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620자)
갈라선 등
객잔을 지키는 고수 노부부 · 하청오
화운은 노를 들고 솥을 저었다. 천막에는 국자가 없었다. 흑수곡 사람들은 산이 무너질 때 숟가락 하나 못 챙기고 나왔다. 화운이 지고 내려온 무쇠 냄비 둘에 천막의 솥 넷을 더해 솥이 여섯이었다. 솥 여섯에 쌀 한 자루, 보리 두 자루, 산나물을 한 아름. 화운은 개울가 바위에 걸쳐 둔 낡은 쪽배의 노를 빌려 솥을 저었다.
“국자 영감님, 국자는 어디 두고 노를 저으세요?”
천막 아낙들이 웃었다. 화운은 노를 솥 가장자리에 탁 쳐서 죽을 털었다.
“국자는 집에 두고 왔소. 집에 두고 온 게 많소.”
“마님도요?”
“마님은 국자보다 무겁소.”
아낙들이 또 웃었다. 소추가 화운의 다리에 매달려 노를 같이 쥐겠다고 졸랐다. 화운은 소추를 솥 앞 돌 위에 세우고 노 끝을 쥐여 주었다. 소추는 노를 젓다가 죽에 코를 박을 뻔했다.
천막 사람들은 이틀 만에 화운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인 까닭은 죽이었다. 화운의 죽은 같은 쌀과 같은 보리로 쑤어도 맛이 달랐다. 소금을 넣는 때가 달랐고, 젓는 손이 달랐다. 화운은 죽을 쑤면서 흑수곡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 산이 무너지기 전날 밤 땅 밑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났다고 했다. 비가 그친 뒤였다고 했다. 그런 소리는 처음 들었다고 했다. 화운은 천둥 같은 소리 이야기를 노 젓는 손에 넣어 두었다.
저녁에 늙은 사공 하나가 솥 옆에서 노래를 불렀다. 흑수곡 위 노강 나루에서 배를 몰던 사람이라고 했다. 노래는 금사강 뱃노래와 가락이 같았다. 화운이 노를 저으며 따라 불렀다. 두 번째 구절에서 방칠이 천막에서 나와 솥 옆에 앉았다. 가면을 쓰고 있었다. 방칠은 따라 부르지 않고 듣기만 했다. 세 번째 구절에서 화운의 목이 잠겼다.
밤에 화운은 천막 하나를 얻어 혼자 누웠다. 거적 위에 누워 천장을 보다가, 옆으로 돌아누웠다. 마주 볼 얼굴이 없었다.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거기에도 없었다. 서른 해 동안 화운은 눈을 감기 전에 청매의 얼굴을 보았다. 코를 골면서도 보았다. 오늘 밤 화운은 천막 벽에 대고 누웠다. 천막 벽은 숨을 쉬지 않았다.
화운은 천막에서 보낸 첫 밤에 코를 골지 않았다. 수건을 매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잠이 들지 않아서였다.
*
아묵은 대청 탁자 셋에서 국수 그릇이 반도 안 비고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사계로 넘어가는 마방 손님들이었다. 한 손님이 국물을 한 숟갈 뜨고 얼굴을 찡그렸다.
“점소이, 오늘 국수에 소금을 쏟았소?”
“오늘은 마님이 끓이셨습니다.”
“영감님은?”
“영감님은 산책 가셨습니다.”
“산책을 며칠이나 가오?”
“이틀째입니다.”
손님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엽전을 놓고 나갔다. 마님이 부엌 문턱에서 엽전 소리를 들었다. 아묵은 엽전을 쓸어 담으며 마님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마님은 그저께부터 국수에 소금을 한 줌씩 넣었다. 사부님이 넣던 대로였다. 그런데 사부님의 한 줌과 마님의 한 줌은 달랐다. 마님의 손이 더 컸다. 서른 해 동안 검을 쥔 손이었다.
대장간 사내가 점심때 들어왔다. 국수는 시키지 않고 탁자에 팔꿈치를 괴었다.
“마님, 영감님이 천막에 내려가셨다며요?”
“산책이오.”
“이틀째?”
“영감은 걸음이 느리오.”
“제삿날까지 산책 마치고 올라오시나?” 대장간 사내가 웃었다. “마을에서는 다들 제삿날 영감님 안 오는 데에 걸었어요. 콩비지네는 소금 한 수레 받으면 뭐 할지 벌써 정했고요.”
마님이 부엌으로 들어가 유선을 꺼내 검을 뽑았다. 유선을 썰었다. 탁, 탁, 탁. 대장간 사내가 탁자에서 팔꿈치를 내렸다. 그리고 국수를 한 그릇 시켰다. 다 먹었다. 소금 맛 때문에 물을 세 바가지 마셨다.
오후에 관군이 올라왔다. 마득곤이 병사 둘을 시켜 객잔 돌계단 옆 바위에 방을 붙였다. 아묵이 읽었다.
