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17자)
국
고립 청년 돌봄 매니저 · 도결애
아버지는 병동 문틀을 놓지 않은 채 무릎을 꿇지 않았다. 대신 간호사를 보았다.
“퇴원 동의하겠소. 서류 주시오.”
2월 6일 오후 다섯 시 사십 분이었다. 칠십이 시간은 아직 하루 반이 남아 있었다. 간호사가 의사를 불렀고, 의사가 서류를 들고 왔다. 아버지는 병동 문 바깥에 선 채 무릎 위에 서류를 대고 이름을 썼다. 글씨가 떨렸다. 이름 끝 획이 종이 밖으로 조금 나갔다.
간호사실 앞에서 맡겼던 것들을 돌려받았다. 운동화 끈, 후드티 끈. 나는 병동 의자에 앉아 운동화에 끈을 꿰었다. 구멍 하나에 끈 하나씩. 후드티 끈은 옷핀이 없어서 잘 들어가지 않았다. 창가 침대의 남자가 다가와 제 셔츠 단추 옆에 꽂아 둔 옷핀을 빼서 건넸다.
“밖에서 열어 주는 문에 익숙해지기 전에 나가는구먼.” 남자가 화투 패 한 장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비 광이었다. “판 바뀔 때 쓰는 패야. 바뀌어 봤자지만, 바뀌긴 해.”
병동 문이 열렸다. 철컥. 이번에는 바깥으로 나가는 소리였다. 아버지가 넘어진 입원 가방을 세우고, 문턱 밖에서 나를 기다렸다. 두 해 동안 아버지는 문 밖에서 기다렸다. 오늘은 기다리는 아버지를 내가 보면서 걸어 나갔다.
택시를 잡으며 아버지가 말했다. “병원 가기 전에 들를 데가 있다.” 기사에게 말한 곳은 경찰서였다.
*
경찰서 이 층 복도에는 의자가 다섯 개 붙어 있었다. 두 해 전과 같은 의자였다. 파란 플라스틱 등받이에 누가 볼펜으로 그어 놓은 줄까지 같았다. 나는 두 해 전에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문에서 세 번째 의자였다.
야간 당직 형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두 해 전 사건을 맡았던 형사는 다른 서로 갔다고 했다. 형사는 아버지의 말을 듣다가 사건 기록을 찾아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고, 사십 분 뒤에 돌아와 아버지를 조사실로 불렀다. 조사실 문은 닫히다가 한 뼘쯤에서 멈췄다. 문 아래 고무 받침이 닳아서 끝까지 안 닫힌다고 형사가 말했다. 두 해 동안 아무도 고무 받침을 갈지 않았다.
문틈으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버지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고, 경찰서 복도는 조용했다.
“두 해 전에 제가 한 진술을 고치러 왔습니다. 제가 아들한테 신분증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통장님 조카라고, 빨리 따고 넘어가라고. 아들은 손님 숨이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 말을 끊었습니다. 아들은 확인을 깜빡한 게 아닙니다. 제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형사의 볼펜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형사가 무언가를 물었고, 아버지가 대답했다.
“가게 때문이었습니다. 삼십 년 한 가게라서. 아들은 젊으니까, 동네 떠나서 새로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은 동네를 안 떠났습니다. 방에 들어갔습니다. 두 해 동안.”
문틈 아래로 아버지의 작업화 코가 보였다. 아버지가 의자에서 몸을 돌려 문틈을 보는 것이 소리로 들렸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아버지는 문틈 너머 세 번째 의자에 앉은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녹음이 있습니다. 아들 전화기에. 아들이 두 해 동안 안 틀었습니다. 저 때문에.”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조사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세 번. 아버지가 두 해 동안 아침마다 내 방문에 낸 소리였다. 형사가 문을 열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형사에게 내밀었다.
“모건입니다. 녹음 드릴게요. 제 거예요. 제가 드리는 거예요.”
형사가 녹음을 옮겨 받는 동안 아버지와 나는 조사실 안에서 마주 앉았다. 문 없이,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형사가 말했다. 사건은 이미 끝났고 아버지의 고친 진술은 기록에 남는다고, 다친 분께 연락이 갈 수 있다고.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 가면 제가 찾아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이번엔 제 이름으로요. 아들 이름 말고.”
