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30자)

칠십이 시간

고립 청년 돌봄 매니저 · 도결애

병동 문에는 안쪽 손잡이가 없었다⁠. 2월 3일 아침 일곱 시⁠, 이송 업체 직원이 초인종을 누르자 문 너머에서 열쇠 꾸러미가 짤랑거렸고⁠, 간호사가 문을 열어 주었다⁠. 내가 들어서자 문이 등 뒤에서 닫혔다⁠. 철컥⁠. 바깥에서 잠그는 소리였다⁠. 두 해 동안 안에서 잠그던 문소리와는 무게가 달랐다⁠.

간호사실 앞에서 소지품을 맡겼다⁠. 휴대전화⁠, 운동화 끈⁠, 후드티의 끈⁠. 간호사가 후드티 끈을 빼는 동안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간호사의 손이 빨랐고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미안해하지 않아서 오히려 덜 창피했다⁠. 휴대전화는 투명 비닐봉지에 담겨 이름표가 붙은 사물함으로 들어갔다⁠. 녹음이 든 전화기였다⁠. 하루에 두 번⁠, 정해진 시간에만 꺼내 쓸 수 있다고 했다⁠.

“⁠주머니에 그건 뭐예요⁠?⁠”

“⁠자물쇠요⁠. 놋쇠⁠. 열쇠는 없어요⁠.⁠”

간호사는 자물쇠를 손바닥에 올려 무게를 보더니 돌려주었다⁠. “⁠잠글 데도 없으니까요⁠.⁠”

병실은 사인실이었다⁠. 창가 침대에 쉰쯤 된 남자가 앉아 혼자 화투를 치고 있었다⁠. 담요 위에 패를 깔고⁠, 한 장 뒤집을 때마다 해설을 붙였다⁠. “⁠아⁠, 비 광⁠. 이게 오면 판이 바뀌지⁠. 바뀌어 봤자지만⁠.⁠” 남자는 나를 보더니 패 한 장을 들어 보였다⁠.

“⁠새로 왔어⁠? 칠 일 차까지는 다들 그 얼굴이야⁠. 창밖만 봐⁠. 창이 안 열려도⁠.⁠”

열 시에 진료실로 불려 갔다⁠. 의사는 응암동에 왔던 두 번째 의사였다⁠. 탁자 위에 서류 두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모건 씨⁠. 보호자 입원 서류는 아버님이 다 갖춰 오셨어요⁠. 그런데 제 발로 오셨다고 들었어요⁠. 본인이 원하시면 동의 입원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본인이 원해서 입원하고⁠, 보호자가 동의하는 입원이에요⁠. 서명하시겠어요⁠?⁠”

나는 두 장을 번갈아 보았다⁠. 한 장은 아버지와 엄마의 이름이 들어간 종이였고⁠, 한 장은 내 이름이 들어갈 자리가 비어 있는 종이였다⁠. 볼펜을 들었다⁠. 두 해 동안 영수증 뒷면에만 글씨를 썼다⁠. 내 이름을 서류에 쓰는 것은 두 해 전 경찰서 진술서 이후 처음이었다⁠.

내 이름을 썼다⁠. 아버지가 나를 넣은 것이 아니라 내가 들어온 것으로 하고 싶었다⁠.

밤의 병동은 소리가 많았다⁠. 간호사의 열쇠 꾸러미가 한 시간마다 복도를 지나갔고⁠, 지나갈 때마다 병실 문의 작은 창이 한 번씩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정수기가 꾸르륵거렸고⁠, 어느 병실에서 누가 잠꼬대로 엄마를 불렀다⁠. 창가 침대의 남자는 화투 패를 베개 밑에 넣고 코를 골았다⁠. 코 고는 소리가 아버지보다 높았다⁠.

새벽 세 시에 남자가 깨서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깨어 있는 줄 소리로 알았다고 했다⁠.

