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08자)

수술 전날

고립 청년 돌봄 매니저 · 도결애

엄마는 서류를 탁자 위에 펴 놓고 한참 보기만 했다⁠. 2월 5일 오전 열한 시⁠, 병동 면회실이었다⁠. 의사가 서류를 건네고 나가면서 문을 반쯤 열어 두었다⁠. 엄마의 손이 빨갰다⁠. 파주에서 새벽 버스를 타고 오느라 장갑을 안 꼈다고 했다⁠.

“⁠아빠 내일 입원해⁠. 너도 알지⁠.⁠”

“⁠알아요⁠.⁠”

“⁠칠일 아침 아홉 시⁠. 의사가 그러는데⁠, 혈관이 세 군데나 막혔대⁠. 작년 가을에 가게에서 쓰러질 뻔했대⁠. 정육점 사장이 부축했대⁠.⁠” 엄마는 볼펜을 쥐었다가 놓았다⁠. “⁠나한테만 말했어⁠. 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수술 끝나고 말한다고⁠.⁠”

“⁠수술 끝나고 말 못 하게 되면요⁠.⁠”

엄마가 나를 보았다⁠. 열여섯 살 겨울 내 방문을 열고 고개만 들이밀던 얼굴이 쉰 중반이 되어 탁자 건너편에 있었다⁠.

“⁠그러니까 서명하라는 거야⁠, 애 아빠는⁠. 자기가 못 일어나면 너는 병원에 있으라고⁠. 병원에 있으면 밥은 나온다고⁠.⁠” 엄마가 서류를 두 손으로 집어 들었다⁠. “⁠엄마는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알아⁠. 그 사람 말이 틀린 것도 아니야⁠. 근데 건아⁠.⁠”

엄마가 서류를 반으로 찢었다⁠. 종이 찢는 소리가 면회실 유리에 부딪혀 크게 울렸다⁠. 문가의 보호사가 고개를 들었다⁠.

“⁠엄마가 열 해 전에 방문 잠그고 있으라고 했잖아⁠. 이번엔 반대로 할게⁠. 나가서 기다려⁠. 아빠 수술실 앞에서⁠. 엄마는 그거 하나 해 줄게⁠.⁠”

엄마는 찢은 서류를 다시 반으로 찢었다⁠. 네 조각이 탁자 위에 흩어졌다⁠. 엄마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열 해 동안 미안할수록 커지던 목소리가 오늘은 작았다⁠.

“⁠애 아빠한테는 엄마가 말할게⁠. 칠십이 시간 다 채우게 두든 말든⁠, 내 이름은 안 들어가⁠.⁠”

엄마는 찢은 조각을 모아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병원 쓰레기통에 버리면 누가 다시 붙일까 봐 가져간다고 했다⁠. 면회실 문을 나서다가 엄마가 돌아보았다⁠.

“⁠지단은 그 매니저가 부칠 줄 안대⁠? 노른자 흰자 따로⁠.⁠”

“⁠아직 못 한대요⁠.⁠”

“⁠그럼 너라도 배워⁠. 아빠 병원 밥 맛없다고 할 거야⁠. 그 양반 입맛은 쌍화탕이야⁠.⁠”

엄마가 웃었다⁠. 코로 웃었다⁠. 열 해 동안 아버지와 엄마는 웃는 모양까지 닮아 있었다⁠.

*

2월 5일 저녁 일곱 시⁠, 나는 옆자리 매니저가 알려 준 편의점에 들어갔다⁠. 은평의 큰길에서 한 골목 들어간 가게였다⁠. 계산대에 서 있는 사람은 지난해 겨울 내가 권고서에 서명한 사람이었다⁠. 한 해 사이에 머리를 짧게 잘랐고⁠, 명찰을 달고 있었다⁠. 나는 생수 한 병을 계산대에 올렸다⁠. 바코드 읽는 소리가 삑 났다⁠.

