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33자)

골목

고립 청년 돌봄 매니저 · 도결애

새 매니저는 노크를 했다⁠. 1월 20일 목요일 오후 두 시⁠, 일곱 번째 칸이 울고 나서 곧바로였다⁠. 똑똑똑⁠. 서지헌은 여섯 주 동안 한 번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문 앞에 앉는 소리도 달랐다⁠. 새 매니저는 경첩 앞이 아니라 손잡이 앞에 앉았다⁠. 바깥으로 열리는 문 앞을 막고 앉은 사람은 서지헌이 오기 전의 아버지뿐이었다⁠.

“⁠안녕하세요⁠, 모건 님⁠. 저는 당신 편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는 문 안에서 소리 없이 웃었다⁠. 서지헌이 첫날 버렸다던 권장 멘트였다⁠. 새 매니저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회사 앱이 알려 준 순서를 하나도 빼먹지 않았다⁠. 날씨⁠, 취미⁠, 좋아하는 음식⁠, 요즘 마음⁠. 질문과 질문 사이가 일 초도 비지 않았다⁠. 서지헌이 말 사이에 두던 긴 숨이 새 매니저에게는 없었다⁠.

문 아래로 쪽지를 밀었다⁠.

「⁠앱이랑 말투가 똑같네요⁠.⁠」

새 매니저는 쪽지를 읽고 한참 조용하다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칭찬으로 받을게요⁠. 그 앱 상담 문장을 우리 회사 교육팀이 참고했거든요⁠.⁠”

새 매니저는 네 시 정각에 일어나 회기 인증 사진을 찍었다⁠. 찰칵 소리가 닫힌 문 앞에서 두 번 났다⁠. 나는 문을 잠갔다⁠. 손잡이 안쪽 단추를 누르는 딸깍 소리가 두 해 전처럼 단단하게 났다⁠. 서지헌이 여섯 주 동안 연 것을 나는 일 초 만에 닫았다⁠. 닫고 나서 문에 등을 대고 앉았다⁠. 등 뒤 나무가 차가웠다⁠. 바깥에서 기대는 사람이 없으니 나무는 데워지지 않았다⁠.

새 매니저가 돌아간 뒤 바닥으로 아버지의 통화가 올라왔다⁠. 아버지는 엄마와 통화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낮았고 길었다⁠. 엄마와 그렇게 길게 말하는 아버지를 나는 열여섯 살 이후로 처음 들었다⁠. 무슨 말인지는 배관이 다 깎아 먹었다⁠. 마지막 한마디만 또렷하게 올라왔다⁠.

“⁠고맙소⁠.⁠”

밤에 게임 메신저로 서지헌에게 적었다⁠. 「⁠엄마가 서명했나 봐요⁠. 아버지가 엄마한테 고맙다고 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

1월 22일 토요일 오전 열한 시⁠, 파주의 산업 단지 끝에 있는 공장 식당은 점심 준비로 김이 가득했다⁠. 식당 뒷문 밖에서 나는 한 시간을 기다렸다⁠. 바닥에 고무장갑 한 켤레가 얼어붙어 있었다⁠. 건의 어머니가 앞치마 차림으로 음식물 쓰레기통을 끌고 나오다가 나를 보고 멈췄다⁠.

“⁠애 아빠가 그러던데⁠, 당신 이제 그 집 담당 아니라며⁠.⁠”

“⁠네⁠. 담당은 아닙니다⁠.⁠”

“⁠그럼 무슨 자격으로 여기까지 와요⁠.⁠” 어머니는 쓰레기통 뚜껑을 탕 소리 나게 열었다⁠. 김칫국물 냄새가 찬 공기에 퍼졌다⁠. “⁠서명했어요⁠. 그거 물으러 왔죠⁠.⁠”

“⁠왜 하셨습니까⁠? 새해 첫날 계단에서 건 씨가 서명하지 말라고 했을 때⁠, 어머님은 안 하셨잖아요⁠.⁠”