“⁠여기 문은 밖에서 열어⁠. 그래서 편해⁠. 내가 안 열어도 되니까⁠.⁠” 남자가 어둠 속에서 패 한 장을 뒤집는 소리가 났다⁠. “⁠근데 오래 있으면 안 돼⁠. 밖에서 열어 주는 문에 익숙해지면⁠, 집에 가서 내 손으로 문을 못 열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 해 동안 내 손으로만 열던 문을⁠, 오늘은 남이 열어 주었다⁠. 편했다⁠. 편해서 무서웠다⁠. 주머니 속 놋쇠 자물쇠를 쥐고 잠들었다⁠.

*

같은 날 오후 두 시⁠, 합정역 근처 공유 오피스 칠 층⁠. 나는 팀장의 책상 앞에 서 있었다⁠. 팀장은 나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노트북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보셨어요⁠? 투자사에서 후속 사례 영상 달라고 해서 오늘 아침에 급히 만들었어요⁠. 다음 주에 회사 채널에 올려요⁠.⁠”

세로로 긴 숏폼 영상이었다⁠. 「⁠석 달 만에 방 밖으로 — 은평구 사례⁠」 화면에 닫힌 갈색 방문이 나왔다⁠. 새 매니저가 찍은 회기 인증 사진이었다⁠. 다음 장면은 계단이었고⁠, 다음은 대문이었다⁠. 파란 대문에 모자이크가 덮여 있었다⁠. 모자이크 밖으로 대문 옆 담장의 금 간 자리와 옆집 대문의 빗자루가 그대로 보였다⁠. 자막이 올라왔다⁠. 「⁠두 해 동안 닫혀 있던 문이 열렸습니다⁠」

“⁠대문이 파란색입니다⁠. 모자이크해도 응암동 사람은 다 알아봅니다⁠. 옆집 빗자루까지 나왔어요⁠.⁠”

“⁠동네 사람들 다 아는 집이잖아요⁠. 열쇠집 아들⁠.⁠” 팀장은 화면을 멈추지 않았다⁠. “⁠서 매니저님⁠, 이 영상 하나로 우리 회사 다음 투자가 결정돼요⁠. 투자가 되면 내년에 매니저 열 명을 더 뽑아요⁠. 열 명이면 문 백 개 앞에 더 앉아요⁠. 저는 문 하나보다 문 백 개를 봐야 하는 자리예요⁠.⁠”

팀장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문 백 개는 진짜였다⁠. 문 백 개 뒤에 사람이 백 명 있었다⁠. 백 명 가운데 한 명의 대문이 지금 모자이크를 쓰고 화면 속에 서 있었다⁠.

“⁠영상 쓰는 데 동의한 사람은 누굽니까⁠?⁠”

“⁠아버님이요⁠. 계약서에 사례 활용 동의가 있어요⁠.⁠”

“⁠건 씨는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의뢰인은 아버님이지만⁠, 문 안에 있던 사람은 건 씨예요⁠. 건 씨 이름으로 동의 철회서를 받아 오겠습니다⁠. 병원에서요⁠.⁠”

팀장이 처음으로 화면을 멈췄다⁠. 멈춘 화면에 계단 일곱 번째 칸이 나와 있었다⁠. 나무 결이 선명했다⁠.

“⁠서 매니저님 지금 그 집 담당 아니세요⁠. 무슨 자격으로 철회서를 받아요⁠?⁠”

나는 목에서 파란 사원증 줄을 벗었다⁠. 줄이 흰 셔츠 깃을 스치며 빠져나왔다⁠. 사원증을 팀장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줄이 키보드 위로 흘러내렸다⁠.

“⁠이제 회사 사람 자격은 없습니다⁠. 그 사람이 문을 열 때 옆에 앉아 있던 사람 자격으로 받겠습니다⁠.⁠”

팀장은 사원증을 집지 않았다⁠. 한참 뒤에 노트북을 덮었다⁠. 덮인 노트북 위에 사원증 줄이 걸쳐졌다⁠.

