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34자)

눈

고립 청년 돌봄 매니저 · 도결애

지단 떡국 그릇은 저녁에 비어서 나왔다⁠. 1월 10일 월요일 밤⁠, 서지헌이 돌아가고 한참 뒤에 나는 식은 떡국을 방으로 들였다⁠. 퍼진 떡이 숟가락에 엉겨 붙었고⁠, 탄 흰자 지단이 쓴맛을 냈다⁠. 다 먹었다⁠. 그릇을 씻어서 쟁반에 엎어 문 밖에 내놓았다⁠.

이튿날 아침⁠, 일곱 번째 칸이 울고 쟁반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나기 전에 아버지가 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엎어 놓은 그릇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릇을 들고 내려가다가 계단 중간에서 한 번 멈췄다⁠. 아버지는 일곱 번째 칸 위에 선 채 한참 움직이지 않았고⁠, 계단은 울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한 주 내내 쟁반에는 지단을 올린 국이 왔다⁠. 떡국⁠, 미역국⁠, 계란국⁠. 국마다 지단이 올라갔다⁠. 미역국 위의 지단은 아무래도 이상했지만 나는 다 먹었다⁠. 카드 결제 문자는 줄었다⁠. 아버지의 휴대전화에서 새벽 문자가 오지 않는 날이 생겼다⁠. 두 해 동안 문자가 없는 날은 아버지가 잠을 못 자는 날이었는데⁠, 이제 문자가 없어도 아버지는 코를 골았다⁠. 코 고는 소리도 바닥으로 올라왔다⁠.

*

1월 17일 월요일 오전 열 시⁠, 합정역 근처 공유 오피스 칠 층 회의실에는 매니저 아홉 명이 노트북을 펴고 앉아 있었다⁠. 창밖 하늘이 낮고 누렜다⁠. 오후부터 눈이 온다고 했다⁠. 팀장이 벽에 화면을 띄웠다⁠. 「⁠1월 사례 회의 · 투자 미팅 D-11⁠」

내 차례는 네 번째였다⁠. 나는 응암동 건을 순서대로 말했다⁠. 문 아래로 나온 쪽지⁠, 경첩⁠, 한 뼘⁠, 문턱⁠, 계단⁠, 그리고 지난주 월요일에 들어간 방⁠. 녹음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매니저들이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었다⁠. 다섯 주 만에 방 안까지 들어간 사례는 이번 분기에 없었다⁠.

“⁠너무 좋네요⁠. 우리 매니저님 정말 대단하세요⁠.⁠” 팀장이 박수를 두 번 쳤다⁠. 그리고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응암동 · 입원 연계 검토⁠」 “⁠그런데 아버님이 지난주 금요일에 저한테 직접 전화하셨어요⁠. 어머님이 서명을 안 해 주셔서⁠, 두 번째 의사 소견만이라도 먼저 받아 두고 싶으시대요⁠. 우리 제휴 병원 선생님으로요⁠.⁠”

“⁠방에 들어갔습니다⁠. 문이 열렸어요⁠. 지금 입원 이야기를 꺼내면 문이 다시 닫힙니다⁠.⁠”

“⁠닫혀도 아버님 뜻이에요⁠. 우리 고객은 아버님이세요⁠.⁠” 팀장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매니저님 의견서 한 장만 써 주시면 돼요⁠. 의뢰인이 외부 치료가 필요해 보인다⁠, 정도로요⁠. 결정은 의사 선생님이 하시고요⁠.⁠”

“⁠안 쓰겠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옆자리 매니저가 노트북 화면을 슬쩍 내렸다⁠. 팀장이 리모컨을 두 번 눌렀다⁠. 화면에 낯익은 표가 떴다⁠. 지난해 연말 투자사에 낸 자료였다⁠.

