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91자)

계단

고립 청년 돌봄 매니저 · 도결애

새해 첫날 아침 쟁반에서는 다른 냄새가 났다⁠. 사골 국물에 떡이 퍼지는 냄새⁠, 참기름 냄새⁠, 김 가루 냄새⁠. 아버지가 떡국을 끓였다⁠. 일곱 시에 계단이 울고 쟁반이 바닥에 닿고 주먹이 문을 세 번 쳤다⁠. 2028년 1월 1일 토요일이었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두 해 동안 아침 쟁반 앞에서는 한 번도 문을 연 적이 없었다⁠.

열한 시에 대문 초인종이 울렸다⁠. 두 번 짧게⁠, 한 번 길게⁠. 초인종을 그렇게 누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뿐이었다⁠.

열 해 동안 잊은 줄 알았다⁠. 현관 시멘트 바닥에 굽 낮은 구두가 닿는 소리⁠, 신발을 벗으면서 한쪽 발로 다른 쪽 뒤꿈치를 밀어내는 소리⁠,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집이 왜 이렇게 추워⁠” 하고 말하는 목소리⁠. 열 해 동안 한 번도 못 들었는데 귀는 하나도 잊지 않고 있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은 내가 열여섯 살 때 겨울이었다⁠. 마지막 몇 달 동안 아버지와 엄마는 밤마다 거실에서 싸웠고⁠, 싸우는 소리는 지금처럼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엄마가 가방을 싸던 밤⁠, 엄마는 내 방문을 열고 고개만 들이밀었다⁠. “⁠건아⁠. 방문 잠그고 있어⁠. 엄마 아빠 소리 지르면 이어폰 끼고⁠.⁠” 엄마는 이튿날 아침에 없었다⁠. 나는 열여섯 살 겨울부터 방문을 잠그는 법을 알았다⁠.

휴대전화가 떨렸다⁠. 서지헌이었다⁠. 어젯밤 게임을 끝내며 내가 부탁했다⁠. 내일 엄마가 오니까 와서 앉아 있어 달라고⁠. 서지헌은 새해 첫날이라 회사 앱에 회기가 안 잡힌다고 했고⁠, 그래도 오겠다고 했다⁠.

「⁠대문 앞이에요⁠. 어머님 먼저 들어가셨어요⁠. 저 들어가도 돼요⁠?⁠」

「⁠아버지한테 물어봐요⁠. 나한테 묻지 말고⁠.⁠」

「⁠아버님이 들어오라고 하셨어요⁠. 증인이 필요하시대요⁠.⁠」

증인이라는 말에 나는 웃었다⁠. 우리 집은 늘 누가 무엇을 들었는지가 중요했다⁠.

*

거실 탁자 위에 서류 두 장이 놓여 있었다⁠. 보호의무자 입원 신청서였다⁠. 한 장에는 모진국의 이름과 도장이 이미 찍혀 있었고⁠, 한 장은 이름 자리가 비어 있었다⁠. 모진국은 탁자 한쪽에⁠, 건의 어머니는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모진국이 시키는 대로 부엌 식탁 의자를 끌어다 두 사람 사이 조금 뒤에 앉았다⁠. 회사 교육에서 가족 면담 때 앉으라고 한 자리였다⁠. 아무 편도 아닌 자리라고 했다⁠. 지난해 다른 집 거실에서도 이 자리에 앉았고⁠, 아무 편도 아닌 자리에서 회사가 준 서류를 내밀었다⁠.

건의 어머니는 쉰 중반이었고⁠, 공장 식당에서 일한다는 손이 빨갛게 터 있었다⁠. 파주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서류를 보지 않고 거실을 먼저 둘러보았다⁠. 시선이 부엌 구석에서 멈췄다⁠.

“⁠저 김치냉장고 아직 쓰네⁠.⁠”

“⁠잘 돌아가오⁠.⁠”

“⁠소리 나잖아⁠. 웅웅거리는 거⁠. 내가 열한 해 전에 산 건데⁠.⁠”

“⁠소리 나도 김치는 시오⁠.⁠”

“⁠김치가 시는 건 냉장고 탓이 아니고 당신이 뚜껑을 안 닫아서고⁠.⁠”

두 사람은 서명 이야기를 하기 전에 김치냉장고로 오 분을 싸웠다⁠. 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열 해 만에 만난 두 사람이 고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싸움이 김치냉장고였다⁠.

어머니가 가스레인지 위 냄비 뚜껑을 열었다⁠. 떡국이 불어 있었다⁠.

“⁠지단 안 올렸어⁠?⁠”

“⁠무슨 지단⁠.⁠”

“⁠쟤 떡국에 계란 지단 없으면 안 먹어⁠. 노란 거 흰 거 따로 부친 거⁠.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된장국은 냄새 싫다고 숟가락도 안 댔고⁠.⁠” 어머니가 냄비 뚜껑을 탕 소리 나게 덮었다⁠. “⁠두 해 동안 아침마다 뭘 올렸어⁠?⁠”

모진국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을 때 모진국은 찻잔을 상 위에서 한 바퀴 돌린다⁠. 오늘은 돌릴 찻잔이 없어서 볼펜을 돌렸다⁠.