「흑수곡 유민 무리는 삼월가 첫날 해 뜨기 전까지 천막을 걷고 흩어질 것. 흩어지지 않는 자는 비적으로 다스린다. 비적을 숨기거나 먹이는 자도 같다.」
“비적을 먹이는 자도 같다.” 마님이 소리 내어 읽었다. “천총 나리, 이건 영감 들으라고 쓴 거요?”
“영감이 천막에서 죽을 쑨다는 거 다 아오.” 마득곤이 투구를 벗고 이마의 자국을 문질렀다. “안주인, 한 번만 말하겠소. 삼월가 첫날 관군 이백이 흑수곡 천막을 치오. 영감이 거기 있으면 영감도 비적이오. 내 칼은 노인을 가려 베지 않소.”
“나리 칼이 노인을 가려 벨 줄 알면, 노인 손에 맞지는 않을 거요.”
마득곤이 마님의 허리춤 검을 보았다. 아묵은 두 사람 사이에 두 번째 잔을 얼른 놓았다. 꿀이 듬뿍 든 잔이었다. 마득곤은 잔을 비우고 내려갔다.
마님은 바위의 방을 오래 보았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 탁자 위의 쇠 국자를 집었다. 이틀 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국자였다.
“아묵, 솥 불 보고 있어라.”
“마님, 어디 가십니까?”
“산책.”
*
청매는 해 질 녘에 천막 솥 앞에 이르렀다. 화운이 노를 젓다가 고개를 들었다. 천막 사람들이 청매의 허리춤 검을 보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아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소추가 청매에게 달려와 치맛자락을 잡았다.
“할머니도 산책 왔어요?”
“그래.”
청매는 국자를 화운에게 내밀었다. “두고 갔소.”
화운은 노를 쥔 채 국자를 보았다. 받지 않았다.
“노도 잘 저어지오.”
“노는 강에서 젓는 거요.”
“여기 사람들은 강에서 왔소. 노가 익숙하오.”
청매는 국자를 솥 가장자리에 걸쳐 놓았다. 천막 사람들이 멀찍이 둘러서서 숨을 죽였다. 방칠이 천막 입구에서 가면을 쓰고 서 있었다. 아탄은 방칠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영감, 할 말이 있소. 그날 아침에 세 번째 잔을 마시면서 하려던 말이오.”
“방칠이 다 했소.”
“방칠은 옥교가 한 말을 했소. 내 말은 아직 안 했소.”
화운이 노를 내려놓았다. 청매는 화운의 긴 눈썹 밑의 눈을 보고 말했다. 사람들이 듣든 말든 말했다.
“명을 받을 때 나는 묻지 않았소. 물으면 알게 될까 봐. 사당 앞에서 관군 말발굽 소리를 들었을 때도 묻지 않았소. 배를 아래로 몬 건 명이었소. 영감 칼이 내 비녀를 잘랐을 때 검을 거둔 건 명이 아니었소. 영감이 웃어서였소. 상류 하늘이 붉어졌을 때 영감 소매를 잡은 건, 영감이 가면 죽을까 봐서였소. 영감이 이름을 다 부를 때까지 기다린 것도 나요. 관군 횃불이 강둑에 닿기 직전까지 기다렸소.”
“서른 해 동안 왜 말 안 했소?”
“말하면 영감이 돌아갈까 봐. 나루로.”
“나루는 불탔소.”
“영감 마음에서는 서른 해 동안 안 탔소. 영감은 서른 해 동안 남의 밥을 퍼 줬소. 금사방 형제들한테 못 퍼 준 밥을 퍼 준 거요. 나는 그걸 서른 해 동안 옆에서 봤소. 소금을 반 줌 치라고 하면서.”
화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솥에서 죽이 끓어 넘쳤다. 화운이 노를 다시 들어 저었다. 넘친 죽이 장작불에 떨어져 지글거렸다.
“임자, 나는 제삿날에 안 가겠소.”
천막 사람들이 술렁였다. 아탄이 팔짱을 풀었다. 방칠의 가면이 조금 움직였다.
“왜?”
“본주 앞에서 잔을 같이 들면 내가 쏟을 거요. 지금 손이 이렇소.” 화운이 노를 쥔 손을 들어 보였다. 떨리고 있었다. 칼을 녹인 뒤 서른 해 동안 한 번도 떨리지 않은 손이었다. “쏟으면 본주가 안 받소. 차를 쏟으나 안 가나 땅은 마을로 가오. 그러니 안 가겠소. 안 가면 적어도 본주 앞에서 임자 망신은 안 시키오.”
“그게 영감이 나를 위하는 방법이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오.”
청매는 솥 가장자리의 국자를 집어 들었다. 화운이 보는 앞에서 국자로 죽을 한 번 떠서 맛을 보았다. 싱거웠다. 청매는 허리춤 주머니에서 소금을 꺼내 반 줌을 솥에 넣었다. 국자로 바닥까지 긁어 저었다.