「⁠성공 사례 — 은둔 3년 차 · 22세 · 매니저 권고로 제휴 병원 입원 연계 · 담당 서지헌⁠」

내 이름이 맨 끝에 있었다⁠. 글씨가 작았는데 회의실 벽에서는 크게 보였다⁠.

“⁠작년에 서 매니저님이 하신 거예요⁠. 그때도 매니저님 처음엔 망설이셨잖아요⁠. 결과적으로 이 사례 덕분에 우리 구청 위탁이 연장됐고⁠, 여기 계신 매니저님들 계약도 연장됐어요⁠.⁠” 팀장의 목소리는 끝까지 부드러웠다⁠. “⁠우리 회사가 내년에도 이백 명 문 앞에 앉으려면 숫자가 필요해요⁠. 저도 이 숫자 좋아서 하는 거 아니에요⁠.⁠”

“⁠그 사람은 퇴원하고 제 번호를 지웠습니다⁠.⁠”

“⁠퇴원했으면 방 밖으로 나온 거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팀장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회사 시스템에서 지난해의 의뢰인은 지금도 방 밖에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서 매니저님⁠.⁠” 팀장이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처음으로 목소리에서 웃음이 빠졌다⁠. “⁠의견서 안 쓰시면⁠, 응암동 건에서는 빠지셔야 해요⁠. 아버님 뜻대로 해 드릴 매니저님을 보내야 하니까요⁠.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회사가 먼저예요⁠. 회사가 있어야 우리가 문 앞에 앉을 수 있어요⁠.⁠”

창밖에서 첫 눈송이가 유리에 붙었다가 녹았다⁠.

회의가 끝나고 복도 정수기 앞에서 옆자리 매니저가 종이컵 두 개에 물을 받아 하나를 내밀었다⁠. 나보다 두 해 먼저 들어온 사람이었다⁠. 정수기가 꾸르륵 소리를 내는 동안 옆자리 매니저가 목소리를 낮췄다⁠.

“⁠작년 그 친구⁠, 나 지난달에 봤어⁠. 은평 쪽 편의점에서 야간 일 하더라⁠. 명찰 보고 알았어⁠.⁠”

종이컵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물이 컵 가장자리로 넘쳤다⁠.

“⁠잘 지내 보였어요⁠?⁠”

“⁠계산하면서 손님 얼굴은 안 보더라⁠. 바코드만 봤어⁠.⁠” 옆자리 매니저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팀장님 말이 다 틀린 건 아니야⁠. 방 밖에 있긴 하니까⁠. 나도 이번 분기 숫자 모자라⁠. 서 매니저 안 쓰면 그 의견서⁠, 누가 쓰긴 써⁠.⁠”

옆자리 매니저는 빈 컵을 구겨 버리고 회의실로 돌아갔다⁠. 나는 정수기 앞에 남아 넘친 물이 손등에서 식는 것을 기다렸다⁠. 바코드만 보는 눈이 어떤 눈인지 나는 알았다⁠. 지난해 의뢰인의 방문 아래로 마지막 쪽지가 나온 뒤에도 나는 회사 화면의 숫자만 보았다⁠.

*

두 시가 지났다⁠. 두 시 오 분⁠, 두 시 십 분⁠. 일곱 번째 칸이 울지 않았다⁠. 여섯 주 동안 서지헌은 한 번도 늦지 않았다⁠. 늦으면 문 아래로 쪽지를 넣겠다고 첫날 말했는데⁠, 쪽지를 넣으려면 문 앞까지 와야 했다⁠.

나는 문을 한 뼘 열어 두고 문턱에 앉았다⁠. 복도 계단 창으로 눈이 내리는 것이 보였다⁠. 굵은 눈이었다⁠. 마당 나무의 가지가 금방 하얘졌다⁠. 귀를 기울이면 눈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눈 때문에 대문 쪽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대문이 열리지 않았다⁠.