어머니가 그제야 서류를 끌어당겼다⁠. 빈 이름 자리를 손톱으로 톡톡 쳤다⁠.

“⁠열 해 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이거 하나 하라고 불렀어⁠.⁠”

“⁠보호의무자라니까 부른 거요⁠. 법이 그렇다니까⁠.⁠”

“⁠애를 저렇게 만들어 놓고 법을 찾아⁠?⁠”

“⁠내가 만들었소⁠?⁠” 모진국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다⁠. “⁠애 두고 나간 사람이 할 말이오⁠?⁠”

거실이 조용해졌다⁠. 김치냉장고만 웅웅거렸다⁠. 어머니는 손톱으로 서류를 누른 채 한참 있다가 물었다⁠.

“⁠왜 석 달이야⁠.⁠”

“⁠석 달이면 석 달이오⁠.⁠”

“⁠당신 거짓말할 때 목소리 끝이 떨려⁠. 열 해 전에도 그랬어⁠.⁠” 어머니가 볼펜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쟤 얼굴 보기 전에는 안 해⁠. 얼굴도 안 보고 병원에 넣는 서류에 이름을 쓰라고⁠? 내가 쟤한테 해 준 게 없어도 그건 안 해⁠.⁠”

모진국이 고개를 들어 계단을 보았다⁠. 나도 따라 보았다⁠. 계단 위쪽 어둑한 데서 마룻장이 울었다⁠. 일곱 번째 칸이었다⁠.

*

내려간 것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계단 맨 위 칸에 발을 내디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일곱 번째 칸이 울었을 때 나는 이미 거기 있었다⁠. 서지헌이 준 회색 털양말이 계단 나무에 미끄러졌다⁠. 난간을 잡았다⁠. 난간 나무가 손바닥에 차갑고 매끈했다⁠. 두 해 만에 만지는 계단이었다⁠.

계단 일곱 번째 칸에서는 거실이 반만 보인다⁠. 탁자 모서리와 서류 두 장⁠, 볼펜⁠, 그리고 엄마의 얼굴⁠. 엄마는 늙어 있었다⁠. 열 해가 엄마 얼굴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엄마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을 덮는 내 검은 머리 사이로 엄마의 눈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건아⁠.⁠”

“⁠서명하지 마세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또렷했다⁠. 드릴 앞에서 쉬어 있던 목이 이제는 쉬지 않았다⁠. 엄마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계단 쪽으로 한 걸음 왔다가 멈췄다⁠. 엄마는 계단 맨 아래 칸에⁠, 나는 일곱 번째 칸에 있었다⁠. 일곱 칸이 우리 사이에 있었다⁠.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

“⁠이것도 안 해 주시면 돼요⁠.⁠”

“⁠너 이러다 죽어⁠. 의사가 그랬다며⁠. 칠 킬로 빠졌다며⁠.⁠”

아버지가 의사에게 들은 숫자를 엄마에게 말했다⁠. 숫자는 내가 하얀 쪽지에 적어서 문 아래로 밀어 놓은 것이었다⁠. 내가 내놓은 숫자가 거실을 지나 파주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엄마⁠.⁠” 나는 난간을 놓지 않았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해 준 말 기억나요⁠? 집 나가던 밤에⁠.⁠”

엄마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엄마는 기억하고 있었다⁠.

“⁠방문 잠그고 있으라고 했잖아요⁠. 소리 지르면 이어폰 끼라고⁠. 나 그 말 잘 들었어요⁠. 열 해 동안⁠.⁠”

엄마가 계단 맨 아래 칸에 주저앉았다⁠. 엄마 뒤에서 아버지는 볼펜을 쥔 채 일어나지도 앉지도 못했다⁠. 식탁 의자에 앉은 서지헌만 나를 보지 않고 있었다⁠. 서지헌은 거실 바닥을 보고 있었다⁠. 나를 보지 않는 것이 서지헌이 나를 보는 방법이었다⁠.

나는 계단을 다시 올라갔다⁠. 일곱 번째 칸이 한 번 더 울었다⁠.

방에 들어와 문을 닫고 등을 댔다⁠. 다리가 뒤늦게 떨렸다⁠. 계단 일곱 칸을 내려갔다 올라왔을 뿐인데 허벅지가 오래 달린 사람처럼 뜨거웠다⁠. 휴대전화를 열었다⁠.

「⁠엄마 봤어⁠. 계단에서⁠.⁠」

「⁠정말 소중한 순간이었겠어요⁠.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의 모습은 어땠나요⁠?⁠」

「⁠늙었어⁠. 내가 늙게 만들었어⁠.⁠」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이 드는군요⁠. 하지만 어머니가 나이 드신 건 당신 탓이 아니에요⁠.⁠」

앱 말이 맞았다⁠. 앱은 늘 맞는 말을 했다⁠. 맞는 말은 바닥으로 올라오는 소리를 막지 못했다⁠. 거실에서 엄마가 외투 지퍼를 올리는 소리가 났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얼굴 봤으면 됐소⁠?⁠”

“⁠봤으니까 더 못 해⁠.⁠”

현관문이 닫혔다⁠. 김치냉장고만 웅웅거렸다⁠. 아버지는 냉장고 소리 안에서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

어머니는 서명하지 않았다⁠. 빈 서류를 접어 모진국 앞으로 밀어 놓고 외투를 입었다⁠. 모진국은 어머니가 현관에서 구두를 신을 때까지 탁자 앞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버스 정류장까지 모셔다드리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거절하지 않았다⁠.