“⁠그때는 몰랐으니까⁠.⁠”

“⁠무엇을요⁠?⁠”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쓰레기통 안에 잔반 통을 비웠다⁠. 국자로 통 바닥을 두 번 긁었다⁠. 미안할수록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이 지금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애 아빠가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나도 이번에는 그 사람 말 들어요⁠. 열 해 동안 한 번도 안 들었으니까 한 번은 들어요⁠.⁠”

“⁠건 씨는 마당에 나왔습니다⁠. 눈 오는 날 혼자 걸어서요⁠. 지금 병원에 넣으면⁠…⁠…⁠.⁠”

“⁠마당에 나온 거 알아요⁠. 애 아빠가 울면서 전화했어⁠. 두 해 전에 이어 두 번째로⁠.⁠” 어머니가 고무장갑 낀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고춧가루가 눈 밑에 묻었다⁠. “⁠그러니까 서명한 거예요⁠. 나올 수 있을 때 데려가야 한대⁠. 그 사람이 혼자 못 지키는 날이 온대⁠.⁠”

“⁠혼자 못 지키는 날이요⁠?⁠”

어머니는 쓰레기통 뚜껑을 닫았다⁠. 식당 안에서 누가 어머니를 불렀다⁠. 배식 십 분 전이었다⁠. 어머니는 뒷문으로 들어가다가 돌아보았다⁠.

“⁠지단은 부쳐 봤어요⁠?⁠”

“⁠아직이요⁠.⁠”

“⁠배워 둬요⁠. 언젠가 그 애한테 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뒷문이 닫혔다⁠. 식당 안에서 식판 수백 개가 한꺼번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돌아가는 버스 창밖으로 공장 굴뚝의 흰 연기가 논바닥에 낮게 깔렸다⁠. 나는 혼자 못 지키는 날이라는 말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었다가 지웠다⁠. 식당 뒷문 바닥에 얼어붙어 있던 고무장갑이 자꾸 떠올랐다⁠. 누가 벗어 놓고 들어간 손 모양 그대로 얼어 있었다⁠.

*

1월 24일 월요일 오후⁠, 다른 병원 의사가 왔다⁠. 새 매니저가 앞장서 올라왔고⁠, 의사가 뒤따랐다⁠. 일곱 번째 칸이 두 번 울었다⁠. 의사는 서지헌이 데려온 첫 번째 의사와 달리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체중계를 묻지 않고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얼굴을 봐야 소견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문을 한 뼘 열었다⁠. 한 뼘 이상은 열지 않았다⁠. 의사는 문틈으로 내 얼굴 반쪽을 보고⁠, 방 안의 탑을 보고⁠, 커튼을 보았다⁠. 볼펜이 종이 위를 빠르게 지나갔다⁠.

“⁠사람 눈을 잘 안 보시네요⁠. 낮과 밤이 바뀌었고요⁠. 대인 접촉을 피하시고⁠.⁠”

“⁠지금 보고 있잖아요⁠.⁠”

“⁠한쪽 눈으로만요⁠.⁠”

맞는 말이었다⁠. 나는 문을 닫았다⁠. 의사의 볼펜이 한 줄을 더 적었다⁠.

거실에서 세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바닥으로 올라왔다⁠. 의사의 목소리는 첫 번째 의사보다 빨랐고⁠, 새 매니저의 목소리는 앱처럼 밝았다⁠. 아버지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의사가 말했다⁠. 첫 번째 선생님 소견이 일월 초 재방문 때 이미 바뀌었다고⁠, 체중이 회복되고 있어도 두 해 은둔의 위험은 따로 본다고⁠, 소견서는 써 드리겠다고⁠. 회사 제휴 병원이라 절차는 빠르다고 새 매니저가 덧붙였다⁠.