“반 줌이면 되오. 영감은 서른 해 동안 한 줌 넣었소. 반 줌이면 사람들이 물을 덜 마시오.”
청매는 국자를 다시 솥 가장자리에 걸쳐 놓고 몸을 돌렸다. 등을 보이며 비탈을 올라갔다. 화운은 청매의 등을 보았다. 서른 해 만에 두 번째로 보는 등이었다. 등은 꼿꼿했고, 다섯 걸음마다 허리를 짚었다.
*
아묵은 비탈 중턱 바위에서 마님을 만났다. 아묵은 국수 그릇과 대나무 국물 통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형이 경계를 서는 시각까지 기다리는 중이었다. 마님이 바위 옆에서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짚었다.
“마님, 사부님은요?”
“죽 쑤더라. 노로.”
“노로요?”
“국자보다 길어서 솥 바닥이 잘 긁힌다더라. 영감 말로는.”
마님이 바위에 걸터앉았다. 아묵은 국수 그릇을 마님 쪽으로 내밀었다. 마님은 고개를 저었다.
“네 형 몫이다.”
“형은 사흘째 안 먹습니다. 그래도 그릇은 받아서 들고 있다가 돌려줍니다. 어제는 돌려줄 때 그릇이 따뜻했습니다. 손으로 감싸고 있었나 봅니다.”
마님이 아묵의 산다화 주머니를 보았다. 손을 뻗어 덜 수놓은 꽃잎 자리를 한 번 만졌다.
비탈 아래 길로 토번 마방 한 무리가 지나갔다. 털모자 우두머리가 노새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사계에서 소금을 싣고 토번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마님! 세관 서면 우리는 운령 안 넘소! 옛길로 사흘 돌아가는 게 세 푼보다 싸오!” 털모자가 소리쳤다. “영감님은 어디 가셨소? 내기는?”
“아직이오!” 마님이 소리쳐 대답했다.
털모자가 웃으며 멀어졌다. 마님은 털모자의 노새가 굽이를 돌 때까지 보았다.
“아묵, 세관이 서면 토번 사람들이 안 온다. 상단 역참이 서면 상단 사람만 쉰다. 방칠이 가지면 흑수곡 사람만 쉰다.” 마님이 일어났다. “객잔은 아무나 쉬는 데다. 서른 해 동안 그랬다.”
“그럼 누가 가져야 합니까?”
마님은 대답 대신 허리를 펴고 비탈을 올라갔다.
*
방칠은 자정이 넘어 아탄과 사내 열을 천막 뒤 개울가로 불렀다. 개울물 소리가 말소리를 덮었다. 방칠은 가면을 벗지 않았다.
“삼월가 첫날 관군 이백이 온다. 우리는 삼백인데 싸울 줄 아는 사내는 쉰이다. 칼은 열 자루다.”
“흩어지면 됩니다.” 사내 하나가 말했다.
“흩어지면 어디로 가느냐? 흑수곡은 흙에 묻혔다. 대리 성안은 유민을 안 받는다. 사계는 상단 땅이다.” 방칠이 개울에 돌을 던졌다. “본주 제삿날 밤, 상단의 소금 행렬이 낙등에서 운령을 넘는다. 노새 백 마리다. 삼월가에 팔 소금이다. 그걸 친다.”
사내들이 숨을 들이켰다. 아탄만 숨을 들이켜지 않았다.
“소금을 쥐면 관군이 섣불리 못 친다. 소금에 불을 지르면 삼월가 장이 망하니까. 상단은 소금을 돌려받으려고 우리와 흥정해야 한다. 흥정할 것이 생기면, 그때 땅도 이야기할 수 있다.”
“형님, 그러면 진짜 비적이 됩니다.” 아탄이 말했다.
“지금은 비적이 아니냐?” 방칠이 아탄을 보았다. “방에는 벌써 비적이라고 쓰여 있다. 쓰여 있는 대로 하는 것뿐이다.”
“국자 영감님은요?”
“영감은 모른다. 모르게 해라.” 방칠이 일어났다. 등의 칼이 달빛에 번쩍였다. “영감은 오늘 할멈을 돌려보냈다. 영감은 이제 우리 사람이다. 우리 사람한테는 모르는 게 낫다.”
아탄은 개울 건너 비탈 위를 보았다. 객잔의 불빛 하나가 아직 꺼지지 않고 있었다. 동생이 저 불빛 아래에서 국수를 말고 있을 것이었다. 내일 밤에도 저 녀석은 국수 그릇을 들고 바위에 앉을 것이었다. 아탄은 산다화 주머니를 손으로 감쌌다.
“길잡이가 필요합니다.” 아탄이 말했다. “운령 위 길은 우리가 모릅니다. 객잔 뒤로 도는 옛길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길을 아는 사람이 누구냐?”
아탄은 대답하지 않았다. 방칠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찾아라. 제삿날 밤이다.”