두 해 동안 나는 기다리지 않았다⁠. 문 밖에서 누가 기다렸다⁠. 아버지가 쟁반 앞에서 기다렸고⁠, 배달 기사가 노크 세 번 뒤에 기다렸고⁠, 서지헌이 경첩 앞에서 기다렸다⁠. 나는 문 안에서 듣기만 했다⁠. 기다리는 자리에 앉아 보니 시계 소리가 컸다⁠. 책상 위 시계는 초침이 한 칸 갈 때마다 작게 딸깍거렸다⁠. 두 해 동안 시계에 초침 소리가 있는 줄 몰랐다⁠.

세 시 사십 분에 게임 메신저가 떴다⁠.

「⁠늦어요⁠. 회의가 길었어요⁠. 저녁에 가도 돼요⁠?⁠」

「⁠매니저님 근무 네 시까지잖아요⁠.⁠」

「⁠근무 아니게 갈게요⁠.⁠」

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서지헌은 답장 안 한 것도 대답으로 칠 사람이었다⁠. 나는 상담 앱을 열었다가 닫고⁠, 다시 열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안 와⁠.⁠」

「⁠기다림은 마음을 지치게 할 수 있어요⁠. 그분께 걱정되는 마음을 솔직하게 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전하면 진짜 기다린 게 되잖아⁠.⁠」

앱은 잠깐 점 세 개를 띄웠다가 대답했다⁠. 「⁠기다린 마음도 소중한 마음이에요⁠.⁠」 앱의 말은 늘 맞았다⁠. 맞는 말을 들으면 귀가 먼저 지쳤다⁠.

*

저녁 여덟 시⁠, 응암동 골목에는 눈이 발목까지 쌓여 있었다⁠. 대문 앞의 눈은 모진국이 넉가래로 한 번 밀어 놓았고⁠, 밀어 놓은 자리에 다시 눈이 덮였다⁠. 옆집 할머니가 우산을 쓰고 대문 밖에 나와 염화칼슘을 뿌리다가 나를 보았다⁠. “⁠매니저 총각⁠, 이 눈에 또 왔수⁠? 열쇠집 양반 아까부터 마루에 앉아 있던데⁠.⁠”

모진국은 거실에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은 꺼져 있었다⁠. 모진국이 나를 보고 일어나지 않은 채 말했다⁠.

“⁠회사에서 전화 왔소⁠. 목요일부터 다른 사람이 온다고⁠.⁠”

“⁠알고 계셨네요⁠.⁠”

“⁠내가 그렇게 해 달라고 했으니까⁠.⁠” 모진국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당신 탓 아니오⁠. 당신이 잘해서 그런 거요⁠. 문이 너무 빨리 열렸소⁠. 저 녀석이 방에서 나오면 나는 저 녀석 얼굴을 봐야 하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다⁠. 일곱 번째 칸이 울었다⁠. 문이 이미 반쯤 열려 있었다⁠. 건은 문턱에 앉아 있었다⁠. 회색 털양말을 신은 발이 복도에 나와 있었다⁠.

“⁠늦었죠⁠.⁠”

“⁠다섯 시간 사십 분⁠.⁠”

“⁠세셨어요⁠?⁠”

“⁠시계에 초침 소리가 있더라고요⁠.⁠” 건은 일어나 계단 창을 내려다보았다⁠. 창밖 마당이 하얬다⁠. “⁠목요일부터 다른 사람 온다면서요⁠. 바닥으로 다 들었어요⁠.⁠”

“⁠네⁠. 오늘이 제 마지막 회기예요⁠. 회기는 아니지만요⁠.⁠”

건이 한참 창밖을 보았다⁠. 그러고는 내 앞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칸⁠, 두 칸⁠. 일곱 번째 칸이 울었다⁠. 건은 멈추지 않았다⁠. 거실의 모진국이 일어서는 소리가 났다⁠. 건은 거실을 보지 않고 현관으로 갔다⁠. 현관 신발장 앞에서 건이 멈추었다⁠. 두 해 동안 신발장을 연 적이 없었다⁠. 건의 운동화는 신발장 맨 아래 칸에 끈이 묶인 채 있었다⁠.