첫 번째 의사가 일월 초에 다시 왔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아버지는 내가 마당에 나온 날보다 먼저⁠, 서지헌이 방에 들어온 날보다 먼저 첫 번째 의사를 다시 불렀다⁠. 문이 한 뼘씩 열리던 십이월 말부터 아버지는 차를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게임 메신저를 열었다⁠.

「⁠오늘 밤 나가요⁠. 대문 밖으로⁠. 두 시⁠.⁠」

답장은 오 초 만에 왔다⁠. 「⁠갈게요⁠.⁠」

한 시 오십 분⁠, 나는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계단은 열네 칸이었다⁠. 일곱 번째 칸은 밟지 않고 넘었다⁠. 다리를 길게 뻗어 여섯 번째에서 여덟 번째로 건너뛰는 동안 난간을 쥔 손바닥에 땀이 배었다⁠. 두 해 동안 이 계단을 위에서만 셌는데⁠, 내려가면서 세니까 칸 사이가 더 높았다⁠.

아버지 방 앞을 지났다⁠. 문 너머에서 코 고는 소리가 났다⁠. 고르게 길었다가 한 번씩 끊겼다⁠. 끊길 때마다 나는 멈추었고⁠, 다시 이어지면 한 걸음씩 갔다⁠. 현관 신발장을 열었다⁠. 맨 아래 칸에 운동화가 끈이 묶인 채 있었다⁠. 아버지가 눈 오던 날 현관 계단에 내놓았다가 도로 넣어 둔 운동화였다⁠. 운동화 안에서 신문지 뭉치가 나왔다⁠. 신발 모양이 무너지지 않게 아버지가 넣어 둔 것이었다⁠. 두 해 전부터인지 지난주부터인지는 알 수 없었다⁠.

대문 빗장은 차가웠다⁠. 열여덟 살 때 아버지가 이 빗장을 달면서 나한테 쥐여 주었다⁠. 쇠는 밀 때 소리가 난다⁠, 들어 올리면서 밀면 안 난다⁠. 들어 올리면서 밀었다⁠. 빗장이 소리 없이 미끄러졌다⁠.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했더니 아버지 몰래 나갈 수 있었다⁠.

*

새벽 두 시⁠, 응암동 골목은 가로등 두 개가 전부였다⁠. 녹다 만 눈이 담 밑에 거뭇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대문에서 세 집 떨어진 전봇대 옆에 서 있었다⁠. 회사 계약상 나는 이제 이 집 앞에 올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문 빗장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문이 소리 없이 한 사람 몸만큼 열리고⁠, 건이 골목으로 나왔다⁠. 회색 후드티 위에 내가 눈 오는 날 두고 간 회색 코트를 입었고⁠, 발에는 신발장 맨 아래 칸에서 꺼낸 운동화를 신었다⁠. 끈은 단단히 묶여 있었다⁠. 건이 골목에 서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두 해 만의 골목이었다⁠.

“⁠생각보다 좁네요⁠.⁠”

“⁠두 해 동안 안 넓어졌어요⁠.⁠”

“⁠나는 위에서 소리로만 들어서⁠, 되게 넓은 줄 알았어요⁠. 오토바이 소리가 끝에서 끝까지 오래 갔거든요⁠.⁠”

우리는 불광천까지 걸었다⁠. 건은 걸음이 느렸고 자주 멈췄다⁠. 편의점 앞에서 멈추었고⁠, 세탁소 앞에서 멈추었다⁠. 셔터 내린 세탁소 안에서 다리미 냄새가 새어 나왔다⁠. 건이 셔터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산책로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는 오래 멈추었다⁠. 계단은 열한 칸이었다⁠. 일곱 번째 칸은 울지 않았다⁠.

냇물은 가장자리만 얼고 가운데로는 물이 흘렀다⁠. 물소리가 다리 밑에서 울렸다⁠. 건이 다리 밑 그늘에 들어가 기둥에 등을 댔다⁠. 나는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 멈췄다⁠. 다리 위로 택시 한 대가 지나갔다⁠. 바퀴 소리가 머리 위에서 길게 끌렸다⁠.