“⁠천 원입니다⁠.⁠”

계산대의 사람은 바코드만 보았다⁠. 나는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잘 지내요⁠?⁠”

계산대의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삼 초쯤 지나서야 나를 알아보았다⁠. 눈이 커졌다가 도로 작아졌다⁠. 계산대 옆 온장고에서 캔 커피들이 낮게 웅웅거렸다⁠.

“⁠매니저님⁠.⁠” 목소리가 낮았다⁠. “⁠병원 덕분에 산 건 맞아요⁠. 거기서 밥 먹고 잠잤어요⁠. 근데 매니저님 서명 보고 나서는 사람 말을 못 믿겠더라고요⁠. 문 앞에서 기다린다던 사람이 서류를 들고 있었으니까⁠.⁠”

“⁠미안합니다⁠.⁠”

“⁠미안하다는 말 들으려고 일하는 건 아니에요⁠.⁠” 계산대의 사람이 영수증을 뜯어 내밀었다⁠. “⁠손님 얼굴 안 보는 거⁠,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얼굴 보면 또 믿을까 봐⁠.⁠”

편의점을 나와서 영수증을 접어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성과급을 어디로 보낼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다만 성과급이 누구의 돈이었는지는 알았다⁠.

2월 5일 밤 아홉 시⁠, 시장 골목은 셔터가 다 내려가 있었다⁠. 열쇠 가게 셔터만 반쯤 올라가 있었고⁠, 셔터 아래로 형광등 불빛이 골목 바닥에 네모나게 깔렸다⁠. 몸을 숙여 셔터 밑으로 들어갔다⁠. 모진국은 작업대 앞에서 열쇠를 깎고 있었다⁠. 내일부터 가게를 비우니 밀린 열쇠를 다 깎아 놓는다고 했다⁠. 열쇠 복사기가 쇠를 깎는 소리가 좁은 가게를 꽉 채웠다⁠.

나는 작업대 위에 놋쇠 자물쇠를 올려놓았다⁠. 모진국의 손이 멈췄다⁠. 기계가 헛돌았다⁠. 모진국이 스위치를 내렸다⁠. 갑자기 조용해진 가게에서 형광등이 지지거렸다⁠.

“⁠건 씨가 물어봐 달랬습니다⁠. 열쇠 없는 자물쇠를 왜 고치라고 주셨는지요⁠.⁠”

모진국은 자물쇠를 집어 들지 않았다⁠. 내려다보기만 했다⁠. 반들반들하게 닦인 놋쇠에 형광등이 비쳤다⁠.

“⁠열쇠 없는 자물쇠는 버리는 거요⁠. 우리 일에서는⁠.⁠” 모진국이 한참 만에 말했다⁠. “⁠두 해 전 겨울에⁠, 저 녀석이 방에 들어가고 보름쯤 됐을 때 버리려던 걸 쟁반 옆에 그냥 놨소⁠. 아무 생각 없이⁠. 이튿날 아침에 문 앞에 나와 있더이다⁠. 걸쇠가 열려 있었소⁠. 열쇠도 없이 고쳐서⁠.⁠”

모진국이 자물쇠를 손바닥에 올렸다⁠. 손톱 둘레의 기름때가 놋쇠에 닿았다⁠.

“⁠그래서 계속 줬소⁠. 고장 난 거⁠, 버릴 거⁠, 다⁠. 고쳐서 내놓는 동안은 저 녀석이 살아 있는 거니까⁠. 국은 안 먹어도 자물쇠는 고쳤소⁠.⁠”

“⁠아버님⁠. 수술 칠일 아침 아홉 시죠⁠.⁠”

모진국이 고개를 들었다⁠. 놀라지 않았다⁠. 아들이 알게 된 일을 내가 모를 리 없다는 얼굴이었다⁠.