건은 운동화 대신 모진국의 작업화를 신었다⁠. 끈을 묶지 않고 발을 밀어 넣었다⁠. 현관문을 열었다⁠. 찬 공기와 눈 냄새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마당은 하얬다⁠. 건이 첫걸음을 내디뎠다⁠. 눈이 작업화 밑에서 뽀드득 울었다⁠. 건이 소리에 놀라 발을 들었다가 다시 디뎠다⁠. 두 번째 걸음⁠, 세 번째 걸음⁠. 마당 한가운데 나무 아래에서 건이 멈췄다⁠. 머리 위로 눈이 내렸다⁠. 눈을 덮는 검은 머리에 눈송이가 내려앉아 녹지 않았다⁠.

나는 코트를 벗어 건의 어깨에 걸쳤다⁠. 회색 롱코트가 후드티 위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건이 코트 깃을 두 손으로 여몄다⁠. 코트 안에는 내 체온이 아직 남아 있었다⁠. 건이 깃에 코를 묻었다⁠.

“⁠섬유 유연제 냄새 나요⁠. 우리 커튼이랑 같은 거⁠.⁠”

“⁠편의점에서 제일 싼 거라서요⁠.⁠”

등 뒤에서 현관문이 다시 열렸다⁠. 모진국이 문턱에 서서 마당을 내다보았다⁠. 손에 건의 운동화 한 켤레를 들고 있었다⁠. 모진국은 끈이 묶인 운동화를 현관 계단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다⁠. 운동화 코끝에 금방 눈이 앉았다⁠.

“⁠나는 앱이 시켜서 산 건데⁠.⁠” 건이 웃었다⁠. “⁠앱한테 사람 방에 들일 때 뭐 하냐고 물어봤거든요⁠.⁠”

“⁠그 앱이요⁠?⁠” 나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같은 앱 아이콘이 화면에 있었다⁠. 건이 내 화면을 들여다보고 입을 벌렸다⁠.

“⁠매니저님도 써요⁠?⁠”

“⁠밤에요⁠.⁠” 나는 말을 고르다가⁠, 고르지 않고 말했다⁠. “⁠의뢰인에게 마음이 가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어요⁠. 지난주에⁠.⁠”

건이 코트 깃을 여민 채 나를 보았다⁠. 머리카락 사이로 눈이 보였다⁠. 눈송이가 속눈썹에 앉았다⁠.

“⁠뭐래요⁠?⁠”

“⁠전문가로서의 경계를 지키는 것도 상대를 위한 일이라고요⁠.⁠”

“⁠나한테는 그 마음을 소중히 여기라고 했는데⁠.⁠” 건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돌려 보여 주었다⁠. 「⁠문 밖 남자가 좋아지면 어떡해⁠?⁠」 「⁠그 마음을 소중히 여기세요⁠. 다만 천천히⁠, 서로를 존중하며 다가가 보세요⁠.⁠」 날짜가 내 질문과 같은 날 밤이었다⁠. 십 분 차이였다⁠.

우리는 눈 속에서 같은 앱 화면을 나란히 들고 서 있었다⁠. 건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눈에 먹혀서 멀리 가지 않았다⁠. 안방 창에 불이 켜져 있었고⁠, 커튼 틈으로 모진국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띵 하고 두 번 울렸다⁠. 건이 소리를 먼저 알아들었다⁠. 회사였다⁠. 「⁠응암동 건은 목요일부터 다른 매니저님이 맡습니다⁠. 아버님께는 제가 말씀드렸어요⁠. 입원 연계 서류는 새 매니저님이 진행해요^^ 서 매니저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건이 내 어깨 너머로 화면을 읽었다⁠. 내 코트 깃이 건의 턱 밑에서 조금 떨렸다⁠.

7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눈 · 고립 청년 돌봄 매니저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