람이 담 틈으로 들어왔다⁠. 틈이 있어서 바람이 담을 넘어뜨리지 못하고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엄마⁠, 아빠 장례식 때 왜 안 울었어⁠?⁠”

재온의 목소리는 단톡방 글자처럼 길지 않았다⁠. 짧고 낮았다⁠.

“⁠나 혼자 화장실에서 울었어⁠. 사흘 동안 화장실을 열 번 갔어⁠. 엄마는 신발만 정리하더라⁠. 사람들이 엄마 대단하다고 했어⁠. 나는 엄마가 무서웠어⁠. 아빠가 간 게 엄마한테는 아무것도 아닌가 해서⁠.⁠”

나는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말 대신 숨이 나왔다⁠. 숨이 길게 나오다가 끝에 휘파람처럼 새었다⁠. 춘옥 삼촌이 잘 때 내는 소리와 똑같았다⁠. 물속에서 오래 참았던 숨이었다⁠.

그다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두 해 동안 참았던 것이 숨비소리 끝에 매달려 한꺼번에 올라왔다⁠. 나는 불턱 그을린 돌 위에서 소리를 내어 울었다⁠. 예순 살 여자가 바닷가 돌담 안에서 우는 소리가 담 틈으로 빠져나가 바다로 갔다⁠. 재온이 맞은편 돌에서 일어나 내 옆에 앉았다⁠. 서툴게 내 어깨를 안았다⁠. 아들의 팔이 무거웠다⁠. 선묵의 팔 무게와 비슷했다⁠.

“⁠엄마⁠, 괜찮아⁠.⁠”

“⁠선묵이가 귤을 두 개씩 까 먹었어⁠. 껍질이 끊기면 하나를 더 깠어⁠. 욕심쟁이였어⁠.⁠”

“⁠알아⁠. 나도 봤어⁠.⁠”

“⁠엄마는 껍질이 끊길까 봐 귤을 안 깠어⁠. 두 해 동안⁠.⁠”

재온은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안고 있었다⁠. 바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도가 불턱 담 밑을 찰랑찰랑 두드렸다⁠. 한참 뒤에 내가 먼저 몸을 떼었다⁠.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재온이 내 안경을 벗겨 제 티셔츠 자락으로 닦아 다시 씌워 주었다⁠.

“⁠엄마⁠, 여기서 살고 싶어⁠?⁠”

“⁠응⁠.⁠”

“⁠그 아저씨 때문에⁠?⁠”

“⁠그 아저씨는 서울 간대⁠.⁠”

재온이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럼 왜⁠?⁠”

“⁠일하고 싶어서⁠. 아침 여덟 시 사십 분에 갈 데가 있어서⁠.⁠”

재온은 한참 바다를 보았다⁠. 그러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럼 체험 실장 받아⁠. 그게 제일 안전하잖아⁠.⁠”

“⁠안 받아⁠. 엄마는 총회에서 반대할 거야⁠. 할망 집이 할망 집으로 남는 데 서고 싶어⁠. 리조트 안에서 할망 밥상 차리는 사람 말고⁠.⁠”

“⁠그럼 엄마 여기서 뭐 해⁠? 일자리도 없고 집도 없잖아⁠.⁠”

“⁠모르겠어⁠. 찾아볼 거야⁠. 엄마가 고른 일로⁠.⁠”

나는 재온 손에서 휴대전화를 받았다⁠. 항공사 화면을 열었다⁠. 돋보기 없이도 큰 글씨가 보였다⁠. 「⁠11월 17일 제주 → 김포 · 문은영⁠」 취소 단추를 눌렀다⁠. 화면에 글자가 떴다⁠.

「⁠예약이 취소되었습니다⁠.⁠」

보름 전 돌담집 마당에서 받은 글자와 똑같았다⁠. 이번에는 내가 누른 글자였다⁠. 재온이 화면을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울다 웃는 얼굴이 나를 닮아 있었다⁠.

“⁠엄마⁠, 내 거는 취소하지 마⁠. 나 회사 가야 돼⁠.⁠”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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