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61자)

제 발로

고립 청년 돌봄 매니저 · 도결애

아버지가 약통을 흔드는 소리는 작년 가을부터 들렸다⁠. 플라스틱 통 안에서 알약 몇 알이 굴러다니는 소리⁠. 아침에 한 번⁠, 밤에 한 번⁠. 처음에는 영양제인 줄 알았다⁠. 아버지는 영양제를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1월 27일 목요일 저녁⁠, 바닥으로 아버지의 통화가 올라왔다⁠. 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여서⁠, 이번에는 배관이 한 마디도 깎아 먹지 않았다⁠.

“⁠이월 칠일 아침 아홉 시⁠, 맞소⁠? …예⁠, 삼월 팔일에서 당겨진 건 알고 있소⁠. 자리가 났다고 한 지 열흘 됐소⁠. …아니⁠, 늦추면 안 된다는 건 아는데⁠. …알겠소⁠. 육일 저녁에 들어가겠소⁠.⁠”

전화가 끊기고 거실이 조용해졌다⁠. 아버지가 약통을 흔들었다⁠. 아침도 밤도 아닌 시간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삼월 팔일⁠. 석 달의 끝은 삼월 육일이었다⁠. 아버지는 삼월 육일에 나를 병원에 넣고⁠, 이틀 뒤에 자기도 병원에 누울 생각이었다⁠. 수술대에 눕기 전에 나를 누군가에게 맡겨 두려고⁠. 석 달이면 석 달이라고 할 때마다 아버지 목소리 끝이 떨렸다⁠. 거짓말이어서 떨린 것이 아니었다⁠.

상담 앱을 열었다가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앱에게 물어볼 말이 아니었다⁠. 서지헌에게도 적지 못했다⁠. 게임 메신저 창에 「⁠아버지가⁠」까지 썼다가 지웠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이 이것이었다⁠. 새해 첫날 계단 앞에서 서류를 밀어 놓던 엄마가 왜 이번에는 서명했는지⁠, 나는 그제야 알았다⁠. 아버지는 엄마에게만 말했고⁠, 나에게는 차가 온다는 문자만 보냈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책상 위의 고친 자물쇠들⁠, 씻어서 포갠 용기 탑⁠, 각을 맞춰 갠 이불⁠. 휴대전화 속의 녹음⁠. 두 해 동안 나는 방 하나로 아버지의 거짓말을 지켰다⁠. 지킬 것이 하나 늘었다⁠. 아버지의 심장⁠, 그리고 계단 아래까지 오지 말라고 해도 올 사람⁠. 방 하나로는 다 막을 수 없었다⁠.

2월 1일 저녁⁠, 나는 계단 일곱 번째 칸까지 내려갔다⁠. 부엌에서 아버지가 국을 끓이고 있었다⁠. 일곱 번째 칸에서는 부엌이 반만 보였다⁠. 아버지의 등⁠, 가스레인지 불⁠, 프라이팬 위에서 노른자가 지글거리는 소리⁠. 아버지는 국자를 내려놓고 왼손으로 가슴 한가운데를 눌렀다⁠. 오래 누르지는 않았다⁠. 숨을 한 번 참았다가 한꺼번에 내쉬고 다시 국자를 들었다⁠. 두 해 동안 바닥으로 듣던 숨이 이런 모양이었다⁠.

일곱 번째 칸이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보았다⁠. 우리는 부엌과 계단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보았다⁠. 아버지의 눈이 내 얼굴과 손과 발을 차례로 훑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수술이라는 말이 혀끝까지 왔다⁠.

“⁠국 짜요⁠.⁠”

아버지가 국자를 든 채 멍하니 있다가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았다⁠. 미간을 찌푸렸다⁠. “⁠짜구먼⁠.⁠” 아버지가 냄비에 물을 부었다⁠. 물이 끓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일곱 번째 칸에서 다시 올라갔다⁠. 밤 아홉 시에 올라온 쟁반의 국은 싱거웠다⁠. 나는 다 먹었다⁠.

*

2월 2일 수요일 밤 열한 시⁠, 팀장의 전화는 다섯 번째에 받았다⁠.

“⁠서 매니저님⁠. 내일 새벽 응암동 이송 있는 거 아시죠⁠. 새 매니저님이 동행해요⁠.⁠” 팀장의 목소리에 웃음이 없었다⁠. “⁠매니저님 거기 나타나시면 회사 계약 위반이에요⁠. 담당 아닌 의뢰인 집에 무단으로 가시는 거고⁠, 이송 업체는 우리 제휴사예요⁠. 징계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매니저님 위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알고 가시면 저도 못 지켜 드려요⁠.⁠”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매니저님⁠. 그 친구 병원 가면 끝나는 게 아니에요⁠. 치료받고 나와요⁠. 작년 그 친구도 나왔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예요⁠.⁠”

“⁠작년 그 사람⁠, 지금 편의점에서 손님 얼굴을 안 본대요⁠. 바코드만 본대요⁠.⁠”

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전화가 끊기기 전에 메신저 알림 소리 같은 숨소리가 두 번 났다⁠.