“⁠매니저님 이제 우리 집 사람 아니잖아요⁠.⁠”

“⁠네⁠.⁠”

“⁠그럼 매니저님이라고 안 불러도 되죠⁠.⁠”

건이 기둥에서 등을 떼고 한 걸음 왔다⁠. 우리 사이에 남은 것은 한 걸음이었다⁠. 문 한 장보다 얇았다⁠. 건의 숨이 하얗게 나와 내 턱 밑에서 흩어졌다⁠. 머리카락 사이로 두 눈이 다 보였다⁠. 건이 손을 들어 내 사원증 줄을 잡았다⁠. 파란 줄이 손가락 사이에서 팽팽해졌다⁠. 건은 줄을 당기지 않았다⁠. 잡고만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어느새 건이 되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입술은 차가웠고 숨은 따뜻했다⁠. 건의 손가락이 사원증 줄을 놓고 내 코트 깃을 쥐었다⁠. 자기가 입은 코트와 같은 깃이었다⁠. 다리 밑에서 물소리가 우리 숨소리를 덮었다가 다시 내주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건이 먼저 이마를 내 어깨에 댔다⁠.

“⁠지헌 씨⁠.⁠” 건이 내 어깨에 대고 말했다⁠. 목소리가 코트 천에 먹혀 웅웅거렸다⁠. “⁠문 없이 들으니까 소리가 너무 커요⁠.⁠”

*

새벽 네 시⁠, 골목으로 돌아왔을 때 대문 앞에 모진국이 서 있었다⁠. 갈색 카디건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고⁠, 슬리퍼 바닥이 젖어 있었다⁠. 대문 앞 눈 위에 발자국이 같은 자리를 여러 번 오간 모양으로 찍혀 있었다⁠. 모진국은 건을 먼저 보고⁠, 건이 신은 운동화를 보고⁠, 그다음에 나를 보았다⁠.

“⁠들어가라⁠.⁠”

건은 들어가지 않았다⁠. 내 옆에 서 있었다⁠.

“⁠당신⁠.⁠” 모진국이 나를 보았다⁠. “⁠계약 끝난 사람이 새벽에 남의 아들을 데리고 나가오⁠? 저 녀석이 냇가에서 무슨 일이라도 났으면 당신이 책임지오⁠?⁠”

“⁠제가 데리고 나간 게 아닙니다⁠. 건 씨가 제 발로 나왔어요⁠. 대문 빗장도 건 씨가 열었고요⁠.⁠”

“⁠빗장은 내가 단 거요⁠. 열 줄 아는 것도 내가 가르쳤고⁠.⁠” 모진국의 목소리가 떨렸다⁠. 숨을 참았다가 한꺼번에 내쉬는 소리가 났다⁠. “⁠다시 오면 경찰 부르오⁠. 무단 침입으로⁠. 회사에도 말하겠소⁠.⁠”

“⁠아버지⁠.⁠” 건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 냇가 갔다 왔어요⁠. 계단 열한 칸이었어요⁠. 우리 집 계단보다 세 칸 짧아요⁠.⁠”

모진국이 입을 다물었다⁠. 한참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 두 해 만에 문 없이⁠, 골목 가로등 밑에서 보는 얼굴이었다⁠. 모진국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이 닫혔다⁠.

건이 운동화 끈을 내려다보다가 대문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갔다⁠. 현관에 불이 꺼지자마자 건의 후드티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떨렸다⁠. 건이 화면을 보고 굳었다⁠. 화면을 돌려 내게 보여 주었다⁠. 두 해 동안 문자를 한 통도 보내지 않던 사람의 이름이 맨 위에 떠 있었다⁠.

「⁠이월 삼일 새벽에 차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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