“⁠성과급은요⁠. 작년 거⁠.⁠”

“⁠통장에 그대로 있습니다⁠.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알아보고 보내겠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목이 허전했다⁠. 다섯 해 동안 매일 걸었던 줄이었다⁠. 손이 자꾸 가슴께로 갔다⁠. 옆자리 매니저가 복도 끝에서 나를 보고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회사를 나와 제휴 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고양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언덕 위에 있었다⁠. 정문 앞 계단을 오르는데 위에서 모진국이 내려왔다⁠. 갈색 카디건 위에 점퍼를 걸쳤고⁠, 손에 빈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우리는 계단 한가운데서 마주쳤다⁠.

“⁠칫솔하고 속옷 갖다 놨소⁠.⁠” 모진국이 먼저 말했다⁠. “⁠당신이 준 양말도⁠.⁠”

“⁠면회는요⁠?⁠”

“⁠가족만 된다더이다⁠. 나는 가족인데 안 들어갔소⁠.⁠” 모진국은 빈 쇼핑백을 접었다⁠. “⁠저 녀석이 면회 올 사람으로 당신을 넣었다고 간호사가 그럽디다⁠. 아비 다음에⁠.⁠”

모진국은 계단을 마저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왼손으로 가슴께를 한 번 눌렀다⁠. 나는 가슴을 누르는 손을 보았지만 무슨 뜻인지 몰랐다⁠.

*

2월 4일 아침 아홉 시⁠, 나는 간호사실 창구에 퇴원 신청서를 냈다⁠. 휴대전화를 꺼내 쓸 수 있는 아침 시간에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이월 육일에 입원한다는 것도⁠, 칠일 아침 아홉 시에 수술한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이미 안다는 것을 알자 엄마가 전화기 너머에서 울었다⁠. 미안할수록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이 소리 없이 울었다⁠.

열 시에 의사가 진료실로 불렀다⁠. 퇴원 신청서가 탁자 위에 있었다⁠.

“⁠동의 입원은 본인이 퇴원을 신청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보호자이신 아버님이 동의하지 않으시면⁠, 병원은 전문의 판단으로 퇴원을 칠십이 시간까지 미룰 수 있습니다⁠. 아버님께 아까 전화드렸는데⁠, 동의 안 하신대요⁠.⁠”

“⁠칠십이 시간이면 칠일 아침 열 시예요⁠.⁠”

“⁠네⁠.⁠”

“⁠아버지 수술이 칠일 아침 아홉 시예요⁠. 심장 수술이요⁠.⁠”

의사의 볼펜이 멈췄다⁠. 의사는 나를 오래 보았다⁠. 서류철에는 몸무게와 끼니와 낮밤이 바뀐 날짜가 다 적혀 있었다⁠. 아버지의 심장은 적혀 있지 않았다⁠.

“⁠아버님이 그 말씀은 안 하셨어요⁠.⁠”

“⁠아버지는 그런 말 안 해요⁠. 석 달이라고만 해요⁠.⁠” 나는 퇴원 신청서를 손끝으로 의사 앞에 밀었다⁠. “⁠선생님⁠. 저 두 해 동안 문 안에서 아버지 숨소리만 들었어요⁠. 아버지가 수술실에 들어가면 문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게 저였으면 해요⁠. 위험한지 아닌지는 선생님이 보시고요⁠.⁠”

의사는 대답하지 않고 서류철에 무언가를 적었다⁠. 적는 소리가 길었다⁠.

병실로 돌아오자 창가 침대의 남자가 패를 섞다가 내 얼굴을 보았다⁠.