형사가 서류를 챙겨 잠깐 나갔다. 조사실에 아버지와 나만 남았다. 탁자 위에 형사가 두고 간 종이컵 커피가 식어 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종이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게는 닫는다. 정육점 사장한테 셔터 열쇠 맡겼다. 수술하고 나면 사다리도 못 탄다더라.”
“가게 닫으면 아버지 뭐 해요.”
“국 끓이지.” 아버지가 코로 웃었다. “약불로.”
“된장국은 끓이지 마요.”
“안다. 네 어미한테 들었다.” 아버지는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기름때 낀 엄지손톱이 종이컵 테두리에 닿았다. “두 해 동안 냄새 싫은 국을 문 앞에 놨구나.”
“치킨은 아버지 카드로 먹었어요.”
“그건 맛있었냐.”
“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사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문틈 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경찰서를 나오자 계단 아래에서 서지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도 온 사람이 경찰서 정문 계단 맨 아래 칸에 앉아 있었다. 목에는 아무 줄도 없었다. 아버지가 서지헌을 내려다보고 코로 웃었다.
“오지 말라니까.”
“경찰서는 우리 둘 안에 안 들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
2월 7일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대학병원 삼 층 수술실 앞 복도에는 대기 의자가 줄지어 있었다. 건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수술실 자동문 옆 벽에 등을 대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회색 후드티 끈이 새로 꿰어져 있었고, 운동화 끈은 단단히 묶여 있었다. 자동문 위에 「수술 중」 등이 켜졌다. 모진국이 들어간 지 십 분째였다.
나는 건 옆에 앉았다. 경첩이 달린 문 끝에 앉던 버릇대로, 자동문의 반대편 벽에 등을 대고 문 앞은 비워 두었다. 건이 내가 앉은 자리를 보고 웃었다.
“거기 앉으면 문 열려요.”
“열려야죠. 아버님이 나오셔야 하니까요.”
건은 자동문을 보았다.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수술실 안의 소리는 하나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복도의 소리가 많았다. 침대 바퀴, 보호자들의 휴대전화 진동, 자판기에서 캔이 떨어지는 소리. 건은 소리마다 고개를 조금씩 돌렸다. 기다리는 여섯 시간 동안 건은 상담 앱을 한 번도 열지 않았다. 휴대전화는 무릎 위에 엎어져 있었다.
열 시쯤 건의 어머니가 왔다. 계란 한 판을 들고 왔다. 병원에 계란을 들고 오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어머니는 대기 의자에 앉아 수술실 문을 노려보았다. “저 양반 혈관도 고집이 세서 의사가 고생하겠네.”
열한 시에 건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건이 화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수술 들어가기 전에 모진국이 보낸 음성 문자가 병원 와이파이를 타고 이제야 도착했다.
「건아 집에 가스 밸브 잠갔는지 봐라 그리고 국은 약불이다 약불 아 이거 어떻게 끄」
건이 화면을 내게 보여 주었다. 어머니가 넘겨다보고 혀를 찼다. “평생 못 끄네.”
오후 한 시쯤 내 휴대전화에 팀장의 메신저가 왔다. 「서 매니저님, 영상은 내렸어요. 아버님이 어제 저녁에 회사로 전화하셔서 사례 활용 동의를 철회하셨대요. 퇴사 처리는 다음 주에 할게요. 사원증 줄은 제가 보관해 둘게요. 혹시 모르니까요.」 마지막 줄에는 웃는 얼굴 표시가 없었다.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보냈다. 팀장의 말이 끝까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문 백 개가 진짜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오늘은 문 하나 앞에 앉아 있고 싶었다.
「수술 중」 등은 오후 세 시 십 분에 꺼졌다. 자동문이 열리고 의사가 마스크를 내리며 나왔다. 혈관 세 군데를 다 이었다고, 잘 버티셨다고 했다. 건은 바닥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려다가 다리가 풀려 도로 앉았다.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건이 내 손을 먼저 잡았다. 손바닥이 땀에 젖어 있었다.