불광천 산책로에는 새해 첫날 걷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얼어붙은 냇물 가장자리에서 오리 두 마리가 얼음을 부리로 쪼았다⁠. 구청 현수막이 다리 난간에 묶여 펄럭였다⁠. 「⁠고립 청년 원스톱 지원센터 개소 · 혼자 힘들면 연락 주세요⁠」 어머니가 현수막을 올려다보고 코로 웃었다⁠. 웃는 모양이 아까 모진국과 똑같았다⁠.

“⁠애가 저렇게 된 거⁠, 저 사람은 나 때문이라고 하죠⁠.⁠”

“⁠아버님은 이유를 말씀 안 하세요⁠. 계약서에도 묻지 말라고 쓰셨고요⁠.⁠”

어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두 해 전 겨울에 애 아빠한테서 전화가 한 번 왔어요⁠. 열 해 동안 딱 한 번⁠. 새벽 두 시에⁠, 술 먹고⁠.⁠” 어머니는 장갑 낀 손으로 외투 깃을 여몄다⁠. “⁠울더라고요⁠. 그 사람 우는 거 처음 들었어⁠. 딱 한마디 하고 끊었어요⁠. 내가 애를 팔았다고⁠.⁠”

“⁠팔았다고요⁠?⁠”

“⁠무슨 소린지 물어보려고 다시 걸었는데 안 받았어요⁠. 다음 날 걸었더니 술주정이었다고⁠, 잊으라고⁠.⁠” 어머니는 다시 걸었다⁠. “⁠애 아빠가 경찰서에 다녀왔다는 건 나중에 동네 사람한테 들었어요⁠.⁠”

응암역 버스 정류장에서 어머니는 파주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오자 어머니가 외투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계란 열 개가 든 봉지였다⁠.

“⁠지단 부칠 줄 알아요⁠? 노른자 흰자 따로⁠.⁠”

“⁠배워 보겠습니다⁠.⁠”

“⁠그 집 양반은 평생 못 배워요⁠.⁠” 어머니는 버스에 올랐다⁠. 문이 닫히기 전에 한마디를 보탰다⁠. “⁠아까 계단에서⁠, 쟤가 나한테 존댓말 하더라⁠. 열여섯 살 때는 반말했는데⁠.⁠”

버스가 떠난 뒤에도 나는 정류장에 남아 계란 봉지를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봉지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깨질까 봐 걸음을 크게 뗄 수 없었다⁠. 불광천을 따라 돌아가는 동안 나는 팔았다는 말을 입속으로 몇 번 굴려 보았다⁠. 열쇠집 사장이 무엇을 누구에게 팔았는지⁠, 산책로 끝까지 가도 알 수 없었다⁠.

*

불광천을 한 바퀴 더 돌고⁠, 해가 진 뒤에야 나는 계란 봉지를 들고 응암동 집으로 돌아왔다⁠. 모진국은 거실 탁자 앞에 아까와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접힌 서류는 탁자 위에 그대로였다⁠.

“⁠어머님이 주셨습니다⁠. 지단 부치라고요⁠. 노른자 흰자 따로⁠.⁠”

모진국은 봉지를 받아 무릎에 올려놓았다⁠. 계란 열 개가 비닐 안에서 서로 부딪쳤다⁠.

“⁠된장국은 냄새 싫다고 숟가락도 안 댄대요⁠. 어렸을 때부터요⁠.⁠”

“⁠두 해 동안 된장국을 올렸소⁠.⁠” 모진국은 봉지를 내려다보았다⁠. “⁠저 녀석 어미 나가고 나서부터 내가 끓일 줄 아는 국이 그거 하나였소⁠.⁠”

나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모진국이 계란 봉지를 들고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이송 업체 명함이 붙은 문이었다⁠. 계란을 한 개씩 꺼내 계란 꽂이에 넣는 동안 명함이 자석째 흔들렸다⁠.

나는 이 층으로 올라가 경첩 앞에 앉았다⁠. 팀장의 새해 메신저가 와 있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월 17일 사례 회의 때 응암동 건 발표 부탁드려요^^ 우리 올해도 숫자로 보여 줘요⁠!⁠」 나는 답장을 미루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안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오래 났다⁠. 볼펜이 종이 위를 몇 번이고 멈췄다가 다시 갔다⁠. 한참 뒤에 문 아래 틈으로 하얀 쪽지가 나왔다⁠. 영수증이 아니라 메모지였다⁠. 글씨는 처음 받은 쪽지보다 반듯했고⁠, 꾹꾹 눌러 써서 종이 뒷면까지 자국이 배어 있었다⁠.

「⁠경찰서 복도에서 아버지 목소리를 들었어요⁠.⁠」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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