“⁠혈관이 세 군데 막혔다 하오⁠. 의사가 열면 일어날 확률이 높다 하는데⁠, 높다는 게 다라는 말은 아니잖소⁠.⁠” 모진국은 자물쇠를 쥐었다⁠. “⁠내가 수술대에서 못 일어나면⁠, 저 녀석이 수술실 앞에 있다가 그 소식을 들으면⁠, 다시 방으로 들어가오⁠. 이번엔 국 놓을 사람도 없고 자물쇠 놓을 사람도 없소⁠. 병원에 있으면 밥은 나오오⁠. 문은 남이 열어 주고⁠. 그래서 석 달이었소⁠. 그래서 칠십이 시간이고⁠.⁠”

모진국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수술대에서 못 일어나는 아버지를 둔 아들에게⁠, 밥이 나오는 병동은 가장 안전한 방이었다⁠. 나는 모진국의 말을 반박할 숫자를 갖고 있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갖고 있었다⁠.

“⁠건 씨 휴대전화에 녹음이 있습니다⁠.⁠”

모진국의 숨이 멎었다⁠.

“⁠두 해 전 11월 19일 밤 열 시 이 분⁠. 아버님이 전화로 신분증 보지 말라고 하신 통화요⁠. 전화기가 저절로 녹음했대요⁠. 건 씨는 두 해 동안 그걸 안 지웠고 한 번도 안 틀었습니다⁠. 틀면 아버님 가게가 끝나니까요⁠. 방 안에 있으면 아무도 안 물어보니까요⁠.⁠”

모진국의 손에서 자물쇠가 미끄러져 작업대 위에 떨어졌다⁠. 놋쇠가 쇠판에 부딪혀 둔하게 울었다⁠.

“⁠아버님은 건 씨가 방에 숨었다고 생각하셨죠⁠. 건 씨는 숨은 게 아닙니다⁠. 아버님을 지키고 있었어요⁠. 두 해 동안 문을 잠그고⁠.⁠”

“⁠그만하시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작업대 모서리를 짚었다⁠. 쇳가루가 손바닥에 박혔다⁠. “⁠아버님이 수술대에서 못 일어나시면⁠, 건 씨는 그 소식을 병동 유리문 안에서 전화로 듣게 됩니다⁠. 두 해 전 경찰서 복도처럼요⁠. 문 하나 사이에 두고⁠, 아버님 목소리도 없이요⁠. 그게 아버님이 정하신 가장 안전한 방입니다⁠.⁠”

모진국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낡은 바퀴 의자가 삐걱 울며 뒤로 밀렸다⁠. 모진국은 왼손으로 가슴 한가운데를 눌렀다⁠. 이번에는 오래 눌렀다⁠. 나는 한 걸음 다가갔고⁠, 모진국이 손바닥을 들어 나를 막았다⁠.

“⁠괜찮소⁠. 약 있소⁠.⁠”

카디건 주머니에서 약통이 나왔다⁠. 알약 한 알이 혀 밑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형광등 지지거리는 소리 속에서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골목 끝에서 누가 셔터를 내리는 소리가 났다⁠.

“⁠내일 저녁에 입원하오⁠.⁠” 모진국이 숨을 고르고 말했다⁠. “⁠가는 길에 그 병원 들르겠소⁠. 저 녀석 얼굴 보고 가겠소⁠. 당신은 오지 마시오⁠. 이번엔 우리 둘이오⁠.⁠”

나는 셔터 밑으로 몸을 숙였다⁠. 등 뒤에서 모진국이 불렀다⁠.

“⁠당신⁠. 지단 부칠 줄 아오⁠?⁠”

“⁠아직 못 합니다⁠.⁠”

“⁠나는 이 년 걸렸소⁠. 아니⁠, 이 주 걸렸소⁠. 계란 마흔 개 버리고⁠.⁠” 모진국이 열쇠 복사기 스위치를 다시 올렸다⁠. 쇠 깎는 소리 너머로 목소리가 따라왔다⁠. “⁠약불이오⁠. 약불⁠. 그것만 알면 되오⁠.⁠”

*

2월 6일 오후 다섯 시⁠, 간호사실 앞 사물함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저녁 사용 시간보다 한 시간 일렀다⁠. 의사가 오늘만 된다고 했다⁠. 비닐봉지에서 꺼낸 전화기는 차가웠다⁠. 녹음 목록을 열었다⁠. 「⁠아버지⁠」 일 분 사십 초⁠.