전화를 끊고 원룸 바닥에 오래 앉아 있었다⁠. 휴대전화에서 은행 앱을 열었다⁠. 지난해 받은 성과급이 입금된 날짜 그대로 찍혀 있었다⁠. 한 번도 쓰지 않은 돈이었다⁠. 쓰지 않는 것으로 갚을 수 있는 줄 알았다⁠. 앱을 닫았다⁠. 현관 못에 걸린 파란 사원증 줄을 목에 걸었다가 벗었다가 다시 걸었다⁠. 내일부터 이 줄이 없을 수도 있었다⁠. 없어지기 전에 한 번은 이 줄을 건 채로 계단에 앉고 싶었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혼자 켜졌다⁠. 「⁠새벽 두 시예요⁠! 충분한 수면은 건강한 하루의 시작이에요⁠.⁠」 나는 스피커 전원을 뽑고 나왔다⁠.

새벽 두 시 오십 분⁠, 응암동 골목에는 서리가 내려 있었다⁠. 대문 앞에서 게임 메신저를 보냈다⁠. 「⁠왔어요⁠.⁠」 삼 분 뒤 빗장이 소리 없이 밀리고 대문이 열렸다⁠. 건은 회색 후드티 위에 내 코트를 입고 서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건이 먼저 계단을 올라가 방으로 들어갔고⁠, 문을 닫았다⁠. 잠그지는 않았다⁠. 손잡이 단추가 눌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는 계단 일곱 번째 칸에 앉았다⁠. 앉자마자 나무가 길게 울었다⁠. 아래층 안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멎었다⁠.

*

새벽 다섯 시⁠, 골목에 승합차가 멈추었다⁠. 문이 미끄러지는 소리⁠, 형광 조끼를 입은 남자 셋이 내리는 소리⁠. 새 매니저가 택시에서 내려 뛰어오는 소리⁠. 모진국은 이미 현관에 나와 있었다⁠. 갈색 카디건 단추를 맨 위까지 채웠고⁠, 손에 접힌 서류를 쥐고 있었다⁠. 모진국이 계단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세 시부터 두 시간 동안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보지 않으며 한 집에 있었다⁠.

“⁠비키시오⁠.⁠”

“⁠못 비킵니다⁠.⁠”

이송 업체 직원 하나가 계단 아래로 와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쉰쯤 된 남자였고⁠, 목소리가 차분했다⁠. 이런 새벽을 여러 번 겪은 목소리였다⁠.

“⁠선생님⁠, 보호자 동의 서류 있는 이송이에요⁠. 의사 소견서 둘 다 있고요⁠. 저희 다치게 안 모셔요⁠. 비켜 주시면 십 분이면 끝납니다⁠.⁠”

“⁠건 씨가 안 원합니다⁠.⁠”

“⁠다들 처음엔 안 원하세요⁠.⁠”

새 매니저가 직원 어깨 너머로 나를 보았다⁠. 목소리가 떨렸다⁠.

“⁠서 매니저님⁠, 이러시면 우리 다 곤란해져요⁠. 저 이번 분기 처음 맡은 이송이에요⁠.⁠”

새 매니저의 말도 맞았다⁠. 이 계단 위에서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새 매니저가 직원 뒤에서 휴대전화를 들었다⁠. 회기 기록이었다⁠. 화면 빛이 계단 아래를 파랗게 비췄다⁠. 모진국이 서류를 직원에게 넘기고 카디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세 번 눌렀다⁠. 일⁠, 일⁠, 이⁠.

“⁠응암동이오⁠. 집주인이오⁠. 나가라는데 안 나가는 사람이 있소⁠.⁠”

이십 분 뒤 경찰 둘이 왔다⁠. 젊은 경찰이 계단 아래에서 서류를 확인했고⁠, 나이 든 경찰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집주인분이 나가 달라고 하시는데 안 나가시면 퇴거불응입니다⁠. 지금 나오시면 그냥 가시고⁠, 끝까지 안 나오시면 모시고 가야 해요⁠.⁠”

옆집 대문이 열렸다⁠. 옆집 할머니가 내복 위에 솜바지를 껴입고 빗자루를 든 채 골목에 나와 있었다⁠. “⁠새벽 댓바람부터 남의 집 앞에서 뭣들 하는 거유⁠? 열쇠집 양반⁠, 아들을 무슨 짐짝처럼 실어 가유⁠?⁠” 젊은 경찰이 할머니에게 들어가시라고 하자 할머니가 빗자루로 경찰차 바퀴를 툭 쳤다⁠. “⁠내가 이 골목 사십 년이여⁠.⁠”

나는 일곱 번째 칸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나이 든 경찰이 계단을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칸⁠, 두 칸⁠. 계단이 경찰의 무게로 삐걱였다⁠. 다섯 번째 칸에서 경찰이 내 팔을 잡았다⁠. 손이 컸고 힘이 셌다⁠.

“⁠선생님⁠, 일어나세요⁠.⁠”

나는 난간을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위에서 손잡이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딸깍⁠.