*
밤 열 시, 응암동 집은 비어 있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있었고, 어머니는 근처 찜질방에서 잔다고 했다. 건은 아버지의 속옷과 칫솔을 챙기러 왔다. 일곱 번째 칸이 울었다. 건이 계단을 다 올라가 복도 끝에서 멈췄다.
방문은 이송 날 아침 그대로 활짝 열려 있었다. 위쪽 경첩은 여전히 나사 두 개로 버티고 있었다. 복도 창턱의 하얀 종지 안에 나사 두 개가 그대로 있었다. 건이 종지를 들어 나사를 손바닥에 쏟았다. 그리고 현관으로 내려가 신발장 위에 놓인 드릴 상자를 들고 올라왔다. 베어링이 닳은 건의 드릴이었다.
“문짝 좀 잡아 줘요. 무게 안 받게.”
나는 문짝을 두 손으로 받쳤다. 나무가 차가웠다. 건이 나사를 경첩 구멍에 대고 드릴 끝을 맞췄다. 모터가 돌았다. 끝이 쇳소리로 갈라졌다. 나사가 한 바퀴씩 나무 안으로 파고들었다. 두 번째 나사도 들어갔다. 위쪽 경첩이 나사 네 개로 다시 문의 무게를 받았다.
건이 문을 닫았다. 문은 문틀에 맞게 닫혔다. 끼익 소리가 나지 않았다. 건이 다시 문을 열었다. 소리 없이 열렸다. 건은 손잡이 안쪽 단추를 눌러 보지 않았다. 문을 연 채로 두고 문턱에 앉았다. 나도 옆에 앉았다. 처음으로 문턱 하나에 두 사람이 앉았다. 문짝이 우리 등 뒤에서 열린 채 가만히 있었다. 건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눈을 덮는 검은 머리카락이 내 목에 닿았다. 줄이 없는 목이라 머리카락이 바로 살에 닿았다.
“지헌 씨 내일 아침에 뭐 해요?”
“회사가 없어서 한가합니다.”
“국 끓이는 거 봐 줘요. 약불인지.” 건이 숨을 길게 쉬었다. 숨이 내 쇄골 근처에서 따뜻하게 흩어졌다. “계란 깨는 소리 나면 깨워 줄게요.”
건은 일어나 아버지의 칫솔을 챙기러 내려갔다. 일곱 번째 칸이 울었다. 나는 열린 문 앞에 앉아 계단 소리를 끝까지 들었다.
*
2월 8일 아침 일곱 시, 나는 부엌에서 계란을 깼다. 엄마가 놓고 간 계란 한 판에서 네 개를 꺼냈다. 노른자와 흰자를 따로 그릇에 나눠 담다가 두 개는 섞여 버렸다. 섞인 것은 내가 먹기로 했다. 약불이었다. 아버지 말대로 약불에 두니 지단이 타지 않았다. 노란 것은 두께가 들쭉날쭉했다. 하얀 것은 가장자리가 반듯했다. 미역국을 끓였다. 아버지가 끓이던 것보다 싱겁게. 지헌 씨는 식탁 의자에 앉아 내가 버린 계란 껍데기를 세다가 그만두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아버지는 창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숨이 고르고 길었다. 두 해 동안 바닥으로 듣던 숨이었다. 참았다가 한꺼번에 내쉬지 않았다. 그냥 쉬었다.
지헌 씨는 병실 문 밖 복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들어오라고 해도 가족 먼저라며 들어오지 않았다. 문 밖에서 기다리는 데는 지헌 씨가 나보다 오래 익숙했다. 나는 탁자 한쪽에 놋쇠 자물쇠를 놓았다. 지난밤 부엌에서 걸쇠를 열어 두었다. 열쇠 없이.
보온병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컵 삼아 국을 따랐다. 미역 위에 노란 지단과 하얀 지단을 가늘게 썰어 올렸다. 숟가락을 뚜껑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침대 곁 탁자에서 김이 올랐다. 김은 창으로 들어온 겨울 햇빛을 지나 아버지의 희끗한 머리맡까지 올라갔다. 아버지의 눈꺼풀이 움직였다. 아버지가 눈을 뜨기 전에 코가 먼저 움직였다. 입술이 달싹였다. 잠결에도 국 냄새는 아는 사람이었다. 냄새를 맡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버지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렸다. 국은 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