병동 문 앞으로 갔다⁠. 바깥에서 잠그는 문이었다⁠. 어른 얼굴만 한 유리창이 눈높이에 나 있었다⁠. 유리창 너머 복도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갈색 카디건 위에 외투를 입었고⁠, 손에 입원 가방을 들었다⁠. 머리가 지난달보다 더 희끗했다⁠. 아버지는 문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잡을 손잡이가 바깥에만 있는 문인데도 잡지 않았다⁠.

창가 침대의 남자가 복도 끝 의자에 앉아 화투 패를 손에 쥔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패를 뒤집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쥔 내 손가락이 떨렸다⁠. 녹음 화면 위로 손가락 끝의 땀이 번졌다⁠. 두 해 전 출장 갈 때 공구 가방을 쥐던 손이었고⁠, 서지헌이 손등을 덮어 주던 손이었다⁠. 오늘은 아무도 덮어 주지 않았다⁠.

간호사가 열쇠를 꽂았다⁠. 철컥⁠. 문이 한 뼘 열렸다⁠. 간호사가 문을 잡은 채 한 걸음 물러났다⁠. 한 뼘이었다⁠. 내 방문이 처음 열렸을 때와 같은 한 뼘⁠. 이번에는 내가 안에⁠, 아버지가 밖에 있었다⁠.

“⁠건아⁠.⁠”

아버지가 먼저 불렀다⁠. 두 해 동안 문틈으로 듣던 목소리였다⁠. 문틈이 넓어지니 목소리가 작아졌다⁠. 아버지는 문에 대고 말하지 않고 나를 보고 말했다⁠.

“⁠엄마가 서류를 찢었다더라⁠. 의사가 퇴원 동의하냐고 또 묻더라⁠. 아직 대답 안 했다⁠.⁠”

“⁠대답하기 전에 하나만 들어요⁠, 아버지⁠.⁠”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재생을 눌렀다⁠. 스피커를 아버지 쪽으로 돌렸다⁠. 병동 복도가 조용했다⁠. 트럭 엔진 소리가 먼저 나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

“⁠신분증 보지 마⁠. 그 사람 통장님 조카래⁠. 빨리 따고 넘어가⁠.⁠”

이어서 두 해 전의 내 목소리가 나왔다⁠. “⁠아버지⁠, 저 사람 숨이 좀 이상해요⁠.⁠” 아버지에게 숨 이야기까지 했다는 것을⁠, 나는 두 해 동안 잊고 있었다⁠. 녹음 속 아버지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숨 이상한 손님이 한둘이냐⁠. 신사동 밀렸다⁠. 빨리⁠.⁠” 통화가 끊겼다⁠. 일 분 사십 초가 끝났다⁠.

아버지는 입원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가방이 넘어졌다⁠. 아버지는 가방을 세우지 않았다⁠.

“⁠내가 저 말을 했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숨 이상하다는 너한테⁠.⁠”

“⁠두 해 동안 안 틀었어요⁠. 아버지 가게 끝날까 봐⁠. 동네가 아버지를 거짓말쟁이라고 할까 봐⁠. 경찰서 복도에서 아버지가 나를 안 보고 지나갔을 때⁠, 나는 아버지가 내가 들은 줄 모르는 줄 알았어요⁠. 모르면⁠, 모르는 채로 두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한 뼘 열린 문틈으로 손을 넣었다⁠. 간호사가 막으려다 멈췄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문틀을 잡았다⁠. 기름때가 낀 엄지손톱이 내 눈앞에 있었다⁠.

“⁠건아⁠. 나는 알았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끝이 아니라 처음부터 떨렸다⁠. “⁠그날 조사실 문이 한 뼘 열려 있었지⁠. 문틈으로 복도가 보였다⁠. 의자 밑에 네 운동화 코가 보였어⁠. 흰 운동화⁠. 네가 거기 앉아서 다 들은 줄 알면서⁠, 나는 그 말을 했다⁠. 그러고 나와서 너를 못 봤다⁠. 너를 보면 무릎을 꿇을 것 같아서⁠.⁠”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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