*

문 안에서 듣는 동안 나는 소리를 하나씩 셌다⁠. 승합차 문⁠, 형광 조끼의 찍찍이 떼는 소리⁠, 서류 넘기는 소리⁠, 112를 누르는 세 번의 버튼 소리⁠, 경찰차의 문⁠, 할머니의 빗자루⁠. 아버지의 약통 소리도 들었다⁠. 현관에서 아버지가 카디건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마다 알약이 굴렀다⁠. 서지헌이 난간을 쥐는 소리도 들었다⁠. 나무 난간은 사람 손이 세게 쥐면 작게 운다⁠.

방 안을 마지막으로 둘러보았다⁠. 휴대전화를 후드티 주머니에 넣었다⁠. 녹음이 든 전화기였다⁠. 책상 위에서 놋쇠 자물쇠 하나를 집어 반대편 주머니에 넣었다⁠. 아버지가 두 해 전 첫 번째로 쟁반 옆에 놓고 간 자물쇠였다⁠. 걸쇠가 녹슬어 안 열리던 것을 나는 사흘 밤 걸려 고쳤다⁠. 문틀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페인트가 일어난 자리가 손끝을 긁었다⁠. 문을 열었다⁠.

복도에 서자 계단 아래가 한눈에 보였다⁠. 다섯 번째 칸의 경찰⁠, 일곱 번째 칸에 앉아 난간을 쥔 서지헌⁠, 계단 아래의 형광 조끼 셋과 새 매니저⁠, 그리고 현관의 아버지⁠. 두 해 동안 소리로만 알던 사람들이 한 계단에 다 모여 있었다⁠. 모두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첫 번째⁠, 두 번째⁠. 서지헌의 등이 가까워졌다⁠. 회색 코트를 입은 등이 아니라 남색 니트를 입은 등이었다⁠. 코트는 지금 내가 입고 있었다⁠. 나는 서지헌의 옆을 지나 일곱 번째 칸을 밟았다⁠. 나무가 울었다⁠. 이번에는 내가 내려가는 소리였다⁠.

“⁠제 발로 갈게요⁠.⁠”

경찰이 서지헌의 팔을 놓았다⁠. 이송 업체 직원이 한 걸음 물러났다⁠. 계단 아래에서 아버지의 숨이 멎었다⁠.

“⁠아버지⁠. 신고 취소해 주세요⁠. 이 사람 그냥 보내 주세요⁠.⁠”

나이 든 경찰이 현관을 내려다보았다⁠. “⁠아버님⁠, 신고 취소하시겠어요⁠?⁠”

아버지는 한참 대답하지 못했다⁠. 고개가 아주 천천히 한 번 내려갔다⁠. “⁠취소하오⁠.⁠” 목소리가 바닥으로 깔렸다⁠.

나는 아버지를 보았다⁠. 갈색 카디건 주머니가 조금 불룩했다⁠. 약통 모양이었다⁠. 수술이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아버지가 엄마에게만 말한 것을⁠, 계단 위의 모든 사람 앞에서 꺼낼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나를 지키려고 거짓말로 쌓은 석 달을⁠, 나도 한 번은 지켜 주고 싶었다⁠.

서지헌이 일어서서 내 팔을 잡았다⁠. 손이 떨렸다⁠. 손바닥은 여전히 따뜻했다⁠.

“⁠건 씨⁠. 이건 제 발이 아니에요⁠. 제가 막으면⁠…⁠…⁠.⁠”

“⁠막지 마요⁠.⁠” 나는 서지헌의 손을 내 팔에서 떼었다⁠. 손가락 하나씩 떼었다⁠. 엄지 옆의 거스러미가 마지막으로 내 손목을 긁었다⁠. “⁠지헌 씨가 여기 있으면 경찰서 가요⁠. 회사에서도 잘려요⁠. 나 때문에 누가 경찰서 복도에 앉는 거⁠, 두 번은 안 해요⁠.⁠”

서지헌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나는 코트를 벗어서 서지헌에게 내밀었다⁠. 서지헌이 받지 않자 난간 위에 걸쳐 두었다⁠. 그리고 계단 아래의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아주 공손하게 말했다⁠.

“⁠가세요⁠, 매니저님⁠. 이제 우리 집 사람 아니에요⁠.⁠”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었다⁠. 끈은 단단히 묶었다⁠. 아버지가 신문지를 넣어 모양을 지켜 둔 운동화였다⁠. 아버지 앞을 지날 때 아버지가 손을 뻗었다가 내 어깨에 닿기 전에 거두었다⁠. 대문 밖에 승합차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승합차에 올라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차 안은 히터 바람이 세게 돌아 먼지 냄새가 났고⁠, 형광 조끼 직원 하나가 내 옆에 앉으며 안전띠를 대신 채워 주었다⁠. 찰칵 소리가 났다⁠. 창밖으로 계단 창이 보였다⁠. 이 층 복도 끝에서 내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두 해 동안 한 번도 그렇게 열린 적이 없는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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