“⁠칠십이 시간 걸렸구나⁠.⁠”

“⁠어떻게 알아요⁠?⁠”

“⁠여기서 퇴원 신청한 사람은 다 그 얼굴로 돌아와⁠. 나도 세 번 했어⁠.⁠” 남자가 패 한 장을 뒤집었다⁠. 국화였다⁠. “⁠칠십이 시간이 짧은 줄 알지⁠? 세어 보면 길어⁠. 세지 마⁠. 세면 더 길어⁠.⁠”

나는 세지 않으려고 했다⁠. 벽시계에 초침 소리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

2월 4일 오후 세 시⁠, 면회실은 창이 큰 방이었고 창에는 쇠창살 대신 두꺼운 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탁자 하나에 의자 둘⁠. 문 옆에 보호사가 앉아 있었다⁠. 건이 회색 후드티 차림으로 들어왔다⁠. 후드티 목에 끈이 빠져 있어서 모자가 힘없이 처졌다⁠. 건은 내 목을 먼저 보았다⁠.

“⁠줄 어디 갔어요⁠?⁠”

“⁠팀장 책상 위에요⁠.⁠”

“⁠줄 없으니까 이상해요⁠. 목이 길어 보여요⁠.⁠”

건이 의자에 앉았다⁠. 우리 사이에 탁자 하나가 있었다⁠. 문 한 장보다 넓었고 다리 밑의 한 걸음보다 넓었다⁠. 그래도 탁자 위에 손을 올리면 닿는 거리였다⁠. 건이 먼저 손을 올렸다⁠. 손톱 밑이 깨끗했다⁠. 나도 손을 올렸다⁠. 보호사가 우리를 보다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면회실 유리문 밖으로 화투를 치던 남자가 지나가다가 패 한 장을 들어 보였다⁠. 비 광이었다⁠. 건이 고개를 젓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아버지 칠일 아침에 수술해요⁠. 심장⁠. 원래 삼월 팔일이었대요⁠. 석 달이 그거였어요⁠.⁠”

나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혼자 못 지키는 날이라는 말이 파주 공장 식당 뒷문에서 이 탁자 위로 건너왔다⁠. 고무장갑 모양으로 얼어 있던 말이 녹아서 뜻이 되었다⁠.

“⁠퇴원 신청했어요⁠. 아버지가 동의 안 해서 칠십이 시간 걸렸어요⁠. 칠일 아침 열 시까지⁠. 수술은 아홉 시고요⁠.⁠” 건이 웃었다⁠. 입꼬리만 웃었다⁠. “⁠한 시간 늦어요⁠. 두 해를 기다렸는데 한 시간이 모자라요⁠.⁠”

건이 후드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놋쇠 자물쇠였다⁠. 걸쇠가 잠겨 있었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쟁반 옆에 놓고 간 거예요⁠. 녹슬어서 안 열리던 거⁠. 사흘 밤 걸려 고쳤어요⁠. 열쇠는 없어요⁠. 처음부터 없었어요⁠.⁠” 건이 자물쇠를 내 쪽으로 밀었다⁠. “⁠열쇠 없는 자물쇠를 왜 고치라고 줬는지 두 해 동안 몰랐어요⁠. 지헌 씨가 아버지한테 물어봐 줘요⁠. 나는 칠십이 시간 동안 못 나가니까⁠.⁠”

“⁠녹음은요⁠?⁠”

“⁠사물함에 있어요⁠. 내가 틀 거예요⁠. 아버지 앞에서⁠. 남이 틀면 아버지가 또 남의 문 앞에서 거짓말해요⁠.⁠”

면회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모건 님⁠, 선생님이 잠깐 보자세요⁠.⁠” 보호사가 일어났다⁠. 건도 일어났다⁠. 나는 자물쇠를 손바닥에 쥐었다⁠. 건의 주머니에서 하루를 보낸 쇠라 건의 체온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걸쇠를 엄지로 눌러 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건은 오 분 뒤에 면회실로 돌아왔다⁠. 문가에 서서 들어오지 않았다⁠. 얼굴이 하얬다⁠.

“⁠아버지가 보호자 입원으로 바꾸신대요⁠. 칠십이 시간 안에⁠. 엄마가 내일 다시 서명하러 온대요⁠.⁠”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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